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聖經信仰/[종합]인물.말씀.강연

교회 안에 불신자가 있다

好學 2010. 7. 13. 21:08

 

교회 안에 불신자가 있다 - 이윤근[의성교회 목사]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사람이 측량할 수 없다. 구원은 교파단위나 가족단위가 아니고 개인단위라는 점인데 아담의 집에서도 같은 부모의 자식들이지만 가인은 복되지 못한 편에 서 있고 아벨은 복된 편에 서 있으며 아브라함의 가정에도 이삭과 이스마엘 두 형제 중에 이스마엘은 복된 편이 아니고 이삭이 복된 편에 서있어서 한 가정이요 한 아버지의 아들이지만 복에서 제외된 일이 있는가하면 이삭의 집에서도 한 부모의 계통에서 쌍둥이로 태어났으나 에서는 문제의 아들이 되었고 야곱은 복된 아들이 되었다.

농부들이 농사를 지어도 같은 전답이지만 그 속에서 자라나는 곡식 중에서는 알곡이 있고 쭉정이가 있으며 가라지와 곡식이 있다. 가라지는 곡식을 모방하여 자랄 때는 곡식과 같은 모양이지만 추수할 때는 곡식과 가라지가 분리되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이다. 그렇다 가짜와 진짜는 언제 가려져도 가려지는데 심판 날이 올 때까지는 가짜가 진짜행세를 하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심각한 사회 문제요 농부의 문제이며 교회 문제이다.

더욱이 교회 안에서도 신자들 중에 불신자가 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성도요 다 구원받을 사람들로 인정을 하는데 인간들의 생각과는 달리 주님 편에서 볼 때는 가짜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가짜가 진짜보다 더 빨리 성장하여 목사도 되고 장로도 되어 교회에 해를 끼치고 있다는 점이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하지 아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가룟 유다와 같은 경우이다. 그는 열 두 제자의 속에 있으며 그 무리 속에서 중요한 요직을 맡았는데 그 자리가 곧 회계라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통 일반인들이 생각할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 할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이론이 아니고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점에서 혼란스럽다. 그러나 성경은 이에 대하여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하였다(잠 16:4).

이는 문자적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자신의 목적을 따라 만드셨다는 의미로서 각 피조물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저마다의 목적과 용도를 가지고 창조되었다는 뜻이다. 실로 모든 만물과 그것을 통해 발생되는 수많은 상황들이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라는 하나의 통일된 법칙 속에서 성취된다는 것이었다는 점으로 볼 때는 의문이 해소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 때에는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형벌의 날이 예비 되어 있다는 당위적인 결과일 뿐이다.

문제는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이르기 전에 그들로 인하여 교회가 아픔을 겪을 일을 생각하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주님은 가룟 유다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하였다(요 6:64). 그리고 이어서 하는 말씀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 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하였다(요 6:31).

그리하여 주님은 최종적으로 말씀하시기를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다면 제게 좋을뻔 하였느니라"하였다(마 26:24). 여기서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예정 때문에 인간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예정된대로 죽음을 겪게 되지만 그를 파는 자의 죄는 결코 가벼워질 수 없다. 따라서 유다는 결국 자기가 한 일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 그의 형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뻔한 그런 종류의 형벌인 될 것이다.

그런데 그의 삶을 통해서 보면 그는 남들이 감사의 표시로 주님을 대접하면 허비한다고 말하고 하나님의 돈을 도적질을 하며 사사건건 문제만 제기하기 때문에 진정으로 주님을 섬기는 자들에게는 매우 귀찮고 걸림돌이 되는 존재이다(요 12:1-8). 그리고 그는 사단의 생각을 가지고 예수를 은 30냥에 팔아 배교(背敎)하는 일을 거리낌없이 하다가 끝내는 비참하게 망한 것이 가슴이 아플 뿐이다(요 13:2 마 27:5).

오늘의 교회 안에는 이와 같은 종류의 신자들은 없는가? 스스로가 가슴에다 손을 얹고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사건건 교회 문제만 일으키고 어지럽게 하며 교회를 해치는 일은 없는지 또한 교회 일을 한다는 명분을 앞세우고 자기 일을 하는 자들은 없는지 깊이 반성하고 만약 그런 자들이 있다면 망하기 전에 회개하고 새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즉 예수의 이름으로 먹고사는 모든 자들은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특히 돈과 관계 있는 일을 하는 자들은 제 이의 가룟 유다나 발람이나 아간과 같은 말로를 맞이할까 조심하여 회계장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정확하게 기록하고 현금은 신전의식 사상을 가지고 한 점의 부끄러움 없이 취급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성경에 보니 간음한 다윗은 용서를 받았으나 돈에 관계 된 자들은 모두 처벌받아 망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나 총회에서 각 기관이나 각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시 한번 은밀한 골방에서 조용히 반성하여 불신자들이나 예사로 하는 일을 했다면 신자의 양심으로 돌아와 삭개오의 고백과 같이 착취나 횡령한 것은 사 배로 변상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엄한 심판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불신자 노릇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