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人生/[책여행]살아가는 방법들

알렉산드리아 파로스 등대

好學 2009. 4. 3. 00:27

 

 

 

알렉산드리아 파로스 등대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는 오랜동안, 가공의 전설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1994년가을에 프랑스 해저 고고학 발굴팀이 깊이 7m 정도의 바다 속에서 등대의 잔해 수백점을 건지는데 성공함으로 인하여 파로스 등대는 전설이 아닌 역사적 사실로 인정 받게 되었다.

   발굴팀은 화강암으로 된 높이 4.55m, 무게 12톤의 여신상을 기중기로 끌어 올렸다.  이 여신상은, 탑의 가장 상층부에 있었던 동상으로 추측 하고 있다. 더구나 발굴팀은 아직도 바다 속에 스핑크스와 오벨리스크등의 석상이 잠겨 있어, 알렉 산드리아의 등대는 상상보다 오히려 더 클 수가 있다고 말하였다. 여기에서 발굴된 잔해 또는 조형물마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 문자가 새겨져 있어서  파로스에 대한 역사와 비밀이 풀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는 파로스 섬과 헵타스타디온이라고 불리던 1㎞정도의 제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곳의 동쪽 끝에 세계의 모든 등대의 원조격인 파로스 등대가 서 있었다. 비록 파로스의 등대가 경의적인 고대 건축물이긴 하지만, 당시의 뛰어난 건축술로 볼 때 건축 자체는 그렇게 까지 힘든 작업이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알렉산드리아에는, 등대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고 웅장한 규모의 건축물인 도서관등도 만들어 져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대리석 돌로된 등대의 높이가 135m로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명령으로 소스트라투스가 만들었다. 등대는 3개의 층계로 만들어졌다.  맨 아래층이 4각형, 가운데층이 8각형, 꼭대기 층은 원통형이었다. 각 층은 모두 약간 안쪽으로 기울어 져 있는데, 의도적으로 기울어 만들었다는 주장과, 건축술의 미흡이나  지질 구조등의 자연문제 때문에 기울어 졌다는 주장이 있다.

   등대 안쪽에는 나선형의 길이 있어서 등대 꼭대기의 옥탑까지 이어져 있었다. 옥탑 위에는 거대한 동상(여신상)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아마도 알렉산드 대왕이나 태양신 헬리오스의 모양을 본떴을 것으로 여기지고 있다.

  등대 꼭대기의 전망대에서는 수십킬로미터나 떨어진 지중해를 바라볼 수 있고 또 먼 본토까지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7c이후 이집트를 정복했던 아랍인들에 따르면 램프 뒤쪽의 반사경으로 비치는 타오르는 불길은 43㎞정도 떨어진 바다에서도 볼 수 있었고, 맑은 날에는 콘스탄티노플까지도 반사경이 비쳤으며 또 햇빛을 반사시키면 160㎞ 정도 떨어져 있는 배도 태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이 파로스 등대를 불가사의로 보게 하는 것이다.  과연 고대에 그렇게 뛰어난 반사판을 만들었을 수 잇었겠는가란 의문과, 설령 만들었다 치더라도 현대에서도 불가능한 태양광선을 무기로 이용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어렸을 때 돋보기 등을 이용해 종이를 태우는 장난을 해 본 경험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파로스의 등대는 무려 160km나 되는 거리에, 그것도 바다에서 움직이고 있는 배를 태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내용은 과장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시력이 아무리 좋다고 하여도, 160km에 떨어진 약 50m급의 전함을  보기란 절대 불가능하다.  일단 보여야 초첨을 맞추어 태울 것이 아닌가?  더구나 등대의 반사경은, 빛을 최대한 효울적으로 멀리 보내기 위해 오목렌즈를 사용 하였을 것이다. 즉 고대의 기록은  과장이 많았기 때문에 기록된 그대로를 믿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자칫 신비주의로 빠져 역사의 진실에 편경을 제공 할 수 있는 문제이다.

   파로스 등대의 파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이집트는  이슬람 세계의 확대에 따라 아바스 왕조에 의해 점령당하게 된다. 그런데 비잔틴 제국의 교황은, 그들이 이 등대를 이용하여 지중해를 지배 할 것을 두려워 하였다. 그렇다고 강성한 아라비아 제국을 직접 공격할 만큼, 비잔틴 제국은 성장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교황은 다른 방법으로, 파로스 등대 밑에 보물이 있다는 소문을 퍼지게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소문을 믿은 칼리프는 결국 파로스 등대의 해체를 명 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거짓된 소문임을 알게되어, 해체를 즉각 중단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런데 이미 그 때는 다소 늦었다. 파로스 등대는 이미 절반 이상 허물어져 있었고, 또 가장 중요한 반사경은 깨어져 있었다.  다시 예전 높이로 만들어도 반사판이 없는 이상, 파로스 등대는 단지 다른 등대보다 좀 더 높은 등대에 불과 하였다.

그렇지만 파로스등대는 여전히 등대로서의 역할은 훌륭하게 수행하였다.  서기 796년에는 지진과 기울어짐 현상등으로 3층 부분이 파괴되자, 술탄 이불 툴런(864~884)은 3층 부에 돔형태의 지붕을 만들어 세웠다. 그러나 956년에는 다시 지진으로 파괴되어, 원래 높이의 22m나 줄어 들게 되었다. 이 후 1100년에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 상당부분이 파괴되었는데, 이 때 반사판이 파괴되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 후 1261년 다시 지진이 일어 나 대부분이 파괴되었지만, 이집트 술탄 살라딘이 재건을 명하여 겨우 등대로서의 명맥은 유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1301년 다시 지진이 일어나, 상당부분이 파괴되어 버렸다. 마그레브의 여행가 이븐 바투타는 1329년, 등대의 상단부까지 올라가, 불을 밝히는 램프를 확일 할 수 있었지만, 1346년 다시 방문 하였을 때는 완전히 패허로 변해 있었다고 한다.

 결국 파로스의 등대는 거듭되는 대 지진에 견디지 못하고, 완전히 바다속으로 가라 앉고 만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 하였듯 프랑스 연구팀의 수중 발굴 성과에 의해, 다시 파로스의 등대는 세상으로 떠 오르고 있다.
  이 위대한 건물은 밑변이 31m에 이르고, 최초로 건설 되었을 때의 높이는 40층 높이가 넘는 120여m 나 된다. 과연 고대 지중해의 밤을 밝히던 파로스의 등대가, 2000년의 비밀을 풀고, 다시 한번 빛나게 될지는 현대인의 손에 달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