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漢字文學/[동양명언]

제171주 동양명언

好學 2010. 10. 25. 20:13

 

제171주 동양명언 : 寡慾(과욕)과 無慾(무욕)의 깊이 있는 이해와 실천을 생각해 봅니다.

 


◈ [금주 명언] - 養心莫善於寡欲하니 其爲人也寡欲이면, 雖有不存焉者라도 寡矣요, 其爲人也多欲이면, 雖有存焉者라도 寡矣니라.

◆ [독음] - 양심막선어과욕, 기위인야과욕, 수유부존언자, 과의, 기위인야다욕, 수유존언자, 과의.

◆ [한자] - 기를 양/ 마음 심/ 없을 막/ 착할 선/ 어조사 어/ 적을 과/ 욕심 욕/ 그 기/ 할 위/ 사람 인/ 적을 과/ 욕심 욕/ 비록 수/ 있을 유/ 아니 불/ 있을 존/ 어조사 언/ 놈 자/ 적을 과/ 어조사 의// 그 기/ 할 위/ 사람 인/ 어조사 야/ 많을 다/ 욕심 욕/ 비록 수/ 있을 유/ 있을 존/ 어조사 언/ 놈 자/ 적을 과/ 어조사 의

▶ [출전] - 『孟子(맹자)』 《盡心章句 下篇(진심장구 하편)》

◈ [해석] - 마음을 수양하는 것은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으니, 그 사람됨이 욕심이 적다면 비록 보존되지 못함이 있더라도 그것은 적을 것이요. 그 사람됨이 욕심이 많다면 비록 보존되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은 적을 것이다.

☞ 養心莫善於寡欲(양심막선어과욕) : ‘마음을 수양함은 욕심을 적게 하는 거보다 좋은 것이 없다’는 뜻으로, 자신을 단속하고 올바른 가치를 체득하고 실천하기 위하 수단으로 육체적인 욕구와 욕심을 적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 其爲人也寡欲, 雖有不存焉者, 寡矣(기위인야과욕 수유부존언자 과의) : ‘그 사람됨이 욕심이 적다면 비록 보존하지 못하는 것이 있더라도 그 보존하지 못하는 것은 적을 것이다’라는 뜻으로, 육체적 욕구는 사람이기 때문에 완전히 없을 수는 없기에 적절하게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인간 본연의 올바른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정신적 지주를 훼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 其爲人也多欲, 雖有存焉者, 寡矣(기위인야다욕, 수유존언자, 과의) : ‘그 사람됨이 욕심이 많다면 비록 보존하는 것이 있더라도 그 보존하는 것은 적을 것이다’라는 뜻으로, 이번에는 반대로 육체적 욕구와 욕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인간 본연의 올바른 가치를 거의 다 훼손해버리고 말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 [해설] -

인간이 지닌 욕구(慾求)와 욕망(慾望)은 예로부터 절제의 대상으로 수많은 잠언(箴言)들 속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 인간이 지닌 욕구와 욕망으로 인해 인류가 문명과 발전의 토대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다소 서로 배치되는 대상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寡慾(과욕)’과 ‘無慾(무욕)’의 개념을 올바로 이해한다면 항상 절제된 바른 삶의 가치를 실천하면서도 더 큰 욕구와 욕망을 바탕으로 성취욕을 자극하고 완성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금주의 명언에서 맹자의 주장은 ‘無慾’이 아니라 ‘寡慾’이었습니다. 인간의 육체적 욕구는 없앨 수 없기 때문에 욕심을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적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인간이 본래 지니고 있는 육체적 욕구와 욕망을 적게 하는 것이 인간 본연의 타고난 선한 마음을 잃거나 훼손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不忍之心(불인지심)’을 자극하는 수양의 방법으로 기본적인 육체적 욕구를 절제하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욕심 자체를 없애라’는 ‘無慾’의 개념은 인간의 사사로운 욕심인 ‘私慾(사욕)’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私慾은 적게 하는 정도로 그치다 보면 항상 그 정도에 매립되어 혼탁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적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애야 하는 대상인 ‘無慾’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 진정한 자기수양의 정도인 것입니다.

언제나 이 ‘私慾’이 인간 개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정자(程子)는 이렇게까지 표현했습니다.

“私慾이라는 것은 굳게 여겨서 빠지는 것만이 아니요, 다만 향하는 바만 있어도 바로 私慾이다. [ 所欲 不必沈溺 只有所向 便是欲. <同章 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