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원고[절기,헌신예배]

성찬예배 설교 1

好學 2009. 11. 3. 18:52

 

제목 기억할 식사(성찬예배)

저자 John Killinger

본문 고전11:23-26

참고사항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출판국

 

설교내용

 

1.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즐거움들 중에서 식사를 하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릴 때 할머니 생신 때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이상하게 생긴 그릇에 담긴 선로 요리. 여름 방학을 맞아 시골 고모댁에 갔을 때 원두막에 가서 친척들과 함께 먹었던 까만 씨가 박힌, 새빨갛게 익어 입에 넣기만 하면 사르르 녹던 수박의 맛, 또 어느 어른의 축하 식탁 위에 즐비하게 놓여진 여러 가지의 산해 진미 등과 같이 어떤 특별한 날, 특별한 때에 먹었던 음식에의 추억은 참으로 즐거운 기억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무엇이 여러분이 제일 좋아하는 식사의 기억입니까? 언젠가 그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옛 경험이 새롭게 느껴질 것입니다.

 

2. 그 다음에 다락방에서의 예수의 제자들과 이 식사에 대하여 생각해 보십시오. 틀림없이 제자들에게도 좋아하는 추억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빌립은 그가 가버남움 출신의 검은 눈의 여인과 같이 먹었던 정찬을, 맛있고 연한 생선과 꿀을 바른 포삭포삭한 밀 과자를 회상하였을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를 따르기 위해 떠나기전 배 안에서 아버지와 같이 먹었던 마지막 식사-치이즈며 빵이며 새 포도주며 참외-를 언제까지나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마태는 예수께서 그와 다른 제자들을 천국의 도래를 선포하라고 파송하였을 때, 어느 작은 마을의 가정에 초대받아 온갖 다른 요리가 곁들인 군 양고기를 먹던 시절을 즐겨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모든 추억 중에서 무엇이 제일 좋은 추억이었을까요?

어떤 제자는 광야에서 예수께서 오병이어를 가지고 축하하신 다음 오천명을 먹이셨던 때를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 그렇게 맛있는 떡이랑 물고기는 생전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제자에게는 해변의 아름다운 아침식사가 더없는 진미였습니다. 그 때 그들은 밤새토록 고기를 잡다가 지치고 배가 고왔었는데, 예수께서 바닷가에서 그들에게 "그룰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대로 했더니 그물을 들 수 없을 만큼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노를 저어 육지에 이르니 예수께서 물고기를 구워 _2들과 함에 드시려 숯불을 지피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아주 좋은 아침식사였습니다 !

그렇지만, 그들 모두에게는 광야에서의 저녁식사와 해변에서의 아침식사보다도 더 좋은 추억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날 밤에 그들이 예수와 함께 먹었던 유월절 식사였을 것임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양고기와 떡과 포도주와 식용 식물을, 그리고 아마 약간의 치이즈와 과일과 나무 열매를 먹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_3 모든 것 중에 그들이 가장 생생하게 기억하였던 것은 떡과 포도주였습니다. 배신자 유다는 이미 떠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쾌활한 분위기 속에서, 아마 슬픔을 띤 음성으로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그들에게 떼어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하셨습니다. "너희를 취하여 주는"을 영어 성경 흠정역은 "너희를 위하여 찢기는"(broken for you)이라 번역합니다. 그는 그날 밤에 유다가 할 일을, 뒤따를 사건들을 내다보셨습니다. 그는 정딸로 쩽기실 것이었습니다. 그는 같은 동작으로 포도주 잔을 가지시며 말씀하였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밀턴(Milton)이"광막한 바다를 붉게 물들이다"하고 말했듯이, 피조물 전체를 위해 죽으신 창조주의 피는 영원히 창조물 곁에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주님이 말을 이으셨습니다.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3. 히브리인의 사고 방식은 추억에 묘한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추억은 경험을 다시 불러내었고, 경험에 다시 활력을 주었으며, 새롭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때번 모일 때 그러하였듯이 그들이 기억하였을 때 주님은 피곳에 계셨습니다. 떡과 포도주가 그들로 주님을 상기하게 하였습니다. 가장 묘한 요점온 그 추억이 우리를 위해서도 같은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곳에 있지 않았으나, 우리가 그것을 명강하고 떡과 잔을 받을 때 우리는 마치 확리가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그것을 다시 경험하며 그리스도가 여기 우리 가운데 계시어 가시 자신을 완전히 우리에게 주심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릴 적에 다녔던 교회에 커다란 참나무 성찬대가 있었습니다. 그 앞면에 깊게 새겨진 글자는 "나를 기념하여"(In Rememhran of Me)였습니다. 때로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나는 손가락으로 그 글자들의 윤곽을 더듬곤 하였습니다. 그것은 아주 특별한 식탁이었으며, 나는 교회가 그 주위에 모였을 때 특별한 일이 일어났음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이 식탁 주위에 모일 때에 여기서 똑같은 특별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떡을 메시며 우리와 함께 잔을 나누십니다. 그리고 신비스럽게도, 그가 떡을 떼시고 잔을 나누실 때 우리는 그를 먹이로 합니다. 그것은 그가 그의 공생애에서 행한 것 만큼 위대한-광야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만큼 위대한-기적입니다. 그것은 제자들과의 그의 마지막 식사였으나 결코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대부분의 마지막 식사는 반드시 끝납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먹었던 마지막 때를 기억합니다. 나는 그 식사와 우리가 그것을 먹었을 때 나누었던 이야기의 추억을 항상 소중히 간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식사는 끝났으며 나는 그것을 기억으로밖에 상기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식사는 우리가 식탁 주위에 모여 기억할 때마다 돌아옵니다. 그것은 결코 끝나지 않고 연달아 계속됩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것은 하늘의 대연회에 들려올려질 것이며, 그때 우리는 천국에서 그와 더불어 먹고 마실 것입니다. 이것이 기억할 식사입니다 !



성찬식의 의미

(요한복음6:5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6:53)

예수님의 말씀처럼 주님의 살과 피를 마셔야만 우리 속에 생명을 갖게 됩니다. 주님께서 제정하시고 지켜 행하라고 명령하신 성찬식의 의미를 바로 알고 이 귀한 의식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I. 주님의 명령(고전11:24)


1. 명령의 의미

다니엘 6:15에 보면 왕이 세운 금령과 법도는 변개하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인간 세계 속에서도 권력자의 명령이나, 제정한 법의 위력은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며 지켜지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명령

인간 세계 속에서의 명령도 이처럼 지켜지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명령은 일점 일획도 변함없이 지켜져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친히 신명기 4장 2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으며, 이 명령을 지키는 자에게는 축복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상사나 국법의 명령을 이행하는 여부에 따라서 상벌이 주어지는 원리와 동일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예수님의 명령

오늘날 교회에서 성찬 예식을 지켜 내려오는 가장 큰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지켜 행하여 기념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고전11:24).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과 분부는 우리가 조금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요, 또한 지키기만 하면 우리에게 큰 유익을 가져다 주는 것들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을 다하여 주님의 명령을 지켜 나가야 할 것이며, 성찬식을 통해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여야 할 것입니다.


II. 주님과의 일치(요6:56)


1. 성찬식에 참예함

첫째, 예수님의 살은 참된 양식입니다(요6:55). 최후의 만찬때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떡을 나누어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해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22:19)고 하셨습니다. 그 후로 이 의식은 사도와 초대 교회를 거쳐서 오늘날까지 이어져왔으며, 떡을 떼며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몸을 바치신 주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내 살을 먹는 자는 내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요6:57)라고 말씀하신 주님과의 일치는 성찬식의 떡을 먹을 때에 이루어집니다. 둘째, 주님의 피는 참된 음료입니다(요6:55). '이 잔을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20). 주님께서 새 언약으로 부어 주신 이 피야말로 우리에게 영원히 목마르게 아니하는 참된 음료로써 오늘날에는 성찬식 때 포도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피는 죄를 사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히9:22)의 말씀처럼 구약시대 때는 짐승의 피를 흘림으로 죄 사함을 받았으며, 지금은 우리의 대제사장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 한번에 흘려주신 피로 죄 사람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된 음료요 주님의 피로 상징되는 성찬식 때의 포도주를 대할 때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속죄의 보혈을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

주님과의 일치된 삶을 원한다면 마땅히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아 가려고 하기보다는 예수 믿고 축복받으려고만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각자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십자가는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이며, 여러 가지 형태로써 성도에게 나타나며, 이 십자가를 바로 질 때에 진정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찬식에 임하여 주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대하면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신 주님을 생각하며, 내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III. 속죄의 기념(히9:22)


1. 유월절의 양 되신 그리스도

양의 피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장자 죽음의 재앙에서 구원받고, 결국 그 재앙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출애굽의 구원을 받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마귀의 압제에서 하늘나라 백성들을 속죄케 하며, 해방시키는 사역이 이루어진 것입니다(고전5:7).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킴으로 구원 사역을 기념하였듯이 우리 성도들은 성찬을 통하여 예수께서 이루어 놓으신 위대한 속죄의 역사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2. 상징적 기념

성찬식에 참예하여 떡과 포도주를 먹는다고 죄 사함받고 구원얻는 것은 아닙니다. 천주교에서는 성찬식에 임하여 떡과 포도주를 먹을 때에 진짜 주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을 주장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전11:24)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상징적인 것으로 기념해야 하며, 더 나아가서는 성찬식 때만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생활 속에서 기념하며 속죄에 대한 감사의 기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3. 주 오실 때까지 전함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11:26)고 말씀하신 것처럼 성찬을 통하여 주의 죽으심을 통한 속죄의 사건을 기념하고 전하게 되는 것이며, 적극적으로는 전도를 통하여 주의 죽심을 통한 속죄의 사건을 기념하고 전하게 되는 것이며, 적극적으로는 전도를 통하여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땅끝까지 주의 죽으심을 , 즉 , 복음을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성찬식을 제정하고 오실 때까지 지켜 기념하라고 명령하신 예수님은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인 자신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구원 사역을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찬을 대할 때마다 구속의 은총을 더욱더 기리며 주님께서 인도하신 복음전도에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연구1 주님의 명령


주님의 명령

(누가복음22:19)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다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녀하라 하시고'

명령은 명령권자의 권위라든지 관계, 위치 등에 따라서 그 비중이 결정되게 마련입니다. 어떤 명령이 아무리 타당성이 있다고 하더라고 전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주어졌다면 그것은 명령으로써의 가치를 지니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에게서 나온 명령은 그 영향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합당한 의무도 규정하게 마련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명령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실적으로 다수의 교회들이 어떤 입장을 견지하든지 관계없이 그분이 명하신 일에 충실하도록 힘써야 하며, 성만찬도 이러한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I. 거부할 수 없는 권위


권위들 가운데는 충분히 거부할 수 있는 권위가 있는데, 그것은 힘의 크기에만 의존하여 평가되는 성질의 것은 결코 아닙니다. 힘보다도 관계가 우선됩니다. 사단은 이 세상의 임금으로 그 힘이 매우 강하지만 우리는 그의 권위를 결코 인정하지 않으며, 그의 명령이나 제안들에 대해 단호히 거부 의사를 표명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우리의 대적이며, 우리를 그릇된 길로 이끌어 하나님의 약속에 이르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나님께도 인도하는 길이요, 우리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일 뿐 아니라 권세나 능력도 무한하심으로 그분의 권위에 복종할 따름입니다.


1. 우주의 통치권(마28:18)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우리는 이 하늘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 광범위한 것들을 포함하고 있는지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이 하늘은 우리의 시야가 미치는 푸른 창공에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가 보유한 모든 과학 장비들은 총동원할지라도 파악할 수 없는 무한대의 우주가 이 단어에 포함되며, 이 광범위한 영역들이 모두 그분의 통치권 안에 들어 있습니다. 지구로부터 수십 억 광년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별들도 주께서 통치하시며, 우리의 과학자들이 밝혀내지 못한 '우주의 저편'역시 그분이 통치하십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다 그분의 통치권 아래 있으므로 그분의 권위는 우주적입니다.


2. 인간의 심판권(요5:22)

그리스도는 우주의 통치권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한 심판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따라서 그분의 권위를 인정치 않으려는 자들, 그분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우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 아무리 위대한 족적을 남긴 사람이라 하더라도 예수의 권위 앞에 무릎을 꿇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II. 성찬이 갖는 중요성


무슨 일이든지 중요성과 가치를 바르게 이해할 때 관심의 비중이 커지게 마련이듯이 성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갖는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소홀히 대할 수밖에 없으며, 이에 대해 특별한 의미도 부여하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찬이 주의 명령이라는 사실과 함께 성찬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을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1.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일(고전11:24)

성찬의 가장 큰 의미는 주님을 기념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즉 우리는 성찬의 떡과 잔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놀라운 일을 기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의 죽으심이 갖는 의미를 과소 평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성도가 그분이 지신 십자가와 죽음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기 때문에 이를 귀하게 여깁니다만, 이 중요한 사실을 기념하는 성찬에 대해서는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이는 결코 칭찬할 만한 일이 못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면 이를 기념하는 성찬에도 동일한 무게와 비중이 주어져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그분의 죽음이 우리의 삶 속에서 구체화 될 수가 있습니다.


2. 성도들이 모여서 주의 떡과 잔에 참예하는 성찬 예식

동일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동일한 보조로 행하는 교회 공동체에 대해 거듭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성찬식은 자주 갖는 것이 여러 가지로 유익합니다. 우리가 흔하게 교회 안에서도 볼 수 있는 개인 혹은 집단적 이기주의를 치유하는 훌륭한 처방이 바로 성찬식입니다. 공동체의 확인은 서로간의 간격을 좁혀 줍니다.


III. 주일 예배와 성찬


우리 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성찬관은 일년에 두세번 정도 이를 행하는 것인데 이러한 현실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주일 예배 시에 이를 행하는 문제가 심도있게 논의되어 져야 하며, 말씀 중심적인 교회를 표방하는 교회일수록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주일 예배의 의미는 결코 성찬과 무관치가 않습니다.


1. 성경적 성찬(행2:42)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모일 때마다 떡을 떼는 성찬식을 함께 가졌습니다. 우리는 성경 어디에서도 그들이 일 년에 두세번 이 예식을 행했다는 근거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적 성찬관을 주의 깊게 연구하여 오늘 우리의 교회들이 잘못 가고 있는 부분들은 과감히 개혁해야 하겠습니다. 성경적이 아닌 관계는 언제든지 고쳐야 합니다.


2. 인위적 성찬(마15:3)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장로들의 유전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우를 저질렀는데, 오늘 우리의 교회들도 인위적인 교회라든가 제도 때문에 이런 우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현금의 성찬 제도가 성경적이 아니고 인위적인 것이라면 될수록 빨리 고쳐야 하며, 이런 일들이 선행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있습니다.

성찬은 그것이 주님의 명령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큰 의미를 갖는 데도 이를 경시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다수에 이른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는 이 명령이 갖는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고 인위적인 방법이 아닌 성경적 방법, 초대 교회가 보여 준 모본을 따라 성찬식을 행함으로 교회를 교회되게 하며, 성도의 신앙 생활 자세가 흐트러짐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연구2 주님과의 일치


주님과의 일치

(빌립보서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하여…' 유대인의 관습은 다른 사람들과 한 식탁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한 가족, 하나가 되었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주님과 하나가 되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성만찬을 영어로 '커뮤니온'(Commanion)이라고 합니다. 이는 헬라어의 '코이노니아'에서 유래되었는데, 코이노니아는 친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만찬을 그리스도와 성도간의 교제와 일치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만찬의 의미 중 '주님과의 일치'라는 제목으로 성만찬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I. 주님과 하나됨을 의미합니다(고전10:16)


1. 주님의 고난에 동참함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와 살을 대속물로 인간들에게 주셨고, 그 구속의 은총을 입은 성도들이 그 은총을 기념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성찬을 베푸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22:19)고 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고 하셨습니다. 이는 성찬을 통해 주님과 하나가 되려는 성도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기념할 뿐아니라 그의 고난에도 동참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를 채우노라'(골1:24)고 신앙의 고백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만찬에 참예하여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성도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2. 주님의 부활에 동참함

주님께서 성만찬을 베푸실 때 제자들에게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마26:26)고 하셨습니다. 성찬은 주님께서 친히 자신의 몸을 우리에게 주신 것을 상징하는 예식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닌 목적은 우리에게 자신의 생명인 영생을 나누어 주고자 하심이었는데 이는 주님의 부활로 완성이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볼 때 성찬은 성도로 하여금 주님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게 하고 그리스도와 일체감을 갖는 삶을 영위하게 합니다. 따라서 성찬을 받는 성도는 부활의 신앙을 견지하며 성찬에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II.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의미합니다(고전11:23)


1. 함께 하시는 주님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성만찬을 베푸셨습니다. 이는 당신께서 죽으신 뒤에 제자들의 심적 동요와 신앙이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의 피와 살로 상징 되는 포도주와 떡을 먹었다는 것은 주님과 하나가 되었고 항상 주님과 함께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뿔뿔이 흩어졌고, 그들의 신앙은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이 항상 저들과 함께 하심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성찬을 함께 하셨듯이 '항상 함께 하시며'(마28:20)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우리들과 함께 기쁨의 잔을 나누실 것입니다(마26:29).


2.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의 삶

성찬은 주님께서 '피로 세우신 새 언약'(고전11:25)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는 항상 주님의 고난을 생각함은 물론 주님께서 세우신 새 언약을 널리 전해야 합니다(고전11:26). 이는 주님의 유언인 전도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심을 널리 전하며 모든 사람들이 구원의 은총에 참예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주님의 떡이나 피를 먹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고전11:27). 성찬에 합당치 않은 자가 성찬에 참여하는 것도 죄가 되지만, 성찬을 받은 자로서의 합당치 않은 삶을 사는 것도 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은혜로 말미암아 속죄와 구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구속의 은총에 대한 응답과 보답으로서 믿음과 순종과 헌신의 생활을 경주해야 할 것입니다.


III. 주님의 제자가 됨을 의미합니다(요14:15)


1. 제자가 되는 길

요즘의 교회에는 성도나 교인은 많으나 제자는 적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이 보다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 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제자'를 말할 때 열두 사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까지 포함시키고 있습니다(마28:19). 열두 사도는 주님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지만 오늘의 성도들은 보혜사 성령께 가르침을 받기 때문입니다(요14:26). 따라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모든 성도는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2. 제자고서의 삶

주님께서 갈릴리 해변에서 베드로와 안드레를 제자로 부르실 때 그들의 즉각적인 순종은 제자로서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 줍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배와 부친을 버리고 주님을 좇았습니다(마4:22). 주님의 제자는 이와 같이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도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마16:24)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는 마땅히 주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제자 된 성도가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의 계명을 지키게 되고(요14:15),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요14:16). 우리는 성찬을 통하여 주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제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므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성찬은 성도를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 거하게 하며(요6:53), 또한 그리스도와 일체감을 갖는 삶을 영위하게 합니다. 그래서 성도로 하여금 열매 맺는 삶을 살게 합니다(요15:16). 바라기는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과 하나가 되는 삶을 살므로 주님께 영광을 드리시는 신앙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연구3 속죄의 기념


속죄의 기념

(고린도전서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죄란 말은 재물을 내고 죄를 면하는 것이며 지은 죄를 공로로써 비겨 없앤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속죄라고 말할 때 그것은 이와 같은 일반적인 의미가 아니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사건을 말합니다. 그리고 성만찬은 바로 이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며, 성만찬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속죄의 문제는 인류가 해결해야 할 최대의 과제였음에도 적절한 방법을 강구할 수가 없었는데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 해결점이 되었으며, 성만찬은 이 사실을 기념할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습니다.


I.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신 대속적 죽음이었습니다. 성경의 증거들을 통하여 우리는 그분이 누구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유대 다수의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던 대로의 인간 예수로서는 우리를 위해서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 예수 이전의 구분의 모습이며, 그분이 치루신 대가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인간 예수 이전의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며, 죄인의 모양을 입으셨어도 본질적으로 그분은 완전한 하나님이셨는데 우리의 죄과를 짊어지시고 죽음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아무도 그분에게 이것을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그분이 이 일을 행하신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은 두 가지를 교훈하여 줍니다.


1. 하나님의 사랑(고후5:21)

죄를 알지는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셨다는 사실은 참으로 엄청난 일이 분명합니다. 그분은 우리가 충분히 의롭고 약속에 참예할만한 공로나 자격이 있어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그 아들을 우리 대신 죄로 삼으사 우리가 그를 믿으므로 거룩한 약속에 참예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는 논증이 전혀 필요치가 않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그 아들을 죄 대속물로 삼으셨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입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웅변도, 이론도, 철학도 아닙니다. 그것은 행함이며, 이것을 결한 사랑은 아무에게도 유익을 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확증이 된 행함 그 자체입니다.


2. 구원의 은혜(엡2:8)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은 우리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된 것임을 보여 줍니다. 우리 중 아무도 자신의 행위에의 의로움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이 없고 모두가 값없이 주시는 그분의 선물을 받은 것뿐입니다. 따라서 아무도 스스로 자랑하려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이 있다면 오직 주의 은혜뿐입니다.


II. 죄 아래 있던 인간의 실상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은 죄 아래 있던 인간의 실상이 어떠했는지 잘 보여 줍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절망적이었으며, 바울은 이러한 상태를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엡2:1)이라고 표현해 주었습니다. 인류의 상태가 이처럼 심각했기 때문에 주님의 속죄 사역이 요구되었고, 성만찬은 우리로 하여금 바로 이와 같은 우리의 이전 상태를 되돌아 보도록 함으로써 교만한 마음을 품지 못하게 해 줍니다. '개구기가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우리는 자주 이전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교만에 이끌리곤 합니다.


1. 피할 수 없는 형벌(롬6:23)

죄에는 형벌이 따른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이었으므로 모든 사람은 형벌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깨어진 관계야 어떤 방법으로든지 회복이 가능할 수 있지만 죄로 인하여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으므로 인류는 절망을 극복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시급한 과제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고, 성도들이 경계해야 할 가장 두려운 일이 하나님과의 평화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2. 인간 지혜의 한계(고전1:25)

죄 아래 있던 인간의 비참한 모습은 인간 지혜의 한계를 극명하게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수 많은 신들이 만들어지고 수많은 책들이 기록되었음에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도무지 찾지 못했다는 것은, 인본주의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인간을 보도록 일깨워 줍니다. 인간은 절대적 무한자가 아니라 상대적 유한자일 뿐입니다.


III. 기념해야 할 넘치는 은혜


성만찬은 하나님께로부터 우리가 받은 바 넘치는 은혜를 기념하는 것이므로 인위적인 교리라든지 제도, 현실적인 여건 등에 지나치게 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결혼 기념일이나 생일처럼 1년에 1회씩 할 필요도 없고, 계절에 1회나 월 1회씩 해야 한다는 규정도 없으며 성경에 나와 있는 교회들의 모본을 쫓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


1. 모일 때마다 기념해야 함(행2:42)

초대 교회 성도들은 모일 때마다 떡을 뗌으로써 주께서 베푸신 속죄의 은혜를 기념하였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들도 모일 때마다 떡을 떼는 새로운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매일 새벽이나 수요일 저녁, 금요일 저녁은 포함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주일 예배시마다 성만찬을 행하는 것은 충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2. 감사함으로 기념해야 함(골3:15)

속죄의 은혜를 기념할 때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념해야 하며, 이것은 그 회수가 잦을수록 더욱 유익을 줍니다. 은혜를 입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인격이 올바른 사람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받는 은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거나 인색하다면 그의 신앙 및 인격은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속죄의 기념으로써 성만찬은 이에 참예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엄숙하고 진지한 자세를 갖도록 요구합니다. 죄를 사하신 주의 은혜를 기념하는 이 예식이 갖는 의미도 그만큼 중요하고 우리로 하여금 여러 가지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게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가 있기 전에는 반드시 과거가 있었음을 명심하고, 우리는 오늘의 소망스런 우리의 삶을 위해 과거에 주께서 당하신 희생을 합당하게 기념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성찬식의 의미


1.주님의 명령(고전11:24)

2.주님과의 일치(요6:56)

3.속죄의 기념(히9:22)


I. 주님의 명령


1.그리스도를 기념하라

1) 그리스도의 몸의 특징

ⓐ성령으로 잉태하심(눅1:34)

ⓑ혈육에 속함(히2:14)

ⓒ죄가 없으심(고후5:21)

ⓓ인간의 감정을 소유하심(히5:7)

ⓔ썩지 않고 부활하심(행2:31)

2) 그리스도의 피의 특징

ⓐ화목의 기초(엡2:13)

ⓑ구원의 기초(롬3:24)

ⓒ성화의 기초(히10:29)

ⓓ승리의 기초(계12:11)

ⓔ영생의 기초(요6:52)

3)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대한 성도의 자세

ⓐ기념해야 함(고전11:24)

ⓑ전해야 함(고후11:26)


2.새 언약의 표로써의 성찬을 행하라

1) 새 언약의 요소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함(요3:16)

ⓑ그리스도가 중보함(딤전2:5)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실현됨(엡2:13)

ⓓ회개와 믿음이 요구됨(막1:15)

2) 새 언약의 확증

ⓐ하나님의 약속(창3:15)

ⓑ하나님의 맹세(사54:9)

ⓒ그리스도의 피(히9:12)

ⓓ성령의 인치심(고후1:22)

3) 새 언약의 우월성

ⓐ더 좋은 소망(히7:19)

ⓑ더 좋은 언약(히8:6)

ⓒ더 좋은 제물(히9:23)

ⓓ더 나은 제사장(히7:20)


II. 주님과의 일치


1.성찬식에 참예함

1) 성찬의 기원

ⓐ유월절(눅22:14)

ⓑ그리스도에 의해 시작됨(마26:26)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지켜야 할 교회의 예전(고전11:26)

ⓓ사도들에 의해 전승되어짐(행2:42)

ⓔ성찬의 완성은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어짐(마26:29)

2) 성찬의 의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상징적 표현(고전11:26)

ⓑ그리스도를 기념(고전11:24)

ⓒ새 언약의 표시(마26:28)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의 가담(마26:26)

ⓔ영적 음식의 효과(요6:53)

3) 떡과 포도주가 상징하는 것

ⓐ떡은 예수님의 몸(눅22:19)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눅22:20)

4) 성찬에 대한 규례

ⓐ교회 내에 분쟁이 있을 때는 못함(고전11:18)

ⓑ성찬 전에 자기를 살펴야 함(고전11:28)

ⓒ시장한 가운데 성찬에 임하면 안됨(고전11:34)


2.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

1)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특징

ⓐ예언됨(벧전1:11)

ⓑ제자들에게 알려 주심(막9:12)

ⓒ예언의 성취(행3:18)

2) 그리스도에게 유익한 점

ⓐ제사장직을 위한 준비(히2:17)

ⓑ순종(히5:8)

ⓒ영광의 길(히2:9)

3) 신자들에게 유익한 점

ⓐ하나님 앞으로 인도함(벧전3:18)

ⓑ죄를 대속함(히9:26)

ⓒ고난에 동참하게 함(빌3:10)

4)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난

ⓐ모형(창22:7)

ⓑ예언(사53:1)


III. 속죄의 기념


1.유월절의 양 되신 그리스도

1) 사람의 상태

ⓐ죄인(롬5:8)

ⓑ마음으로 원수가 됨(골1:1)

ⓒ외인(엡2:12)

2) 그리스도께서 하신일

ⓐ우리 대신 죽으심(벧전3:18)

ⓑ희생 제물이 되심(엡5:2)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케 하심(롬5:10)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심(벧전3:18)

ⓔ교제를 회복시키심(살전5:10)

3) 신자들의 상태

ⓐ죄사함을 받음(엡1:7)

ⓑ하나님과 화평을 누림(롬5:1)

ⓒ하나님의 의가 됨(고후5:21)

ⓓ의롭다 하심을 얻음(롬3:24)

ⓔ하나님께 나아감(엡2:18)

4) 예표

ⓐ유월절 어린양(출12:11)

ⓑ속죄함(히9:8)


2.주 오실 때까지 전함

1) 재림 전의 사건들

ⓐ이방인의 부르심(마24:14)

ⓑ이스라엘의 회심(롬11:11)

ⓒ적그리스도의 출현(마24:24)

ⓓ기적과 기사(마24:29)

2) 재림의 시기

ⓐ우리는 알 수 없음(마24:27)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 후(마24:14)

ⓒ적그리스도가 일어난 후(살후2:2)

ⓓ노아의 때와 같은 시대(마24:37)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때(고전15:51)

3) 재림의 목적

ⓐ세상을 심판하는 것(마25:32)

ⓑ죽은자를 살리는 것(살전4:13)

ⓒ택한자를 모으는것(마24:31)

ⓓ신자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골3:4)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보상하는 것(마16:27)

4) 재림에 대한 신자의 자세

ⓐ기다림(고전1:7)

ⓑ깨어 준비함(마24:42)

ⓒ사모함(딤후4:8)



․주님의 명령


1.거부할 수 없는 권위(눅4:42)

2.성찬이 갖는 중요성(마26:26)

3.주일 예배와 성찬(행20:7)


I. 거부할 수 없는 권위


1.권세(권위)

1) 하나님의 권세

ⓐ크고 강하게 하시는 권세(대상29:12)

ⓑ막을 사람이 없음(대하20:6)

ⓒ만상을 만드심(사40:26)

ⓓ신자가 찬양할 권세(마6:13)

2) 그리스도의 권세

ⓐ죄를 사하는 권세(막2:10)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요17:2)

ⓒ심판하는 권세(요5:22)

ⓓ가르치시는 권세(눅4:32)

3) 그리스도 제자들의 권세

ⓐ신자들을 세우는 권세(고후10:8)

ⓑ귀신 제어하는 권세(막3:15)

ⓒ원수를 제어하는 권세(눅10:9)

ⓓ유대 지도자들의 도전을 받음(행4:7)


2.통치권

1) 그리스도의 통치

ⓐ통치의 영원성(눅1:33)

ⓑ통치의 완성(롬15:10)

ⓒ의로 통치(사32:1)

ⓓ공평과 정의를 통치(렘23:5)

2) 하나님의 다스림

ⓐ만유를 다스림(시103:19)

ⓑ영원함(출15:18)

ⓒ의로우심(삿5:11)

ⓓ인간 나라를 다스림(삿8:23)

3) 메시야의 다스림

ⓐ만민을(요17:2)

ⓑ열방을(롬15:12)

ⓒ하나님의 집을(히10:21)

ⓓ예언됨(사32:1)


3.심판

1) 심판의 동인

ⓐ불순종으로(대하7:19)

ⓑ우상 숭배로(렘7:30)

ⓒ악행으로(롬1:18)

ⓓ하나님을 잊으므로(사17:10)

2) 심판의 목적

ⓐ겸손하게 하려고(고후12:17)

ⓑ회개시키기 위해(대하7:13)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게 하기 위해(눅12:2)

ⓓ형벌을 기준 밝히기 위해(고후5:10)

3) 심판의 방법

ⓐ생명책으로(계20:12)

ⓑ행위대로(겔7:8)

ⓒ선악간에(전12:14)

ⓓ빛같이(호6:5)


II. 성찬이 갖는 중요성


1.기념

1) 기념일

ⓐ유월절(출12:14)

ⓑ초막절(레23:43)

ⓒ부림절(에9:28)

ⓓ안식일(레23:24)

2) 기념물

ⓐ면류관(슥6:14)

ⓑ에봇의 보석(출39:7)

ⓒ열두 돌(수4:19)

ⓓ만나의 항아리(출16:32)

3) 기념 의식

ⓐ주의 성찬(눅22:19)

ⓑ속전(출30:16)

ⓒ사랑의 행위(막14:9)


2.일

1) 일을 해야 할 까닭

ⓐ일꾼이 적으므로(마9:37)

ⓑ아버지의 명령이니(마21:28)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므로(학2:4)

ⓓ아버지께서 일하시므로(요5:17)

2) 일에 대한 성도의 태도

ⓐ충성할 것(고전4:2)

ⓑ영의 양식을 위해 할 것(요6:27)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 것(살후3:8)

ⓓ부끄럼 없는 일꾼이 될 것(딤후2:15)

3) 신앙적인 선한 일

ⓐ하나님을 영화롭게(마5:16)

ⓑ본을 보일 것(딛2:7)

ⓒ선한 사업에 부할 것(딤전6:18)

ⓓ이웃의 선행을 격려할 것(히10:24)


3.그리스도

1) 예수그리스도의 사명

ⓐ구원을 주는 것(마1:21)

ⓑ죄사함(롬4:25)

ⓒ하나님 뜻 행함(요4:34)

ⓓ복음 전함(막1:38)

2)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되는 일

ⓐ믿음이 생김(롬10:17)

ⓑ의롭게 됨(갈2:16)

ⓒ위로를 받음(고후1:5)

ⓓ하나님 아들이 됨(엡1:5)

3)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

ⓐ지혜(골2:3)

ⓑ지식(골2:3)

ⓒ믿음(딤후1:13)

ⓓ사랑(딤후1:13)


III. 주일 예배와 성찬


1.예배

1)예배의 뜻

ⓐ감사하는 일(시138:2)

ⓑ찬양하는 일(시138:1)

ⓒ여호와를 좇고 구하는 일(습1:6)

2)예배의 방법

ⓐ무릎 꿇고(시95:6)

ⓑ높히며(시99:5)

ⓒ예물을 드리며(마2:11)

ⓓ신령과 진리로(요4:24)

3) 예배드려야 할 이유

ⓐ주가 되시니(시45:11)

ⓑ창조주 되시니(시95:6)

ⓒ거룩하시니(시99:5)

ⓓ평안을 주시니(마28:9)


2.성경

1) 성경을 아는 방법

ⓐ깨닫게 해 주셔야(시119:27)

ⓑ지혜를 받아야(시119:73)

ⓒ주님이 풀어 주셔야(눅24:32)

ⓓ가르쳐 주셔야(시119:12)

2) 성경을 기록하신 이유

ⓐ확실히 알게 하려고(눅1:4)

ⓑ영생을 알도록(요일5:13)

ⓒ미혹받지 않도록(요일2:26)

ⓓ범죄하지 않도록(요일2:1)

3) 성경을 상고할 이유

ⓐ성령받게 (눅24:32)

ⓑ새 사람 되게(요3:35)

ⓒ믿음 생기게(롬10:17)

ⓓ복음 전하기 위해(행8:35)


3.성찬

1) 성찬의 의미

ⓐ그리스도의 죽음 기념(고전11:26)

ⓑ재림의 소망 갖게 함(마26:29)

ⓒ예수와 관계 영속화(눅24:30)

ⓓ그리스도의 죽음이 축복의 원천임을 깨닫게 함(마26:28)



․주님과의 일치


1.주님과 하나 됨을 의미(요15:5)

2.주님의 제자가 됨을 의미(요13:34)

3.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의미(요10:4)


I. 주님과 하나 됨을 의미


1.주님의 고난에 동참

1)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특징

ⓐ제자들에게 알려 주심(막9:12)

ⓑ예언됨(벧전1:11)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설명(눅24:26)

ⓓ예언의 성취(행3:18)

2) 그리스도에게 유익한 점

ⓐ제사장직을 위한 준비(히2:17)

ⓑ순종을 배움(히5:8)

ⓒ영광의 길(히2:5)

3) 신자들에게 유익한 점

ⓐ하나님 앞으로 인도함(벧전3:18)

ⓑ죄를 대속함(히9:26)

ⓒ고난에 동참하게 함(빌3:10)

ⓓ본을 보임(벧전2:21)

ⓔ신자들을 위로함(고후1:5)

4)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난

ⓐ모형(창22:7)

ⓑ예언(사53:1)


2.주님의 부활에 동참

1) 부활의 특징

ⓐ예언 가운데 나타남(사53:10)

ⓑ그리스도께서 선언하심(막9:9)

ⓒ사도들이 선포함(행2:32)

2) 부활의 증거

ⓐ빈 무덤(요20:1)

ⓑ천사들의 증거(마28:5)

ⓒ대적들의 증거(마28:11)

ⓓ많은 확실한 증거들(요20:20)

ⓔ사도들의 증거(행1:22)

3) 부활을 성취한 도구

ⓐ하나님의 능력(행2:24)

ⓑ그리스도의 능력(요10:18)

ⓒ성령의 능력(롬8:11)

4) 부활의 목적

ⓐ죄의 용서(고전15:17)

ⓑ소망을 주심(고전15:18)

ⓒ믿음의 실현(고전15:14)

ⓓ심판의 확증(행17:31)

ⓔ신자들의 부활을 보증(행26:23)


II. 주님의 제자가 됨을 의미


1.제자가 되는 길

1) 성경에 나타난 제자들

ⓐ거짓 선생의 제자(행20:30)

ⓑ모세의 제자(요9:28)

ⓒ세례 요한의 제자(요1:35)

ⓓ예수님의 제자(요2:2)

2) 예수님의 제자 됨의 조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킴(요14:15)

ⓑ예수님과 연합하여 많은 과실을 맺음(요15:5)

ⓒ예수님의 말씀에 가함(요8:31)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음(마16:24)

3) 예수님의 제자에 대한 보상

ⓐ예수님의 인정하심을 받음(마12:49)

ⓑ생명의 빛을 얻음(요10:27)

ⓒ하나님의 귀히 여기심을 받음(요12:26)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음(요16:13)


2.제자의 바른 삶

1) 제자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는 자(요8:31)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요14:15)

ⓒ예수님과 연합한 자(요15:5)

ⓓ사랑하는 자(요13:35)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자(마16:16)

2) 제자의 바른 삶(소극적인 태도)

ⓐ세상을 사랑하지 않아야 함(요일2:15)

ⓑ불신자와는 교제를 하지 말아야 함(고후6:14)

ⓒ세속적인 생활에 얽매이지 말아야 함(딤후2:4)

3) 제자의 바른 삶(적극적인 태도)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함(마6:33)

ⓑ몸을 산제사로 드림(롬12:1)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삶(갈2:20)

ⓓ하늘의 것을 생각함(골3:1)

ⓔ그리스도의 영광을 기다림(딛2:11)


III. 주님과 동행하는 삶의 의미


1.함께 하시는 주님

1)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결코 멸망하지 않음(요10:28)

ⓑ아무도 멸망하지 않음(요17:12)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음(벧전1:5)

2)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방도

ⓐ성령의 인침(고후1:21)

ⓑ그리스도의 간구(롬8:34)

ⓒ하나님의 능력(유1:24)

3) 성도의 유익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감을 얻음(롬5:2)

ⓑ영생을 소유함(요17:2)

ⓒ그리스도와 한 형제됨(히2:10)

ⓓ시험을 이김(벧전1:6)

ⓔ승리의 생활(롬8:37)


2.주님과 동행하는 자의 삶

1) 주님과 동행하는 자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임(요1:12)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 기울임(요10:3)

ⓒ그리스도를 따름(요10:4)

2) 주님과 동행하는 자의 삶

ⓐ흠이 없음(빌2:15)

ⓑ진실함(계17:14)

ⓒ경건함(벧후2:9)

ⓓ거룩함(골3:12)

ⓔ겸손함(벧전5:5)

3) 찬양

ⓐ지혜와 능력과 힘을 얻음(계7:12)

ⓑ자비하심이 영원함(대하20:21)

ⓒ증거하므로 입술의 열매를 맺음(히13:15)

4) 말씀

ⓐ하나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음(히4:12)

ⓑ하나님 말씀은 살았고 항상 있음(벧전1:23)

ⓒ지혜자의 말씀은 채찍같음(전12:11)

ⓓ하나님 말씀은 든든히 세움(행20:32)

ⓔ하나님 말씀은 구원을 이르게 함(딤후3:15)



․속죄의 개념


1.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벧전2:24)

2.죄 아래 있던 인간의 실상(롬3:11)

3.기념해야 할 넘치는 은혜(마26:28)


I.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1.죽음

1) 죽음의 원인

ⓐ하나님의 심판으로(창6:17)

ⓑ한 사람의 범죄로(롬5:15)

ⓒ허물과 죄로(엡2:1)

ⓓ법이 있어서(롬7:8)

ⓔ육신대로 살아서(롬8:13)

2) 예수가 죽으신 이유

ⓐ죄를 속하려고(히9:15)

ⓑ놓아 주시기 위해(히2:15)

ⓒ경건치 않는 자 위해(롬5:6)

ⓓ죄를 위하여(고전15:3)

3) 예수의 죽으신 방법

ⓐ단번에(롬6:10)

ⓑ성경대로(고전15:3)

ⓒ복종하여(빌2:8)

ⓓ십자가에서(빌2:8)


2.사랑

1) 하나님 사랑의 정의

ⓐ독생자를 주는(요3:16)

ⓑ성령으로 마음에 부어 주는(롬5:5)

ⓒ아들을 죽이시는(롬5:8)

ⓓ무궁한(렘31:3)

2)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

ⓐ마음대로(롬9:13)

ⓑ정직히 말하는 자(잠16:13)

ⓒ예수(마3:17)

ⓓ공의(사61:8)

ⓔ고아 과부 나그네(신10:18)

3) 하나님 사랑을 입은 자의 복

ⓐ성도가 됨(엡1:1)

ⓑ죽은 자 가운데 다시 삼 ⓒ합력하여 선을 이룸(롬8:28)

ⓓ사랑에서 끊치 못함(롬8:35)


3.은혜

1) 은혜의 가치

ⓐ후사가 되게 함(롬4:16)

ⓑ의롭게 함(딛3:4)

ⓒ담대하게 됨(롬15:15)

ⓓ내세에 소망을 줌(살후2:16)

2) 은혜받는 법

ⓐ죄를 회개해야(롬5:20)

ⓑ기도해야(욥33:26)

ⓒ겸손해야(잠3:34)

ⓓ여호와를 사랑하고 계명을 지켜야(출20:6)

3) 은혜를 받은 자의 생활

ⓐ기념할 것(시145:7)

ⓑ말씀을 순종하는(눅1:30)

ⓒ감사하는(고후4:15)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고전15:10)


II. 죄 아래 있던 인간의 실상


1.죄

1) 죄의 정의

ⓐ불순종(롬5:19)

ⓑ불법(요일3:4)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레24:15)

ⓓ다른 사람을 경멸함(잠14:21)

2) 죄와 예수님

ⓐ속죄 제물이 되심(사53:10)

ⓑ죄와 무관하심(요일3:5)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심(마1:21)

ⓓ죄를 깨닫게 하심(요15:22)

3) 죄 아래 있는 자의 상태

ⓐ하나님을 두려워 안함(롬3:18)

ⓑ깨닫지 못함(롬3:11)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함(롬3:14)

ⓓ선을 행하지 못함(롬3:12)


2.형벌

1) 형벌받는 이유

ⓐ하나님을 배반해서(호13:16)

ⓑ교만해서(시94:2)

ⓒ죄악으로(애4:22)

ⓓ복음에 불복종해서(살후1:8)

2)형벌받을 자

ⓐ음행자(겔16:41)

ⓑ악인(레18:25)

ⓒ불복종자(고후10:6)

ⓓ뱀(사27:1)

3) 형벌의 집행자

ⓐ증인(신17:7)

ⓑ회중(민15:35)

ⓒ민족(수7:25)

ⓓ선지자(삼상15:33)


3.지혜

1) 지혜의 필요성

ⓐ영혼을 사랑하기 위해(잠19:8)

ⓑ은혜를 끼치기 위해(전10:12)

ⓒ성공하기 위해(전10:10)

2) 땅의 지혜

ⓐ십자가를 헛되게 함(고전1:17)

ⓑ하나님을 알지 못함(고전1:21)

ⓒ패망케 함(전7:16)

ⓓ유한됨(욥38:37)

3) 지혜로워야 할 일

ⓐ생각(잠12:3)

ⓑ마음(잠23:15)

ⓒ말(마12:42)

ⓓ행위(잠28:26)


III. 기념해야 할 넘치는 은혜


1.기념

1) 기념할 일

ⓐ여호와의 이름을(출20:24)

ⓑ출애굽 일을(출13:3)

ⓒ주의 크신 은혜를(시145:7)

ⓓ예수를(눅22:19)

2) 기념하는 방법

ⓐ영혼이 사모하며(사26:8)

ⓑ기념물로(레5:12)

ⓒ절기로 정하여(에9:28)

ⓓ책에 기록하여(출17:14)

3)기념일

ⓐ유월절(출13:3)

ⓑ부림절(에9:28)

ⓒ초막절(레23:43)

ⓓ안식일(레23:24)


2.넘치다

1) 넘치지 말 일

ⓐ진노(욥40:11)

ⓑ악(약1:21)

ⓒ패망의 잔(겔23:33)

ⓓ애통(암9:5)

2) 넘칠 일

ⓐ사랑(고후2:4)

ⓑ주를 위한 각오(고후11:23)

ⓒ감사(골2:7)

ⓓ소망(롬15:13)

3) 넘치는 법

ⓐ성령의 능력으로(롬15:13)

ⓑ예수로 말미암아(롬5:17)

ⓒ구제로(눅6:38)

ⓓ주께서 주셔야(사66:12)


3.감사

1) 감사의 대상

ⓐ여호와(렘33:11)

ⓑ주(단2:23)

ⓒ사랑받은 자에게(롬16:4)

ⓓ하나님(딤후1:3)

ⓔ주의 이름(시140:13)

2) 감사하는 이유

ⓐ구원을 얻었으니(롬6:17)

ⓑ우리를 받았으니(고전1:4)

ⓒ은혜를 인도하시니(고후2:14)

ⓓ기도 응답을 받았으니(단2:23)

3) 감사하는 방법

ⓐ예배로(욘2:9)

ⓑ전심으로(시9:1)

ⓒ생활로(롬14:6)

ⓓ기도로(골4:2)



성찬식의 내용

(누가복음22:14)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개신교에서 세례와 함께 2대 성례전으로 행하고 있는 성찬식은 전통적인 신앙 고백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년1~2회 정도밖에 시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의미라든지 중요성은 매우 크다 하겠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만든 제도가 아니라 주께서 친히 이를 명하셨기 때문에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지 그 권위자체가 손상을 입을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는 성찬식의 내용에 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현행 성찬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내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또 이에 참예하는 사람들이 올바른 태도를 갖기 위해서도 내용을 바로 알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I. 성찬의 유래


교회가 지키는 모든 절기들을 포함하여 성례전도 '칼빈'이나 '구터', '웨슬레' 등에 의해 제정된 것이 아니라 성경적인 유래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에 관해 정확하게 고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근원을 알아야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성찬 예식을 행할 수가 있습니다. 뿌리를 알지 못하면 이에 대한 해석도 각양 각색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성찬식 본래의 뜻이 왜곡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그러므로 성찬식뿐 아니라 교회가 전통적으로 지키는 절기를 비롯하여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들의 뿌리를 정확하게 알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충분히 알 수 있도록 배려하신 것을 알지 못하여 그릇 행한다면 결코 칭찬을 듣게 되지 못합니다.


1. 주의 마지막 만찬(마26:20)

성찬식은 주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가지셨던 마지막 만찬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이 만찬에 참예한 제자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자신들 앞에 전개될 급박한 상황에 대해서 알지 못했지만 주님은 이를 아셨으며, 이에 대비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예식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까닭은 주께서 제자들과 드셨던 마지막 만찬이었다는 의미 때문이 아니라 이를 행하도록 그분이 명하셨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분은 이 예식의 중요성을 알고 계셨으므로 교회들이 이를 지키도록 명하신 것인데, 오늘 우리의 교회들 가운데 어느 정도가 주의 의도에 합당하게 성찬식을 행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2. 구속 사역의 기념(마26:28)

성찬식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기념하는 예식으로 이에 참예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어도 몇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즉 죄아래 있는 인간의 실상을 비롯하여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신 주의 은혜, 그리고 영혼들의 인도를 위한 복음 전도 사역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우리가 행하는 성찬식은 만찬이 아니라 우리가 받은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기념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II. 성찬의 모범


예배에도 모범이 있고 세례에도 모범이 있듯이 성찬식에도 모범이 있게 마련인데 우리는 이 모범을 주의 마지막 만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주께서 행하신 것 외에 다른 모범을 찾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음은 이 예식을 제정하사 지키도록 명하신 이가 곧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언제 어디에서 성찬식을 행하든지 주의 모본을 따르기만 한다면 그는 칭찬을 받기에 넉넉합니다. 사람이 만든 어떤 제도도 주께서 보이신 모범에 우선할 수 없습니다.


1. 유월절에 행해짐(눅22:15)

주의 마지막 만찬이 행해진 것은 유월절 전날입니다. 즉 그분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하셨고 이를 속죄의 기념으로 지켜 행하도록 명하신 것입니다. 유월절은 유대 민족에게 있어서는 애굽의 종살이에서 벗어난 민족적 해방을 기념하는 역사적 절기입니다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죄의 착고로부터 풀려나게 된 참 자유를 얻은 날로 기념되고 있습니다. 그날이 없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평화나 하나님 나라의 유업에 대한 어떤 소망도 가질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유월절은 이처럼 근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2. 떡과 포도주가 사용됨(눅22:19)

성찬식에 사용된 재료는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떡과 우리의 죄를 위하여 흘리신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가 사용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들도 이 모범을 따라 떡과 포도주를 사용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거기에는 깊은 정성과 신앙심이 담겨 있어야만 합니다. 성찬식에는 그 상징성에 알맞는 정성이 담긴 재료가 필요합니다.


III. 성찬의 참예


성찬식은 성도들이 참예하도록 주께서 제정하신 제도이므로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은 이에 참예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적 성격을 띤 것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성찬식에 참예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성찬에 참예하는 자들은 다음 두 가지를 염두에 두도록 해야 합니다.


1. 자기를 살펴야 함(고전11:28)

신앙의 연륜이나 교회에서 받은 직분에 관계없이 성찬에 참예하는 자들은 먼저 자기를 살피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은 세상의 다른 식사들과 구별되는 것이므로 자칫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찬은 주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므로 자기를 살펴 합당치 못한 것이 발견되면 참예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2. 주를 증거해야 됨(고전11:26)

성찬에 참예하는 자들은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분의 죽음이 갖는 의미를 증거해야 합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복음 전파에 대한 책임을 위임받았으므로 이를 소홀히 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되겠습니다. 주의 죽으심을 모든 사람의 구원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증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성찬식은 각 교단들이 각기 다른 규범을 가지고 행하고 있지만 그 유래라든지 모범, 참예의 의미 등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동일한 근원과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동일한 모범에 따라서 시행되고 있는 것이므로 개 교회는 물론이고 교회 연합회가 이 문제를 신중하게 검토하여 복음적이고 초대 교회적인 성찬식을 행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