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韓國歷史/(대한민국第一號)

[대한민국 제1호] 국내증시 전산거래 1979년 도입

好學 2010. 6. 19. 20:12

 

[대한민국 제1호] 국내증시 전산거래 1979년 도입

 

 

 

지난 7월 한국거래소라오스 정부와 각각 49%, 51%씩 지분을 출자해 라오스 증권거래소를 설립하는 데 합의했다. 증권시장이 없는 라오스에 증권 거래를 위한 IT시스템과 제도를 이전해 주는 내용이다. 지난 3월엔 캄보디아와도 비슷한 계약을 맺었고 2000년 베트남 호찌민증권거래소가 설립될 때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이처럼 한국거래소는 점차 자회사인 코스콤의 IT기술력 등을 바탕으로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30년 전, 국내 증권 거래와 정보 게시를 모두 수(手)작업으로 했음을 감안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국내 증시에 전산시스템이 처음 도입된 것은 1979년 7월 2일이다. 증권거래소(현 한국거래소)가 명동시대를 접고 여의도로 이전해 개장한 날이다. 이날 한국거래소 내 증권거래소시장 벽면엔 대형 전자 시세게시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국내 증시에 전산시스템이 처음 도입된 것은 1979년 7월 2일이다. 증권거래소(현 한국거래소)가 명동시대를 접고 여의도로 이전해 개장한 날이다. 이날 한국거래소 내 증권거래소시장 벽면엔 대형 전자 시세게시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의 증권 거래 방식은 증권거래소 객장 곳곳에 설치된 매매대(포스트)에서 호가표에 매매 금액과 수량을 적어내면 거래소 직원이 이를 순서대로 접수해 거래를 성사시키는 포스트매매 방식이었다. 이렇게 체결된 거래 정보를 중앙 게시판에 전달하면 사람이 일일이 매매금액, 수량을 시세게시판에 적어 넣었다. 처음엔 백묵으로 수기(手記)하다가 1975년 이후엔 자석을 이용한 숫자판으로 대체했다.

이렇다 보니 포스트에서 체결된 거래 정보가 중앙 게시판을 통해 공지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전자 시세게시판이 도입되면서 각 매매대에 단말기가 설치되고 주식 거래 정보가 중앙의 전자 시세게시판에 기록됐다. 시차(時差)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된 것이다.

1970년대 들어 증권 거래량이 급속히 늘자 정부는 1973년부터 증권업무 전산화에 착수했다. 증권거래소 산하에 한국증권전산(현 코스콤)을 설립하고, 1978년에는 한국증권전산 소속 프로그래머 4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된 프로젝트팀이 메인컴퓨터 구매업체인 미국 스페리사 엔지니어 3명의 지원을 받아 시스템 개발작업에 들어갔다. 결국 증권거래소의 여의도 이전에 맞춰 전자 시세게시판이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거래됐던 전체 주식 종목 수는 768개였다.

최초의 증시 전산화작업은 수작업으로 체결된 주식매매 정보를 온라인으로 게시하는 수준이었다. 전산시스템을 이용해 주식거래 전체를 전산관리 하기까지는 약 10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1988년 3월 21개 종목에 대해 전산 매매가 처음 이뤄졌다. 전 종목에 대한 전산 매매가 가능해진 것은 1997년 9월에 이르러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