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15] 랭브르 형제의 호화 기도서
- ▲ '베리 공작의 호화로운 기도서'.
중세에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미술의 종류는 채식(彩飾)필사본이다. 채식필사본이란 인쇄술이 나오기 전, 글을 펜으로 직접 쓰고 그림으로 장식한 책을 의미한다. 필사본은 고대에서부터 존재했으나 그 어느 시대의 필사본도 중세 필사본의 아름다운 서체와 그림을 따라가지 못한다. 성경이나 복음서, 찬송가의 구절이 쓰인 중세의 필사본은 처음에는 주로 수도원에서 성직자들을 위해 제작되었으나 13세기에 와서는 세속인들을 위해 도시의 공방에서도 만들었다.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가장 인기 있던 채식필사본은 하루에 여러 번 시간에 맞추어 기도할 때 사용하는 기도서였다. 기도서는 특히 북유럽 귀족들의 소지품이 되었고 성경책보다 더 잘 팔렸다고 한다.
기도서 중 가장 아름다운 채식필사본 가운데 하나는 15세기에 플랑드르 출신 랭브르 형제가 공동으로 제작한 '베리 공작의 호화로운 기도서'이다. 프랑스 왕 샤를 5세의 동생이었던 베리 공작은 농민에게 혹독한 세금을 물리고 허영에 찬 사람이었지만 진귀하고 아름다운 물건을 수집하던 소장가였다. 랭브르 형제(폴, 에르망, 장)가 베리 공작을 위해 만든 기도서에는 1년, 각 12달에 적합한 귀족의 행사나 계절에 따른 농민들의 노동을 번갈아 그렸다. 가로 14cm, 세로 22cm짜리 그림들이다.
2월의 겨울 풍경은 서양미술에서 최초로 그려진 설경(雪景)이다. 이 매혹적인 그림에는 한가로운 겨울 농가의 모습이 나타난다. 저 멀리 농부가 당나귀를 끌며 마을에 가고, 숲에는 나무를 하는 나무꾼이 있으며, 그 옆에는 한 여자가 손을 호호 불면서 집으로 가고 있다. 우리 속에는 양들이 들어가 있고 새들은 모이를 쪼아먹는다. 굴뚝에서 연기가 솔솔 나오는 오두막집에는 여자들이 치마를 걷어 올리고 불을 쬐고 있다. 인간, 동물, 그리고 자연이 어우러지는 농민들의 일상을 묘사한 그림이 종교적인 기도서에 등장했다는 것은 프랑스에도 뒤늦게 르네상스가 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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