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예화·자료]

예화모음

好學 2010. 12. 5. 21:47

고백을 꺼리는 것
한 여자가 더러운 빨랫감을 세탁하기 위해 강둑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 여자는 빨랫감이 더러운 것을 누가 볼까봐 두려운 나며지 빨랫감을 밖으로 내놓지 않았다. 그녀는 창피스럽게 여겨 빨랫감을 물 속에 집어넣고 단지 아래 위로 몇번 비비기만 하고는 거의 그대로 집으로 가져 왔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어리석은 여자와 같이 행동한다. 그들은 많은 잘못을 저지른 후 그 죄를 씻기 원하지만 그 죄들을 밖으로 드러내 놓고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을 꺼린다. 그들은 단지 이렇게 말할 뿐이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죄와 도적질, 거짓말, 욕심, 증오심 등을 덮어 버린다.
그러나 누구든지 모든 죄들을 드러내놓고 회개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 때서야 비로소 죄사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China's Millions)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
미국 남침례교총회에서 총회장의 자리를 물러나게 된 칼 E.베이츠가 설교중에 다음과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잠비아에 파견된 콜린 모리스 선교사로부터 굶어 죽은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원주민의 시체는 선교지역에서 100야드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됐습니다. 해부를 해보니 그의 위 속에는 몇장의 나뭇잎과 약간의 풀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선교를 후원하고 있는 본국의 교단에서는 성만찬이 끝난 뒤 남은 빵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하는 문제로 심각하게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는 약간의 굶주림과 슬픔과 고통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보살핌으로써만 주님을 닮아갈 수가 있다. (Knight III )

국경의 그리스도
오래전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경계선 문제로 장기간 분쟁을 계속했다.
이같은 분쟁은 급기야 무서운 유혈사태로까지 발전했다. 그런데 1900년 부활절 아침 아르헨티나의 한 사제가 그리스도의 부활 및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 사이에 사해형제의 우정을 맺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고 강론했다.
그는 이같은 강론을 아르헨티나 각지에서 했을 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 칠레까지 가서 했다. 그의 이같은 노력으로 두 나라는 화해하게 되었다. 무기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군함은 상선으로 개조되었으며 무기를 만들던 공장은 공업학교가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두 국민 사이에는 신뢰가 생겼고 그리하여 대포를 녹여서 그리스도상을 만들기로 결정하였다. 드디어 1904년 3월 13일 동상의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전에는 적이었으나 이제 두나라 백성들은 동포에게 느끼는 사랑을 서로서로 교감하였다. 동상이 제막되고 태양이 질 무렵 두 국민은 무릎을 끊고 하나님께 기도 했다. 동상 밑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구주 예수의 발밑에서 끝까지 유지하기로 서약한 평화를 만약 아르헨티나와 칠레가 깬다면 즉시 이 상들은 산산조각으로 깨어져라.” 그 때 모세나 쟈라 사제는 이렇게 말했다. “단지 아르헨티나와 칠레에게만 국한하지 않고 우리들은 이 기념상을 세계에 봉헌하는 것이다. 이것에 의해서 세계는 확실히 인류에게 미칠 평화에 관해서 큰교훈을 배울 것이다.” 그 후로 90년의 세월이 흘렸으나 이 그리스도상은 지금도 여전히 무언의 설교를 계속하고 있다.
(기독교예화금언명구집)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나라
계몽주의의 신봉자였던 프리드리히 대왕은 카톨릭이건 프로테스탄트건 종교에 열중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말로는 “나의 국가에서는 모든 종교가 관용되지 않으면 안된다. 내 나라의 각 사람은 자기 종교의 방식에 의해 행복해진다.”라고 하면서 신앙을 가진 사람을 조소하였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특히 기적을 믿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 한번은 왕의 테이블에다 향내가 좋은 물이 뿜어나오는 분수를 설치하게 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노릇인지 기술자가 아무리 수고하여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잠깐 손을 놓고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처리도 못한 상태에서 물이 확 뿜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대왕은 미소를 지으며 곁에 서 있던 사제에게 물었다.
“카톨릭 국가에서는 이것을 기적으로 간주하겠지요?”그러자 사제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폐하가 계신 곳에서는 어렵습니다.” (서양고사물어)

깨어진 것들의 가치
‘깨어진 것들’이 지닌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생각해 보자.
깨진 항아리는 승리를 얻기에 충분한 빛을 던져 주었으며(삿 7:19-21), 나누어 먹은 떡은 배고픈 사람들 전부를 먹이고도 남음이 있어고(마 14:10-21), 깨진 옥합은 온 세상에 향기를 선사했으며(막 14:3,9), 상하고 깨진 몸은 구세주를 믿고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이 되었다(삿 53:5,6,12, 고전 11:24).
이러할진대 깨어진 분(예수그리스도)이 우리들의 좌절된 계획,프로제특 그리고 상한 마음과 무관할 수 있겠는가? (V.레이몬트 에드만)

네가 주님보다 뛰어나냐
텍사스 주 어느 대도시에서 평신도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교회에 나오지 않는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웃에게 성서교실을 열어 지도하기로 결정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노력을 축복하였다. 신학교에서 온 교수 한 분이 그 중 한 모임을 지도하게 되었다.
첫날 저녁 모임에서 그는 한 여성이 담배 피우는 것을 보았는데, 그 여성은 무릎에 성서를 펴놓고 담배를 피웠기에 쟤가 성경책 위로 떨어졌다. 이 광경을 목격한 신학교 교수는 거의 감정이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다. ‘무례하기 짝이 없구나!’ 그가 속으로 이렇게 한탄하자 어떤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네가 주님보다 뛰어날 것 같으냐? 그는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지 않았느냐?”이 매서운 질문을 상기하고는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던 마음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그녀에게 동정과 연민을 보내게 되었다. 오래지 않아 그녀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었다. (Knight)

누구를 위해 적극적인가
어떤 목사가 먼 도시로 여행을 갔다가 옛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가 목사에게 물었다.
“자네 교회의 교인수가 얼마나 되나?”
“천명쯤 되지”
“그래? 대단한데!”
놀라워하며 친구가 계속 물었다.
“그들 중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몇명이나 되는가?”
“그들 모두가 다 적극적일세. 약 2백명은 주님을 위해 적극적이고 나머지는 악마를 위해 적극적이지”
만일 우리 교회의 목사님이 이런 식으로 우리를 분류한다면 나는 과연 어떤 부류에 속하게 될까?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마 12:30)
지금 당장 적극적으로 주님의 편에 서도록 하자.
(THE Pilgrlim)


다이빙하는 오리처럼
목사 부부가 친구와 함께 미국 시애틀 호숫가를 거닐고 있을 때 갑자기 아내가 소리쳤다.
“여보, 물속 깊이 다이빙하는 저 오리 좀 보세요”물위에서는 검고 흰 오리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그때 전에 동물 공원에서 일한 적이 있던 동물학자 친구가 설명해 주었다.
“저 오리들은 먹이를 찾기 위해서 물속으로 머리만 담그지 않아요. 그들은 먹이가 풍부한 밑으로 다이빙을 해 들어갑니다. 이처럼 오리들은 깊숙이 다이빙을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수면에서 먹이를 찾는 것에 만족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얼마나 자주 피상적으로만 먹이를 찾는지 모른다. 좋은 설교를 우적우적 씹어먹고 좋은 지도자들이 쓴 책들을 꿀떡꿀떡 삼키며 기독교 방송을 들으며 요기하거나 테이프 설교를 들으며 야금거리거나 명상문을 과자 먹듯한다. 우리가 이런 정도를 가지고 만족하는데,사실은 우리도 성경속으로 다이빙을 해서 하나님을 보다 더 잘알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과 싫어하시는 것,하나님의 계획,하나님의 생각같은 것을 더 잘 알 수 있는 길을 찾기만 한다면 갈증을 풀어주는 생수와 푸짐한 음식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피상적으로 얻은 음식도 필요하고 그곳에 자양분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깊이 다이빙해서 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성령이 우리에세 가르쳐 주기를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면 최선의 것이 발견된다. (에일런 포링거)

몸으로 드릴 제물
어떤 선교사가 이렇게 간증했다.
“나는 캠벨 모건 목사의 설교를 들은 후 40년 동안의 내 신앙생활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전 40년 동안 할 수 있는 만큼 절약하여서 그 돈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였다. 나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건 목사의 설교를 들은 후 하나님께서는 물질을 드리는 것보다 몸을 드려 헌신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우리 소유의 전부를 바친다 해도 몸을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설교예화집)

반석위에 세운 교회
핀란드 헬싱키에 템펠리키오 교회가 있는데 단단한 바위 언덕을 파고 지은 교회다. 내부에는 깍지 않고 자연상태로 남겨 둔 거대한 돌벽이 구리로 된 둥근천장을 받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커다란 동굴 같으며 구조는 초시대적인 것처럼보인다. 이탈리아의 샤므와 근처에 있는 한 작은 시골 마을에는 버려진 교회가 있다. 비록 부서지기는 했어도 그 벽은 정교하게 그려진 파스텔 색상의 프레스코화와 그 지방 사투리로 쓰여진 제단 글씨가 아직도 남아있다. 전세계에 있는 다양한 교회들의 양식과 형태와 분위기는 다음 두가지 사상을 나타내고 있다. 첫째, 그 건물을 만든 손이 그러하듯이 교회 건물도 유한하며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삶에 있어서 유일하게 불변하는 것은 우리가 볼 수도 만질 수도 들을 수도 냄새 맡을 수도 없는 오로지 하나님뿐이시다. 둘째, 교회들의 외형적구조의 다양성은 신앙과도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개념과 영적성숙의 방법은 교회들의 다양한 형태만큼이나 많다. 각 교회는 영적으로 뿐만 아니라 구조적으로도 하나님과 신앙에 대한 그 집단의 이해를 나타내고 있다.
(샤르 시몬스,[다락방, 1987.6.])

배를 침몰시킨 눈덩이
미국의 어느 곳에 매우 높고 경사가 급한 강 언덕이 있었는데 그 곳은 아이들이 즐겨 뛰어 노는 장소였다. 어느 해 겨울, 아이들이 눈이 쌓여 있는 언덕 위에서 놀다가 눈덩이를 굴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눈덩이를 절벽 아래로 굴렸고 그 눈덩이는 굴러 떨어지면서 더욱 커졌다. 집채만한 눈덩이가 되어 강물에 떨어질 때 마침 지나가던 배가 눈덩이에 맞아 균형을 잃고 침몰하였다.
우리가 악한 일을 하면 할수록 점점 커져서 결국에는 영혼이 망하게 되기가 쉬우므로, 악한 습관을 금지할 가장 적합한 시기는 아주 작은 죄가 시작되는 처음임을 알아야만 한다. (신학지남)

부자와 가난한 자
저널리스트인 로버트 사바스는 이렇게 말하였다.
“4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천국이나 지옥, 성적인 부도덕, 폭력등과 같은 주제들보다는 부와 빈곤에 대하여 더 많이 말씀하셨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언급은 공관복음 전체에서 288회나 나오는데 놀라운 것은 열 번 중에 한 번꼴로 부자와 가난한 자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Knight 2)

빌린 땅에 도토리 심기
옛날 한 부자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농장 옆에 붙은 조그마한 땅을 갖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 땅의 주인의 부자에게 팔지 않았다. 그러자 부자는 사는 것이 아니라 빌리겠다고 끈질기게 주인을 설득하여 허락을 받았다. 부자는 그 토지에 오직 한번만 작물을 재배하겠다고 하며 계약을 했다. 그런데 부자는 교활하게도 그 땅에 도토리를 심어버렸다. 그것은 1년이 아니라 수십년 이상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단은 우리들에게 아주 사소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단 하나의 약을 심으려 한다. 우리가 사단의 침입을 허락한다면 사단은 우리안에 근거를 가지고 계속적으로 죄와 사악을 확대할 것이다. (Cowman)

성경구락부 표어
한국의 성경구락부는 장로교 선교사 킨슬러 목사에 의해 평양에서 시작되었다.
성경구락부는 다음과 같은 목표를 내걸고 있다.
‘예수는 그 지혜와’-지육
‘그 키가 자라가며’-체육
‘하나님과’-영육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덕육
성경구락부는 6.25사변 후 전쟁포로, 고아, 불우한 청소년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감 부열,[한인 심중의 그리스도])

성숙한 신앙
기독교의 핵심은 십자가 상의 꽃다운 피흘림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의의 피를 흘리는 것이 하나니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이 성숙된 기독교의 표현이다. 성숙이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죽음을 넘어선 존재이다.
진리를 깨닫는다는 말과 죽음을 넘어선다는 것은 같은 말이다. 죽음을 넘어서는 것은 미성년을 넘어서는 것이요, 진리를 깨닫는 것은 지식을 넘어서는 것이다. 지식에 사로잡힌 사람이 미성년이다. 나와 하나님은 하나요 성령과 나는 하나이다. 내 생명과 하나님의 생명이 하나이듯 나와 하나님은 연결되어야 한다. 그것이 영원한 생명이다. (박 영호,[씨알-유영모의 생애와 사상])

소유를 가치있게 만드는 것
남아프리카 말라위공화국의 블랑뛰르에 가면 리빙스턴 기념관이 있다. 그 기념관에는 색 유리창이 있는데 거기엔 리빙스턴이 남긴 말이 새겨져 있다. 그 내용은 편지에서 따온 것으로 비교적 생애 초기에 쓴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관계된 것이 아닌한, 무엇을 소유하든 거기에 가치를 두지 않으며 소유하겠다는 기대도 않으리라”
역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쓸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을 소유하든, 또한 소유하겠다는 욕구도 해로울 것이 없다는 말이다. (Gilbert Laws)

알코올 중독자의 회개
캘리포니아 대학원에 재학 중이덙 알코올 중독자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빌리 그래함 집회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그는 알코올 중독으로 인하여 가정이 파괴되어 버렸고, 두 번씩이나 금문교에서 투신자살을 기도하였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의 비극적인 시도는 좌절되었으며 결국 집회에까지 오게 되었다.
집회에 참석해서 그가 보여 준 첫 반응은 냉소적인 것이었으며, 예배순서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 그런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이윽고 헌금시간이 되어 앞에서부터 헌금바구니가 전달되자 그는 속으로 ‘참 웃기는 짓이군’하고 중얼거렸다. 그 날 목사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라는 말씀으로 설교하였다. 그런데 이 날 집회 중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바로 그 알코올중독자가 죄를 뉘우치고 기쁜 마음으로 회개한 것이다. 또한 알코올 종독으로부터도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훗날 그는 그 때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그 날 밤 저는 하나님과 화해했습니다. 그 때까지 저는 제 인생에서 어떤 변화가 가능하리라고는 꿈조차 꾸지 못했었습니다. 우리 가족도 다시 하나로 뭉쳤고, 매일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기쁨의 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Knight)

어린아이에게 절한 어른
다니엘 웹스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사였다.
어느날 그가 시골길을 지나가는데, 반대편에서 한 소년이 가까이 왔다. 그러자 그는 모자를 벗고 소년에게 정중하게 절했다. 그러자 그의 곁에서 이 모습을 지켜 보던 사람이 이상하다는 듯이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 선생님같이 훌륭한 분이 저런 코흘리개에게 절을 하시다니요?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웹스터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저 소년 안에 숨어 있는 힘을 생각하네. 그가 장차 성장하여 세상에 유용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저절로 숙여져서 절을 한 것이라네.”
종교개혁자 루터가 소년시절에 다닌 학교의 요한 트레보니우스 교장은 상당히 교양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남다른 존경을 받던 사람이었다. 당시 교사는 교실에서 모자를 벗지 않는 것이 관례였지만, 그는 반드시 모자를 벗고 학생들 앞에 섰다. 그리고 다른 교사들에게도 이같이 할 것을 권했다. 그는 그의 학생들 가운데 머지않아 큰 인물들이 나올 것을 믿었기 때문에 언제나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존경을 표시했던 것이다. (기독교예화금언명구집)

연장을 가는 시간
어느 날 교회회의를 하는 중에 치열한 변론이 벌어졌다. 그것은 목사의 근무연수를 어떻게 결정해서 봉급을 지불해야 되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 때 대다수의 의견은 비록 목사로서 근무했다고 하더라도 연수받은 기간은 근무 연수에서 빼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어느 저명한 장로의 말에 의하여 그 의견은 부결되었다.
“여러분, 나는 연설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아버지가 개간사업을 할 때 인부들을 감독하면서 인부들에게 하셨던 말을 하려는 것뿐입니다. 아버지는 인부들에게 말하기를 ‘당신네들이 나와 함께 일하고 있는 동안 당신네들의 연장을 날카롭게 갈기 위하여 시간이 얼마 동안 걸렸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서 품삯을 한 푼이라도 깎지는 않겠소.’라고 했습니다.”
일을 잘 하기 위한 준비기간이야말로 일하는 시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다.
(호머 슬러츠)

올바른 기독교인의 조건
존스는 올바른 기독교인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올바른 기독교인은 감리교인과 같은 열정적인 신앙을 가져야 하며, 침례교인들처럼 뜨겁게 경험해야 하며, 사도바울과 같은 확신에 차 있어야 하며, 루터교인과 같이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장로교인들처럼 기도하며, 회중교인들처럼 화합하며, 유대교인들처럼 찬양하는 신앙이 있어야 한다. 또한 성공회교인들같이 자신의 신앙에 긍지를 느껴야 하며, 크리스천 사이언스 교인들처럼 실천하고, 로마카톨릭 교인들과 같이 전파하며, 구세군처럼 봉사하며, 마지막으로 흑인 교회 교인들처럼 종교 자체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Wallis)

자비로운 모습
영국 브라이튼 프레드릭 로버트슨이라는 전설적인 선교사가 있었다. 어떤 사람이 상점에 가서 로버트슨의 이야기를 꺼내자 상점 주인이 방에 데리고 가서 로버트슨의 초상화를 가리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부정한 행위의 유혹을 받을 때 이 초상화를 바라봅니다. 이 초상화를 바라보면 도저히 부정한 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소녀는 로버트슨의 초상화에서 그의 자비스러운 눈과 잠깐 부딪친 후 눈물을 흘리며 더욱 선을 행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를 자비롭게 부르신다.
(장형일)


좇아다닌다고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날 저명한 두 교수가 심오한 사상과 삶의 의미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교수가 다른 교수에게 물었다.
“헨리라는 학생이 그러는데 자기가 자네의 제자라더군. 그 말이 사실인가?”
이에 대한 동료 교수의 대답은 이랬다.
“글쎄, 그 학생이 내가 하는 모든 강의를 좇아다니며 듣고 있긴 하지. 그러나 나의 제자가 아닐세.”
멋모르고 좇아다니는 사람은 많아도 참된 제자가 없는 것처럼 슬픈 일이 있을까?
(Cavanaugh)

짚신 네 켤레를 남기고 간 사형수
영업택시를 타고 가다가 여자운전사를 살해하고 법의 단죄를 받은 사형수 박성호의 이야기다. 경기도 파주군에서 영세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그는 중학교를 마치고 농사일을 돕다가 군에 입대하여 3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별 볼일 없이 지내던 중 밤에 여자운전사가 모는 택시를 타고 가다가 칼로 위협하여 돈을 빼앗았다. 그는 살려달라고 사정하는 여자 운전사를 야산으로 끌고가그날 수입을 빼앗고 강간까지 하였다. 일을 치르고 난 박성호는 자기가 저지른 행동과 후일의 일이 걱정되자 그녀를 찔러 죽인 후 시체를 묻어 버리고 달아났다가 얼마 후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교도소에 수감된 그는 전도를 받고 진정한 참회와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는 자신에게 복음을 전한 형목 김준영목사에게 손수 만든 짚신 네 켤레를 선물로 남기고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박성호는 죽기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교도소 안에서 기독교 전도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저는 비참한 살인마,사회에 해독을 끼친 흉악범이라는 사형수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법으로는 응당의 벌을 받아 처형을 받습니다만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품으로 갈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김 준영, [죽음에서 삶으로])

참스승
그리스의 역사 철학자 크세노폰이 소크라테스에 대하여 기록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아테네 군관학교를 갖 졸업한 풋내기 청년 장교가 소크라테스를 찾아와서 자기가 공부한 지식을 장광설로 늘어놓으며 자랑했다. “우리 선생님이 ‘언제든지 좋은 사람은 행렬의 앞과 뒤에 세우고 나쁜사람은 가운데 세우라’라고 가르쳐 주셨어요.” “매우 좋은 가르침일세. 그러나 너희 선생이 좋은 사람과 나쁜사람을 어떻게 분간하는지를 가르쳐 주더냐?”이 말에 당황한 청년 장교는 “그것은 안가르쳐 주셨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그러면 돌아가서 네 월사금을 도로 찾아 가지고 오너라”고 했다. 이처럼 선과 악의 구별과 그 판단의 표준을 가프텨 주지 않는 교육은 어떤 종류의 교육을 불문하고 기본적인 인간교육에 실패한 교육이다. 그런 교육은 사람을 얼치기 바보가 아니면 회의주의자를 만들어내는 그 이상의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참스승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참배움의 자리로 초대하신다.
(홍현설 저작 전집)

최선의 방법은
어떤 섬유회사의 작업실 벽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붙어 있었다. “만일 실이 헝클어져서 풀 수 없을 때 현장주임에게 도움을 구하시오”
어느날 새로 입사한 여직원이 일을 하다가 실이 헝클어졌다. 그녀는 그것들을 풀어보려고 애썼지만 결국은 일을 모두 망치고 말았다. 그제서야 그녀는 현장주임에게 가서 상황을 이야기하였다.
현장주임은 그녀를 보고 말했다.
“당신은 일이 잘못되기 전에 치선을 다해 보았습니까?”
그러자 그녀는 자신이 최선을 다해 실을 풀어보려고 노력했다고 대답했다.
현장주임이 다시 그녀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왜 당신은 나에게 와서 도움을 청하지 않았습니까?”
그녀는 묻는 말에 여전히 최선을 다했다고만 대답하였다.
이 말에 현장주임은 그녀에게 다시금 주지시켰다.
“아닙니다. 당신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명심하십시오. 당신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일이 잘못되기 전에 나에게 와서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Moody Monthly)

편의의 종교
모든 국가에서 신봉되는 종교는 대부분이 계산에 근거한 현명하고 신중한 감정일 뿐이다. 즉, 현대를 지배하는 여타의 가치들이 모두 그러하듯 종교 역시 편의와 실용성의 문제인 것이다. 그럼으로써 지상에서의 적은 향락들이 천상에서의 보다 큰 기쁨을 위해 희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도 역시 이윤을 남기려는 편의주의적 상술에 불과하며, 노동에 대한 대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칼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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