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漢字文學/[고사성어]故事成語

[살롱] 張壹淳

好學 2011. 2. 18. 21:36

[살롱] 張壹淳

 

 

‘원주의 도사’라고 불리던 무위당(无爲堂) 장일순(張壹淳·1928~1994).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넘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생각이 나는 인물이다. 무위당이 생전에 남겼던 향기는 그의 지인들과 제자들을 통하여 멀리까지 전해지고 있다. 시인 김지하,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를 쓴 이현주 목사, 판화가 이철수,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전 영남대 교수, 해월(海月) 전문가인 박맹수 원광대 교수 등이 무위당과 인연이 깊었던 사람들이다.

김지하는 중학교 때 원주에 거주하면서 무위당과 인연을 맺는다. 김지하가 70년대 당국의 수배를 받던 시절 무위당 집에서 숨어 있으면서 겪었던 이야기. 무위당 집에서 시장까지는 도보로 15분 정도의 거리였는데, 무위당이 집에서 시장까지 가는 데 보통 2~3시간이 소모되었다고 한다. 가는 도중에 엿장수, 리어카 행상, 시장 아주머니, 소매치기, 몸 파는 여자 등과 만나면 길에 서서 이들과 한참 동안을 이야기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처럼 돈 없고 힘없는 밑바닥 인생들과 거리가 없었다. 식자(識者) 티를 내지 않았던 것이다.

하루는 원주역에서 가지고 있던 보따리를 소매치기당한 어떤 할머니가 무위당을 찾아와 하소연하였다. 이 하소연을 들은 무위당은 며칠 동안 원주역 앞으로 출근을 하였다고 한다. 무위당을 목격한 소매치기 대장이 다가와 물었다. “어떤 일이십니까, 선생님?” “할머니 보따리를 찾으러 왔네!” 그 다음날 잃어버린 할머니 보따리가 되돌아 왔음은 물론이다.

무위당이 찾아오는 후배나 제자들에게 항상 당부하던 이야기는 “밑으로 기어라”였다고 한다. 위로 날지 말고 밑으로 기는 것이 생명의 본질이란 가르침이었다. 원주로 찾아온 운동권 후학들에게는 “혁명이란 깨부수는 것이 아니라 보듬어 안는 것”이라는 말을 자주 강조하였다. 그의 생명사상은 현재 ‘한살림운동’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생명을 살리는 밥상을 살리고, 농업을 살리고, 그 다음에는 우주를 살리자는 운동이 바로 한살림운동이다.

무위당은 평생 동안 돈을 벌어본 적이 없는 방외지사(方外之士)였지만, 굶어 죽지 않으면서 그 누구보다도 많은 향기와 유산을 남기고 갔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는 정말 ‘강호(江湖)의 고수(高手)’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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