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간증]신앙간증글

이어령 교수의 회심

好學 2009. 4. 17.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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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본 빛을 나에게도 보이게 해 달라”
                      이어령 교수, 딸의 치유 보며 신앙에 다가서

   “저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지식과 돈이 너를 구하지 못했다. 정말 네가 주 안에서 편안함을 얻었다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면, 나의 무력이 증명된 것이 아니냐. 내가 이 무력함에 매달려 지금까지 살았구나. 동행하자. 지금 자신은 없지만 네가 시력을 잃어가면서 본 빛을 나에게도 보이게 해 달라.”

   최근 딸을 통해 그리스도를 영접해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케 했던 이화여대 이어령 명예교수(73)가 기독교에 귀의한 사연을 밝혔다. 그는 월간잡지 빛과소금 7월호에서 “’내 딸이 시력을 잃게 되어 살아 있는 동안 다시는 내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정말 믿을 수 없었다”며 “미국 하와이의 한 작은 교회에서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고백했다.

   “하나님, 나의 사랑하는 딸 민아에게서 빛을 거두시지 않는다면, 남은 삶을 주님의 종으로 살겠나이다.” 그의 기도는 겸허하고 절실했다.

   1992년, 이 명예교수의 딸 민아 씨는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다. 수술을 했지만 1996년과 1999년에 두 차례나 암이 재발했다. 설상가상으로 유치원에 들어간 민아 씨의 작은 아들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로 판명나면서 민아 씨는 밤마다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몸조차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아들의 일까지 생기자 그녀는 아들의 치료를 위해 하와이로 이주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녀의 눈이 점차 흐릿해졌다. 망막이 손상돼 거의 앞을 보지 못할 정도였다.

   이 소식을 들은 이 명예교수 부부는 급히 하와이로 건너갔다. 눈이 안 보여 설거지도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딸을 보고 두 부부의 마음은 타들어 갔다. 이 명예교수는 아이들을 봐줄 테니 한국에 가서 검사를 받자고 딸에게 요청했다. 얼마 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민아 씨가 점차 시력을 회복하더니 정상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는 망막이 다 나았다고 진단했다.

   이 명예교수는 “이러한 기적 때문에 기독교를 믿는 것은 아니다”며 “그 이유로 첫째, 기적은 구제의 표시이지 목적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예수께서는 ‘기적이다’라고 떠들면서 믿으러 오는 사람들을 아주 슬픈 눈으로 쳐다보셨습니다. 진짜 ‘만나’를 보라고. 영원히 죽지 않는 빵을 보라고 말입니다.”

   그 동안 여러 언론매체들의 인터뷰를 정중히 거절해 온 이 명예교수는 “내 신앙이 외식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염려됐다”며 “다락방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싶다. 자신의 신앙 변화를 매스컴에 나가 떠드는 것은 외식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명예교수는 오는 7월 24일 온누리교회 주최로 열리는 ‘일본 러브소나타 집회’에서 강연을 맡았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으로 일본의 지성인들에게 큰 지지를 받았던 그가 이번엔 일본문화와 기독교의 관계에 대해 역설할 예정이다.

 

 

영원한 문화인, 통섭(統攝)의 지식인으로 불리는 이어령(73) 전 문화부 장관이 세례를 받기로 했다. 개신교에 귀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종교를 문화의 일부로 인식해 온 그였다. 종교를 논했지만 신앙인은 아니었고, 성서를 읽었지만 열정의 시선은 아니었다. 기독교방송에서 지명관 한림대 석좌교수와 1년간 성서를 놓고 대담도 했다. 그러나 늘 제3자, 객관적 시각으로 종교를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분석하는 데 주력했던 그다.

   그런 이 전 장관이 기독교를 선택하기까지는 딸 민아(47) 씨에게 지난 15년간 닥친 시련이 결정적 작용을 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 어렵게 공부한 끝에 변호사가 됐고, 한때 로스앤젤레스 지방 검사로 활약하면서 청소년 마약 문제를 다뤘던 딸이다. 아버지에게는 자랑스러운 딸, 교민사회에선 성공한 한인이자 전도가 양양한 유망주였다.

   민아 씨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1992년 갑상샘암 판정을 받은 뒤부터다. 수술을 했지만 1996년과 1999년 두 차례나 암이 재발했다.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유치원에 들어간 작은아들이 특수자폐아동으로 판명이 나면서 “지난 10년간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울지 않고 잠든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고 그는 고백했다.

   약물치료를 요구하는 학교와의 싸움, 기도 끝에 변호사 사무실까지 문을 닫고 아이 치료를 위해 무조건 하와이로 건너간 사연, 아이를 받아줄 수 없다는 미국인 학교의 목사 앞에서 “잃어버린 하나의 어린양을 받아 달라”고 통곡했던 일, 하와이에서 자신의 망막이 파열돼 시력을 잃었던 기억,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떼를 썼던 일….

   “아버님이 하와이에 오셨는데 제가 눈이 안보여 설거지를 못하자 맘이 몹시 상하셨어요. 그러면서 ‘미국 사람들은 손이 커서 수술을 못한다. 한국으로 가자’고 해서 결국 한국에 왔지요. 한국 병원에 와서 진찰을 받았는데 망막이 나았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의사가 ‘혹시 미국 사람이 영어를 빨리 해서 못 알아들은 것 아니냐’고 묻더군요.”

   민아 씨는 자신과 아들의 길고 길었던 투병기와 완치되기까지의 과정을 3일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온누리교회 새벽기도에서 공개했다.

   울먹이며 흐느끼며 30여 분 동안 그가 사연을 털어놓자 교회당은 눈물바다가 됐다.

   이 전 장관이 세례를 받기로 결심한 것도 그 즈음이다. 그는 “아직 교리문답도, 세례도 받지 않았다”면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딸에게 못 해준 것을 해준 분이 있다면 대단한 것 아니냐”며 심경의 변화를 나타냈다.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는 그가 2007.7월에 세례를 받을 예정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어령(75) 전 문화부장관이 24일 세례를 받았다. 이날 이 전 장관은 일본 도쿄의 프린스파크호텔에서 서울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평생 처음으로 꿇은 무릎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인이 지금까지 쌓아온 인본주의적인 작업을 뒤로 하고 지성의 세계에서 영성의 세계로 들어간 순간이었다.

   일본 복음화를 위한 문화선교집회인 러브소나타 도쿄대회 현장에서 세례를 받고 난 이 전 장관은 많은 일본인들에게 강연을 했다. “오늘부터 저는 신자의 길을 걷습니다. 그동안 많은 직함을 갖고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이제 새로운 길을 떠납니다. 이 길이 외로울 수도 있지만 신자로서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싶습니다.”

   크리스천 이어령 장관. 무엇이 그를 이성과 지성의 세계에서 영성의 세계로 떠나게 만들었을까. 대회가 끝난 다음날인 25일 프린스파크 호텔에서 이 전 장관을 만났다.

  -세례 받으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세례받기 이전과 이후 삶을 대하는 태도나 느낌이 다르지 않습니까.

   "세례를 받았다는 것과 제가 참 신자가 되어 믿음의 세계에서 성공한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세례 자체가 영적세계에서의 승리적인 삶을 담보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막 서울대에 합격한 학생이 졸업 후의 포부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중도에 낙제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저는 지금 대학합격통지서를 받은 학생과 같습니다. 아직 입학도 안했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있는 것도, 사역을 시작한 것도 아닙니다. 이제부터 해야지요. 솔직히 저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머리로는 받아들였지만 아직 성령체험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례 받고 나니 몸가짐이 달라지는 걸 느낍니다. 조금만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아, 이제 핍박이 시작되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겁이 나기도 합니다. 그동안 전방위 자유를 누리다가 저를 가두는 한쪽 벽이 생겼습니다. 새로운 문이 열린 것인지, 벽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
 
  -어떻게 예수님을 인격적인 주님으로 받아들일 결심을 하게 되셨습니까.

   "저의 딸 민아(장민아 변호사)는 암과 시력장애, 그리고 아이의 문제를 모두 신앙심으로 극복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혈육의 아버지 힘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이 고쳐주신 것이지요. 한국에서 제가 딸에게 해 준 것이 없었습니다. 일찍 문단에 등단하면서 가족들에게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제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민아에게 일종의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민아와 손자의 질병은 치유를 받았습니다. 민아의 문병을 갔던 하와이의 작은 교회에서 저는 처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의 사랑하는 딸에게서 빛을 거두지 않으신다면 남은 삶을 주님의 자녀로 살겠나이다'라구요.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은 민아의 체험이 계기가 됐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적 때문에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기적은 목적이 아닙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주셔도 언젠가는 누구나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지상의 진짜 기적은 단 하나, 부활과 영원한 생명입니다."

  -세례를 받고 영성의 세계로 들어갔다고 해서 과거 지성과 이성의 세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이성적 삶을 살다가 영성의 현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요.

   "저의 젊은 시절 사진과 지금 사진을 보면 다른 사람처럼 보입니다. 과거 제가 쓴 글과 지금 글도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진 속 젊은 사람도 저이며, 75살된 늙은 노인도 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제가 세례받았다고 해서 과거의 바탕을 버리고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 속에 묻혀 있던 영성이 이제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예술가적 기질과 초월적 영성의 기질이 있습니다. 과학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며 예술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합니다. 종교는 설명해서는 안되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종교적 현상은 체험해야 합니다. 그것이 영성입니다. 신앙은 경험하는 것입니다. 나는 '디지로그'를 쓰면서 인터넷을 통해 물질이 아닌 것이 영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과 0의 조합으로 영상과 노래, 텍스트가 나옵니다. 컴퓨터가 나오기 전에는 전혀 체험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컴퓨터를 통해 비물질이 메시지가 되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영성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과 접속하면 신앙적 세계를 다운로드 받는 기적이 일어날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예술가로서 저만의 우주를 갖고 있었는데 이제 그 우주를 걷었지요."

   -영성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해서 지성과 이성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말입니까.

   "지성과 이성이 사라지고 영성만 남으면 도에 넘치는 열광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종교가 탄생합니다. 기독교는 이성과 지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지성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성과 지성이 없어져야 영성이 맑아진다는 태도도 성립될 수 없습니다. 바울은 베드로나 제자들에 비해서 지성과 이성에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은 바울과 베드로를 모두 사용하셨습니다. 믿는 것은 고기잡는 사람들이 잘하지만 남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바울같은 사람이 더 잘합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에 바울같은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이 전 장관께서 이제 바울같은 전도자가 되면 되지 않겠습니까.

   "저의 지성과 이성이 어찌 사도 바울에 견줄 수 있겠습니까. 20대에는 반기독교적인 글을 많이 썼습니다. 소설가로서 저 역시 저의 세계에서 창조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지 않은 것들을 내가 만들겠다는 오만한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뛰어봐야 벼룩입니다. 이 단순한 사실을 아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제가 창작과 지적세계를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귀중하게 생각했던 것보다 몇 십배 더 크고 귀한 창조주를 인정함으로써 저의 예술적 지평은 훨씬 더 넓어졌습니다. 앞으로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의 삶과 관련된 글을 쓸 수도 있겠지요."

   -자기 절망을 경험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영성적 존재의 자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현실인데요.

   "그렇습니다. 절망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영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자기 파괴라는 극적인 것이 없이는 영성을 갖기 힘듭니다. 그래서 세속적으로 편안한 사람은 하나님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죠. 이 땅에는 빛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둠도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빛과 어둠이 합쳐진 '그레이 존'(회색지대)인 궁창에서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빛과 어둠을 알아야 인간 한계를 초월해 영성의 세계로 갈 수 있습니다. 영어로 '플런지'(Plunge)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팍 던져넣는다'는 의미입니다. 영성세계는 이해하거나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절망을 계기로 영성의 세계로 던져넣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세례받으면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평생 무릎 꿇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영상을 보니 충격적이었습니다. 죄수 같았습니다. 기쁨보다는 고통의 느낌이 있었습니다. 세례받으면서 아이가 태어나면서 왜 우는지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이 전 장관으로서는 본인이 직접 절망을 하게 된 상황은 없지 않았습니까. 딸의 절망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했지만 그것이 이 전장관의 경험은 아니었는데요.

   "딸이 남이라면 그 말이 맞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동일합니다. 내가 체험한 것이 타인과 동일할 때 사랑할 수 있습니다. 딸의 체험은 저의 체험입니다. 저는 딸을 사랑하니까요. 제가 세례와 관련해 인터뷰를 하지 않으려 한 것은 이런 경험들은 극히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딸아이의 고통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났다고 한다면 사실 부끄러운 일입니다. 내가 보편적 사랑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고통을 통해서도 믿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적어도 글 쓰는 사람은 남의 아픔도 내 아픔으로 알고 글을 써야 합니다. 그래야 진실한 글이 나옵니다. 나혼자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어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누가 걸어줘야 휴대전화의 기능이 시작됩니다. 이것이 기독교적 소통입니다. 사실 기독교적 발상은 20대부터 끊임없이 해왔습니다. 아내가 모태신앙인이었지만 지난 시절 내가 교회에 가지 않았던 것은 보이는 교회의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신앙과 관련된 좋은 글들을 쓰셔야지요. 그리고 교회에 대한 애정어린 비판도 하셔야겠구요.

   "이제 저는 비신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자들을 상대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더 이상 교회의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인사이더입니다. 아웃사이더가 하는 말은 비판입니다. 인사이더가 '우리 의식'을 갖고 하는 말은 비판이 아니라 협력입니다. 우리는 '먹어 버려' '가 버려'처럼 '버리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한국교회는 버려야 삽니다. 역사상 예수님만큼 많이 버린 사람은 없습니다. 바울이 말했듯이 믿음은 육상 경기를 하듯 모든 것 벗고 목표점을 향해 뛰어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경주를 하기 위해서는 가진 것 버리고 나가야 합니다. 버릴 때, 이 땅의 교회는 일상의 가치를 뒤집은 가치를 이 사회에 제공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현재 상황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메시지들은 크리스천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받아들여야 할 가장 귀중한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눔과 사랑,관용 등이 보여진다면 한국의 앞날은 밝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