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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에 대한 제사는 명백하게 귀신(악령)을 숭배하는 행위이다!”

好學 2011. 1. 30. 18:46

제사(祭祀)

“조상에 대한 제사는 명백하게 귀신(악령)을 숭배하는 행위이다!”

조상 혹은 사자(死者)숭배는 인류역사와 지구 곳곳에 나타나는 흔히 있는 현상이다. 성경도 당시의 중근동 지방에 죽은 자에 대한 숭배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신26:14). 오늘날 우리나라의 많은 가정에서도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조상에 대하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조상숭배의 세계관에는 사람이 죽은 후에도 어떤 영적인 실체로서 산 사람과 관계를 가질 수 있고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의 유교 문화권에서는 이러한 영적인 실체로서의 사자를 귀신이라고 불렀다.

사실, 조상에 대한 제사는 유교의 고유한 전통이라기보다는 중국의 고대신앙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유교가 특별히 예(禮)를 전문적으로 다루어왔고 거기에 제사에 대한 예도 포함이 되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이 때문에 제사가 유교의 산물인 것처럼 오해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 유교가 한 역할은 제사의 예법을 확립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 나라도 제천의식(祭天儀式)을 행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타나지만, 조상에 대한 예는 건국 시조를 조상신으로 제천의식에 배향한 것 외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고려 초만 하더라도 자기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람은 극소수의 유학자들뿐이었다. 고려 말에 성리학(性理學)의 도입으로 신진사대부에 속하는 유학자들이 늘어났으며 조선 초에는 유교가 국가적 이념이 되었다. 그러나 조선 초기에도 제사를 지낸 사람은 유교를 신봉하는 소수의 양반에 불과했으며, 양반의 수는 조선 후기 숙종(1674-1720) 때까지도 전체 국민의 10%에 채 못 미치는 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급격한 사회변동과 함께 신분질서가 해이해지면서 양반의 수가 급속히 증가하였으며, 조선 말 철종(1849-1863)에 이르면 전체 국민의 70% 정도가 양반이 되었다. 그리하여 제사를 지내는 것이 양반의 상징으로 전 국민에게 보편화되었던 것이다.

유교문화권의 지역에서 제사문제는 선교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왔다. 제사가 미풍양속이냐 아니면 우상숭배냐 하는 문제로 격론을 벌여왔고 그 싸움은 아직도 완전히 종결된 것이 아니다. 천주교는 문화순응식 선교 방법에 따라 17세기 초 마테오리치 당시에는 제사를 허용하였다가 얼마 후 금하였지만, 1939년 이후 다시 제사를 미풍양식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제사가 문화적인 문제인가 그렇지 않으면 영적인 문제인가를 분명하게 분별해야 한다.

성경은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마려,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20:4-5)고 하며, 또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전10:20)고 경고의 말씀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귀신은 헬라어 ‘다이몬(δαιμονιον : 여기에서 영어 단어 demon이 나온 것이다)’을 번역한 것으로서 죽은 조상의 혼령이 아니라 타락한 천사들 즉 성경이 말하는 귀신들인 것이다(계12:4). 즉, 이방인들의 신들이나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실제로는 귀신 즉 타락한 천사들이 와서 그 제사를 받게 되며 따라서 이러한 제사행위는 그들과 교제하는 것이 된다는 뜻이다. 성경은 마귀와 교제하는 것이 재앙을 불러온다고 경고하고 있다. “저희가 또 바알브올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그 행위로 주를 격노케 함을 인하여 재앙이 그 중에 유행하였느니라”(시106:28-29).

그래서 바울도 아덴(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귀신을 섬기는 그들의 제사를 보면서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very religious).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고전17:22-23)고 했을 때 이 종교성이라는 단어가 ‘귀신을 두려워하여 섬긴다’는 뜻의 ‘데이시다이몬(δεισιδαιμονεστερου?)’인 것이다.

또 ‘종교(宗敎)’라는 단어 자체도 ‘높은 가르침’이라는 뜻보다는 제사의식에서 온 단어이다. ‘마루 종(宗)’ 자를 파자(破字)해 보면 ‘갓머리( )’와 ‘보일 시(示)’로 나누어지는데 여기서 ‘갓머리’는 하늘(天)을 나타내는 것이요, ‘시(示)’는 상형문자로서 세 개의 발(三鼎)을 가진 제사상(床)에 제물을 얹어둔 형태이다. 다시 말해 천신(天神)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뜻이 ‘종교’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신이 죽은 자의 혼령이라고 하는 생각이 심지어 기독교 안에도 침투해 있다. 이러한 주장은 대체로 귀신을 쫓아낼 때의 경험에 입각하여 있다. 귀신들은 쫓겨날 때 자기가 언제 죽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다고 말하면서 그 사람의 목소리를 그대로 흉내 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귀신의 진술을 조사해보면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귀신이 불신자의 죽은 혼령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귀신이 거짓말쟁이(요8:44)라는 것을 안다면 귀신이 쫓겨날 때 하는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타락한 천사인 귀신은 죽은 혼령의 흉내를 내며 또 가계(家系)에 대해서 거의 정확한 진술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나올 것이다. 귀신들은 죽지도 않을 뿐 아니라 광범위한 조직망에 의한 엄청난 정보를 갖고 있는 영적 실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귀신들이 어떤 가계에 대한 완벽한 정보를 가지고 어떤 죽은 사람의 흉내를 내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일 것이다. 필자도 무속인들을 대상으로 전도할 때 이러한 경험을 많이 하였는데, 가성(假聲)이 아닌 진짜 아기 목소리를 내는 무당을 만나 본 적이 있다. 자칫 그 무당의 어린 아들이 죽은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기가 쉬운데 이는 전부 귀신의 속임수인 것이다.

타락한 천사들의 죽은 조상의 흉내를 내는 것은 매우 보편적인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광범위한 문화권에서 조상을 숭배하거나 죽은 조상과 영적인 교류를 시도하는 관습이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해 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단이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노리는 것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이다. 귀신이 타락한 천사이며 악령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도 초혼(招魂)이나 신접(神接)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조상에 대해서 거부반응을 안 가지기 때문에, 사단은 조상숭배라는 행위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그들의 영혼과 삶을 여지없이 짓밟아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접신과 초혼을 통해서 만나는 것은 조상이 아니라 타락한 천사 곧 성경이 말하는 ‘귀신’인 것이다. 삼상28:7-20에는 사울이 사무엘의 혼을 불러내어 신접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결국 악령이 사무엘의 모습을 띠고 사울에게 나타나서 사울을 자포자기하게 하고 그를 파멸로 끌고 갔던 것이다. 타락한 천사들이 이렇게 죽은 자의 흉내를 내는 또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의 심각성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히9:27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는데, 조상숭배를 말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심판이 없으며 조상들이 이승과 저승을 마음대로 오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된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죽은 혼을 부르는 일종의 초혼행위이며 기복(祈福)행위로서 그것은 하나님이 매우 가증히 여기는 행위이다(신18:11). 죽은 사람은 우리가 부른다고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우리에게 복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도 아니다. 제사를 지내면 조상이 오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천사들이 와서 사람들을 영적으로 구속(拘束)하고 억압하는 것이다. 사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고 조상이 자손에게 저주를 내린다는 생각은 살아생전의 자식에 대한 부모의 애정을 생각할 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행실에 관계없이 조상에게 빌어서 복을 구한다면 그것은 사사로운 욕심이 아닐 수 없다. 설사 복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아무 힘도 없는 죽은 조상보다는 더욱 능력이 있는 분에게 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사8:19)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유학자들은 하늘에 대한 경(敬)과 부모에 대한 효(孝)를 강조해 왔으며, 조상에 대한 제사를 효와 경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성경이야말로 효와 경을 매우 중요시한다. 성경은 하나님과 부모에 대한 공경을 십계명 안에 둘 정도로 효와 경을 강조한다. 십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千代)까지 은혜를 베풀며(출20:6; 신5:10), 부모를 공경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릴 것이라고 말씀한다(출20:12; 신5:16).

우리나라 사람들은 크게 설과 추석을 통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많이 있고, 종갓집의 경우 매달 제사를 지내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제사 행위는 국가적으로 악령을 부르는 행위요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더욱 심각한 영적문제를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명절이나 기간은 우리의 영적 싸움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전쟁터로 삼아 귀신의 세력을 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포하며 증거해야 할 것이다.

김성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