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된 중국도자는 종종 당시의 서양 회화에서도 나타난다. 그 예가 르네상스 시대의 베네치아 화가 조반니 벨리니의 '신들의 향연(饗宴)'(1514년)이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달력(Fasti)'에서 묘사한 신들의 향연을 그린 이 그림은 오후의 따뜻한 햇볕 속에서 한가롭게 소풍을 즐기는 올림포스의 신들을 보여준다. 제우스 신과 헤라 여신을 중심으로 헤르메스, 바커스 신 등이 있으며 이미 술에 취한 사티로스, 술 주전자를 가져오는 요정들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
- ▲ 신들의 향연(부분도).
벨리니가 왜 신들을 당대 베네치아의 농부들처럼 보이게 그렸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이들이 사용하는 술잔과 사발을 보면 값비싼 중국의 청화백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청화백자는 베네치아로 수입된 중국의 도자일 수도 있지만, 벨리니의 동생으로 역시 화가였던 잰틸레가 술탄 메흐멧 2세의 초청으로 1479~80년까지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에 있었던 사실을 상기하면 콘스탄티노플에서 온 것일 수도 있다.
유럽의 동쪽 항구로 동방무역의 중심지였던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지적이고 엄격한 이상을 강조하던 피렌체나 로마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많은 이국적인 물품들이 수입되던 이곳은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술 마시고 노래하며 인생을 즐기는 감각적인 쾌락의 도시였다. 반짝이는 피부와 무르익은 색채의 의상이 신선한 벨리니의 그림에서도 이런 그들의 인생철학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