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世界史/[지구촌]아시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이북.DPRK.]

好學 2010. 7. 10. 11:55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장
(국기) (국장)
표어: 강성대국(强盛大國)
국가: 애국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위치
수도 평양
39°2′N 125°45′E / 39.033°N 125.75°E / 39.033; 125.75
공용어 조선어1
정부 형태 주체 사회주의 공화국,
일당제
김일성2
김정일3
김영남4
최영림
정부 수립
 • 독립
 • 정부 수립
일본으로부터 독립
1945년 8월 15일
1948년 9월 9일
면적
 • 전체
 • 내수면 비율
 
122,762㎢ (96위)
0.1%
인구
 • 2008년 어림
 • 2008년 조사
 • 인구 밀도
 
24,051,218명
24,051,218[1]
190명/㎢ (55위)
GDP (PPP)
 • 전체
 • 일인당
2007년 어림값
$400억 (91위)
$1,900 (147위)


통화
도 사용 (ISO 4217:KPW)
시간대
 • 여름 시간
KST (UTC+9)
없음 
ISO 3166-1  408
ISO 3166-1 alpha-2  KP
ISO 3166-1 alpha-3  PRK
인터넷 도메인 .kp5
국제 전화 +850
1 문화어가 표준어로 사용된다.
2 고인임에도 불구 “영구 주석”이라고 규정.
3 헌법상 국가원수이자 국방 전반에 대한 최고 실권자
4 입법부 수장
5 .kp는 북조선의 인트라넷에서만 사용. 북조선에서는 인터넷 공개를 원치 않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한민족재단 “북한...평균수명 71.9세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은 아시아조선반도(한반도) 북부에 자리잡고 있는 국가이다. 평양직할시가 북조선의 수도이자 최대의 도시이다. 남쪽으로는 휴전선을 경계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으며, 폭 4km 가량의 비무장지대가 완충 역할을 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압록강두만강을 경계로 중화인민공화국과 접하며, 두만강 하구에서 러시아 연방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지정학상 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 몽골, 일본, 중화민국과 함께 동북아시아를 이룬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한반도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남쪽에는 미국, 북쪽에는 소련의 군정이 실시되었으며, 소비에트 연방의 군정 아래에서 1946년 북조선인민위원회를 수립하였으며, 2년 뒤인 1948년에는 남한지역에서 실시된 국제 연합 감시하의 한반도 총선거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고 김일성을 수상(후에 주석이 됨.)으로, 박헌영·홍명희 등을 부수상으로 하여 1948년 9월 9일 북한 정부를 수립했다.

조선로동당에 의해 지배되는 일당제 체제이지만,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이 후계자가 되었다는 점 때문에 봉건적 세습 독재 체제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념은 주체사상선군정치(先軍政治·군이 앞장서는 정치)이다. 주체사상은 1972년의 헌법 개정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 대신 국가의 공식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명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람들은 흔히 자국을 ‘조선’(朝鮮)이나 ‘공화국’(共和國)이라고 부르며, 요즘에는 간혹‘강성대국’(强成大國)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출처 필요] 공식적인 영어 명칭은 ‘DPRK’(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이며 보통 한반도 북부지방을 의미하는 ‘North Korea’라고 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조선’이라는 명칭을 조선 왕조단군 조선 등을 가리키는 말로 쓴다. 또한 대한민국에서는 남·북의 대치 상황과 맞물려 대한민국 헌법에 의해 대한민국 정부만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명칭 사용을 꺼리는 편이다 .

대한민국 사람들은 대개 한국의 북부지방이라는 의미인 ‘북한’(北韓)이라고 부르며, ‘북’(北)이라고만 부를 때도 있다. 나이가 많은 세대는 이북(以北)이라는 명칭도 쓴다. 한국 전쟁 이전의 행정 구역평안남도·평안북도·함경남도·함경북도·황해도를 미수복 지역으로 규정하여 ‘이북 5도(以北五道)’라 부르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과거에 옛 소련괴뢰 정권이라는 뜻으로 ‘북괴’(北傀)[6](또는 '괴뢰(傀儡)')라는 명칭을 썼으나,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남북간의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특별한 색채가 없는 ‘북측’이나 ‘북녘’이란 표현도 많이 쓰이고 있는 추세이다.

역사

이 부분의 본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역사입니다.

광복 이후

북조선인민위원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45년 8월 15일 2차 대전이 끝난 후 소련과 미국이 38선을 경계로 조선반도(한반도)를 남북으로 분할했다. 그후 북에서는 조선공산당신민당을, 남에서는 조선 공산당, 신민당, 인민당 세 개의 좌파정당이 연합하여 각각 북조선노동당, 남한노동당을 만든다. 1945년 10월 북조선에서는 이북5도행정위원회가 설치되었다. 1946년 2월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가 성립되어 이 위원회의 이름으로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하여 국유화한 다음, 농민에게 경작권을 배분하는 그러니까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원칙으로 하는 급진적 토지개혁을 시행하였다.[8] 물론 토지개혁으로 농민들에게 무상분배된 땅은 1948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지배단체가 만들어지면서 그들의 소유가 되었다. 그 뒤 북조선에서는 인민위원회를 설치하고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만들었다.

북조선 지배단체 수립

이후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조선인민군이 창설되었다. 1948년 8월 최고인민회의의 대의원 선거가 실시되어 9월 9일 공산주의 헌법을 채택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고, 김일성수상에 취임했다.

한국 전쟁과 남북 대치

한국 전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50년 6월 2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남침에 의해 한국 전쟁이 일어났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6월 28일서울을 점령하고, 7월 20일에는 대전까지도 내려왔지만 국제 연합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개입, 회원국들이 파병함으로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적화통일정책이 물거품이 되었다. 국제 연합은 대한민국과 함께 9월 15일인천 상륙 작전에 성공한데 이어 9월 27일에는 서울을 수복하고 이어 10월 1일에는 38선 이남 땅을 모두 찾음으로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38선 이남 땅에서는 사실상 전쟁에서 패한 거와 다름없었다. 이어, 국제 연합군이 38선을 넘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들어오기 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0월에 평양에서 철수하고 강계를 임시수도로 정하면서 중화인민공화국에게 전쟁에 개입을 요청했다. 결국, 10월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개입함으로써, 전쟁은 국제전으로 비화했다. 한국 전쟁은 1953년 휴전협정으로 일단 막을 내렸으나, 비무장지대를 경계로 대치하며 긴장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김일성의 권력강화

북조선의 정치구조는 초기에 남로당계열, 갑산파계열, 소련파계열, 연안파계열 등 연립내각 체제였다.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은 당시 정적들이였던 박헌영, 리승엽남로당 간부들은 대거 숙청하였다.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의 지반은 계속 확대되었다. 1956년 8월에는 최창익등 연안파 세력들이 지도자 위치에 있던 김일성을 끌어내리려던 시도(8월종파사건)를 하였지만, 무산되면서 얼마 후 주동세력인 소련파연안파는 숙청되었다. 이로 인해 소련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이어서 김일성은 갑산파계열내에 온건세력들을 숙청함으로써, 정치구도는 김일성 유일 체제가 확립되엇다. 1972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을 공포하였다. 이 법은 1977년 개정되어 국가의 공식이념을 주체사상으로 확립하였다.

김정일 정권

1980년대에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이 후계 체제가 공식화되면서, 1990년대 김일성의 사후 김정일 중심 체제로 유훈통치가 강화되어갔다. 1991년에는 대한민국UN에 동시에 가입했다. 1992년 헌법 개정을 통해서 주석의 권한을 축소하는 대신, 군사 관련 기능 및 권한을 국방위원회로 통합하여 김정일 체제가 별다른 파벌 분쟁없이, 공고해져 갔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하여 김정일(金正日)이 사실상의 지도자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김정일에 반대하는 황장엽 등이 김정일이 실권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시도하다가 실패했으며 대부분 숙청되었지만 황장엽과 김덕홍은 한국으로 망명했다. 1998년 헌법 개정을 한번 더 하면서 주석제가 폐지되고, 국방위원장의 권한이 강화되어 김정일의 유일체제가 완전히 확립되었다.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평양에서 만나 6·15 남북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그 이후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같은 남북 협력 사업이 시작되었으나, 그 이면으로 2002년 제2연평해전. 2006년 7월에는 미사일 시험발사를, 그리고 10월 13일에는 핵실험을 실시하였다.

최근의 동향

2008년 9월 9일 정권 60주년 수립 기념식에 김정일이 나타나지 않아 그에 대한 와병설이 확산되었다. 상당 기간 동안 김정일 와병설이 지속되자 북한 당국은 내부단속을 강화했다.

2008년 10월 11일미국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테러 지원국에서 해제했다.  그러나, 6자회담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폐막하면서, 미국은 언제든지 북한을 다시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가 당선되자, 일각에서는 미국과 북한의 관계에서 화해의 물결이 일고 있다고 보았으나 2009년 4월 5일 이른바 광명성 2호를 발사했다. 이에 대해 국제사회는 UN 안보리 결의 1718호 위배로 보았으며, 5월 25일에는 핵실험을 실시했다. 이에 UN 안전보장이사회는 같은 해 6월에 15개 이사국의 만장일치로 UN 안보리 결의 1874호를 결의했다.

정치

이 부분의 본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입니다.

북조선의 정치체제는 주체사상과 '독재주의'에 근거하는 일인 일당 체제이다. 스스로는 '공산주의'라고 한다. 그러나 국가의 지도이념인 주체사상과 국제공산주의 운동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다. 한 예로 민족주의를 강력하게 표방하는 점은 공산주의의 국제성과 자체모순된다. 사실상 권력을 부계로 세습하는 상황이어서 북조선이 공산주의 국가가 아닌 '김씨 왕조', '공산왕조', '봉건주의' 왕국이라고 비난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는 정당을 비롯한 계급이 소멸하도록 되어 있는데, 북한에서는 계급이 소멸되기는커녕 오히려 지배계급이 세습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김정일이 조선로동당(조선 노동당,노동당)과 군을 장악하고 있고, 조선로동당 이외의 정당도 여러 가지가 있긴 하지만 로동당이 곧 국가라는 관점이 지배한다. 또한, 1990년대 말부터 선군정치 사상이 추가되었다. 또한 국가원수이자 국방 전반의 최고 지도자는 국방위원장이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입법부 수장이다. 현재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김영남(金永南)이다.

대외 관계

북조선은 전통적으로 같은 공산주의 국가인 구 소련, 중국, 동독 등의 구 공산국가들, 베트남, 쿠바 등과 유대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1991년에 소련이 해체되고 유고슬라비아와 아시아의 중국, 베트남, 라오스 등의 공산주의 정권들이 민주화운동(민주주의)과 시민 혁명, 시장체제 등을 열어 공산주의가 붕괴됨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북조선의 입지는 크게 좁아졌다. 그러나 같은 반미(反美) 국가인 쿠바, 시리아, 미얀마와는 계속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파키스탄, 이란, 리비아와는 핵무기 개발에 협력하는 등 군사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리비아2003년에 핵무기를 폐기한다고 발표). 북조선은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정치, 경제 면에서도 유일한 스탈린주의 국가이다.

대남(對南) 관계

남·북 쌍방의 상호인정문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각자 자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주장하며 서로를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먼저 대한민국 헌법의 제1장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고 규정하며, 국가보안법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국가가 아닌 대한민국에 반대하는 반(反)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의 반국가단체 조항이 평화 통일 원칙을 명시한 대한민국 헌법 제4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15] 주장도 있으며, 2000년2007년에 채택된 남북공동선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명칭을 직시하였으므로 국가보안법상의 반국가단체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주체사상을 통해 대한민국을 미국의 괴뢰정권으로 규정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에서 남조선 해방이라는 문구를 달고 있다. 그 예로 대한민국의 대통령 이명박을 역도등으로 부르는 것이 그 예이다. 역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에서도 한반도와 주변도서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토로 규정한다고 명시하였다.

현재 대한민국일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1940년대UN대한민국 정부를 국제연합의 관할권이 미치는 지역, 즉 한반도의 공식 정부로 승인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련 사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국 전쟁 후에도 많은 사건을 일으켰는데, 특히 수차례에 걸쳐 대한민국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시도를 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1968년 대한민국‘조선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인 124군부대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하였던 사건인 김신조 간첩일당 청와대 피습사건이 있다. 또한 1974년 8월 15일문세광(文世光)에 의한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 1983년에 발생한 아웅산묘역 폭탄테러사건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그 외에도 비무장지대에 땅굴을 파서 대한민국에 대한 침투를 시도하였으며, 1976년 판문점에서 일어난 판문점 도끼 살인 사건을 자행하기도 하였다. 군사적 도발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무장 간첩 120명을 15개조로 나누어 울진삼척지구의 민간인들을 무참히 학살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이 있다. 1996년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사건, 1999년2002년황해 서북방에서 각각 발생한 제1연평해전제2연평해전, 그리고 2008년금강산에서 여행중이던 박왕자씨가 피격당한 금강산 피격사건등 여러 사건사고가 일어났다.

그 뒤에도 2009년 11월 10일 인천 대청도 인근 해상 북방 한계선인 서해 북방한계선을 넘어오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경비정에게 대한민국 해군에서 경고를 했다. 끝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공격을 가하자 대한민국에서 반격을 가하면서 대청해전이 일어났다. 남한의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함정이 반파되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달아났다. 그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그 사건에 대해 대한민국의 도발이라고 주장하며 가혹한 군사적 대가를 치뤄야 한다고 협박했다.

경제협력사업과 남북관계 악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경제적으로는 경제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 러시아 등의 인접국가들의 경제 지원과 해외자본을 유치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같은 남북 협력 사업은 이러한 맥락에서 시작된 것이다. 2006년 10월 13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대한민국, 미국, 일본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강행하여 남북 관계는 소원(疎遠)해졌으며, 각종 남북 협력 사업이 일시 중단되었다. 그러나 2007년 6자 회담제2차 남북 정상회담의 타결로 활발히 재개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얼어붙게 되었다. 박왕자씨 금강산 피격사건도 이로 인해 계획된것이라는 설에 대해 논란이 있다. 최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로동신문의 논평을 통해 대한민국을 압박, 남북 관계의 차단을 경고해 왔으며, 결국 최근에 중단되고 말았다.  그리고 로동신문의 논평에 대해서 각 전문가들의 분석은 대체로 대한민국을 길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전하고 있다.[19][20] 하지만 조선인민군2008년 12월 1일부터 군사 분계선을 통과하는 모든 육로통행을 엄격히 제한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경색되어 가는 남북관계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화를 제의했으며, 군사 및 실무차원에서 장비지원을 제의했다.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대한민국에 대해서 강경한 입장을 계속 보이고 있자, 남측은 강경한 입장에서 조금씩 빗장을 풀기 시작했다.[23] [24] 민주노동당11월 15일에 남북관계의 회복을 위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평양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4박 5일의 평양 방문을 마친 민주노동당의 강기갑 대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강경한 입장이라고 발표했다. 민주노동당은 북측 고위급 인사의 말을 인용해서 현 남북 관계가 최악이라고 발표했다.

최근 미국 국가정보위원회2025년에 남북이 통일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했다. 대북인권결의안에 11월 21일에 통과되고 대한민국이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북측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의 말을 인용, 점점 대남압박 행동조치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8년 11월 24일에 북측은 개성관광 중단, 개성공단 축소 등을 통보했다. 통일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개성공단 폐쇄에 대해선 희박하지만 배제 못한다고 발표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남압박의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계속적으로 매체를 통해 대한민국을 맹비난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언론은 경색되어 가는 남북관계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발표했다. 민주당민주노동당이명박 정부의 남북 관계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고, 새로운 대북대책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했다. 야당 3당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하루빨리 전환해야 한다고 설명서를 발표했다. 통일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사도발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39] 2008년 12월 5일통일부는 12월 1일에 남북간 육로통행의 차단에도 불구하고, 평양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지원사업 및 경협은 활발하다고 발표했다. 조선신보2008년 12월 10일6자회담으로 참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협상태도를 비판했다. 반면에 국민행동본부등 일부 보수단체들은 이런 북측의 비난행동의 맞대응으로 정상회담 때 중단하기로 한 전단을 살포하기로 하였다.

2009년 1월 17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총참모부는 성명을 통해 대한민국과 전면대결태세에 진입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선 대북경계태세를 강화하고 북조선군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 북조선이 성명을 통해 남측과 전면대결태세에 돌입했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정치권은 반응이 엇갈린 상태이다. 남측에 위치한 서해 5도는 북조선이 성명을 발표한 뒤에도 평온속 긴장상태에 놓여 있다. 최근 북한에 있는 한 단체가 한반도를 주장했다고 조선중앙통신에서 발표했다. 북조선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의 성명을 통해 남북간의 기존 군사적, 정치적 합의사항을 무효로 한다고 선언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기존에 있던 사항들을 폐기한다고 발표하면서 황해에 위치한 서해 북방한계선은 화약고가 될 가능성을 낳고 있다. 북조선은 개성에 직원을 30일이상 억류하고 있으며, 2009년 5월 1일에는 대남 입장을 밝혔다.

그러다가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의 방북으로 여기자가 석방되었으며 곧이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으로 유씨가 석방되었다. 또한 조선인민군에 억류되었던 어선들이 귀환하였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고위급 인사들이 대한민국을 방문해 장례식에 참석하였다. 이 자리에서 김양건 통일전선부 과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그 밖의 통일부 장관, 기타 거물급 정치인들과 면담하면서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하였다. 그리고 9월달에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 처음으로 이산가족상봉이 금강산에서 이루어졌으며 남북관계에 순풍이 조금씩 불고 있었으나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인해 남북 관계가 또다시 얼어붙고 있는 상황이다.

군사

조선인민군 군사 (2005)
이 부분의 본문은 조선인민군입니다.

조선인민군은 제도상 로동당의 ‘당군’이며, 선군정치 하에서 권력의 기반이다. 최고사령관은 국방위원회 위원장(김정일)이다.

의무병역제도이며 2002년 현재 병력은 약 110만 명으로 추정된다. 육군 95만 명, 해군 4만 6000명, 공군 8만 6000명으로, 병력만으로는 세계에서 4번째로 큰 규모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장비들이 노후화되어 유사시 충분한 전투력을 가지지는 못할 것으로 평가되며, 탱크와 공군전력은 대한민국주한미군이 우세하다.

로동 1호, 대포동 1호, 대포동 2호 같은 중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대포동 2호는 미국 영토인 알래스카를 타격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식량 부족으로 인해 군대에서까지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기르게 한다.

북핵 문제

이 부분의 본문은 북핵문제입니다.

핵보유의 여부에 관련된 것은 이견의 소지가 있다. 북조선은 핵개발에 치중하여, 스스로 세계에서 9번째 핵무기 보유국임을 주장하나 미국 등 서방 각국은 핵실험이 실패한 것으로 간주하여 공식적으로 핵무기보유국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06년 핵실험을 실시했으며, 몇 개의 플루토늄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핵폭탄을 항공기에 실어 나를 수 있으나, 미사일에 탑재할 기술은 아직 없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의 핵폐기 요구에 대응하여 미·일·러·중·남·북 6자회담을 진행하고 있으며, 2007년 초기 단계를 합의하였다. 절차가 예정대로 진행되면 북한은 조만간 핵시설을 불능화하게 된다. 기존의 핵무기에 대한 처리는 결정되지 않았다. 미국은 보고서에서 북한을 처음 핵을 보유한 국가로 지정한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을 빚었다.

최근 북측은 2009년 3월 24일6자회담의 폐기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고, 7월 16일 김영남(金永南)이 '6자회담은 영원히 끝'이라고 하며 6자회담의 종료선언을 했으나, 9월 18일 김정일은 양자 및 다자회담의 틀에 대해 재언급하였다.

행정 구역

Subdivisions of North Korea (Korean).png
이 부분의 본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행정구역입니다.

북조선(북한)의 수도는 평양직할시이며, 면적 상으로 국토의 1%이다.

북조선의 행정 구역은 1직할시, 1특별시, 3지구, 9로 나뉜다. 한편 평안남도 남포시개성시특급시로 지정되어 있다. (북조선은 직할시가 특급시보다 높은 개념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이같은 행정 구역을 받아들이지 않고, 1945년 당시의 행정구역인 5도(평남, 평북, 함남, 함북, 황해)를 그대로 쓰며 형식적으로 이북 5도청을 두어 행정상 관리한다.

지리

북조선은 조선반도(한반도) 북부를 차지하고 있는 반도 국가로 아시아 대륙 동부 중앙에 있다. 중국 수도 베이징(北京)과 일본 도쿄(東京)를 연결하는 중간에 자리한다. 평지는 거의 없으며,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이다.

시간대는 대한민국(남한), 일본과 같은 동경 135˚ 자오선 표준시(협정 세계시 + 9시간)를 사용하고 있다.

위치와 면적

북조선의 남쪽 경계는 1948년 9월 9일부터 1950년한국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38선(북위 38˚선)이었고, 1953년 7월 27일 휴전 이후로는 군사분계선이다. 국토 북단은 북위 43˚ 00' 36˝ 함경북도 온성군 풍서리, 남단은 북위 37˚ 41' 00˝ 황해남도 강령군 등암리, 서단은 동경 124˚ 18' 41˝ 평안북도 신도군 비단섬, 동단은 동경 130˚ 41' 32˝ 라선특별시 우암리이다. 북한의 면적은 122,762 km²(대한민국정부 자료. 미국 자료로는 120,540km²)로, 조선반도(222,209.231 km²)의 약 55%를 차지하고 있다.

북조선 정부는 한국(남한)의 영토까지도 자국이라 주장하며, 그 주장하는 영토는 제주도, 울릉도, 독도 등 부속 도서를 포함해 한반도 전역이다(이는 대한민국, 즉 남한 정부가 주장하는 영역과 거의 같다. 북한이 자국 영토로 규정하지 않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영유권을 인정하는 일부 지역이 한국 정부가 주장하는 영역에 포함됨). 그 북단은 북위 43˚ 00' 36˝ 함경북도 온성군 풍서리, 남단은 북위 33˚ 6' 32˝ 제주도 마라도, 서단은 동경 124˚ 10' 47˝ 평안북도 신도군 비단섬, 동단은 동경 131˚ 52' 40˝ 경상북도 독도이다. 이 영토의 면적은 222,209.231km²이며 조선반도(한반도) 본토를 제외한 섬은 5,974.655km²이다. 섬을 포함한 남북의 최장 거리는 1,127.16km, 동서의 최장 거리는 645.25 km이다.

지형

한반도는 긴 지질 시대의 거듭되는 지각운동, 침식, 퇴적작용 등에 의해, 산지, 평지, 계곡, 해안, 고원 등 변화가 많은 지형이 되었다. 국토의 약 80%를 산지가 차지하여, 육지의 평균 표고는 440m이다. 많은 국토가 산지 속에 있다.

북한에서 가장 큰 산맥은 북부에 위치하는 랑림산맥(낭림산맥), 최고봉은 중국과의 국경에 위치하는 백두산(2750m)이다. 산지의 대부분은 대략 북한의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고 있다.

평야는 북한의 약 5분의 1로, 서해안 연안이나 서해안에 도달하는 하천의 유역에 집중하고 있다. 하천 연안에는 비옥한 토양이 있지만, 산지의 토양은 유기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개 불모지이다.

주요 하천은 대개 산지의 수원지에서 서쪽으로 흘러 서해로 간다. 가장 긴 압록강은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의 국경이다. 다른 주요 하천은 대동강, 례성강, 청천강, 재령강 등이 있다. 두만강만은 동쪽으로 흘러서 동해로 간다.

기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조선, 북한)은 대부분 대륙성 한랭 기후로 냉대 동계 소우 기후에 속한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다. 연평균 강수량은 대부분의 지역이 1000mm 정도이고 대개 여름에 집중적으로 비가 온다.

식생, 동물, 광산 자원

조선범은 시베리아호랑이를 북한에서 이르는 말이다.
 

현재 한반도 전역에 10만여종의 동식물이 분포하며, 식물계에서는 산삼이나 진달래, 소나무등 여러 종류의 식물은 몸에 좋고 여러 용도로 쓰인다. 남쪽 제주도에는 열대림과 비슷한 야자수가 흔하게 존재하며 지리산이나 태백산맥에는 북방계형의 특산 식물들이 자생한다. 북쪽 함경북도 백두산의 경우 시베리아나 만주에서만 볼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북방 침엽수림이나 북방계 식물류가 자생하며 중부 지방에는 높은 산지로 인해 고산형 식물과 여러 종류의 약용식물이 자생한다. 동물계에서는 한반도에 사는 호랑이는 시베리아호랑이라고 하며 호랑이들 중에서 가장 큰 종류이며 한반도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밖에도 멧돼지이나 고라니, 너구리등의 포유류나 까치, , 참새등의 텃새와 두루미, 기러기등의 새들이 서식하며 지네거미, 다양한 종류의 곤충류등 다양한 종류의 벌레류등이 살아가며 바다에서는 삼면인 이유로 더운 바다, 찬 바다에 서식하는 다양한 종류의 어패류나 고래등이 서식하고 있다.

북조선은 아시아에서 광물 자원이 풍족한 국가중의 하나다. 무연탄을 비롯하여 석탄, 철광석, 인회석, 텅스텐, 마그네슘, 흑연이 풍부히 매장돼 있고, 그밖에도 , , , , 아연, 몰리브덴 등 360여종의 광물이 있으며, 이중 경제성이 있는것은 140여종에 달한다. 그중 마그네사이트의 매장량은 세계1위이고, 마그네사이트를 제외하고 매장량 세계 10위권에 드는 광물로 중석, 몰리브덴, 흑연, 중정석, 형석의 5종류나 되며, 석탄은 147억t에 달하는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북조선의 설비, 기계 노후와 극심한 경제난으로 인하여 대부분이 개발되지 못하고 묻혀있는 상태이다.

경제

위성으로 보는 동아시아의 야경.(NASA) 북한은평양 이외에는 어둠이며, 조명의 전기도 거의 없다. 이는 발전하지 못했다는것을 반증한다.
 
평양직할시의 위성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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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과 함께 북조선의 모든 산업은 국유화되고 농업은 집단화되었다. 그 후의 통제경제는 일관해서 중공업의 발전과 농업의 기계화를 중시해 왔다. 1954년 전후복구 3개년 계획, 1957년 5개년 계획, 1961년 7개년 계획, 1971년 인민경제 6개년 계획, 1978년 제2차 7개년 계획, 1987년 제3차 7개년 계획과 여러 발전 운동-천리마 운동 등으로 통제경제를 시도했지만 결과는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55] 2003년국내총생산(GDP)은 228억 5,000만 달러로 추계된다.

2002년 이후에 북조선 정부는 식량난과 경제난이 번갈아 일어나면서, 2002년 7월 1일에 드디어 7월경제관리조치를 실시하여 경제구조를 개선하고 새로운 경제관리를 추구하고있으며 정부 관리들도 중국러시아에 파견하여 이른바 "자본주의 학습"을 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조선은 장마당과 시장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2004년부터 시장을 개장하여 시민들이 생활 소비품들을 구매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북조선의 대표적인 시장은 락랑구역에 있는 통일 거리 시장과 만경대 구역에 있는 칠골시장이 있다. 통일 거리 시장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상품 및 남한과 미국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진품이 아닌 것들도 있다. 최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합작으로 물품량이 증가한 상태이다.

하지만 계속 이어지는 미국의 봉쇄 정책과 기업 간의 신용성 부족, 인플레이션의 증가로 경제난은 계속해서 가중되고 있으며, 이러한 경제난은 북조선의 가장 취약한 약점이 되었다. 북조선 정권은 1993년 공식적으로 통제경제의 실패를 자인했다.[55]

기아문제

1990년대 중반 이후 식량난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 주민 수백만명이 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 처참한 지경으로 굶어 죽었고, 지금도 북한 주민의 3분의2가 두 끼 식사로 하루를 버틴다. 1998년을 시작으로 기아 상태는 개선되고 있으나 대기근이 가끔씩 찾아오고 있어 아직 기아상태가 나아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95년 이후 국제사회의 원조 없이는 주민들의 식생활을 책임질 수 없는 ‘구호경제’ 체제로 접어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 북한은 2008년 곡물 최소 소요량 520만t 가운데 380만t만 자체공급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족분 140만t은 남한이나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사회의 원조에 의존해야 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식량난이 심각해지고 있으며, 북동쪽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실정이다.

북조선은 내각하에 있던 민족경제협력위원회(민경협)을 폐지하고, 민경협 산하에 있던 민족경제련합회(민경련)를 개편해 로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로 옮기는 등 대남 경협기구를 축소하거나 개편했다. 하지만 대남 경협기구를 축소, 개편한다는 설에 대해서 남한 정부나 전문가는 가능성이 낮거나 남북관계 차단의 의도가 아니라고 했다. 식량난이 심각해지면서 북조선은 라면 대량생산을 통해 극복하겠다고 발표했으나, 그 효용성은 의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식량난의 원인은 김정일과 북조선 당국에 근본적 책임이 있다. 한 예로,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4월 5일 발사한 장거리 로켓에만도 3억 달러가량의 비용이 들어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발사 당시 대한민국 청와대 관계자는 “로켓 발사에 쓴 비용은 3억 달러 전후로, 북한의 식량부족분 1년치를 메울 수 있는 돈”이라고 말했다.

직업

 

1992년 개정된 공산주의 헌법 70조에 따르면 ‘희망과 재능에 따라 직업을 선택한다’라고 규정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도 직업선택의 자유를 법적으로는 보장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선로동당이나 국가기관에서 배치한 데 따라 일해야 하며 그 기준이 출신 성분이나 사회적 성분 그리고 노동력 배치계획에 따라 좌우된다고 한다. 이는 자신의 적성이나 흥미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고, 취업을 준비할 수 있는 대한민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고위층 인재 채용과 관련된 부정부패가 일어나면서,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2004년 1월부터 정치, 경제 과목 등의 시험을 도입하였다. 그래서 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인사정책이 개선, 신세대 북한 엘리트들이 출현하는 등 인력구조의 전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주택

북조선에서는 주택을 아빠트 또는 문화 주택으로 부르며, 이는 크게 3층에서 4층까지 있는 콘크리트 고밀도 건축물을 말한다. 이 또한 공산주의 국가의 법에 따라 주택을 국가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남한 주택제도와 달리 가정 총노동 월급에서 전기료, 수도료 등을 충당한다.

대표적인 주택지구는 평양시 중구역 아파트단지와 천리마 거리 아파트 단지, 함경남도 단천시 신단천동 주택단지와 황해북도 개성시 청년거리 아파트 단지 등이 있다.

북조선에서는 주택을 흔히 경제문제에 비유했기 때문에 다른 문제와 마찬가지로 주택건설에 주민들을 독려하고 있지만, 요즘 정부에서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식생활을 강조하기 때문에 주택건설도 부진한 면이 없지 않다.

최근에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에 살림집들을 건설하고 있지만 부진한 주택건축 때문에 상태가 미비하다.

화폐개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화폐개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09년 11월 30일에 북한은 17년 만에 구 100원을 신 1원으로 바꾸는 화폐개혁을 하였다.

이는 임금과 물가를 현실화한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처 이후 화폐 가치가 크게 하락하면서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목적 이외에도 북한 주민들이 보유해 암거래 시장에서 유통되는 지하 자금을 끌어내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화폐 교환조건을 제대로 정해놓지 못하여 북조선 주민들의 반발이 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62][63][64]

주민

조선반도 지역은 세계적으로 봐도 민족적 균질성이 높다. 조선반도 북부는 옛날에는 퉁구스계 민족의 유입이 잇따랐지만, 조선왕조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 동안 외부 민족 유입이 차단되었다. 현재 약간의 외국인(주로 중국인, 소수의 몽골인, 러시아인, 일본인, 프랑스인) 거주자를 제외하면, 주민은 모두 한민족이며, 별다른 소수 민족은 없다.

인구와 분포

일제 강점기 이전의 인구에 대해서는 한국#인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03년 현재 조선의 인구는 2246만 6481명, 인구밀도는 186명/km²이다. 인구는 특정 지역, 대개 평야에 집중되어 있다. 2004년 인구 증가율이 약 1% 정도의 매우 적은 비율로 추정된다.

인구의 도시 집중화는 1950년대 이후 가속화되어 2002년 현재 총인구의 61%가 도시에 산다. 최대의 도시는 인구 313만 6000명 (1999년 추정)의 수도 평양이다. 다른 주요 도시에는 개성, 남포, 청진, 신의주, 원산 등이 있다. 2000년 8월에는 동해안의 경제 무역 도시 라진과 선봉이 합쳐져, 인구 40만 명 규모의 라선직할시가 탄생했다. 라선직할시는 2010년 1월 라선특별시로 승격되었다.

언어

공용어는 조선어이며 조선글로 표기한다. 북조선에서 쓰이는 북조선말의 표준은 문화어라 하여 한국의 표준어와 대비된다. 북조선의 공식언어는 휴전 이후 한동안 대한민국의 표준어와 같이 중부방언에 바탕을 둔 말이었으나, 분단이 고착화됨에 따라 평양을 중심으로 한 평안도 방언에 바탕을 둔 문화어로 바뀌었다. 표기상 한자의 사용을 완전폐지하였으며, 두음법칙이나 자모의 사전배열 등 몇몇 차이가 있다. 어휘는 외래어대신 고유어를 활용한 어휘를 많이 만들어냈으며, 이중 일부는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외래어는 영어와 일본어에서 들어온 말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한민국과 달리 러시아어에서 온 외래어가 많다. 외국어로는 영어, 러시아어, 일본어, 중국어 등을 가르치는데, 영어는 영국식 영어를 가르친다. 영국식 영어를 가르치게 된 이유는 6.25전쟁으로 인한 미국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영국식 영어를 가르친다고는 하지만 영어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주민들에게 골고루 돌아가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자어나 외래어 대신 되도록 고유어를 쓰려는 정책 때문에 “북한에서는 전구를 ‘불알’이라고 부른다”는 농담 혹은 오해가 대한민국에 퍼져 있기도 하다. 그리고 '동무'라는 말도 북한에서 들어왔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이 아니다.

인권

이 부분의 본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권입니다.
이 부분의 본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범수용소입니다.

세계 유수의 인권단체들에 의하면 북조선의 인권상태가 전 세계에서 매우 열악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의 파악에 의하면, 북조선의 정치범수용소 6곳에는 인구의 0.85% 가량인 15만 4천여명의 주민이 감금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범들과 그 가족이 재판 없이 이들 수용소로 보내지며, 이 곳에서는 심문, 강간, 고문, 강제노동, 의료 서비스 배제, 강제낙태, 생체실험 등이 행해진다. 또한 이 곳에서 그들은 결혼의 자유도 박탈당하며 턱없이 낮은 식량배급을 받고, 외부와의 연락은 일절 차단된다..

또한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북조선이 농촌지원을 명분으로 아편재배에 어린이를 동원하고 있는 실태를 지적하였으며, 同 위원회에 출석한 북측 대표단은 유사시 미성년 아동들을 소년병으로 활용할 의도가 있음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개인숭배

종교

분단 이전의 조선(특히 평안도 지역)은 개신교의 세력이 큰 곳이었다. 북한 지배단체측에선 “종교의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되고 있다”고 하면서, 외국인에게 평안남도 묘향산보현사를 보여 준다.

그러나 여러 나라에서는 “실제는 종교 활동에 대한 다양한 제약이 있다. 신앙을 가지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있다”라는 견해가 주류로, “조선 국내의 통일 사상인 주체사상이 사실상 종교를 대신하고 있다.”고 추측한다. 자본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 혁명 이론을 가르쳤던 황장엽 김일성종합대학 교수 (당시)가, 주체사상을 취급하지 않은 것 때문에 교수 지위를 박탈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 건국때부터 1960년대까지 북한의 종교 역사는 종교 탄압의 역사였다.

덧붙여서 정부는「국내의 주된 종교로서 유교, 불교, 기독교, 제종교의 요소를 포괄한 천도교가 있다」라고 발표하고 있다. 다음은 조선의 종교 단체 목록이다.

 

 

이름 장소
봉수교회 평양직할시 대동강구역 문수동
칠골교회 평양직할시 만경대구역 팔골 5동
조선기독교련맹
조선불교련맹
조선천도교련맹
조선그리스도교련맹(조그련)

  1. 봉수교회에서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행사가 벌어진다.
  2. 조선그리스도교련(연)맹에서는 중국어영어 성서를 번역하고 조선어 성경을 보급한다.
  3. 로마 가톨릭은 조선 가톨릭교도 련(연)맹으로 활동중이다.
  4. 개신교 단체인 조선그리스도교련(연)맹은 대한민국(남한)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교류중이다.

문화

북괴는 모든 면에서 군사문화와 연관짓고 있으며 농사나 공장에서의 물자 생산을 '농업전투', '공업전투', '생산전투' 등의 단어로 표현할 만큼 아주 호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군인 뿐만 아니라 철도공무원도 군대식 계급을 부여(역장 - 대위, 차장 - 소위, 개찰담당 - 상등병, 기관사 - 중사 등)할 정도이다.

예술

문예활동은 당책 구현, 공산주의 선전, 공산주의적 인간개조, 노동의욕 제고와 주체사상 강화 등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문예정책 또한 선전과 선동의 일환으로서 문학이나 예술을 이용하고 있다. 창작활동은 이른바 공산주의헌법 45조에 규정되어 있는 `민족적 형식에 공산주의적 내용을 담은 혁명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공산주의적 사실주의에 입각한 묘사방법이 그 기조가 된다.

체육

체육정책은 북괴 주민들을 혁명과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강인한 투사형 인간으로 양성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김일성 우상화와 국방력 강화의 수단으로, 대외적으로는 스포츠를 통한 정치외교수단으로서 악용하고자 하며, 대남전략수단으로까지 악용하고 있다. 체육정책의 기준은 공산주의 혁명과 공산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자들을 육성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체육인을 양성하기 위하여 58년 9월 1일 개교한 평양체육대학과 77년에 설립한 중앙체육학원, 그리고 73년부터 각 도에 1개교씩 설치한 고등전문학교를 두고 있으며, 교원대학과 사범대학에 체육학부가 있다. 최대의 체육시설은 김일성경기장이며, 그 밖에 지방도시인 혜산· 함흥· 사리원· 원산· 신의주 등지에 경기장을 두고 있다. 실내체육관으로는 배구· 농구· 탁구· 체조 등 11개 종목의 경기를 할 수 있는 원산· 남포· 함흥· 강서 체육관 등이 있다.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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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탁아소, 학교

조선에서는, 1년간의 취학전 교육인 탁아소유치원이 있으며, 한국의 초등학교와 비슷한 소학교 4년, 중학교 6년, 합계 11년간의 의무교육 제도가 정비되고 있다.

그러나 유치원에서는 높은 반과 낮은 반으로 나누어져 있고, 높은 반부터는 11년제 의무교육과정에 포함된다.

현재 조선은 2만~8만개의 유치원과 탁아소가 있고, 약 5,000개의 중학교와 6,000여 개의 소학교가 운영된다. 또한 도서지방과 산간지방에서 약 1,000개의 분교가 운영하고 있다.

11년제의무교육체제에 따라 교육기관은 모두 정부가 운영한다. 그러나 유치원과 탁아소의 경우는 학교와 공장에서 운영하는 곳이 있다. 탁아소의 경우 미혼모가 낳은 사생아도 관리되는데 이러한 사생아들은 국가에서 그 목숨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그들을 혁명전사로서 활용한다.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인 반면 대학의 경우 아주 제한된 인원만 입학이 가능하며 특히 출신성분이 우수한 당원 출신이 아닐 경우 대학 입학을 할 수 없다.

학생 소조 활동

학생들의 지능 선발 및 교육을 위해 과외 교육 기관인 학생소년궁전과 학생소년회관이 만들어졌는데, 이 기관은 민간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서 운영되며, 평양직할시와 지방을 통틀어 약 200여 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은 학교 수업 시간이 끝나면 대부분 이곳에 가서 오후 5시까지 과외 학습을 받고 하교한다.

평양직할시의 학생소년궁전은 대표적으로 만경대학생소년궁전과 평양학생소년궁전이 있다. 그중에서 평양학생소년궁전김일성 주석에 의하여 1965년에 세워지고, 평양시 중구역에 있다. 두 번째로 만경대학생소년궁전1988년에 세워져 현재 만경대구역에 있다. 평양학생소년궁전은 상당히 규모가 큰 건물로 탑식으로 건설되어 있지만,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은 보기 좋게 하기 위해 곡선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이 외에 평양시 승호구역에 승호학생소년회관이 있고, 자강도에는 배움의 천리길 학생소년궁전과 평안북도 정주시에 정주학생소년회관, 그리고 황해북도 개성시에 개성학생소년궁전과 량강도 삼지연지구에 삼지연학생소년궁전 등이 있다.

고등교육기관

고등교육의 중심 기관은 평양의 김일성종합대학(1946년 창립)이며, 이 외에도 김책공업대학이 있다. 약 280개교가 있는 대학교에서는, 30만 명 이상이 배우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학교 목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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