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예화·자료]

예화모음

好學 2010. 12. 5. 21:35

1 . 늦게 응답 받는 기도

고아원의 창시자 조지 뮐러는 수많은 고아들의 수요품(需要品)을 주 안에서 형제 된 여러분들로 부터 도움 받았다. 어떤 스코틀랜드인은 여러 해 동안이나 이 고아원을 위해 많은 돈을 보내어 도왔다.
그에게는 한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님을 믿지 않아 그의 간절한 소원은 그 아들이 하나님을 믿어 구원 얻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여러 해 동안이나 뮐러씨와 함께 합심 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회심(回心)을 보지 못한 채 그만 세상을 떠났다. 그후 부터 오랜 동안 소식이 끊기게 되었는데 하루는 이미 장성해진 죽은이의 그 아들이 뮐러씨의 고아원을 찾아왔다. 뮐러씨에게 말하기를 "제 아버지의 문서를 찾아 보니까, 아버지는 많은 금액으로 이 고아원을 도운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전 혼자 생각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가 만일 그 고아원을 찾아가 아버지처럼 돕는다면 좋아하시겠지?"라고 생각하자. "나도 그렇다면 돕기로 하자. 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 돕고자 하는데 돈 뿐만 아니라 어린 소년 소녀를 위해 봉사까지 하고 싶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였다.
그의 이러한 호의를 뮐러 고아원에서는 감사히 받기로 되어 그는 고아원에서 곧 일하게 되었고, 그러는 동안에 그는 아버지의 간절한 소원이던 주를 믿게 되었다.
그가 자기의 신앙을 고백한 때, 고아원 직원들은 말하기를"우리는 조금도 이상히 생각하지 않아요. 이미 38년 동안이나 뮐러씨가 쉬지 않고 당신의 회심을 위해 기도를 계속 했으니까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뮐러씨의 기도는 38년 만에야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낙심 말고 기도할 것이다.

2 .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 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눅18:1-80)
부흥의 열쇠인 기도
3 . 가장 적극적인 생활은 가장 많은 기도를 필요로 한다.

예수님께서도 특별히 많은 사역을 하시던 그 때에 더 많은 기도 를 하셨다.
찰스 웨슬리는 매일 두 시간씩 기도했고, 죤 웨슬리는 새벽 네시 에 일어나서 기도했다. 죤 풀리처도 때때로 철야기도를 했다. 루 터도 하루에 세시간씩 기도를 했다.
저드슨은 말하였다.
"나는 하루에 열두 번씩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경은 우리 에게 하나님은 졸지 않고 계시며 항상 그의 귀를 기울여 우리의 간구를 듣고 계신다."즉 언제든지 우리는 기도할 수 있다고 밝히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가 심령의 부흥을 일으키려면 더욱 간절 한 기도를 드려야 한다. 기도가 되지 않고 힘들어질 때 일수록 더욱 애써 기도하라, 기도는 아침의 열쇠요 저녁의 자물쇠다.
(눅18:1)예수님의 동생이며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으로 있던 의 인의 별칭을 받은 야고보는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만을 하나님에 게 받은 자의 의무로 생각하고 늘 성전에 들어가 무릎을 끓고 탄원한 결과 그의 무릎은 약대의 무릎처럼 굳어졌다.
"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 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 지어다.
(대상 16:11)"


4 . 불량자를 둔 아비의 기도

워 감독의 어렸을 때 일이다.
하루는 그의 아버지에게서 어떤 일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 래서 그 일을 하는데 그의 친구가 와서 데리고 나갔기 때문에 이 일이 중단 되었다. 그날 밤에 워의 아버지는 "프랭크야,아까 시킨 일을 다 했니?"
라고 물었다. 워는 서슴지 않고 네" 라고 거짓으로 대답을 했다.
아버지는 벌써 거짓말인 줄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음에 워는 심히 마음이 불안하여 하룻 밤을 무겁게 보냈다.
또한 그의 아버지는 자식의 거짓말에 가슴 아파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튿날 아침 아버지는 어린 워에게 말하였다.
"나는 어제 한 잠도 잘 수 없었다."
"왜 주무시지 못했어요?"
라고 워는 다시 물었다.
"나는 밤새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 했단다."
라고 아버지가 대답 했다. 이 말은 어린 아들의 마음을 화살처 럼 찔렀다. 워는 자기의 죄를 깨닫고 아버지와 하나님께 사유함 을 빌었다.
워는 후에 감독이 되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그 때 아버지의 기도가 얼마나 감사 한지 모른다."하는 것이 였 다.

5 . 교역자의 위험

교역자를 삼켜 버리는 두 종류의 마귀가 있는데 하나는 기도를 적게 하도록 만드는 마귀요,다른 하나는 기도를 하지 못하게 만 드는 마귀다. 이 두 마귀 중에서 기도를 안하게 하는 마귀 보다도 기도를 적 게 하도록 하는 마귀가 더욱 무서운 것이다. 왜냐하면 드리는 듯 마시는 듯 하는 기도로서 양심의 자위물(物)로 삼기가 쉬운 데 이러한 자위야말로 무엇 보다도 유해(有害)한 치명적인 허위 의 생활을 연장시키기 때문이다.




6 . 교회 부흥은 기도로

지난 10년간 미국 교회에서는 12개의 큰 교회 중 8개가 한국 교 회였고, 1991년도에 와서는 20여개의 큰 교회는 모두가 한국 교 회 였습니다.
같은 성경책, 같은 돈, 같은 목적인데, 한국 교회는 선장하고, 미국 교회는 황폐되었습니다. 1980년 미국 목사의 기도 신간은 하루에 8분 이었고, 한국은 30분 이었습니다. 다른점은 바로 이 것 이었습니다. 목회로 교회를 일으키려고 하기전에 정말 무릎을 끓고 주님앞에 기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 합니다. 예수님은 밤이 새도록 기도했고, 사도행전 1장 14절에 더불어 몸과 마음과 뜻을 합쳐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그렇기 때문에 날마다 하나님의 백성이 더하게 하셨다고 했다.



7 . 손 흔들며 기도

선교사가 필리핀 신도들이 기도할 때에 손을 내 저으면서 하고 있음을 보고 이상히 생각하여 그 이유를 알아 보았더니 초대 선 교사가 초대를 받아 식사 기도를 할 때, 음식의 파리를 몰아 내 느라고 손을 내 저으면서 기도 하는 것을 본받아 기도는 손을 내 저으면서 하는 것으로 오인하고 그같이 하는 것이라고



8 . 박종순 목사님의 이야기다.

한번은 서울 시내 아주 번화가에 있는 교회에 집회를 갔는데 교 회의 게시판이 길거리에 있음을 보았다. 얼마나 오래전에 만들 어 놓았는지 나무가 썩어 가지고 바실바실 떨어졌다. 그래서 담 임 목사님에게 말했다.
"여보 시요, 이것 돈이 들면 몇푼이나 든다고 사람 많이 다니는 길인데, 요즘에 칼라 스텐네스 이쟎느냐고 그것으로 예쁘장하게 통을 짜고 10mm나 15mm의 유리를 끼고 그 안에 등을 달고 거기 에다가 설교 제목도 넣고 광고도 붙이면 많은 사람들이 볼텐데 이게 뭐요?"했더니, 내 얘기를 들어 보라고 하면서 하는 말씀이, "그 게시판이 하도 낡고 험하고 해서 자기도 새로 했으면 했었
는데, 어느 집사님이 500만원 헌금 했습니다. 게시판 바꾸라 고, 그래서 너무 기뻐서 견적을 내 보니까 500만원이면 잘할 수 있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장 뜯어 내려고 할려다가 그 나무 게시판을 30년전에 어느 권사님이 권사 취임을 하면서 기 념으로 했는 것인데, 그래서 맘에 걸려서 전화 한통 드리고 게 시판을 뜯어야 하겠다 싶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권사님, 권
사님이 30년전에 게시판을 기념으로 하셨다지요.' 권사님 말씀 이 '그렇지요, 내래 했지요.' '어느 집사님이 500만원을 헌금을 해서 새로 할려고 하는데 새로 하면 좋겠지요?' 했더니 이 권 사님 말씀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됩니다.'라는 것 입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게시판을 바꾸지 못하고 있는데, 목사 님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하는 것이다.
"제가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 방법이 하나 있기는 있습니다."고 하니 대답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로 시작 하라고'하니 "아 니 무슨 기도요?"
"오늘 부터 이렇게 기도 하십시오. 아버지여 그 권사님 눈에 흙 이 들어가게 하여 주소서."성도는 고귀한 기도를 드려야 한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9 . 주기철 목사의 헌당식 기도

주기철 목사의 헌당식 기도
① 이 예배당에 하나님이 임재 하시는 집 되게
② 만민의 기도하는 집 되게
③ 수의 다소를 막론 예수 닮아 가는 알곡 되게
머리에서 핀을 뽑아



10 .

모 청년이 20세가 넘도록 두통이 계속되는 고통을 당하고 있었 다. 공부도 아무일도 할 수가 없이 투병하는 것 뿐이다.
어느 병원에서도 병인을 못 찾고 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수 밖 에 없었다.
청년은 목사님을 찾아가서 사정을 얘기하고 '주야로 기도하나 낫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하였다.
목사님은 '밤낮 기도 했다니 금식기도 했느냐 묻고 3일간 만이 라도 금식기도 해보라.' 하여 그 청년은 금식기도 했더니 음성 같이 들리는 말이 머리에서 핀을 뽑으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병 원에 얘기하여 비로소 핀을 발견하게 되어 뽑아 내니 깨끗이 나 았다.







11 . 루터의 기도

[나의 시선이 주님을 떠나지 않게]

루터가 한번은 식탁에서 빵을 먹고 있었는데, 개가 상아래서 빵을 처다보고 있다. 처다보는 개의 시선이 빵있는 쪽 빵에 오 르내리는 대로 흐트러짐이 없이 따라 보는 것을 루터는 유심히 보고는 의자에서 내려서 무릎을 끓고 기도 했다. "주여 이 개가 빵에 생각과 시선이 집중됨 같이 나의 마음과 시선이 주님의 말 씀과 주님을 앙망하는데 집중되게 하여 주옵소서."



12 . 간병에 실파와 양배추

서울 충신교회 모 여집사는 좋은 위치에 고급 APT에 사는 30대 초반의 여인으로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는 진실한 독신자이다. 그러나 간이 나빠져서 간병으로 고통 당하고 있었는데 한번엔 새벽기도 하는 중 환상을 보았는데 모처에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음식을 먹는데 그들이 서로 말하기를 양배추에 실파를 먹으면 간이 좋아진다고 하면서 실파를 열심히 먹는 것을 보았다. 그래 서 여집사는 거기에 무슨 뜻이 있는가 하여 양배추와 실파를 열 심히 먹었는데 6개월 에 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보는데 전에 없던 불순물이 빠져 나가더니 불러있던 배가 홀쭉하게 되고 간 병에서 완치되었다.
어느날 T.V.를 보는 중 미국서 간암 치료에 양배추와 쪽파가 간암에 치료된다고 하는 연구 발표를 듣고 여집사는 더욱 확신하 였다.



13 . 너무 작은 하나님

우리는 보통 어른들의 기도 가운데 "전지 전능하신 하나 님......"하는 말을 너무 자주 듣곤 합니다.
또한 당신이 지식으로 아는 하나님은 적어도 무한하신 하나님 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알고 살아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 납치 못하거늘>(왕상8:27)하는 고백을 듣기에 족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소위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우는 일단의 사람들에 대 해 하나님은 시원챦은 분으로 끌어내려져 있는 것입니다. 그 하 나님은 약하며 유한하며 그리고그의 약속을 지키시지 않은 분 으로 생각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하나님의 크기는 얼마만합니까? 그는 성경에서 말하는 만큼 무한하신 분이십니까? 오늘 주눅이 들어 있는 당신의 현실에 있어서의 하나님은 너무 왜소하지는 않으십니까?그런 사람들에 있어서 작은 문제에도 쉽 게 낙담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무슨 일이 이루어 지면 모두 자기 힘인줄 착각하는 것도 더 큰 문제입니다. 자기의 울음소리에 태 양이 떠올랐다고 믿는 숫탉같은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너무나 크고 위대하십니
다. 당신이 그분께 가져가기에는 너무나 큰 문제는 결코 없습니 다. 물론 그분께 보여드리기에 너무나 보잘것 없는 문제도 없구 요.....



14 . 하나님의 교육과정

욥은 동방의 의인이었다.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 욥기서입니 다. 그러나 욥은 업청난 불행, 계속하여 날아드는 비보에 넋을 잃게 됩니다. 소유물은 물론이요 사랑하는 자식들과 심지어 자신 의 몸까지 완전히 상처 투성이가 됩니다.
그는 급기야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기에 이르렀다. 야곱은 어떻습니까? 물론 욥과는 그 상황이 다르지만은 야곱 역시 굴곡많은 생애를 산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한마디로 가파 르게 살아간 사람입니다.
이점에서 두사람은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은 고난은 그 양태가 퍽이나 다릅니다. 욥은 실로 무모한 고 난, 까닭 모를 시련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모두 자신 이 저지른 죄악의 댓가를 늙어서야 거둬들이는 것입니다. 철저 하게 교활한 속임수로 생을 꾸려 나간 그는, 계속 속임을 당하
고 고통을 당하므로 말년을 장식하게 됩니다. 그렇게 양태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동일한 결과를 만들 어 내십니다. 이유인 즉은 둘이 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이 기 때문입니다. 욥은 시련을 통해서 더 높은 경지에 .. 더 성숙 한 신앙의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그의 고백 중에 나의 가는 길은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 를 단련하신 후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 ( 욥 23:10 ) 하는 말씀은 참으로 주옥과도 같습니다.
야곱 역시 말년에 대 애굽 왕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습니 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니이다. 나의연세가 얼마 못되니.. ( 창 47:9 ). 놀라운 경지의 신앙에서 나온 말입니 다. 그리고 그는 바로에게 축복을 베풀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교육과정이 만들어 낸 작품입니다. 어느 누가 하나님의 시간표를 오려낼 수 있습니까? 오늘도 당신은 그 하나님의 교육 과정 중의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15 . 기준을 낮추지 마십시요

교회 안에는 지나치게 완고하여 중,고등부 학생들의 사사건건을 못미더워하고 간섭하려는 어른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또 지나치게 방임해 두려는 타입의 어른들도 있습니다. "다 그렇고 그렇지, 애들 믿음이 별거 있나요?" "학생들의 믿음이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것 같고, 그런거예요"며칠전 모 장로님은 한술 더 뜨기를 "나도 어려서는 교회 놀러다녔어요. 그러다가 그럭저럭 믿음이 들었어요, 그리고
오늘까지 흘러왔거든요"라고 하시더라니.
.....속지 맙시다. 그것보다 위험한 말이 어디 있겠습니 까?언제 하나님이 그의 기준을 어떤 연령층에는 낮추어 주셨던가 요?언제 하나님이 그의 요구를 어떤 사람들에게는 면제해 주셨던 가요?학생시절 적당히 예수 믿다가 나중에 바로된 사람이 혹 있 다면, 그러다가 영원히 떠나가버린 사람은 그 얼마던가요? 길가 는 사람들을 붙들고 물어 보십시오. 왕년에 교회 안나가본 사 람 몇이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은 남녀노소에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은 혜가 제한되겠습니까? 어린아이라고 눈깔사탕들고 천국갈 수 있 겠습니까? 오히려 지금 순수한 믿음을 지키지 못한다면 나중은 더 더욱 기대할수 없습니다. 언젠가 잘믿게 되리라고 무책임한 말을 하지 맙시다.
왜냐하면 내일은 단지 오늘의 연장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 내일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은, 내일은내시간이 아니라 바 로 하나님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16 . 독수리의 본능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 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새끼를 업는것 같이..(신 32:11) 독수리의 새끼들은 그 강한 날개를 부여받고 태어나지만 처음부 터 고공을 치솟아 오르며 그 예리한 부리를 사용하는 능력이 있 는 것은 아닙니다.
아슬아슬한 절벽위 바윗턱에 독수리의 보금자리가 있습니다.거 기에서 새끼독리들은 어미 독수리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어느 날인가부터 어미독수리는 보금자리를 뒤흔들고 그의 부리로 어린새끼들을 낭떠러지로 밀어뜨립니다. 어설픈 날개짓과 비명소리가 뒤엉켜 떨어져가던 새끼들은 어느 사인지 포근한 어미의 날개위에 자신들이 얹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어미 독수리는 그들을 안전한 곳으로 밀어올리고 또다시 떨어뜨립니다. 이 훈련이 되풀이되면 새끼독수리들은 드디어<한 마리의 독수리>가 되어 갑니다.
그렇습니다. 독수리의 본능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독수리 날개 위에 올려 놓고 훈련을 시키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보금자리를 흔듭니다. 우리의 꿈에 제동을 걸기도 합니다. 우리의 자신감을 꺽기도 하십니다. " 꺽고 또 꺽고..." 이것이 하나님의 훈련방법입니다. 드디어는 목을 숙이고 "하나님 당신 뿐입니다"라고 고백 할때까지 이일이 계속됩니다. 그리고는 더욱 강력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도록 만드십니다.
바로의 궁을 뛰쳐나온 혈기왕성한 모세보다는 지팡이를 짚고 바로 앞에 나가던 모세가 더욱 강하듯이 말입니다.....




17 . 양치기 할 그때에

목동 다윗이 왕이 되기까지는 재미있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단순히 왕이 될 사람이니까 왕이 됐겠지하고 생각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정말 왕이 되기에 적합치 않은 -적어도 사람이 보기에는--사람이었습니다.
우선 시골 구석에서 양이나 돌보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건장한 형님들을 일곱이나 둔 빈약한 막내였습니다. 가정에서 막내는 사랑은 받으나 그렇게 기대를 거는 존재는 아니 지않습니까?그렇듯이 하나님의 큰 그릇이 때때로 그늘에 그냥 묻 혀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하나님이 들어 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를 들어 쓰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으로 인정받은 때문입니다. (행13:22)다윗이 무엇을 할때 하나님이 그를 유심히 보셨을까요?
양치기를 할때였습니다. 어릴때 였습니다. 이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나중에 크면, 언젠가 훗날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생각하십 니까? 아닙니다.
바로 지금이 문제입니다. 가정에서는 아직 부모님을 모신 자녀로 있는 지금, 교회에서는 중고등부의 한 회원으로 있는 지금, 학교에서는 아직도 배움중에
있는 지금...... 지금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억합시다. 다윗은 왕이 되기전 먼저 충실한 목자가 되었습니다.
때문에 그를 더 큰 자리로 옮기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조급하지 맙시다.
나무 하러갈 사람이 도끼를 갈고 있는 시간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18 . 하나님의 짝사랑

구약성경 중 호세아서에는 이런 안타까운 Love Story가 있습니 다.
사랑하는 아내 고멜은 남편을 배신하고 창녀의 소굴로 도망쳐 버리고, 남편 호세아는 보리를 싸들고 찾아가서 팔려간 고멜을 돈을 주고 사오는 겁니다.
그녀의 배은망덕한 사랑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계속되는 배신은 하나님을 짝사랑의 애닮은 연인 으로 전락시킨 것입니다. 그 이후-- 하나님은 짝사랑의 아픔을 앓고 계십니다. 헌데 당신도 하나님을 짝사랑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요?어느 날인가 복잡한 통근시간에 시내버스를 타고있었습니다. 저만치 한 여학생이 무거워 보이는 책가방을 들고 있었습니다. 앉아 있던 나는 꼭 그 여학생을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손을 뻗쳐 가방을 받기에는 애매한 거리였습니다. 그저 그 학생이 한번만 돌이켜본다면 나는 그를 부를텐데, 조금만 더 닥아선다 면 그 가방을 받아줄텐데--그녀는 끝내 더 먼위치로 움직이고 있 \었습니다.
당신이 눈뜨는 아침부터 저녁 잠자리에 들때까지 돌보시는 그의 사랑을 아십니까? 당신의 먼 장래까지 보장하시는 그의 관심을 아시나요? 그런데 당신은 어쩌면 주님께 시선한번 안돌리는 사 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주일 내내 성경 한장 안 보고, 하루 중 기도 한 번 안하고, 그나마 주일 예배엔 늦게 나오고, 오후 집회엔 관심도 없 고...... 이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슬프다! 당신은 그 분 을 짝사랑하게 만들고 있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요. 그의 도움 의 손길이 끝내 근처에 머물고 있음을 아십시요...


19 . 그날은 올것입니다.

지금으로 부터 10여년 전의 어느날--. 나는 잔뜩 겁먹은 시골 닭처럼 하사관 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있었습니다. 배고픔과 수면부족, 그리고 1초의 여유도 없이 조 여드는 훈련일과에 쫓기며.... 내가 무사히 이 훈련을 마칠수 없을 거라는 절망감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주일날 이었습니다. 요일을 셈해 볼 틈도 없이 지나버린 1 개월여 --몇 명이 발을 맞춰 뛰어 간 곳은 교회로 사용되는 계뱝관 강당이었습니다. 들어서기도 전에 낯익은 찬 송 소리가 내 가슴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그날 군목님은 <그 날은 올것입니다>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고 있 었습니다. <성도는 강합니다. 십자가의 정병은 담대합니다. 주님의 힘을 입어 훈련에 임하십 시요! 영광의 졸업날 또 전역의 날은 곧 올것입니다>라는 요지 였습니다. 그 날의 말씀을 가슴에 담고 소망과 투지로 거뜬히 훈련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누구든 신자는 이세상 훈련장에서 <그 날이 올것>을 기대하며 살 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날>에 다시오신다고 약 속하셨습니다.(행 1:11). 그날이 오면 신실하게 그리고 꼿꼿하 게 믿음의 순결을 지킨이들, 성실한 봉사로 주의 일을 감당한 이들에게-- 칭찬과 영광과 존귀가 주어질 것입니다.
형제여! 도적같이 임하되 분명히 임할 그날에 대한 준비는 되어 있습니까?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마라나다--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20 . 누구의 제자

도대체가 죄로 물든 우리네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한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개 미가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없는 것과 같읍니다. 그러나 성 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정체는 무엇 일까요? 첫째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사람의 역사가 흘러 오는동안 아니 그 이전부터 하나님은 계셨습니다. 어떤 자신이 똑똑한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은 "신은 이미 없어졌다"고 외쳐댑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 속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시53:1) 입니다. 만일 여의도에서 백만명이 모여서 금년 의 겨울을 없애기로 하자고 결정했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금년 의 겨울은 오지 않을까요? 납엽이 지면 어김없이 눈발은 날리 고 엄동설한은 다가올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네 인간들의 생각과 결정과는 상관없는 저너머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대가 변하고 아무리 "신이 없다"고 외쳐대도 바로 지 금 이곳에 계십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그를 찾아오는 자들에게 보답하신다는 사실입니 다. 하나님은그의 자녀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시고 돌보시며 그 를 위한 모든 수고에 보답하십니가. 그러기에 하나님은 좋으 신 하나님 이십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은 꾸짖고 벌주시는 분 으로만 오해합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바다같은 사랑으로 우리 를 감싸안으시길 좋아하시는 분입니다. 나의 조그만 믿음은 이 두 사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이 귀절을 외워두면 어떨까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 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6)......







21 . 하나님을 기쁘시게함.

최근에 한 가슴 아픈 일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생후 18개월된 조카의 젖떼는 작업(?) 을 지켜본 것입니다. 따뜻한 엄마품에 안겨 포동포동하게 사리 올랐던 습이 한 삼일 동안에 수척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한 밤중에도 잠을 깨면 사정없이 울어대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엄마의 괴로와 하는 것이 더 애처로왔습니다. 아픈 젖을 동여매고 아이의 더듬는 손길을 피하는 엄마의 모습 에서 나는 참된 어머니의 사랑을 볼수 있었습니다. 만일 아이가 한 없이 엄마의 을 먹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 습니까?이제는 제법 밥상머리에 다가 앉는 어른스러운(?) 조카의 모습을 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성장해 가라!>고 명령합니다. 이미 에수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여하한 일도 초월하여 주안에서 성장해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첫째로 예수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히 12-1~2). 당신의 신 앙의 촛점이 만일 예수님 외에 다른 곳에 있다면 너무도 불안한 것입니다. 엇그제 한 친구가 상의를 해왔습니다. 교회 대학 부의 한 선배와 같이 자취를 하고 있는데, 그가 가짜 학생임을 최근에 알았다는 예기였습니다. 너무도 실망하고 괴로와서 병이 날지경이라는 것입니다. 그외에도 많은 믿었던 사람들이 자신을 실망시켜 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당신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철저히 우리가 주님만 볼 것을 원하십니다.
물어봅시다. 우리 교회 중,고등부 회원인 당신은 누구의 제자입니까?결코, 담당 교사나 목사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예배
시간에 당신은 누구의 얼굴을 봅니까?
목사님의 얼굴이 아닙니다. 그 뒤에 계신 예수님의 얼굴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교 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즉 영
원한 예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끝까지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주님을 의지할 것일까? 끝까지 입니다.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은 이삭의 몸위로 칼을 치켜든 순간까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저주의 홍수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 하는 사람 노아의 약한 배를 보호 하시고 항로를 인도하신 하나님을 생각하세요. 선한 사업을 하던 뮬러는 마지막 돈을 다 쓸때야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음을 간증했습니다.
우리 약속합시다.
당신의 남은 일생동안 주님만 의지하겠습니까?
어떤 어려움 중에도 주님의 손을 의지하겠습니까?
엄마의 품이 포근하다고 거기에만 있을 수 없듯이, 유치원이 재미있다고 늘 거기에서 재수만하고 있을수 없듯이, 이제 당신은 모든 아픔에도 불구하고 더욱 성장해가야 하는 것입니다..



22 . 링컨의 믿음

"영접하는자 곧 그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 다.
우리는 공중도덕을 잘 지키고 친구들에게 점잖게 대하고 주일날 엔 예배에 참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것들고 천 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지 못합니다. 단지 예수님을 내 대리인 으로, 죽으신 내 개인의 구주로 맞아들일때 구원의 문을 열수 있 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위대한 인물이며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의 삶의 마지막 몇달을 남겨놓고야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 셨음을 아는 사람들은 드뭅니다. "나는 어머님의 기도를 아직 도 기억합니다. 나는 그것을 언제나 따라했습니다. 어린시절 나는 성경에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아직도 그 리스도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남북전쟁후 그의 임종 직전에 그는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Do you love jesus?" 답하기를 "내가 대통령 직을 위해 고향 스프링 휠드를 떠날때 나는 사람들에게 날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크 리스챤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게티스버그에서 나는 내 자신 을 그리스도께 맡겼읍니다. 이제 나는 진실로 말할 수 있습니 다." " I do love Jesus! "형제여! 부모님의 믿음이나 자신의 착한 태도나 교회에 등록되었음을 의지 하지 마십시오.
링컨같이 당신의 믿음을 주 예수께 둘 때에야 영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3 . 영원한 상급

좀 우스운 예기 같지만 우리가 나중에 천국에 가보면 알몸에 팬티만 하나 걸치고 있는 사람을 만나볼 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는 바로 예수님의 한편에서 십자가형을 받고 죽은 강도일 것입니다. 임종 전에 그가 입은 옷, 그대로일 것 같습니다. 사실 그는 생전에 예수님을 위해 한일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그저 죽기 직전에 예수님께 "당신이 낙원에 이를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요" 라는 한마디로 낙원에 초대를 받았을 뿐입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구원 보다도 구원 그 이후입니다. 이미 예수를 알았고 그를 믿고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이제는 그가 주실 상급을 위한 수고의 삶을 살아야 하는 그런 과정에 서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찍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만큼 일할 기회와 시간이 부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동참하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운 아무 한 일도 없는 모습으로 천국에 들어설 수는 없는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을 가르켜 건축으로 비유하면서 거기에는 나무나 짚이나 풀로 집을 짓는 자와 금은보석으로 짓는자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주를 위해 투자한 시간과 건강과 재물과 모든 것들은 금은 보석으로 남을 것이며, 단지 육신을 위하여 이 세상에서의 재미와 만족을 위하여 투자된 것들은 지푸라기 같은 것으로 단지 잿더미를 남길 뿐입니다. 그것의 가치가 시험받기 위해 불로 태움이 있겠고 거기에 남은바 되는 것이 상급의 조건이 될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는 당신과 나의 최고의 구호는 이것입니다. "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오직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 "



24 . 신앙의고백보다더한 그어떤 것

예루살렘이 멀지 않은 곳에 이르렀을때 예수님은 질문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갖가지 분분하던 때였습니다. 이때 실로 위대한 고백을 수제자 베드로 는 할수 있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제껏 아무도 생각지도 못했던 실로 위대한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 주님은 큰 놀라움을 가지시며 베드로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날 이후 2000여년의 기독교의 역사를 흘러 내려오면서 모든 하 나님의 사람들이 이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 믿음의 고백위에서 만 가장 순수한 신앙의 탑이 이루어져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 중,고등 학생의 연령에서 아니 그보다도 더 일찌기 주님 을 바로 알게 하심은 하나님의 크신 축복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의 출발선에서 출발한 후 수많은 나날을 그냥 허 송세월하는 이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새 생명의 씨앗이 우리의 영혼 한복판에 뿌리워진 그 날 이후 우리는 너무도 어처구니 없이도 유혹의 사탄에 이끌려 시험에 빠지곤 하였습니다. 어쩌면 좋겠습니까?그런 우리의 안 타까움을 위하여 주님은 다음과 같은 장면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베드로가 주님을 연거퍼 세차례씩 부인하고 난 그 뒤의 일입니다. 부활 후 잠시 이 세상에 계시던 주님께서 베드로를 지목하여 이렇게 물으셨던 것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번씩이나 주님은 다짐하셨던 것입니다. 세번 씩이나 부인함과 세번씩이나 다짐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그렇습니다 ! 미음의 고백 그것보다 더 차원 높은 것은 사랑의 고백입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사람만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만이 수고 의 어려움을 기쁨으로 변화시킬수 있으며 순교의 자리에 까지 이 끌어 갈수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나이다" 이 고백 뒤에 베드로의 모습을 압니까? 그는 확신에 찬 사람이 되었습니 다.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히 그를 통하여 나타던 것입니다. "예수님 당신을 사랑해요"
이 가슴 뜨거운 고백을 당신도 할수 있나요? ........



25 . 스트롱 맨

스트롱 맨(Strong Man)이라고 제목이 붙혀진 그림이 있었습니다. 한 사나이가 아파트 이층 난간 위로 피아노를 들어 올리고 있는 그림입니다. 물론 당신도 어떤 한 사람이 피아노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다는 것은 상상해 본적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피아노의 무게를 짐작하고도 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볼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 다. 피아노는 가느다란, 그러나 강력한 두선에 매여 있었고 선 의 끝은 옥상 위의 크레인에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 사나이 가 피아노를 들어 올린 비결은 위에 매여져 있는 끈이었습니다. 사실 그는 슈퍼맨이 아니었읍니다. 오늘날 가장 강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씨름왕 이만기 같은 사 람일까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세개씩 따낸 어느 삼관왕 일까 요? 혹은 당신 주위에도 있음직한 "세상에서 믿을 것은 자기 자신 밖에 없다" 고 호언장담하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일등을 도맡아 놓고 하는 어떤 친구 같은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오늘 이 땅위에서의 진정한 강자는 하나님이 편이 되어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명장 다윗왕 같은 이도 (나의 힘이되신 여호와여 ! 내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 니다. 진실로 오늘 우리의 싸움은 주먹과 권세의 싸움이 아니라 누가 더 하나님 편에 가까이 서서 하나님을 의지하느냐의 싸움입니다. 어때요. 당신은 스트롱 맨 입까...........



26 . 천국에 있을 준비를 하세요

어느 폭퐁우가 몰아치는 밤이었읍니다.
한 늙은 부부가 길가 여관의 현관문을 밀고 들어섰습니다. 그 들은 쉴방을 고 있었습니다. 마침 카운터에 있던 종업원은 그 읍내에 3개의 여관이 있으나 때마침 모두 초만원 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 여관도 빈방이 없읍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기 꺼이 쉬신다면 제방을 내어드릴 수 있습니다." 노부부는 망설였 으나 그 종업원의 간청으로 그방에서 쉬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여관을 나서며 노신사는 이런 말을 남겼읍니다.
당신같이 친절한 사람은 처음이요 당신은 이 미국에서 제일 친 절한 여관 종업원이요. 아마도 나는 당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건축하게 될것이요."종업원은 그 노신사의 (농담)에 웃음으로 답 하였습니다. 그후 어느날 그 종업원은 뉴욕방문을 요청하는 왕 복 비행기표가 들어 있는 편지를 받게 되었읍니다. 노신사로 터 보내온 것이었읍니다. 그가 뉴욕에 도착했을때 노신사는 그를 거대한 새 빌딩 앞으로 데리고 갔읍니다.
"저것은 당신이 경영하도록 내가 지은 호텔이요"

그말은 농담이 아니었읍니다. 노신사는 당시 거대한 갑부였던 W. w 아스토이었고 그 청년은 아스토리아 호텔의 첫번째 경영자 가 된 G.C 뿔트이였읍니다. 하늘나라에는 사람이 경영하기 위한 "많은 맨션"이 있읍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각자 자기 몫의 집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집들은 영광과 고귀를 드러낼 갖가지 크기와 모양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27 .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범죄한 사람은 하나님을 피하게 마련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후 수풀속에 숨었으나, 하나님은 그들을 불 러내셨읍다. 요나는 배 밑창에 들어가 숨었으나, 하나님은 그를 지중해 한가운데서 이끌어 내셨읍니다.
시편 기자도 하나님을 피하여 숨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고백하고 있읍니다. 그가 생각한 다섯 장소는 하나님의 눈을 가리울 수없었읍니다. 하늘, 음부, 바다, 끝, 흑암, 밤..(시 139편)하나 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임재" 라고 표현합니다. 이 임재 하심은 어뗘 사람에게는 위로와 격려와 평안을 줍니다. 그러 나, 어떤이들에게는 두려움과 괴로움을 남겨줍니다. 당신의 경우는 어또습니까 ? 전자는 순종하는 사람, 후자는 불 순종 하는 사람을 말하고 있읍니다.
특히 요나서를 살펴보면 요나 외의 모두가 하나님께 복종했음을 알수있읍니다.폭풍, 제비뽑기, 선원들, 물고기, 니느웨백성, 심지어는 동풍, 박, 벌래.......모두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 였읍니다. 오직 한사람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열심이 순종보다 쉽다는 것을 아십니까 ? 당신 자신을 점검해 보십시요. 혹 당신은 그리스도인 이면서 도 행동으로는 그것을 부인하지는 않습니까 ?
어차피 하나님을 피해 숨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당신의 기쁨의 원인이 되도록 하십시요........



28 . 미지근한 물

여름철에는 누구나 물을 마실때 차가운 냉수를 마시기를 원합니 다. 겨울에는 따스한 숭늉이나 보리차를 마시기를 원합니다. 미지근 한 물은 전혀 인가가 없습니다. 사람의 영혼의 상태에 대한 온도 지수에서 예수님은 미지근한 상태가 있다고 말씀하셨읍니다. 뜨거웁든지, 아니면 차가웁든지 하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뜨거 운 경우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하여 열심으로 응답하는 것이고 차 거운 경우는 정면으로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지근함은 전혀 무관심, 혹은 만성이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우리의 전도 대상자 중에서도 냉정하게 거절하는 사람보다 "아 교회 나가는것 좋지요--"는 식으로 나오는 사람이 훨씬 어렵습니 다. 하나님께서는 뜨거운자에게 보상하시며, 차거운 자에게 손을 뻗 치시지만, 미지근한 자는 거절하십니다. 당신의 영적 온도에 대하여 생각해 본적이 읍니까 ?당신은 찬양으로 마음이 열리고, 말씀을 들을때 감동을 받습니까 ?

당신은 기도할 마음이 있고, 전도할 마음이 있읍니까 ?만일 당신이 요한계시록 3장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책망을 찾아 읽는다면 새로운 각성의 기회가 될것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 근하여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 여 내치리라!29 . 어미는 혹 잊을지라도 9남매가 한꺼번에 자라다보니 내가 아직 어릴때 이미 윗 형제들은 객지 생활을 하고 있었읍니다. 집을 떠나 있는 자식들의 편 지는 그저 가뭄에 콩나듯 오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마음은 집에 있는 아이들보다 떠나 있는 자식들 곁에 늘 가있는듯 하였읍니다. 간혹 어머님은 "오늘은 허리가 유난히 아프구 나"하곤 하셨는데 그날은 십중팔구 우리 형제들중 누군가의 태어 난 날이었읍니다. 자고로 모성애는 실로 변질할 수 없는 본능 에 가까운것인듯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3,700여년 전의 사람인 이사야의 말은 참으로 적절한 것 같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배에서 태어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이 말에 무슨 반론의 여지가 있겠읍니까 ? 그 무슨 사랑이 모성애에 견줄 수 있갰읍니까? 그러기에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그런데 선지자는 계속 말을 잇고 있읍니다.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사랑하고 돌보심은 모성애 그것보다 더한 것입니다. 우리네 어머님이 혹 우리를 잊어도 하나님은 늘 기억하고 계십니다.
"아무래도 하나님이 나를 버렸는가봐요"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계신가요"........ 이런 얘기들은 진실로 뭘 모르고 하는 얘기들입니다......



30 . 다급해진 하나님

교회에 몇번 나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알만한 사람이 있읍니다.아브라함 이 그 사람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려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일생중 가장 그 믿음 으로 빛나는 것은 바로 창세기 22장에 나타나는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부분입니다.
부부가 다같이 늙어 자식 낳기를 이미 포기해 버린 뒤에 얻은 외아들, -상상이 됩니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입니다. 이 아이를 제물로 삼아 제사를 드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주문이었읍니다.
우리는 대충 아브라함이니까 그럴 수 있을거야.... 하고 일축해 버리지만 아브라함도 우리네 가족의 아빠와 똑같은 아버지였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그 쓰라림과 고민의 밤이 얼마나 지루했을까요?
"네 아들을 내게 바쳐라."
오늘날은 보통 자식을 신학교에 보내는 것을 하나님께 바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영영 사별이나 이별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믿음 좋은(?) 부모들이 이 부분에서는 주저앉아 버립니다.
"내 아들을 어떻게 목사를 시키겠나" 하고 속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잘아는 친구가 제발 목사를 무당으로 만들지 마십시요 라는 글
을 쓴적이 있읍니다. 요지는, 모든 사람이 무당을 보면 뭔가 두
려워하지만 존경을 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성직
을 겉으로는 존경하지만 자식을 그 자리에 넣기는 마다한다는
것이었읍니다. 물론 지나친 표현일 수는 있지만 신학생들의
신학교에 입학한 동기들을 분석해 보면 어느정도 끄덕여지는 얘
기입니다. 자식을 성직에 바치기는 고사하고, 자식이 스스로
신학교에 가려고 해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오늘의 신자들은 아
브라함의 후예라고 보기에는 좀 곤란하다고 생각됩니다.
아무하고 상의도 하지않고 이른 아침 부터 여장을 꾸려 모리아
산을 향하는 아브라함의 뒷모습이 눈물 겹습니다. 그의 믿음의
순종은 지체함을 몰랐읍니다. 드디어 칼을 높이 쳐듭니다.
사정없이 제물이 될 아들을 향해 칼을 내리찍으려는 순간, 하나
님은 급히 아브라함을 불렀읍니다. 적어도 이때 만큼은 하나님의
다급한 순간이었읍니다.
신속한 순종은 하나님의 다급한 응답을 받아냅니다. 지체된
순종은 불순종과도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 오늘 어떤 부분
에서 미루어진 것이 있으며 신속한 순종의 발걸음을 내딛는 것
이..............







31 . 함께하시는 주님

전도자 요한 웨슬레의 '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 즉
' 가장 최선의 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라
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지금
이 시간이 최선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시간이
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어떤 상황이든 우리에게
는 최선의 시간이고 최대의 행복입니다. 현재가 언제나 극적입
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동행했던 것
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눈에 보이는 이상으로 더 확실하게
우리의 식탁에 같이 앉아 주시고 우리의 침상에 같이 누워 주십
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 사실보다 더 중대하고
귀한 일은 없습니다.
2차 대전 때에는 많은 전쟁의 신화들이 있읍니다. 프랑스의 어
느 항구에 영국군 수십만명이 후퇴를 할 때 그 부근의 독일군들
이 집결해 있는 항구에는 대풍랑이 일어났읍니다. 거기서 얼
마 안되는 부근 이었읍니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잔잔해
서 수십만 명의 영국군이 무사히 후퇴할 수 있었답니다. 훗날
기록을 보면 영국군들은 주일에 모여서 '하나님이여' 독일군에
게서 우리들을 지켜 본국으로 무사히 돌아가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
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 (수 1:9)


32 . 어떻게 기도할까요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대화요. 영혼의 호흡입니다.
신자의 삶에 있어서 기도는 너무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아니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에 근거한다면 삶 전체가 기도라고
하는 편이 옳겠읍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설교나 전
도하는 법을 가르치신 적은 없지만 기도하는 법은 일찍부터 가르
쳐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의 일과를 기도로
시작하고 마감하는 습관을 꼭 가져야 합니다. 할 수 있는 한 많
은 기도 시간을 갖는 것이 좋읍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기도의 길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집중된 기
도, 진실한 기도에 있읍니다. 궤스레 중언부언 하는 기도는 하
나님을 괴롭히는 것일 뿐입니다.
우선 우리의 기도의 자리에 앉으면 주님의 임재 --- 바로 내곁에
계시다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결코 벽 저편에 있는 사람에
대한 대화가 아니거든요. 한 골방 안에 마주 앉아 주고 받는
대화를 생각해야 합니다.
"난 죽어도 기도는 못해요" 라고 발을 빼는 친구가 있읍니
다. 옳은 얘기 입니다. 죽으면 못하지요. 그러나 기도를
잘하는 비결은 기도하는것 뿐입니다. 기도는 여가선용이 아닌
주 업무로 취급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노동만큼 수고롭고 중요한 것입니다....



33 . 성경 좀 읽읍시다.

가난한 소년 링컨이 어머니로 부터 유산으로 받은 것은 낡은 성
경책 한권 뿐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성경을 사랑하는 마음도요.
오늘날의 인쇄술 발달은 웬만한 사람이면 성경책 한권쯤은 다 꽂
혀있는 형편입니다. 전세계적으로 시대를 초월한 베스트셀러는
역시 성경책입니다. 그러나 가장 많이 팔리면서도 가장 읽히지
않는 책도 성경책입니다.
어떤 신자는 교회 나온지 10년이 되어도 성경을 하번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읍니다. 항상 성경책은 새것으로 남아 있고
책을 펴면 낯선 골목 앞에 서있는 것처럼 서먹하기만 합니다.
만일 당신의 성경책이 깨끗하다면 당신의 마음은 더럽고, 성경책
이 더럽다면 마음은 깨끗할 것입니다.
당신은 매일 음식을 섭취하듯이 매일 성경 말씀을 읽어야 합니
다. 적은 분량이라도 매일 대하여야 합니다. 단어 외울 시간
도 없다고 둘러대지 마십시요. 이 습관을 위해서는 경건한 자
세로 무릎을 꿇고 읽는 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 일으키는데 도움이 될것입니다.
우선 신약의 4복음서부터 시작하고 점차로 구약으로 옮겨가는
것이 좋습니다. 읽는 도중에 모두 이해 되리라고는 상상 마십
시요. 그러나 당신 나름대로 색연필로 표시를 해가며 읽고, 의
문점을 모아서 교회 지도자들에 문의할 수도 있읍니다. 물론
정기적인 성경공부에 참여하는 것은 당신의 성경의 이해도에 큰
유익을 줄것입니다.
성경을 읽고자 시작하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달리는 사람은 결코 흔치 않읍니다. 얼마간 시간이 지
난후 각각의 성장도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될것 입니다....



34 . 이웃과의 만남을 위하여

해야 할 일이 생각나거든
바로 지금 하세요
오늘은 하늘이 맑고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보일런지 몰라요
어제는 이미 당신의 것 아니니
바로 지금 하세요

친절한 말 한마디 하고 싶거든
바로 지금 하세요
내일은 당신것 안될지도 몰라요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곁에 있지 않아요
사랑의 말이 지금 있다면
바로 지금 하세요.

상냥한 미소 짓고 싶다면
바로 지금 하세요
당신의 친구가 떠나기 전에
장미는 꽃피고 가슴이 설레일때
당신의 미소 미소 띄우세요
바로 지금 하세요


불러야 할 노래 노래 있다면
바로 지금 하세요
당신의 태양이 서산에 저물면
노래부르기엔 너무나 늦어요
당신의 노래 노래 부르세요
바로 지금 하세요........



35 . 백부장 이야기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깜짝 놀라게 한 사람이 있읍니다.
그가 바로 가버나움에 주둔하고 있던 군인들의 우두머리인 백부
장입니다. 그는 로마장교의 신분인데도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
을 꿇었읍니다. 자기의 종의 아파하는 것이 너무 너무 안타까와서.
그는 예수님은 종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했읍니다.
그의 믿음은 참 사랑으로 밑받침되는 믿음이었읍니다.
사랑은 주님의 뜻을 이루는 길입니다. 사랑이 없는 행동은 그
자체가 거짓입니다. 또한 사랑은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읍
니다. 그렇다면 백부장 밑에는 신실한 군사들이 많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의 주변에는 진실한 친구들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형제여 ! 아무도 변치않는 그런 사랑을 갖고 싶지 않읍니까 ?
나보다 약한, 불리한 처지의 형제와 우정을 나누고 싶지 않읍니까 ?
종의 아픔을 끌어 안고 온 백부장처럼, 다른이의 문제를 위해
주님 품에 무릎 꿇어 보지 않겠읍니까 ? 주님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같은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마 8:10)
이 칭찬이 당신을향한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읍니까 ?


36 . 우정을 위하여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
게 한다고 성경도 지적합니다.(잠 27:17)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불완전하고 흠집투성이지만 "우정"
만큼은 완전하고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합니다. 물론, 우정의
최상급은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요 5:13) 이지
만, 때로 우리의 우정은 얇팍하고 자기 이기심을 벗어나지
못하고 맙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진실한 친구 셋만 있으면
성공한 거라는데, 한사람의 그런 친구도 못가진 자신의 초라함에
한숨이 나옵니다. 무엇보다 내가 그 누군가의 그런 친구가 되
주지 못했음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친구가 없이 고민하던 한 형제를 알고 있읍니다. 학교 친구
들을 보면그저 경쟁대상만 같고, 교회 친구들은 너무 거룩한 척만 하더라고.....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한 친구는 소유하고
있는것 같읍니다. 서로 비밀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을
내어줄 수 있는 아니 이미 나를 위하여 내어준 친구 말입니다.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4) 주님의 말씀입니다. 또한 "너희는 내친구" (눅12:4)
라고도 하셨읍니다. 이 친구를 만나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
인지.. 우리의 학교 친구들에게 이 친구를 맺어줍시다. 우정을 위하여......

37 . 손가락 얘기

"당신의 둘째 손가락이 남을 지적할때 나머지 세 손가락은 당신
을 가르키고 있음을 기억하라." 는 얘기 들어본 적이 있읍니까 ?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의 험담에 유난히 열심인 사람은 명심할 말입니다. (눅
7:41~ )당신의 말을 침묵보다 낫게 하십시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침묵하십시요.
그런데 이 손가락 얘기를 우리가 남을 칭찬할때 적용시켜 보면
어떻겠읍니까 ? 다른 사람을 칭찬하기에 인색하지 않은 사람은
성숙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남의 칭찬을 많이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를 격려합시다.
그가 결점이 있음에도 그를 칭찬합시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를 두둔해 줍시다.
험담하는 자리에는 결코 끼어있지 맙시다.
어느덧 당신은 "Peace Maker"로 통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친구들은 당신과 늘 함께 있고 싶어할 것입니다.....



38 . 전염성을 가진 사람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 중에서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황태자가 유학 중에 그의 신분을 모르는 한 친구가 질문했읍니다.
"자네는 졸업후 무엇을 할건가 ?" 그때 황태자는 단호히 말했읍니다.
"나는 단지 부친의 직업을 이어받을 것이네."
그렇습니다. 그는 자부심이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의 친구
는 그것을 알 수 없었읍니다. 아주 우습게 생각해 버리고 말았읍니다.
형제여 ! 우리는 황태자입니다. 온 세상의 주인 되시는 분의
자녀입니다. 이런 긍지를 갖고 그 다웁게 삽시다.
주님을 모르는 어떤 친구가 한 주일은 형제를 따라 다니게 하고
다른 한 주일은 세상사람을 따라다니게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는 여생동안 누구를 따르기로 결심할까요 ?마땅히 하나님의 자
녀는 그런 긍지와 기쁨, 행복, 소망,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며 살아야 합니다.
달세게에 발자욱을 남긴 한 우주 비행사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
하는 전도자로 변신하였읍니다.
나는 형제가 전염성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즉 예
수 사랑의 전염성을 갖길 바랍니다. 형제의 학교, 그리고 형제
의 가정은--바로 그런 시범을 보여 주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곳입니다......



39 . 소 속 감

미국의 남북 전쟁이 한창일때 한 농부가 윗도리는 북군의 군복
을, 바지는 남군의 군복을 입었답니다. 상황에 따라 한 쪽
편으로 가장하면 안전하리라고 계산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지역에서 남군과 북군의 격전이 벌어졌을때, 그는 가운데서
양쪽 군의 사격을 받고 죽고 말았읍니다.
그는 소속이 불분명하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땅에
서 살아갑니다. 우리의 소속은 하늘이요 땅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사셨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랑스런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바울이었지만, 그의 진짜 시민권
은 하늘에 있음을 천명하였읍니다. 우리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학교에서 삽니다. 학교친구들과 만나고 대화하며 생활을 하게
됩니다. 소속을 분명히 합시다. 색깔을 분명히 합시다.
나는 기독교인인가 ? 나는 하나님의 사람인가 ?
대충 자신을 감추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
나의 예수 믿는 모습이 분명하고 생활이 진실할진대, 그들은 우
정 그너머 "존경"의 시선까지 갖는 것을 잊지 맙시다.
전도는 솔직히 말해서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으로, 생활로 하는 것입니다.
입은 속삭이지만 행위는 소리치는 것입니다



40 .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현대인의 생활과 감정속에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허무
주의가 자리잡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세상이 헛되고 인생도 헛되고, 모든 것이 다 헛되다."고 절망
하게 됩니다. 우리들의 모든 수고와 노력은 그 필요성을 잃어버
렸다고 믿고 있읍니다. 삶이 가지는 그 가치관을 상실한체 우리는 살고 있읍니다.
우리가 지금 "인생은 허무하다."고 할 때 그것은 죽음에 대한
탄식입니다. 더 살아야 할 사람이 죽고 꼭 살아 남아 있어야 할
사람이 죽거나, 아직 죽을 나이가 아닌데 갑자기 죽을 때 우리는
한결같이 인생을 허무하다며 아쉬워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생명
이 허무하다기 보다는 인간이 이 땅위에 살아간다는 그 자체가
허무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의 삶의 둘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경험과 사건들
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이것들이 마침내는 허무감에 사로잡히
게 합니다. 오늘 이 시대에서 허무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백치이거나 초인일것 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전도자 솔로몬은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니 다 헛되고 바람을 잡으
려는 것과 같다. 구브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고 이지러진 것을 셀 수 없도다."
이것은 현대인의 마음을 잘 나타내어 주고 있읍니다. 사람들은
이런 허무를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우
리는 더 큰 절망과 허무속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전도자 솔로몬은 다시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합니다. 인간은 허무 그 이상의 존
재입니다.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것은 인간
의 존귀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허무란 순간적인 감정입니다. 그
러나 그 허무의 마음속에서 하나의 보배를 찾아내는 것이 신앙
입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이것은 허무를 이기는 단 한가지의 방법입니다.







41 . 존재자체를 기뻐하는 사랑

영국의 시인 죤 키츠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사랑하는 여인을 향해 이렇게 말했읍니다.
"지금까지 나는 인간이 종교를 위해 순교를 할수 있다는 사실을
놀랍게 느끼며 전률을 느꼈지요.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읍니
다. 나도 이제 나의 종교를 위해 순교할수 있으니까요. 사랑은
나의 종교입니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나는 죽을수 있읍니다."그
는 이와 같이 생명을 바쳐서 사랑할 대상이 있었기에 시한부의
인생을 살면서도 많은 아름다운 노래를 남기고 26세의 젊은 나이
에 죽음을 맞이 했다고 합니다. 사랑이 무엇이길래 목숨조차도
던질수 있고, 그 사랑앞에 서면 모두가 선해지고 뭉클한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인가? 가장 연약한 것 같으면서도 가장 강하고 가
장 부드러운 것 같으면서도 가장 힘이 있고, 모든 것을 초월하
는 초월적인 힘을 지니고 어둠을 빛으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소유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사랑으로 인한 고통의 쓰라림을 맛보고
있는지 알수 없읍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간단히 말하지만
일방적으로 주는 사랑이란 어렵읍니다. 수 없는 상처를 받으면서
도 참고 지속적으로 베풀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사랑에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계가 없는 초월적인
사랑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
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셨읍니다. 이는 인간이 어떤
행위를 드려서가 아니라, 그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시고 그 존재 자체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셨읍니다.
인간의 사랑 중에 어버이의 사랑도 자녀에게 어떤 댓가를 바라
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건강히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자체를 큰 기쁨으로 받아 들이기에 위대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참된 사랑의 모습을 갖고져
할 때 사랑의 어떤 조건이나 댓가를 바람이 아닌 그가 나와 함
게 하며 호흡하고 살아있으며 존재하고 있음 그 자체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42 . "감사해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일들이 생
기게 되고 범사에 불평을 품고 원망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불평과 원망의 일들이 생기게 됩니다.
감사라는 말은 원어로 [유카리스티아]라고 합니
다. 명사적인 의미로서는 [좋은 은혜, 행복한 은혜]라는 뜻을 가
지며, 동사로서는 [숙고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말은 "행복스러
운 은혜를 잘 숙고하여 그 깊이를 깨닫는 일"이 감사라는 뜻 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좋은 은혜들을
돌아보며 감사의 표현을 나타낼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 입니다.
"이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다." 라고 괴테는 말하였읍니다.
그렇지만 이 감사하는 마음은 곧 시들어버리기 쉬운 것임을 우
리는 알아야 합니다. 환경과 조건에 의하여 변하고, 자신의 이익
과 연관되어 수시로 변할수 있는 것이 인간의 감사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사회에서는 어제의 감사의 대상이었던 자가 오늘의
원망의 대상이 되어져 버리는 서글픈 현상들이 수시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성경은 말씀하고 있읍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
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이것은 환경과 조건에 제약받는 형태
의 감사가 아닙니다. 그 모든 조건과 환경들을 초월한, 오직 그
리스도가 나와 함께 하심으로 인하여 드릴수 있는 감사를 말씀하
고 있는 것입니다. 옛 선지 하박국의 고백속에서 (합3:17-18) 우
리는 진정한 신앙으로 드리는 감사가 무엇인지를 볼수 있읍니
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구원자 하나님, 능력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있다는 사실이 그의 감사의 이유가
되고 있음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느끼게 하고 있읍니까?
우리가 사는 곳곳에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갖는 사람
이야말로 가장 행복하고 소중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읍니다.



43 . 꽃들을 바라보며

꽃들은 서로가 피해없는 선의의 경쟁을 한다. 그들이 가진 각자
의 색깔과 향기, 조화의 경쟁을 한다. 인간의 세계에서 처럼 말
이나 인상이나, 몸짓으로가 아니고, 발이나 주먹도 아니며, 뒷전
에서 남을 비방하지 않는다. 누구에게 아부도 않으며 남의 용모
를 헐뜯지 않으며, 자기 자랑과 선전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
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그 색깔과 향기, 그 모습 그대로에 충
실할 뿐이다. 아름다움의 경쟁에서 이기고 지는데 대한 관심조
차도 없다. 이런 꽃들 앞에서 인간들은 주제넘는 일들을 자청해
왔다. 멀쩡한 꽃들이 경쟁을 하고 있는 양 이야기하며 꽃들의
우열 등수를 매기고 자기들의 마음에 드는 꽃들은 좋다며 꺽어갔다.
왜!그럴까? 보이는 대로 말하고 느낀대로 판단하는 인간이기에
자기들 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한 것이다. 인간들은 창세로 부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 사명을 다하고 있는 꽃들을 인간
의 경쟁의 세계속에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경쟁
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상처속에 좌절의 구렁텅이로 밀
어 넣었던가? 선한 경쟁이 아닌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살수없다
는 흑백논리속에 이루어지는 음성적인 경쟁들, 이런 악의에 찬
경쟁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 있는가? 칡덩쿨처럼
남을 감고 조임으로 경쟁하고, 기생충처럼 남의 피로 배불리는 경쟁들.......
타인의 잘됨을 기뻐할 줄아는 그리고 타인의 고통속에 아픔을 느
낄수 있는 선한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믿음의 선한 경쟁, 이것이
야 말로 우리들에게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오지 않겠는가? 하나님
께서는 나에게서 특별하고도 이상스런 그런 모습을 기대하시지
않는다.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셨고 또 그모습으로
살아감을 그리고 그 분량들을 지킴을 기뻐하신다. 우리가 우리속
에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며 내게 보이는 대로가 아니며,
우리의 감정대로가 아닌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참되신 뜻을 나
의 삶의 현장속에서 이루어 나가는 삶을 가지게 될때 참된 아름
다움과 향기가 날리게 됨이 아닐까?



44 . 마 음

우리 인간의 모든 기관은 사실 '마음'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할
수 있읍니다. 마음은 보고 듣고 서고 강해지고 부드러워지고 기
뻐하고 슬퍼하고 화내고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사색하고 반성합니다.
이렇게 여러 모양으로 변하는 우리들의 마음을 통제할 줄 아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마음이라는 단어는 '단단한 호두 속의 알맹이와도 같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마음을 지키라고 하시면서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온다고 하셨읍니다. 우리들의 마음은
너무나도 쉽게 미혹당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보다 더
견고하게 지켜야만 하는데, 그것은 마음을 비워놓지 말아야 합
니다. 즉 우리들의 마음이 무방비 상태가 되면 마음은 쉽게 정
복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우리들의 생활을 주장하고 행위를 통제하며 인생의 여정
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마음은 신체의 가장 중요한 피를 공급하는 심장에 비유되곧 합니다.
마음이 병들면 이것은 영혼과 육체를 해하는 무서운 살인마로
변하게 됩니다. 고인물은 썩어서 부패하지만 흐르는 물은 지꺼기
를 흘려 버려 썩지 않읍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들의 마음에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을 흐르는 물처럼 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씻김을 받고 그 어떤 미혹의 병이 찾아와도
호두 처럼 단단한 가운데 그 알맹이를 간직하는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마음을 통제하도록 버려둔다면 그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려 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마음은 하나님이 계신 성령의 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 분이 우리를
다스릴 때 우리들의 마음은 지켜질수 있게 됩니다.
우리들의 마음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45 . 하나님의 시간

신앙 이해란 시간의 이해다. 세상의 긴 시간속에서 년 수와 날
짜와 시간의 틈바구니 속에서 계산하며 살던 사람들이 예수 그
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믿게 될 때 하나님의 시간인 영원한
시간속에 들어와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
님의 사랑을 깨닫는 구속사적인 시간이요, 예수 안에 생명을 체
험하는 거듭난 시간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일찍 오시는 법도
결코 늦게 오시는 법도 없다. 정확한 때에 정확한 시간에 오신
다. 이것이 하나님의 시간이다.
때를 아는 것이 지혜요,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것이 믿음의 인내
이다. 수 많은 세상의 사람들이 자기의 때와 자기의 시간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신앙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좌충우돌하여
허우적거림을 우리는 볼수 있다. 이러함 속에서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하나의 사실이 있다. 우리는 언젠가 내가 주님의 앞
에 서든지, 아니면 내 생애에 주님이 오시든지 둘중에 반드시 하
나는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지금이라는 시간은 영원한 시간
을 준비해야 할 귀중한 기회가 되고 있음을 우리는 느껴야만 한
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시간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천하 범사에 때가 있는데, 그 모든 목적을 이룰 때와 날 때가 있
은 즉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은 즉 거둘 때가 있고 슬픔의
때가 있은 즉 기쁨의 때가 있는 것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 모든 것의 진실을 나타내어 주실 것임을 우리
는 믿는다. 그러기에 우리는 철저하게 그 분을 의지하고 신뢰함
으로 그 분의 원하시는 시간으로 우리들의 삶속에 채워나가려 하
는 것이다. 그래서 수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각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지시와 시간대로 살아가기 위한 지혜를 구하며 인간의
조급증대로 살지 않고 믿음으로 인내하며 그 분의 때를 기다리며
살아갔던 것이다.
나는 지금 누구의 시간표로 살아가고 있을까?



46 . 참된 기도

넓은 숲속에 조그만 움막을 지어놓고 혼자 살던 사람이 있었읍
니다. 그는 식사하기 전과 잠자기 전에 꼭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어릴 때 배운 기도만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었읍니
다.하루는 기도를 할 때마다 유리병에 호두를 넣어서 기도하는
횟수를 세어보기로 하였읍니다. 날이 지나자 호두는 여러병에
가득 차게 되었읍니다. 유리병이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그는
만족을 느꼈고 마음이 거만해지기 시작했읍니다.그러던 어느날
꿈을 꾸었읍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읍니다."호두알로
가득 찬 병들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호두알 하나마다 한번의
기도를 나타냅니다." "망치를 가져다가 호두알 하나하나를 깨뜨
려 보게" 예수님의 말씀대로 호두알을 깨뜨려 보니 알맹이는 하
나도 없고 껍질만이있었읍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자네 기도는
이 호두처럼 다 비어있네. 자네는 기도의 횟수와 말은 많이 했지
만 마음은 항상 다른 곳에가 있었네. 기도란 말로 떠드는 것이
아니고 진정한 하나님과의 대화가 기도의 참된 의미를 갖고 있
네?"우리는 얼마나 중언부언의 기도를 하고 있읍니까?
눈만 감고 말만을 되풀이 하고 자신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기도
를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지요? 알맹이가 없는 빈 껍질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원치 않습니다. 아버지는 자녀의 마음에서 우러나오
는 사귐을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중심을 뜨겁게 할수 있는
기도 그것은 우리들의 삶과 동행하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시작에 불과하며, 기도가 최선의 것으로 꽃피우기
위해서, 더 넓은 테두리를 우리의 뜨거운 가슴에 품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47 . 당신은 어떤 색깔입니까?

어린이 종교수업시간에 목사님이 질문을 했읍니다. "만약 착한
사람이 모두 흰색이고 나쁜 사람들은 모두 검정색 이라면 여러분
은어떤 색깔일까요?"한 어린이가 대답을 했읍니다."목사님! 전
얼룩진 색깔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이 한 어린이의 대답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타인들에 대해서 또 자신에 대해 의인과 죄
인의 부류로 분류합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이 두부류는 단
순한 상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우선 누가
의인이고 누가 죄인인지 우리는 구별을 할 수가 없고 또 그렇게
구별함으로 판단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들의 삶으로 볼때 자신이 의인이라하든 죄인이라하든 구별없이
똑같이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그 정도에 있어서 조금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흔히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삶에서 자신의 거룩한 모양으로 자신의 얼룩진 모
습을 감추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정직한 모습은 아닙
니다. 하나님의 앞에서 우리 모두는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비
록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속에 살아 갈찌라도 우
리의 삶은 여전히 얼룩진 모습임을 하나님의 앞에서 솔직히 고
백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거룩한 척, 깨끗한
척 할찌라도 나는 하나님의 앞에서 별난 사람이 아닌 평범한 얼
룩진 삶을 가진 부족한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아닌척
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은 자신을 속이고 하나님과 사람을 속이는
행위일 것입니다. 한 어린아이의 고백속에서 우리는 모두가 흰색
도 검정색도 아닌 얼룩진 사람임을 깨달읍시다.



48 . 전체적으로 보시는 온전한 진리 예수 그리스도
어느날 해가 말했읍니다. "나뭇잎은 초록색이다." 그런데 달이 "
나뭇잎은 은색이다."라며 우겼읍니다. 다시 달이 말했읍니다. "
사람들은 늘 잠만 잔다."그러자 해가 "아니야 그들은 언제나 움직인다."라며 우겼읍니다.
달이 "그러면 왜 땅이 조용하냐!"고 물었고 해는 고개를 갸웃거
리며 "누가 그러더냐! 땅은 언제나 시끄러운데." 이렇게 해서 말 다툼이 벌어졌읍니다.
그때 바람이 나타났읍니다. "쓸데없는 논쟁을 하고 있구나."며
그들이 다투는 소리를 들으며 웃었읍니다. 그리고 그는 말하였읍
니다. "나는 하늘에 해가 떠있을 때도 불고 달이 떠 있을 때도
분다. 해가 빛을 비추는 동안에는 나뭇잎은 초록색이며 사람들
은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러나 달이 비추는 밤이되면 모든 것이
달라져 사람들은 잠을 자고 고요하며 나뭇잎은 은빛이 된다. 그
름이 달빛을 가리우면 나뭇잎은 검은 색이 되기도 한다. 너희들
은 아무도 진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할고 있는 한쪽의 관점만으로 내것이 맞
다고 고집들을 하고 있다. 그것은 결국 다른 하나의 진실을 외
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마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한가지의 단면만을 보면서 사물과 사람을 판단하려 한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하나의 사실은 우리가 보지 못하고 듣
지 못하는 빛이 있다는 사실인 것이다. 우리의 육신의 오감으로
확인할수 없는 많은 것들이 궁극적인 실제를보지 못하게 하고
있다.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의 주인이 되시는 그분 예수 그
리스도께서는 부분적으로 보고 판단하시는 분이 아니라, 전체적
으로 보시고 심령의 보이지 않는 진실을 궤뚫어 보시는 온전한 진리이셨읍니다.




49 . 하나님을 볼수는 없읍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볼수없는 하나님
을 하나님은 우리가운데 나타내시려 육신을 입고 우리가운데 오
셨읍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사실이요, 하나님의 실체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래의 영광을 우리의 육체의 시각으로는 볼수
가 없읍니다. 우리가 그 찬란한 영광을 볼려면 우리의 몸이 영광
의 몸을 입어야만 가능합니다.
그때에는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볼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에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여 주셨읍니다.
물론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들에
게 몇가지의 인상을 남겨 주셨읍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인상입니다.
평강을 깃들게 하시며 나누어주셔서 누리게 하시는 예수!이것은
초림하실 때 천사들의 노래였읍니다.
예수님은 만나는 모든 자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시는 분입니
다. 그 분을 심령으로 진실되이 만날 때 근심이 사라지며, 부들
부들 떨다가도 힘이 생기게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은 무거운 양심에 안식을 주며, 아담의 범
죄로 빼앗긴 기쁨과 평강을 회복해 주시는 소망과 인자하신 모습이었습니다.
그를 만나는 모든 자들이 고백하지 않을수 없는 사랑의 인자하신 모습이었습니다.
나그네 인생의 가장 좋은 보호자가 되신 예수님, 죄인을 깨닫게
하여 회개시키므로 평안을 주시며 삶의 패턴을 바꾸어 버리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지금도 여전히 평안케 하시는 예수님! 그 깨끗하고 사랑이 풍
성한 광채앞에 고꾸라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완고한 사울이 바울이 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당신 자신의 삶이 변화되는 그
런 역사를 기대하지 않으시겠읍니까?
이 부활의 아침! 주님은 당신과의 만남을 원하시고 기대하시고 있읍니다.
또한 그분은 자신이 가진 참된 평강과 기쁨을 삶에 지친 우리들
에게 나누어 주시려 하시고 계십니다.
지금! 바로 이시간이 나에게 또 당신에게 소중한 시간이 될수 있읍니다.



50 . 아름다운 꽃이 많이 있는 화단을 망쳐버리는 방법을 아세요?

그것은 그 꽃밭에 불을 지르고 물을 많이 부어버리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수고하지 않아도 쉽게 망칠수 있는 비결은 그 화
단을 그냥 내버려 두면 됩니다. 그러면 나중에 잡초가 무성해지고 저절로 망쳐집니다.
어떻게 하면 친구 간의 우정을 망쳐 버릴수 있을까요?돌아다니면
서 마구 헐뜯고 비방을 하면 그 친구의 우정을 크게 배반하게
되어 우정은 금이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수고할 필요가 있나요! 그 친구가 내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냥 버려두면 우정은 사라지게 되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내 인생을 망칠수가 있을까요?방탕하고 법
을 어기고, 타락해 버리고 건강을 마구 상하게 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수고하지 않아도 세상이 악하게 돌아가는 대로 그
냥 나를 방치해두고 그냥 편하게 두면 나는 저절로 망쳐 버릴수가 있읍니다.
또한 우리들의 영혼을 어떻게 하면 망쳐 버릴수가 있을까요?하나
님의 진리를 철저하게 반대하고 나서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수고할 필요가 없읍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
님이 안계신 것처럼, 내 영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방관해 버
리면 나의 영혼을 망칠수가 있읍니다.
아무런 관심도 갖지말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말고, 어떠한 행동도
하지말고 그냥 자신을 방관함으로 내버려 두십시요.
그러면 나의 인생, 나의 영혼은 철저하게 그리고 무참하게 망쳐
서 멸망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진정 그러시고 싶은 분이 있읍니까?
절대로 방관할수 없는 삶이 바로 우리들 자신의 삶입니다. 그러
나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들의 영혼 그 내적인 고결함과 고
귀함을 잊어버리고 물질적인 삶의 가치속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
습니까?하나님은 우리들의 영혼의 가치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천하보다 더 귀한 고귀함이 있다고 말입니다.
당신은 이 고귀한 영혼을 위해 무엇을 할수 있읍니까?지금이 바
로 나의 영혼을 위해서 그 무언가를 해야할 바로 그때 입니다.







51 .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만남으로 살아갑니다.

이러한 만남에는 만나고 싶은 만남이 있고, 만나고 싶지않은 만남이 있읍니다.
또한 만나서는 안될 만남이 있고, 만나고 싶지 않은데 만나야 하는 만남이 있읍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삶속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의 만남을 통하여서 인생이 내 뜻과 같지 않음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일찌기 전도자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고백했읍니다.
사랑하면서도 헤어져야 하고, 미워하면서도 만나야 하는 모순속에서 우리의 만남은 계속되고 있읍니다.
'만난다.'는 말은 '맛이 난다.'는 말과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혹자는 '만남'은 곧 '맛남'이라고 합니다. 이말은 만남
을 통하여 우리는 느낄수 있고 확인할수 있다는 의미의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삶속에는 불행한 만남이 너무나도 많이 있읍니
다. 우리들의 불행한 만남은 우리가 스스로 자초하고 있다는 사
실들을 우리는 까마득히 잊고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의
모든 만남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으로 이루어짐을 깨닫고 기쁨으
로 만나고 기쁨으로 헤어지며사랑으로 만나고 사랑으로 헤어지며
믿음으로 만나고 믿음으로 헤어지며
소망으로 만나고 소망으로 헤어지는 행복한 만남을 우리는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만남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되
고 삶의 보람이 되는 멋진 만남이 되도록 서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만남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읍니다. 우리에게는
보장되어 있고 성취되어질 사랑과 행복의 영원한 만남이 현재
진행중에 있읍니다. 이 만남은 훗날 완전한 모습으로 가장 아름
답고 멋진 만남이 될 것입니다.
이 만남은 똑같은 만남일찌라도 우리의 만남은 세상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만남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우리가 얼마나 고대하고 있읍니까?주님! 주님이 오시는 그날 나는 나의 가슴을 다열어 하늘이 좁은 듯 주님을 가슴에 안으렵니다.



52 . 승리의 영광을 얻을 자

진실된 변화를 가지라.
생각의 변화를
결단으로 이루어진 삶의 변화를
승리로운 영광의 역사란?
참된 변화의 역사를 이룬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이다.

이 영광을 얻고자 하는 자마다
변화의 삶을 추구하며
진리의 말씀속에서
허트려짐이 없는 변화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
오늘의 고통스러움은 내일의 큰 영광을 이룸이니
잠시의 세상락에 유혹되지 말라.

승리의 영광은 값지나 땀과 노력의 결정
달콤한 순간의 쾌락은 매혹적인 것
순간의 선택은 내일을 결정하니
어디로 갈거나?
순간의 즐거움은
영원한 고통과 후회를 이루고
오늘의 고통스러움은
영원한 영광의 풍요로움을 이룬다.



53 . 마 음 의 우 상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상상하려고 하지 말라. 그러면 당신은 추상적이고 관
념적인 하나님을 믿게 된다."당신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계십니까?
어떤 분은 하나님을 단순히 하늘에 계신 분으로 알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필요한 부분에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머리속에 하나님을 그려놓고 내가 믿는 하나님은 이런
분이라고 힘있게들 외쳐 됩니다만 그런 하나님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자기 마음속의 우상일 뿐 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생각의
수준으로 끌어 내리려는 이러한 인간적인 시도를 우리는 버려야
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쉽게 실망하고 낙심하
여 하나님은 없다며 돌아설수 밖에 없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
다.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이 되시게 해야 합니다. 그 분은 우
리의 생각속에 만들어지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언제나
우리들과 함께 계시지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초월하셔서 스스
로 계시는 그런 분임을 우리는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부분의 속성만을 가지고 자신이 좋아하고 편
리한대로 알려고 합니다. 예컨데 우리는 늘 사랑의 하나님을 강
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공의의 하
나님으로서 공의로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녹여서 만든 것이든
지 마음에 새겨서 섬기든지 그 앞에 섬기는 것은 우상"이라고 했읍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우
리의 마음으로 상상하지 마십시요. 하나님게서 우리들에게 나타
내셔서 계시하신 것 외에 내 멋대로 상상해서 하나님을 정의해서는 안됩니다.

살아계시고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경
외하는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내게 하나님이 상상의 부산물로 내 마음의 우상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54 . 참 기쁨과 평안이 있어요!

두 화가가 평화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을 했읍니다.
한 그림은 거울같이 맑고 아름다운 호숫가에 비치는 석양을 그린
풍경이었는데, 나무들과 화초들과 그리고 그, 가운데 깃든 고요
함, 이 모두가 감미로운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화가는 무섭게 몰아치는 폭풍우를 그렸습니다. 시커
먼 구름이 하늘을 덮고 억수같은 폭우가 절벽을 무너뜨릴 것 같
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폭풍우 아래에 하나의 굳
건한 반석이 있어 그 아래에 새들의 보금자리가 있었습니다. 무
서운 폭풍우 가운데서도 엄마새와 갸날픈 새끼새들이 이 보금자
리에서 안전하고 안락하게 잠을 얻고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생각을 해보면 이 세상에 환란을 겪지 않은 인생이란 있을 수 없
고, 또 어떤 인생도 항상 고요하고 평화로울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로는 우리들에게 고난이 필요로 합니다. 우리들의 삶과 그
존재자체를 흔들어 놓는 고난이 우리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
들의 삶을 찾아 옵니다.
어떤 성경 연구가가 하나님의 말씀속에서 "근심하지 말고 걱정
하지 말라."는 문구를 세어보았더니 놀랍게도 삼백육십다섯군데
있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들이 사는 일년의 날수와도 같은지 어쩌면 이 속에
우리들의 어지러운 마음을 감싸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찾을 것
만도 같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온실에서 자라는 화초처럼 마냥 따스하고 안전하기
만을 바라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나칠수 없는 진
리가 있는데, 그것은 길가에 피어있는 잡초가 오히려 삶의 깊은
의지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내가 사는 세상이 죄와 난리의 소문으로 어수선 할찌라도
하나님의 품에 의지하여 기쁘고 풍성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하
나님의 안에만이 참된 기쁨과 평안이 있습니다.



55 . 왜!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가?

구약성경 시편 23편에 다윗의 시 중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
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뉘이시며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는 너무나도 유명한 귀절로 예
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는 구절이다.
특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
시는 도다.에서 왜 목자가 양들을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실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목자가 양을 시냇가로 인도하여 물을 먹일
때 양은 흐르는 물에서는 물을 마시지 않기에 잔잔한 물가로 인
도하여 물을 마시게 하는 것이다. 즉 이것은 목자가 양의 습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목자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어떠하십니
까?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신 분이시기에 우리들의 모든 부
분들을 일일이 알고 계신다. 그래서 우리들의 목자가 되시는 하
나님께서는 우리들을 가장 안전하고 풍성한 곳으로 이끌어 주시
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목자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기만 하면 그 분은 우리들을 최선의 곳으로, 최고의 방법
으로 풍성함이 있는 곳으로 우리들을 인도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않고 곁길로 나가 자신의 멋대로 달
콤한 순간의 쾌락을 위해서 흐르는 시냇가에 나아간다면 목자의
양으로서가 아닌 늑대의 먹이로서 위험에 처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목자는 잔잔한 시냇가로 이끄시기도 하지만 주위의 유혹과 위험
에서도 안전하게 그 생명을 바쳐서 돌보기도 한다.

이런 귀하신 목자가 누구신가? 그 분이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
님 우리의 아버지가 아닌가?우리는 그 분의 음성을 듣고 그 분
만을 따라가게 될때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천국의 삶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56 . 함께부르는 기쁨의 노래

우리 모두가 함께 부르는 기쁨의 노래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사랑, 용서, 친절, 이해등의 좋은 마음을 갖고 싶어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미움, 원망, 시기등의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할 때가 많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읍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쩌면 좋은 마음으로의 끝없는 노력의 여정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나쁜마음을 잘라 버리려는 인내와 용기를 발휘합니다. 그러나 한 번 병을 닦았다고 항상 깨끗한 병이 아닌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늘 새롭게하지 않으면 계속 더러움으로 쌓이게 됩니다.
매일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며 바쁜 중에서도 틈을 내어 명상에 잠기기도 하고, 독서도 하며, 기도의 시간도 갖고, 친구들과의 무익한 대화를 피하고 서로 충고하며 진지하게 삶을 이어나가는 생활로 좋은 마음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우리들의 삶은 일정하게 정해져 있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아무도 모르게 흐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 자신이 보낸 시간과 삶을 뒤돌아보면 "감사합니다."라는 영혼의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부르는 기쁨의 노래는 무엇일까요? 우리 모두가 아름다운 마음을 우리들의 삶속에 키워나가고 우리들의 삶속에서 생명을 허락하시고 모든 조건들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발견하는 일이 우리들의 삶에 있어 가장 소중한 노래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셨음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크나큰 기쁨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심을 의심하는 것은 참새가 하늘을 날면서 하늘이 충분히 넓을까?라며 것정하는 것과 물고기가 바다를 헤엄치면서 바다가 헤엄을 치기에 충분히 넓고 깊을까?라며 의아해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들을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은 아들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시겠다고 말입니다. (롬8:32)



57 . 고난이 있기에 생명력은 더욱 강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에 있어 일반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부분은 "평안하고 풍족한 생활이 곧 인간의 행복"이라는 생각일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역사가 토인비가 즐겨 말하던 내용입니다. 북쪽 바다에서 청어잡이를 하는 어부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 어떻게 하면 북해로부터의 먼 거리에서 런던까지 청어를 싱싱하게 살려서 가느냐?"였읍니다.
모든 어부들은 아무리 잘해도 배가 런던에 도착해서 보면 청어들은 거의 다 죽어있는 것인데, 꼭 한어부만은 청어들을 산채로 런던에 가져와서 큰 재미를 보고 있었읍니다. 동료 어부들이 이상하게 여겨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 어부는 고민 끝에 말하기를 "나는 청어를 넣는 통에다 메기를 한마리씩 집어 넣읍니다."라고 말했읍니다. 그러자 모든 어부들의 눈이 둥그래지면서 "그러면 메기가 청어를 잡아먹지 않소."라고 묻자 "네, 메기가 청어를 잡아 먹지만 두 세마리밖에 못잡아 먹지요. 그러나 그 통에 있는 많은 청어들은 잡혀 먹히지 않으려 계속해서 도망쳐 다니지요. 런던에 도착할 때까지 청어들은 열심히 도망다니며 살려고 애를 쓰지요. 덕분에 청어는 싱싱하게 살아 있는 것 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에게나 고난이 없을 수는 없읍니다.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많은 고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삶의 방향은 엄청나 게 달라질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고난은 우리들의 삶에 더욱 큰 의미를 더하고, 활력과 용기를 더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고난으로 인해 더욱 생명력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고난은 인생의 참 진주를 형성하는 계기가 될수 있는 주어진 기회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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