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世界史/(지구촌)유럽

[E.U] 헝가리 공화국

好學 2009. 11. 1. 21:44

 

헝가리 공화국

 

Magyar Köztársaság
(국기) (국장)
표어: 없음
국가: Himnusz ("Isten, áldd meg a magyart")
찬가("주님, 헝가리인에게 축복을 주소서")
수도 부다페스트
47°26′N, 19°15′E
공용어 헝가리어
정부 형태 공화정
쇼욤 라슬로
버이너이 고르돈
건국
 • 통일
헝가리 왕국
1000년
면적
 • 전체
 • 내수면 비율
 
93,030km² (108위)
0.74%
인구
 • 2006년 어림
 • 2001년 조사
 • 인구 밀도
 
10,074,000명 (80위)
10,198,315명
108명/km² (69위)
GDP (PPP)
 • 전체
 • 일인당
2005년 어림값
$1698.75억 (48위)
$17,405 (40위)
HDI
 • 2006년 조사

0.877 (38위)
통화 포린트 (ISO 4217:HUF)
시간대
 • 여름 시간
(UTC+1)
(UTC+2) 
ISO 3166-1  348
ISO 3166-1 alpha-2  HU
ISO 3166-1 alpha-3  HUN
인터넷 도메인 .hu
국제 전화 +36
현재의 헝가리는 1919년에 독립하였다. 1946년에서 1989년까지는 공산주의 국가였다.

(Magyar Köztársaság 머저르 쾨즈타르셔샤그[*] 듣기 ) 또는 헝가리(Magyarország 머저로르사그[*] 듣기 , 문화어: 마쟈르, 통용: 홍아리(洪牙利)(중국에서는 흉아리(匈牙利)))는 유럽에 있는 내륙국이며 수도부다페스트이다.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폴란드, 슬로바키아, 체코와 함께 비셰그라드 그룹의 일원이자, 유럽 연합의 정회원국이다.

헝가리의 주민은 대부분 우랄족에 속하는 헝가리인이다.

 

역사  헝가리의 역사

탄생과 번창

전승에 의하면 헝가리는 9세기판노니아 평야마자르인들을 이끌고 들어온 아르파드에 의해 건국되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되기까지 [편집]

헝가리의 황금기는 16세기오스만 제국에 의해 정복되고 16세기 오스트리아가 헝가리의 나머지 땅마저 지배하게 되어 끝이 났다. 17세기 말에는 오스트리아가 헝가리 땅을 전부 차지하게 되었다.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 아래에 있던 헝가리는 1867년 오스트리아와의 타협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자치 왕국으로 승격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1918년 10월 31일 헝가리는 독립을 선언했지만 전쟁 전의 영토와 인구의 대부분을 중부 유럽의 신생 독립국들에게 내주었다.

호르티 집권부터 2차대전까지

1919년에는 공산 혁명이 일어나 헝가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세워졌지만 루마니아가 침공해 소비에트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前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해군 제독이었던 미클로시 호르티를 집권시켰다.

호르티는 1930년대나치 독일의 강요로 동맹 관계를 맺었다. 히틀러는 헝가리에 있는 유대인들을 학살하기 위해 헝가리를 침공하여 호르티를 나치 합작자로 대체해야 했다. 그 때문에 나치 독일은 호르티는 물론 아들까지도 감금했고, 소련군이 풀어주게 된다.

공산 정부의 통치  헝가리 인민 공화국

히틀러의 패배 후 소련군이 진주한 헝가리는 다시 공산 정부 아래에 들어갔다. 1956년 헝가리는 소련의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바르샤바 조약 탈퇴를 선언했다(헝가리 반공시위). 그러자 소련군이 개입, 독자 노선 추구를 이끈 임레 너지 총리사형시키며 시위를 무력 진압했다. 1980년대바르샤바 조약 폐지를 주도하고 다당 민주주의시장경제를 도입했다.

소련 해체 이후부터 지금까지

1991년 소련이 해체되자 헝가리는 서유럽 국가들과 관계를 더욱 긴밀히 하며 1999년에는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에, 2004년 5월 1일에는 유럽 연합에 가입했다. 헝가리는 지금까지도 정치가 안정되지 못하여 2007년에 반정부 폭동이 일어난 바 있다.[출처 필요] 헝가리는 2009년 1월 1일부터 동성애가 합법화될 예정이었으나,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도입이 불가능해져 버렸다. 하지만 2009년 5월 9일에 동성커플을 인정함에 따라 7월부터 동성커플을 인정하는 법률이 통과될 예정이다.2009년 3월 15일에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선 혁명기념일에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정치

대통령의 임기는 의회가 5년마다 선출하며, 주로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 총리를 임명하거나, 의회 선거의 날짜를 잡는 것은 대통령의 몫이다. 실질적인 행정권은 총리에게 있다.

행정 구역  헝가리의 행정 구역

총 19개 주로 되어 있으며, 수도는 부다페스트로, 주 정부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부다페스트는 1873년에 부다와 페스트를 합쳐서 정해진 이름이다.

지리

93,030 평방 제곱 킬러미터의 면적을 지니고 있는 헝가리는 동남 유럽에 있다. 남북 250km, 동서로는 524km이다. 2,258km의 국경을 이루며 서쪽으로는 오스트리아, 남서부로는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를 접한다. 북동쪽으로는 우크라이나가 있고 북쪽에는 슬로바키아가 있다.

헝가리의 현재 국경은 처음 1차 세계대전 이후 생긴 것으로 1920년 트리아농 조약 이후 헝가리 제국은 원래 영토의 71%를 잃었고 인구의 58.5%도 사라졌다. 나치군과 연합하여 슬로바키아와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와 맞닿고 있는 일부 지역에 대한 영토권을 확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러한 영토를 모두 잃었다.

경제  헝가리의 경제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헝가리 경제는 농업과 소규모 공업을 위주로 하였으나, 전후 공업국으로 탈바꿈하였다. 1950년대 초 공산정부는 자급자족의 경제를 위해 산업화에 주력하였고, 주 관할의 회사와 농장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중공업에 치중한 결과 경공업이 경시되어 소비재 부족이 심화되고, 농업 생산성이 떨어지는 등 경제의 불균형 현상이 심각해졌다. 이러한 문제점을 타개하기 위해 1968년 대폭적인 경제 개혁이 시행되었다. 서방과의 무역을 확대하고 시장에 제한된 자유를 허용하는 새로운 경제 개혁을 전개하였고, 초반에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어, 공업 생산량이 크게 늘어났으며, 동남유럽 공산국가 중에서는 소비재가 풍부한 나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199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외채가 급격히 증가하여, 1993년에는 150억달러에 이르렀다. 경제 성장률도 1970년대에는 높은 수준을 유지했으나, 1980년대 들어 침체를 면치 못했다. 이런 가운데 1980년대에 민주화의 물결이 거세지면서, 민주주의 체제의 도입 필요성도 커졌으며, 1990년 공식적으로 체제를 전환하였다.

민주주의 체제 도입 초기인 1990년대 초반에는 혼란과 인플레이션, 무역 구조의 변화 등으로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1994년 이후 안정기에 접어들어었으며, 1996년에는 OECD에 가입하였다. 1990년대 후반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에도 별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2000년대 들어 헝가리 경제는 5%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고, 2004년에는 유럽 연합(EU)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유럽 연합 가입 이후 침체기에 접어들어, 이후 연 1%대 성장에 머물고 있으며, 인플레이션도 심해지고 있다. 최근 다소 침체기에 들었으나, 헝가리는 동남유럽의 체제 전환국 중에서는 안정적인 성장을 나타냈으며, 국민소득도 높은 편이다.

민족

2000년 현재 인구의 84.4%가 핀-우그리아어파헝가리어를 사용하는 헝가리인(마자르인)이다. 집시라고 불리는 로마인이 5.3%를 차지한다. 기타 민족(독일인, 루마니아인, 터키인, 슬라브계의 슬로바키아인, 세르비아인, 슬로베니아인, 우크라이나인, 크로아티아인, 유대인)도 거주한다. 부다페스트에는 화교도 거주한다.

인구

 

이 나라는 다른 동남유럽 나라들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2006년 Eurostat 추산에 따르면, 이 나라의 組(조)출산율은 천 명당 9.6명, 사망률은 천 명당 13.5명, 합계출산율은 2005년 현재 천 명당 1.28명이다.

인구 역사

역사적 인구 변천

  • 900년경 - 25만~40만의 마자르인이 판노니아 평원에 入殖(입식).
  • 1222년 - 200만
  • 1242년 - 120만 (몽골의 침략 후)
  • 1370년 - 250만
  • 1490년 - 400만 (튀르크의 침략 전 - 마자르인 320만)
  • 1699년 - 330만 (카를로비츠 조약 당시 - 마자르인 200만)
  • 1711년 - 300만 (마자르인 160만)
  • 1790년 - 800만 (마자르인 39%)
  • 1828년 - 1149만 5536명
  • 1846년 - 1203만 3399명
  • 1880년 - 1374만 9603명 (마자르인 46%)
  • 1900년 - 1683만 8255명 (마자르인 51.4%)
  • 1910년 - 1826만 4533명 (마자르인 54.5%)
  • 1920년 - 751만 6000명 (트리아농 조약 후 - 마자르인 90%)
  • 1980년 - 약 1071만
  • 2001년 - 1019만 8315명
  • 2006년 - 999만 6000명 (Eurostat 추산)

언어

공용어는 헝가리어이다. 지식인들은 러시아어, 영어, 독일어를 구사할 줄 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독일어를 할 줄 안다.

또한, 헝가리는 프랑스어 사용국 기구(프랑코포니)의 참관국이다. 이것은 언어적으론 영어로의, 경제적으론 독일로의 급속한 편입을 막기 위한 측면도 있다.

종교

주요 종교는 로마 가톨릭으로 인구의 2/3 정도가 신봉한다. 일부는 정교회, 개신교, 이슬람교, 유대교를 믿는다. 헝가리 개신교회 최대 교단은 개혁교회이다.

대한 관계

헝가리는 북조선과는 1948년 수교하였으나, 공산권 국가였으므로 한국과는 정식 외교관계를 맺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 관계 개선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결국 1989년 남한과 정식 외교관계를 맺게 되었다. 동남유럽의 공산권 국가 중 남한과 처음으로 외교관계를 맺은 국가는 헝가리이다. 1989년 수교 직후 대한민국 대통령 노태우가 동남유럽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헝가리를 방문하였으며, 이후 대한민국과 헝가리는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협력을 강화해 가고 있다.

세르비아와의 관계 [편집]

슬로바키아와의 관계 [편집]

헝가리와 슬로바키아는 서로 사이가 좋지 못한 나라이며, 최근에는 민족감정으로까지 번졌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 두나라와 모두 수교를 맺으면서도 대한민국과는 특별히 민족감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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