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1950 장로교 목사
6.25사변중 만경에서 공산군에게 피살 순교함.
서울, 황해, 김제 등지에서 목회. 서울에서 출생.
1. 목회의 사명을 가지고 신학을 공부
김종한 목사는 서울 동대문 밖 청량리에서 1904년 10월 28일에 태어났다.그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늘 농촌 계몽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어느날 한 미국인 선교사를 만나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선교사의 주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하게 되었다. 일본 오오사카 상업중학교에 입학한 그는 열심히 공부하는 한편 여기서 기독교에 온전히 입교하여 신앙생활에 열성을 다하게 되었다. 졸업후 목사가 될 것을 결심한 그는 일본 아오야마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귀국후 서울로 돌아온 그는 청량리교회에서 교회를 섬기다가 당시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직영신학교인 지금의 한국신학대학의 전신인 조선신ㄴ학교의 과정을 이수하고 목사안수를 받고 청량리교회에서 황해도 석탄교회의 담임으로 부임했다. 여기서 그는 다시 시골의 조그마한 교회인 전북 김제 노회 소속의 김제군 진봉면 가실리 교회로 부임하게 되었다.
2. 농촌교회에 부임 농촌계몽에 헌신
그가 석탄리교회에서 농촌의 조그마한 교회에 부임하게 된 이유는 석탄교회 재직시 일제의 신사참배를 극력 거부하고 4년간 봉직했으나 일제의 극심한 방해를 끝내 견디지 못하고 사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순순히 농촌교회를 택한 것은 일제에 굴복했기 때문이라기 보다 도시보다는 농촌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리라 생각된다. 그는 이 꿈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했기때문에 도시 목회를 마다하고 스스로 자원하여 가실리의 시골 농촌교회에 부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여기에서 8.15 해방을 맞고 만경교회를 옮기기까지 교회를 섬기며 농촌 계몽에 힘썼다. 그리고 마지막 부임지인 만경교회로 이임하게 된것도 같은뜻에서였다. 1948년 만경교회에 부임하여 1950년6.25 비극을 맞았다.
만경교회를 농촌교회였으나 역사있는 교회였다. 김종한 목사는 이곳에 부임하여 같은 목사요 순교자인 안덕윤 목사와 함께 농촌의 청년들과 교역자 수급을 위해 김제성경학교를 설립하여 후진양성에 힘썼다. 이렇게 열심히 목회를 하던중 6.25가 터졌고 만경지방도 무사하지 않았다. 공산군이 들어다치기 전 목사는 찬송과 기도로 예배를 드리며 환난날에 대비하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자세를 설교했다.
3. 공산군에게 저항 순교함
그후 공산군은 만경에 진주하게 되었고 공산군들이 이웃교회를 강점하고 민주선전실로 주민들을 모아놓고 전시사상교육과 노래 춤을 가르치며 이를반대하는 장로와 집사들을 구금시켰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러나 만경교회만은 한동안 공산군의 간섭없이 계속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공산당의 마수는 만경교회에 미치기 시작했다. 먼저 교회를 주민 연설장소로 써야 되겠다고 치안대에서 통고해왔다. 그리고 무죄한 청년들을 소위 의용군을 마구 잡아갔다.
한편 이때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되면서 공산군의 전세가 불리해져 갔다. 그래서 당시 신학1년생이었던 최정열 전도사가 반공혁명단을 조직하고단원을 규합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밀이 사전에 새어나가 단원들이 체퍼포되었다. 단원을 조사한 결과 거의가 만경교회 청년들이라 공산군은 만경교회 장로와 김목사를 소환하여 배후조정자로 단정했다. 그러나 김목사는심문을 받은 결과 무과한것으로 판명이 나 귀가했다.
그러나 9월 25일 공산군은 김목사와 장로를 다시 소환하여 심문했다.그리고9월 28일 아침이 밝아왔다. 분주소와 인민위원회 민청사무실을 텅비었고 끌려갔던 의용군들도 돌아왔고 국군도 왔고 숨은 사람들도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김목사는 수색대원에 의해 14구의 시체와 함께 우물에서 건져졌다. 김목사는 공산군에게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기도하며 저항하다 순교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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