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귀화 제1호는 중국 출신의 손일승(당시 45세)씨. 당시 관보는 손씨의 본적을 중화민국 산동성으로 적고 있다.
1933년 배 편으로 서해를 건너온 손씨는 강원도에서 탄광을 운영하는 등 사업을 제법 크게 벌였다고 한다. 그는 평소 "한국이 좋다"고 말했고, 사업을 위해서라도 한국인으로 사는 게 낫다고 여겨 귀화를 신청했다고 전해진다. 손씨는 정부 수립 이후 첫 번째일 뿐, 학계 일각에선 고려시대 광종에게 건의해 과거제도를 도입한 중국 후주 출신 쌍기(雙冀)를 역사상 '귀화 1호'로 꼽는다.
조선시대에는 첫 서양인 귀화자도 나왔다. 1628년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던 중 폭풍우를 만나 제주도 해안으로 떠밀려 왔던 네덜란드인 얀 야네스 벨테브레다. 그는 '박연'으로 개명하고 훈련도감에서 무기 기술자로 일했다.
- ▲ (왼쪽부터)러시아 출신 축구 선수 신의손(49·발레리 사리체프)씨, 중국 출신 탁구선수 당예서, 일본 출신 귀화 한국인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정부 수립 이후 귀화자는 화교 외에는 드물었고, 숫자도 많지 않았다. 그러다 2000년 러시아 출신 축구 선수 신의손(49·발레리 사리체프)씨가 한국 국적을 택하면서부터 귀화 외국인이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파란 눈의 한국인이 된 지 10년째를 맞은 그는 올 초 청소년 대표팀 골키퍼 코치로 뽑혀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후 이성남(데니스)·이싸빅(싸빅)·마니산(마니치) 등 귀화 축구선수가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은 흔한 광경이 됐다. 중국 출신 탁구선수 당예서는 지난해 모국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에 한국 선수로 출전했다.
전문직종의 외국인도 속속 귀화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영상 디스플레이 분야의 권위자인 블라디미르 사벨리예프 박사(러시아)가 지난해 한국인이 됐다. 그는 한국 불교에 심취, 법명(法名)도 받았다.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오른 이참씨와 부산 사투리의 미국 변호사 하일(로버트 할리)씨는 '독일 이씨' '영도 하씨'의 시조다.
일본 출신이면서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강조하는 귀화 한국인도 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도쿄대를 졸업한 일본의 엘리트지만 우연히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알게 된 후 친한(親韓)파 한·일 관계전문가가 됐고, 지난 2003년 한국 국적을 얻었다.
다른 나라로 귀화한 한국인도 최근 10년간 약 17만명에 달한다. 우리나라가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아 교포·이민2세가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정부가 제한적인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어 머지않아 두 개의 국적을 갖고 살아가는 한국인들도 나올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