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聖經信仰/[종합]인물.말씀.강연

요나

好學 2011. 3. 5. 23:19

요나

요나라는 뜻은 <비둘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나는 우리에게 특별한 사실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만 백성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방인에게도 선지자를 보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때로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칠 때가 있습니다.
3.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니느웨성 구원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단 한 명도 니느웨 구원을 위하여 기도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하나님이 선지자를 선택하시고 하나님이 억지로 그 곳으로 보내셨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4. 하나님은 혼자 일하시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누군가를 하나님의 계획에 들어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5. 죄를 지으면 피하게 됩니다. 숨고 싶어 합니다. 요나는 죄를 짓고 가면서 배밑에 숨었습니다.
6. 자연 현상도 다 뜻이 있습니다.
풍랑이 일어날 때 이는 다 요나의 불순종 때문입니다. 지진, 폭풍, 가뭄이 있어도 다 징계의 뜻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찾아야 합니다.
7. 예수 믿는 이들의 불순종이 예수 안 믿는 이를 괴롭힐 수 있습니다. 부모의 죄가 자녀를 괴롭힐 수 있습니다.
교회가 부패하면 국가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자기 때문에 풍랑을 만나 고통을 당하고 있는 데 정작 자기는 모르고 잘 수 있습니다. 자기 때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풍랑을 만나고야 요나는 <나의 연고라>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매맞아야 정신차리고 부러지고 다쳐야 정신을 차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골치아프실 것입니다.
8. 환란은 과정이지 결과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과정을 통하여 크게 훈련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사용하시기에 불편하지 않으시도록 사람을 훈련시켜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모세가 그렇고 바울이 그랬습니다.
훈련없이 사용없습니다.
9. 한 알의 밀일이 나중에 큰 역사를 일으키게 됩니다. 요나 하나가 전한 말씀이 그 지역을 복음화시켰습니다.

목화씨 하나가 오늘 날 우리나라 목화를 이루었습니다. 사과씨 하나가 오늘 날 사과밭을 만들었습니다.
10. 하나님은 때로는 시청각 교육을 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요나는 느니웨가 망하는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망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박넝쿨을 자라게 하셨다가 벌레 먹고 쓰러지게 하셨습니다. 이를 보고 요나는 불평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풀 하나도 귀한 데 영혼이야 얼마나 귀하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서의 주인공은 요나를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모습니다.
누가 나에게 지구상에 있는 254국가 중에 어느 민족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치 않고 유대인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할 것입니다.
그들의 민족성을 나는 흠뻑 받아드리고 싶은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몇 가지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1. 국방을 자랑합니다.
400만명의 인구를 가진 이스라엘이 1억의 아랍을 이길 정도로 국방은 잘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군대이기에 기드온의 300명의 용사가 미디안을 이긴 것을 전쟁의 표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수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고 있음을 믿고 전쟁에 임하기에 지금도 언제나 승리할 수 있을 줄 믿고 있습니다.

2. 교육을 자랑합니다.
요하난 벤 자카이라는 랍비는 이스라엘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위인입니다. 로마가 예루살렘성을 둘러 쌌습니다. 들어온 사람 나갈 수없고 나간 사람 들어 오지 못 하게 로마 군인들은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굶어 죽일 작정이었습니다. 단 죽은 관만 밖의 묘지에 매장하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자카이는 죽었다고 소문을 낸 후에 관속에 들어가 누워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로마 장군과 담판하였습니다. 학교가 많은 거리인 야프네 거리만은 파괴시키지 않는다면 항복하겠다고 요청하였습니다.
그 아름다운 솔로몬 성전은 파괴하여도 교육만 파괴하지 않으면 나중에 이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하였습니다.
지금 로마는 사라졌지만 유대인은 지금 승리자로 남아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문맹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13살이 되면 율법시험을 치루어야 합니다.
베드로보고 어부라고 무식하다고 하는 데 베드로보고 무식하다고 하는 사람이 무식한 사람입니다.

3. 정식력을 자랑합니다.
유대인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강인한 정신력을 키워왔습니다.
유대인들의 경전 <미드라쉬>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사막 여행을 떠났습니다.
멀고도 험한 길, 목마르고 지루한 길, 덥고도 피곤한 길이었습니다. 한 참을 가다보니 묘지가 보였습니다.
아들은 묘지를 보자 <이제는 죽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푹석 주저 앉았습니다. 이때 아버지는 아들을 부추기며 말했습니다.
<힘내라. 묘지는 죽음이 아니라 동네가 가깝다는 증거다. 이 근처에 동네가 있다는 증거다>
아버지의 얼굴은 묘지를 보는 순간 희망에 넘쳤습니다.
유대인 이 때부터 <묘지는 희망이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야기로 들어 가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을 대표하는 사람이 요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에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는 원수 민족인 니느웨가 구원받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다시스로 도망하였습니다.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있어서 잘 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게다가 순풍이 불었습니다.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가는 데 일이 참 순조로웠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웃음이 참 웃음입니다. 끝에 가서 승리가 참 승리입니다.
폭풍이 불었습니다.배에 있는 사람들은 배에 누군가가 죄인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제비를 뽑았습니다. 요나에게 제비가 뽑혔습니다.
요나도 나때문이니까 나를 바다에 던져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요나는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죄로 평탄하던 생도 언젠가는 종말이 있었습니다. 죄는 용서받아도 벌은 용서받을 수 없었습니다.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습니다. 고래라고 하여도 별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고래는 4시간이면 어떤 음식물도 소하사킬 수 있는 소화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속에서 요나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요나서 2장은 요나가 고래뱃속에서 기도한 기도문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는 요나의 간절함을 하나님은 들으셨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가 승리자입니다.
유대인을 학살하던 아우스비치 수용소에서 독일군이 매일 죽일 사람들을 골라내고 있었습니다. 일렬로 세워놓고 그 앞을 거닐며 아무나 기분대로 <너!>하면 끌어다가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끝까지 살아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노동장에 끌려가서 일할 때마다 유리조각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감옥의 세메트 바닥에 날카롭게 갈았습니다. 그리고 자라나는 수염을 매일 깍았습니다.
다른 유대인들은 면도를 못 하여 터게 수염이 덥수룩한 데 이 만은 언제나 말끔하였습니다. 이렇게 생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그의 옆을 독일 군이 지날 때마다 생에 대한 애착을 보며 죽음의 길로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최후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가 승리자입니다.
고래가 요나를 삼켰으나 고래는 요나를 소화시키지 못 하였습니다. 드디어 고래는 요나를 요나가 가야할 곳인 니느웨섬에 토해놓았습니다.
고래는 요나를 삼켰으나 소화시키지 못 하였습니다.
나는 우리 온 성도들을 뜨겁게 축복하고 싶습니다.

<어떤 병이, 어떤 환경이, 어떤 부정적인 것들이 삼킨다 할지라도 결코 소화시키지 못 하고 뱉아 놓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의 대표는 요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대인 랍비로 유명한 빅터 M.솔로몬은 유대인이면서 자기 민족의 특성을 잘 파헤친 사람입니다. 나는 그의 책을 무척 좋아합니다.
유대인 촌에 들어 갈 때마다 나는 그 책을 들고 들어갈 정도입니다.
그는 유대인을 삼키려고 한 민족이 지금까지 상당히 많이 있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애급이 완전히 삼키라고 하였습니다.그러나 삼켰으나 소화시키지 못 하고 토해놓고 말았습니다.
바벨론이 삼켰습니다. 그러나 토하고 말았습니다.
앗수르가 삼켰습니다. 그러나 소화시키지 못 하였습니다.
로마가 삼켰습니다. 그러나 뱉아 놓고야 말았습니다.
사라센 제국이 삼켰습니다. 그러나 먹지 못 하였습니다.
그 후 독일도, 심지어 쏘련도 삼켰었으나 소화는 시키지 못 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요나민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요나 성도>가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 무엇이 삼킨다 할지라도 소화되지 못 하도록 몸부림치십시요.

1. 병이 삼켜도 병이 소화시키지 못 하도록 하십시요.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병이 우리를 삼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병에 소화되지 않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주님께서는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에게 나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태가 말한 것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 지셨도다>(마8;17)

바울 사도는 한창 일하여야 할 때 가시와 같은 병에 걸렸습니다. 그는 이 병을 고쳐달라고 하나님께 세번 기도하였습니다. 이제 그 병이 바울을 삼키려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몸부림치며 병이 삼키지 못 하도록 하였습니다. 결국은 그 병때문에 바울은 더 많은 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리게 되었고 오히려 병에 안 걸렸을 때 보다 더 능력있게 살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 병으로 죽지 않고 장렬하게 순교하였습니다.
병이 삼키려 했으나 병을 이용하였습니다. 병이 삼켰으나 바울을 토해내고 말았습니다.
지나 주간 우리는 서임중 목사님을 모시고 부흥회를 하면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서 목사님의 간증중 잊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가 너무 가난하여 먹지 못 하고 살았습니다. 한 다발 국수를 끓여서 시레기를 넣고 그것도 하루에 세끼를 나누어 먹어야 했던 가난에 시달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결국 그는 병에 들었습니다. 병원에 가보니 위에 직경 1.9cm의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약을 살만한 돈이 없었습니다.그 때 옛날 어느 부흥회에서 강사님이 주셨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약을 살만한 돈이 없거든 구약과 신약을 먹어라>
그는 산으로 올라 갔습니다. 그리고 나무를 부여잡고 별을 보며 이슬을 맞으며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나 살고 싶어요. 나 살려 주세요>
얼마후 그는 그 병원에 가서 다시 X-ray를 찍었습니다. 말끔히 나 있었습니다. 의사는 <무슨 약을 먹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신약과 구약을 먹었습니다>
<그게 무슨 약입니까?>
<성경책입니다>
<성경에 그런 약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의사를 전도하였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정말 은혜롭게 들었습니다.
병이 삼킨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의 피와 채찍은 우리의 병을 담당하셨음을 믿고 병에 소화되지 말아야 합니다.

2.실패가 삼켜도 실패가 소화시키지 못 하도록 하십시요.
살아가다 보면 실패와 좌절, 절망과 우울, 고통과 짜증이 파도처럼 밀려와 우리의 정신건강을 해칠 때가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요나처럼 고래가 삼켜도 고래에게 소화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실패가 몰려와서 실패에 빠질 때가 많아도 실패에 소화되어서는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에브라함 링컨의 전기를 간단하게 정리하여 <정상에 도전하라>라는 책에 기록하였더니 많은 목회자들에게 많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링컨의 전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931년 사업에 실패하였습니다.
1832년 주 의회의원에 출마하여 낙선하였습니다.
1833년 사업에 또 실패하여 얼마나 빗을 많졌는 지 그 대 진 빗을 그 후 17년간 갚아야 했습니다.
1834년 처음으로 주의회의원에 당선되어 성공의 경험을 가졌습니다.
1836년 너무 신경을 많이 쓰다가 신경쇠약환자가 되었습니다.
1838년 하원의장에 낙선하였습니다.
1840년 또 낙선하였습니다.
1843년 국회위원에 출마하여 낙선의 고배를 또 마셨습니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또 전진한 결과 드디어 1846년 국회위원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1948년 다시 국회위원에 출마하여 낙선하였습니다.
1855년 상원에 낙선,1956년 부통령에 낙선등 계속 실패만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1860년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링컨의 일생은 거의 실패로 얼룩진 생이지만 글 향하여 실패적 인생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실패가 삼켜도 실패가 소화시키지 못 하도록 하십시요.

로버트 서비스는 말하고 있습니다.
<만사가 절망적으로 보이고 심신의 상처가 아무리 깊다고 해도 한번 더 시도하라>
괴테는 <끈기를 실천하는 자는 드물지만 언제나 자신의 사명은 완수한다. 왜냐하면 끈기의 향기는 날로 새롭기 때문이다>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죠지 와싱톤 미국 초대 대통령도 9번의 전쟁을 치루었는 데 6번 실패한 사람입니다.그러나 다시 일어나 싸울때 승리하였습니다.
의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악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솔로몬의 의인과 악인의 정의는 톡특합니다.솔로몬은 말했습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 지라도 다시 일어 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려지느니라>(잠24;16)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이 의인입니다. 넘어져서 못 일어나는 것이 악인입니다. 죄인지은 사람이 의인이 아니라 죄짓고 다시 회개하고 일어나는 자가 의인입니다.
실패 안 한자가 성공자가 아니라 실패하고 다시 일어나는 자가 성공자입니다.
일어선 자는 안 넘어진 자가 아니라 넘어졌을 때 일어난 사람이 일어선 사람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 싸움에서 대승리를 하였습니다.그 다음 싸움은 아이성 싸움이었는 데 여리성 싸움에 비하면 누워서 떡먹기의 전쟁이었습니다.그는 3,000명만 파견하였습니다.그러나 패하고 도망오고 말았습니다.
여호수아는 법궤옆에 하루 종일 엎드려 하나님께 승리를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실패가 이스라엘을 삼켰으나 토해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승리를 안겨 주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실패가 우리를 삼킬 때가 있습니다. 아픔이 우리를 아프게 할 때가 있습니다.절망이 우리를 못 견디게 삼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삼키더라도 소화시키지 못 하게 하여야 합니다.

3.죄가 삼켜도 죄가 소화시키지 못 하도록 하십시요.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시는 것은 죄입니다. 죄는 마귀가 주는 것이요 마귀는 하나님의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를 안 짓고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죄의 소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 지니라>(창4;7)

우리는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은 못 된 사람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의 모습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리고 죄지은 것이 너무나 부끄러워서 무화과 나무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피묻은 옷인 가죽옷을 입혀서 에덴에서 내쫓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죄가 문제가 아니라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성경에 죄를 안 지은 의인은 한 명도 없습니다. 모세도 사람을 죽이는 살인죄를 지었던 사람입니다. 바울도 예수믿는 이들을 체포하고 못 살게 굴었고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일 때 동참하였던 사람입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도망하였던 제자였습니다. 다윗도 간음죄, 살인죄를 지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죄가 삼키려고 하였으나 죄에 소화되지 않고 죄에서 나왔던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 성도님들 사이에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죄가 마귀에 의하여 들어와 점령당하고 있는 성도들이 있습니까?
죄가 삼키려 하여도 죄에 소화되면 안 됩니다. 고래가 삼켜도 고래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한 교회에 청빙을 받아 갔습니다. 목사님은 사무실에 큰 표구를 걸었습니다. 그 족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죄를 용서할 수가 없어>
성도들은 별 목사가 다 있다고 수군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랑이 없는 목사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고, 목사를 잘 못 모셨다는 성도들도 있었고, 야단만 치는 목회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용기있는 청년이 목사님 사무실로 들어 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 표구때문에 말들이 많으니까 떼어 주십시요>
목사님은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아니야! 저건 뗄 수가 없어. 저건 내 사명이야>
무슨 의미이냐고 물었을 때 목사님은 대답하셨습니다.
<우리는 용서하되 무조건 용서하면 안 되지. 골라서 용서하여야 해.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죄가 있지.
첫째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
둘째 우리의 신앙고백을 부인하는 죄
세째 성령을 훼방하는 죄
네째 십일조하지 않는 죄
다섯째 전도하지 않는 죄
여섯째 기도하지 않는 죄
일곱째 주일을 지키지 않는 죄일세>
그렇습니다. 이런 죄는 교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죄입니다. 그러나 이런 죄가 삼키고 있다고 할 지라도 다시 일어나면 됩니다.
죄가 삼키더라도 죄에 소화되지 말고 죄가 토해내도록 하십시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요나입니다.

병이 삼켜도 병이 소화시키지 못 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실패가 삼켜도 실패가 소화시키지 못 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죄가 삼켜도 죄가 소화시키지 못 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고래가 요나를 맛있게 먹으려고 삼켰으나 요나가 고래를 이용한 것처럼, 그 무엇이 러분들을 삼킨다하더라도 그것을 이용하십시요.
이것이 믿음입니다.
다시 외칩니다.
<삼켜도 소화되지 마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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