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남대문)
지정일:1962.12.20 소재지: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4가 29
시대:조선 태조 소유자: 국유
■ 본문설명
조선시대 서울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의 정문으로 원래 이름은 숭례문이며,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4년(1395)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세종 29년(1447)에 고쳐 지은 것인데 1961∼1963년 해체·수리 때 성종 10년(1479)에도 큰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문은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석축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앞면 5칸·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 2층 건물이다.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붕을 우진각지붕이라 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그 형태가 곡이 심하지 않고 짜임도 건실해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봉유설』의 기록에는 ‘숭례문’이라고 쓴 현판을 양녕대군이 썼다고 한다. 지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서울 성곽 중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 보충설명
서울 성곽(城郭)의 정문으로 문 이름은 숭례문(崇禮門)이며 태조(太祖) 7년(1398)에 창건된 후 세종(世宗) 29년(1447) 크게 개축(改築)되었다. 이 문은 현존하는 서울의 목조건물(木造建物)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석축(石築) 중앙에 홍예문이 있고, 그 위에 정면(正面) 5칸, 측면(側面) 2칸의 중층(重層) 문루(門樓)를 세웠으며, 지붕(屋蓋)은 우진각지붕으로 되어 있다.
기둥 위에 짜여진 공포는 다포식(多包式)으로 힘이 있고 간결한 살미첨차가 조선(朝鮮) 초기(初期)의 수법(手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문은 외관(外觀)이 장중(莊重)하고 내부구조(內部構造)가 견실(堅實)하여 수도(首都)의 성문(城門)으로 당당한 면모(面貌)를 지닌 조선(朝鮮) 초기(初期)의 대표적(代表的) 건축(建築)이라 할 수 있다.
국보1호 숭례문의 어제와 오늘
"우립"과 "우좌"는 "소가 섰다", "소가 앉았다"라는 뜻의 한자입니다. 별 내용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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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의 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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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10일의 화재로 사라져가는 국보1호
Mam T.S. - 용서하세요
남대문 폐허를 곡함
머리 풀고 울어에야 하리 옷 찢어 던지며 분해야 하리 오호 통재 이 하루아침 남대문 폐허를 어찌 내 몸서리쳐 울부짖지 않으랴 돌아보라 6백년 연월 내내 한결이었다 이 도성 남녀노소들 우마들 이 나라 이 겨레들이 모진 삶과 함께였다 혹은 청춘의 꿈 안고 설레어 여기 이르면 어서 오게 어서 오시게 두 팔 벌려 맞이해 온가슴인 나의 남대문이었다 혹은 산전수전의 나날 떠돌이 하다 여기 이르면 어디 갔다 이제 오느뇨 활짝 연 가슴 밑창으로 안아줄 너의 남대문이었다 단 하루도 마다하지 않고 단 하룻밤도 거르지 않고 지켜서서 숙연히 감연히 의연히 나라의 기품이던 저 조선 5백년 저 한민족 1백년의 얼굴이었다 온 세계 누구라도 다 오는 문 없는 문 온 세계 누구라도 다 아는 만방 개항의 문 정녕 코리아 나의 문 서울 사람의 눈빛 아니었던가 이 무슨 청천병력의 재앙이냐 이 무슨 역적의 악행이냐 왜란에도 호란에도 어제런듯 그 동란에도 끄떡없다가 이 무슨 허망의 잿더미냐 여기 폐허 땅바닥에 엎드려 곡하노니 여기서 주저앉지 말고 멈추지 말고 떨쳐 일어나 다시 바람 찬 천년의 남대문 일으켜낼지어다 여봐란듯이 저봐란듯이 만년의 내일 내 조국의 긍지 우뚝 세워낼지어다 글 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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