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이야기]〈864〉
性相近也나 習相遠也라
性은 서로 비슷하나 습관에 의해 서로 멀어지게 된다.
버릇이 되어 버린 성질을 習性(습성)이라고 한다. 이때의 性은 성질이나 특성을 나타내는 부속어이므로 ‘논어’ ‘陽貨’에서 性과 習을 구분한 것과는 다르다. ‘陽貨’의 이 章에서 공자는 사람마다 性은 같지만 習慣(습관)에 따라 인간은 서로 다르게 된다고 했다. 近은 同, 遠은 異의 뜻을 함축한다.
공자가 말한 性은 ‘중용’에서 ‘하늘이 명한 바’로 규정한 인간의 본성이다. 단, 북송의 程이(정이)는 氣質之性을 가리킨다고 보았고
남송의 주희(주자)는 氣質之性과 本然之性을 아울러 가리킨다고 보았다.
정약용은 性을 실체로 보지 않았다.
그는 ‘맹자’와 ‘도덕경’, ‘시경’의 고전을 종합해서 인간 정신의 虛靈(허령)한 본체를 大體라 하고 大體의 구체적인 활동의 국면을 道心이라 하며
大體가 善을 좋아하고 惡을 싫어하는 嗜好(기호)의 측면을 性이라고 보았다.
性을 嗜好라고 규정하는 性嗜好說을 주장한 셈이다.
한편 習은 習慣 習熟(습숙) 親習 薰習(훈습)을 가리킨다.
본인이 선한 행위나 악한 행위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 교육이나 환경의 영향을 받아 선이나 악의 기질을 형성해 가는 것을 가리킨다.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덕을 좋아하고 악을 부끄러워하는 性은 聖人이나 凡人이나 같으므로 性相近이라 할 수 있지만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하느냐 소인을 가까이 하느냐 하는 것은 갑과 을이 다르므로 결국 習相遠이 된다. 인간은 서로 똑같지 않다. 差別도 있고 差異도 있다. 공자는 有敎無類(유교무류)라 하여, 가르침에 차별을 두지 않았다. 인간이 善을 좋아하고 惡을 미워하는 本性은 서로 같기에 학문과 교육을 통해서 인간은 서로 조화로운 삶을 살아나갈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학문과 교육이 인간의 인간다운 본성을 성장시키는 방편이 될 수 없다면 우리는 희망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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