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人生/[책여행]살아가는 방법들

아틀란티스 대륙의 존재

好學 2009. 4. 3. 00:23

 

 

아틀란티스 대륙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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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옛날에 헤라클레스의 기둥 서편에 하나의 섬이 있었다. 그 섬은 리비아와 소아시아를 합한 것만큼 컸다. 그 섬에서 다른 섬으로 건너갈 수 있었고, 그섬을 통해 진짜 대양을 둘러싼 대륙으로 건너갈 수도 있었다.
아틀란티스라 불리는 이 섬은 주변의 섬들이나 리비아의 이집트, 유럽의 티레니아 주변까지 다스리는 거대한 제국의 중심이었다. 이 나라는 헤라클레스의 기둥 안쪽의 나라 전부를 지배했다. 아테네의 군대는 그리스 연합군으 선두에 서서 용감하게 싸워 침략군을 격퇴시켰다.
그런데 그 후 격심한 아테네 사람들은 땅속으로 가라앉았고, 아틀란티스 섬도 바다 밑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사람들이 그 부근의 바다로 들어갈 수도 없고 나올 수도 없었던 것은, 대량의 진흑과 뻘이 그 땅을 덮었기 때문이다.

위의 이야기는 옛날 그리스의 대철학자 플라톤이 지은 <대화편>중 '티마이오스에 나오는 아틀란티스의 일부이다. 대화편 크리치아스에는 좀 더 상세하게 나오는데 대체적으로 그리스 문명과 유사하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의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것은 '아틀란티스는 실제로 있었는가?', '있었다면 그의 위치는 어디인가?'하는 점이다. 아틀란티스의 존재 여부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 게 된 것은 약 100여 년까지만 해도 신화적인 존재로 간주되어 왔던 트로이와 미케네의 에게 문명이 발굴되면서부터 이다.

플라톤은 아틀란티스가 대서양 한복판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 때문에 많은 탐험가들이 대서양을 진지하게 탐사했었고,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자, 이곳은 아틀란티스라고 보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아메리카 대륙의 구성원이 황인종이라는 점과, 아틀란티스 신화를 만족 시킬 만한 고도의 문명이 발전하지는 못했다는 점, 그리고 서양사의 시작과 어떠한 연관도 같지 않는 다는 점 등이 문제 되어 , 이 주장은 곧 논의대상에서 제외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크레타 섬이 아틀란티스의 일부라는 주장이 나왔다. 그 무대는 크레타 섬과 산토리니 섬이었는데, 1900년 영국의 고고학자 에번스는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에서 그리스 시노하에 나오는 궁전을 발굴하였다.크레타 섬은 매우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있었고, 기원전 1500년경에 갑자기 폐허가 되었는데, 그 원인이 지진이라고 에번스는 주장했지만 증거는 없었다.
후, 1939년에 그리스의 고고학자 마리나토스는 산토리니 섬에서 화산 폭발과 함께 일어난 해일이 크레타 섬을 덮쳐, 크레타 섬의 중심지는 폐허로 변했다는 학설을 발표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 화산은 기원전 1600~1500년에 폭발하였는데 그때, 함께 일어난 해일이 엄청났기 때문에 훨씬 남쪽에 위치한 이집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한편, 1967년부터 마리나토스는 산토리니 섬을 발굴하여 30~40m 두께의 화산재 아래에서 고대 문명의 도시가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산토리니의 재난이 있기 전에 크레타는 매우 번영하였던 섬나라로 지중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짐작할 때, 다음과 같은 추측을 할 수 있다.

산토리니 화산이 터저지기 전은 기원전 1600~1500년 저옫가 되는데 그 당시 이집트에는 고대 문명이 발달했을 때이므로, 크레타와 이집트는 교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산토리니 화산이 터져, 그영향은 이집트까지 미쳤고, 그 후에 크레타 사람들의 왕래가 끊어지자, 산토리니 섬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이집트 인들 사이에 전해 오다가 솔론이 알 게 되어 플라톤까지 이어지고, 플라톤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기위해 책으로 남긴 것이 아닐까? 더구나 산토리니 섬의 멸망과정과 발굴된 후의 모습은 플라톤이 묘사한 내용과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이러한 추측에도 문제점이 많다. 먼저 플라톤은 자기가 태어나기 전 9000년 전이라고 했는데, 산토리니 화산 폭발은 1600~1500년에 있었다는 점이다. 또 플라톤은 아틀란티스가 대서양에 있었다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위치가 너무 틀린 것이 아닐까?
이러한 주장에 대해 새로운 반론이 나왔다. 당시 이집트 인들은 해양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아틀란티스의 위치를 잘못 알았으며, 플라톤이 말한 9000년 전이라는 것은 실제로 900년을 잘못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면, 플라톤이 말한 아틀란티스는 산토리니 섬과 크레타 섬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 밖에도, 스페인 연안설과 남극 혹은 북륙 및의 빙하 밑에 존재 할 거라는 설고 있고, 미국의 버하마 제도라도는 설도 있다. 하지만 대서양 한복판에, 거대한 대륙국가가 존재 할 것이라는 설은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아무리 큰 지각변동이라도 하나의 대륙을 통체로 순식간에 수천미터의 바다 속으로 내려 가게 할 수는 없다. 아마도 제우스나 포세이돈 신을 증명하지 못하는 이상, 플라톤의 주장한 원래의 아틀란티스설은 신화로 간주해야 될 것이다.
다만 아틀란티스에 대한 끝없는 도전과 탐험은 해양 고고학을 크게 발전 시켰다. 또한 과거 거대한 혹은 꾸준한 지각 변동에 의해 사라져 버렸던 문명을 재조명 하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아틀란티스에 대한 탐구는, 인류 문명의 시원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함께, 고고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가치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