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도]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6·25의 교훈
30여 년간 군 생활을 했고 지금도 공직에 있다 보니, 경제가 주된 관심사였던 친구들의 눈에는 내가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안보와 남북관계, 전쟁과 평화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중에 빠지지 않는 것은 ‘이 땅에 또 전쟁이 일어날 것인가’, 즉 ‘북한은 전쟁을 일으킬 능력이 있는가’와 ‘만일 지금 전쟁을 한다면 어느 쪽이 이길 것인가’ 등이다.
주위에서 나를 보면 새삼 그동안 잊고 지냈던 국가와 안보에 대한 관심과 걱정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인생의 성공으로 자신감이 있는 사람도 ‘전쟁이 없어야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텐데’ 하는 우려가 생기는 것이다.
‘북한은 지금 전쟁을 일으킬 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30년 전쟁에서 해운상업국에다 델로스동맹의 군자금까지 보유하고 있던 아테네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형편없이 가난했던 농업국 스파르타. 단 하루도 전쟁을 하지 못할 것 같았지만 30년의 전비를 감당했으며 나아가 아테네를 이겼다. 경제력은 군사력의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경제력이 곧 군사력이란 공식은 항상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북한의 경제력은 형편없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킬 능력은 얼마든지 있다.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언제 시작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세상에 어떤 사람이 전쟁을 좋아할까? 그런데도 평화를 외치는 사람은 ‘나는 전쟁에 나가기 싫다’, ‘죽기가 두렵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역사상 전쟁들은 ‘평화를 원한다’고 주장한 국가와 국민에게 휘몰아쳤다. ‘어떠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영토를 지키고, 자유를 수호하겠다’고 선언한 나라는 승리했으며, 그러한 시대는 평화의 시대였다.
그래도 전쟁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을 것 아닌가? 친구의 목소리는 자못 간절해진다. 물론 우리는 이길 수 있고 이길 것이다. 패전한다면 이 땅의 국민은 절반 이상이 희생될 수도 있다. 공직자를 포함한 정부 관계자는 반동으로, 자기 집을 가진 자는 부르주아로, 이 땅에서 암약하며 북을 도왔을 간첩조차도 또 다른 배신을 제거하기 위해 숙청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멀리 볼 것도 없다. 베트남이 그랬고, 캄보디아도 그러했다. 그런 의미에서 승리는 대단히 중요하지만 전쟁의 결과는 모두를 패자로 만들 가능성이 더 크다. 성능 좋은 포탄은 산하와 도시들을 폐허로 만들 것이며, 친구가 다니는 좋은 회사들도 다 산산조각 날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전쟁에서는 먼저 적이 나를 이기지 못하게 하고… 적이 나를 이기지 못하게 하는 것은 나에게 달렸다(善戰者 先爲不可勝… 不可勝在己)’고 했듯이 스스로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고, 지킬 능력이 있으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조건이 있다. 대단히 역설적이지만 ‘전쟁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설령 전쟁을 해서라도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그 정신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지금 안보적인 측면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국방개혁 문제도 결국은 전쟁에서 적과 싸워 이기는 군대를 만드는 게 목적이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다. 군 구조와 시스템을 현재의 시대적 안보적 상황에 맞게 바꾸어 더욱 강하고 튼튼한 군대로 만드는 것이다.
정대현 국방부 국방교육정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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