好學의 人生/[우주만물]세상만사

[일사일언] 무한한 사고방식을 꿈꾸며

好學 2011. 7. 23. 22:27

[일사일언] 무한한 사고방식을 꿈꾸며

 

 

불경 중의 불경으로 꼽히는 화엄경을 읽으려면 많은 은근과 끈기를 요한다. 그 방대한 양도 양이지만 그 장황하디 장황한 묘사에는 아연실색할 정도다.

무량 천만 억의 광명, 일억 세계의 티끌 수만큼 많은 보살, 일천만 억의 항하사(인도 갠지스 강가의 모래알만큼 많은 수, 수학적 개념으로는 10의 52승이라고 함), 한량없는 삼천대천(약 10억 개의 태양계가 존재하는 세계), 일천만의 오랜 겁(劫, 길이가 40리에 달하는 바위를 백 년에 한 번씩 신선의 천의 자락으로 스쳐 그 바위가 모두 닳아 없어지기까지의 시간, 약 43억2000만년이라고 함) 등.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내겐 도저히 가늠키 힘든 비유의 개념들이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이러한 장엄한 문구를 따라 무량무변의 세계를 넘나들다 보면, 어느 순간 갑갑한 현실을 벗어나 범우주적 공간에 발을 들여놓는 듯한 아득한 체험을 하기도 한다. 화엄경의 세계관은 ‘무한’으로 귀결되는 듯하다. ‘유한’에의 거부, 그러고 보니 인간의 모든 번뇌와 고통은 이 ‘유한적 사고방식’에서 기인하는 듯하다. 유한이라는 절박한 생각 속에서 경쟁과 시기가 일어나고, 질투와 탐욕을 부리게 되고, 또 사소한 개인적 이득을 위해 급급하게 된다.

연암 박지원은, 좁은 땅덩어리에서 바로 등을 맞대고 살면서도 너무나도 편협스럽고 각박한 우리 민족의 심성을 ‘좁쌀’에 비유한 바 있다. ‘해와 달은 그 무량한 빛으로 차별 없이 세상 구석구석을 두루 비춘다’는 대목을 읽으며, 무한하게 풍요롭다는 생각을 가질 때에만 비로소 스스로도 풍요로운 자유를 누릴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해 본다.

(강소연·미술사학자 홍익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