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人生/[우주만물]세상만사

[만물상]조흥은행

好學 2010. 6. 25. 21:26

 

[만물상]조흥은행

 

 

 

국내 자본으로 설립된 최초의 금융기관 한성은행이 1897년 문을 연 뒤 찾아온 첫 고객은 대구의 상인이었다.

서울에서 이문이 많이 남는 물건을 무더기로 사들이려 하는데 돈이 모자라니 대출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은행측이 담보로 잡힐 게 있느냐고 묻자 상인은 타고온 당나귀를 내놓았다.

한성은행 임원들은 고심 끝에 그가 첫 고객이라는 점을 감안해 유례없는 당나귀 담보대출을 결정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당나귀에게 매일 먹이를 줘야 했을 뿐 아니라 혹시라도 병에 걸려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보살피는 게 여간 성가시지 않았다. 이 이야기의 결말로 두 가지 설(說)이 전해진다. 하나는 대구 상인이 예정대로 대출금을 갚고 당나귀를 찾아갔다는 것, 다른 하나는 그 상인이 끝내 나타나지 않아 당나귀를 은행 임원이 업무용으로 타고 다녔다는 것이다.


▶한성은행은 당시 국내에 들어와 있던 일본은행들의 고리대금 횡포에 맞서기 위해 순수 국내자본으로 세운 민족은행이었다. 정관에도 ‘주권(株?)의 매매와 양여는 조선인에게 한(限)한다’고 규정했다. 창립취지문에 ‘지금 조선에는 화폐가 흡족하지 않고 은행도 없어 생활이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 데서도 알 수 있듯 조선의 경제 주권(主權)을 지키고 국가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목적의식이 뚜렷했다. 초대 행장 김종한이 정2품 벼슬에 있었던 것을 비롯해 임원들은 모두 정부 고관 출신이었다.

 
▶한성은행이 지금의 조흥은행이다. 1943년 동일은행과 통합하면서 ‘조선을 흥하게 한다’는 뜻으로 이름을 바꿨다. 조흥은행은 국내 최고(最古) 은행답게 국내 최초 기록을 여럿 갖고 있다. 1918년 일본 도쿄에 해외지점을 개설했고, 1954년 시중은행 중 맨 먼저 외환업무를 다뤘고, 1956년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고, 1960년 금융권 최초로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109년 역사의 조흥은행이 올해 간판을 내린다. 오는 4월 신한은행과 통합을 앞두고 통합은행 명칭이 신한은행으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조흥은행은 외환위기 이후 거래 기업들이 잇달아 부도를 맞는 바람에 정부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아 국유 은행이 됐다가 2003년 신한금융지주회사에 팔렸고 결국 이름까지 바꾸게 됐다. 이로써 5대 시중은행을 가리키던 ‘조·상·제·한·서’(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 시대가 완전히 막을 내린다. 조흥은행이라는 간판은 사라져도 ‘조선의 경제 주권을 지키고 조선을 흥하게 한다’는 정신은 끊기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