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聖書槪論/[구약성서개론] 개관

말라기書 :The Book of Malachi

好學 2009. 10. 8. 10:16

 

말라기書 :The Book of Malachi

 

 

[영] The Book of Malachi구약성경의 1서. 특히 12 소선지서의 하나로 말해진다.

 

1. 본서의 저자

본서 1:1에 다만 [말라기]라는 이름이 제공해 줄 뿐이고, 달리는 본서 저자에 대한 인용은, 성경중에는 없다. 타르굼(Targum)에는 [그의 이름은 서기관 에스라로 불리운다]  말이 추가되어 있고, 70인역은 또한 이것을 보통명사로 하여 [그의 사자의 손에 의한 이스라엘의 주(여호와)의 말씀(Lh'mma lovgou kurivou ejpi; to;n jIsrah;l ejn Ceiriv ajggevlou aujtou' )](말 1:1)으로 하고 있는데서, 말라기는 개인명이 아니라, 어떤 선지자(에스라)를 가리키는 신분이나 직명표시라고 한다. 그러나 다른 대선지서나소선지서에는 전부 개인의 이름을 제명으로 하고 있는데, 말라기서만 예외로 하는 것은 오히려 이상하고, 개인명이라는 주장도 강하다.

 

2. 본서의 연대

외중은 연대에 대해서 아무것도 전하고 있지 않고, 본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서, 말라기의 연대 결정은 정확하게는 불가능이다. 하지만, 말라기가 말하고 있는 성전이나 제사장에 대한 언급에서, 그가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후, 또는 성전 재건(전516)후에생존하고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1:3의 에돔 침입에 대한 언급은, 전 4,5세기에는아주많은침입이 있었으므로 참고가 되지 못한다. 1:8의 [총독]도 반드시 바사의 총독이라고 만은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선지자 말라기가 예언하고 있던 기간중의 사정은,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개혁에서 예상되는 상태와 흡사하고, 그러면서 본서 중에 에스라, 느헤미야의 개혁운동이나 입법(스 10:3,느 13:13,23-27)에 아무것도 언급되어 있지 않은데서, 그것 이전, 즉본서는 에스라의 도래 직전에 기록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연대(전 460)는널리일반에게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에스라의 예루살렘 도착이 전 458이라고하면그것보다 수년 전, 에스라가 느헤미야보다 후에라면 전 440년대,혹은더늦은연대로 제안되어 있는데, 그것 이상은 거의 알 수 없다.

 

3. 본서의 배경과 메시지

본서의 시대적 배경은 포로에서 귀환후라는데는 이론이 별로 없다. 유대인은 커다란 희망을 가지고서 포로에서 귀환했다. 학개와 스가랴에 격려되어, 성전도 재건 했다. 이 건물에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된 옛 영화는 없었으나, 목적에는 맞는 것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유대인들은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약속된 번영은 오지않고, 생활은 곤란했다. 또한 기회만 있으면, 그들을 좌절시키려는 대적, 사마리아인들에 포위되어 있다. 그들은 또한 한발과 기근으로 시달렸다. 하나님의 도덕적 지배의 올바름도 의심했다. 악을 행하는 자가 여호와의 눈에 선으로 보여지고 있다고 그들은 불평했다. 그들은또한, 하나님의 멸령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비통중에 행하는 것은 무익하다고 주장했다. 악인과 스스로에 의뢰하는 자가 번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현물에는 충실하지 않고(느 13:1이하), 경제의 유리함을 겨냥하여 이방여인과 결혼하고(스 9:1이하, 느13:23이하), 또한 그러기 위해 젊었을 때 부터의 짝인 유대인 여성을 이혼하는 자마저 있었다(말 2:14).스스로 여호와를 경외하고, 충성하는 자로 자처하는 그들이 그 충성에 보답되지 않는 일에회의를 하고 있던 때에, 말라기는 그것에 대한 올바른 답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 문제는하나님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측에 있다.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하나님의 공의에 대하여, 경건의 가치에 대하여, 그들이 불평하고있는 것은 실로 당치도 않는 것이었다. 말라기는 그들에 대답하여, 그 회의들을 위선적인것임을 지적해 보여준다,. 만약 역경이 그들의 운명이라면, 그것은 그들이 경건함에도 불구하고 찾아온 것이 아니라, 그들이 죄많은데서 가해진 것이다. 예컨대 제사장들의 부패된 예배가 있었다. 그런가 하면 백성들 역시, 좋은 희생제물을 약속하고는 흠있는 것을 가져오기도 일수였다. 하나님 이외의 미신을 믿는 이방인마저도 좋은 것으로 그 신을 예배한다. 그런데 한분 하나님을 모신다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어떤가? 백성은 또한 죄를 범하고, 물욕따라남자는 그 젊었을 때의아내를 버리고 이방여인과 결연했다. 온갖 죄가 유행했다. 점치는 일,간통, 약자 압박, 일반적인 불경건 등이다. 나라가 이렇듯 악습으로 부패되어 잇으면서 어찌번영을 기대할 수있으랴. 말라기는 진정한 선지자다웁게 그들의 위선, 죄를 책망하고, 사람들에게 회개를 권고했다. 그들이 예배를 순수히 하고, 율법에 따라 십분의 일을 완전히 드린다면, 하나님의 축복은 임해온다. 이 권고를 전함에 있어서, 선지자는 그의 고원한 심관을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존엄하신 만군의 여호와이시다. 그의 거룩하심과 심판은치우치심이 없고, 의로우신 것으로 항거할 수 없는 것이다.말라기는, 그 백성의 궁극적 구원이, 그들의 회개에 의하는 것이 아니고, 주의 역사(일)에의함임을 알아 차리고 있었다. 마침내 주의 날의 여명이 밝아 온다. 그것은 경건한 자를 성결케 하시고, 그 의로움을 확증하시며, 사악한 자들을 멸한다. 선지자 엘리야가 오는 것에의해, 그 날이 준비되는 것을 말하고 있다.

 

4. 본서의 특징

본서를 일견하기만 해도 분명한 형식상의 특징은, 다른 여러 선지자들과 달리 대화형식을 취하고 있는 일이다. 하나님과 선지자의 대화는, 하박국이나, 예례미야에이미 나타나 있는데, 말라기의 경우는 하나님과 백성과의 대화라는 점에서 제일로 독특하다.다음으로 그 형식은 대화인데, 실질 내용에서 말하면 [대화결여 상황](對話缺如狀況), 즉 하나님과 백성과의 사이에는 일종의 단절이 생겨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 단절에 다리를 놓기 위해선지자는 바로 중보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대화는 대개의 경우 먼저 하나님으로 시작된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1:2, 6, 7, 2:17, 3:7,8). [어째서]{ 왜, 2:14), [무엇을](3:13)이라는 반문이 되어지고 있다. 그 반문의 내용은 솔직히라는 정도를 넘어 반항적이라고마저 할 수 있다. 이것은 실제의 발언이라기보다는, 백성 가운데 있던 회의와 불신이다(그것이 행위에 반영되어 있었음).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같은 것이라는 식이다.여러 가지 문제가 제출되어 있는데, 정리하면 세가지의 커다란 문제로 귀착된다. 그것은(1)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불신, (2) 국제적으로 보아도 국내 상황으로 보아도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지배라는 것은 허구가 아닌가, 하는 회의, (3) 경건이라는 것은 이 현실의인생에 과연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5. 본서의 내용

바벨론에서 돌아온지 100여년이 된 유대인들은 우상숭배는 하지 않았으나,하나님의 집을 무시하고, 제사장들은 위선적 공리에 빠져, 높은 이상에서 전락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형식적으로만 했다. 백성들은 죄와 결합하여 정신적 혼수 상태에 빠져,약속한 메시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말라기는 이들에게 메시아는 올 것이나, 위선자와 죄인에게는 심판으로 임하실 것을 확실하게 말해 주고 있다.

 

-내용분해-

본서는 대체로 일곱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다.

1:1-5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늬 사랑과 그 증거

1:6-2:9 이스라엘의 망은, 특히 제사장의 죄와 그 심판

2:10-16 이방여인을 취한 자에 대한 공격

2:17-3:6 하나님의 도덕적 지배를 의심하는 자에 대한 말

3:7-12 종교적 의무를 게을리 하는 자에 대한 말

3:13-4:3 다시 회의자에 대한 말. 선악정사가 밝혀지는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의 날이 오고있는 일

4:4-6 결언. 모세의 율법을 엄수할 것.

 

6. 본서의 교훈

말라기는 다른 선지자와 한가지로 회개를 촉구하고, 사람들을 종교적 도덕적으로 각성케하려 했다. 그러나 그가 취한 방법은 그들과 달랐다. 말라기는 종교의식을 올바르게 지킬 것을 특히 강조하고, 이방여인과의 결혼을 엄히 경계했다. 그것은 그의 시대와 역사적 상황이그렇게 한 것이다. 포로 이후의 시대에 있어서는 성전과 그것에 관한 의식은 당시의 종교적,사회적 생활의 중심이었다. 그 과해진 종교적 의식을 엄격히 지키고, 또한 이교의 영향을 피하는 일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자기보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말라기는 결코 형식주의자는 아니고, 순수한 예언적 정신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종교적 의식 및 규정을 엄격히 지킬 것을 강조했는데, 다만 그것을 형식적으로 지키는 것으로서족하게 여긴 것이 아니다. 그가 문제로 하고 있는 것은, 그것 속에 표현되어 있는 정신이고,종교의식을 행하는 자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태도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그는 위대한 선지자와 궤도를 하나로 하고 있다.

 

7. 본서의 문체

본서의 문체는 다른 선지자의 그것 보다도 훨씬 산문적이다. 그 이전의 선지자가 위로부터 다가서는 것 같은 응변을 써서 힘차게 말한데 대해, 그는 마치 스승이 그 제자를 가르치는 듯이 문답형식을 써서 차근차근 설명해 가고 있다. 이것은 본서의 특징이기도 한 것으로서, 그의 시대부터 새로운 문학형식이 시작된 것을 보여주고 있다.

 

8. 본서의 신약 인용과 예언의 종결

신약에 인용되어 있는 것은 세 곳이다. 즉 1:2, 3, 3:1,4:5, 6이다. 이 최초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라는 말은 어쩐지 현대인의 기호에 맞지 않는 견해를 담고 있다. 그러나, 성경의 많은 기사라든가 인간 경험의 여러 가지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선택에 관한 어떤 교리의 주장을 피하기는 곤란하다. 확실히하나는 택함받고, 다른 자는 버려진 것이 흔히 보여진다. 바울이 이 점을 롬 9:13에 인용하고 있는 것은, 참 이스라엘의 선택에 관한 교리를 지지하기 위해서이다.이 말라기로써 예언의 막은, 세례요한이 오는 때까지 닫혀지고, 선지자의 생생한 힘찬 말은, 이미 들려지지 않게 되었다. 학자(서기관)와 제사장이 종교의 중심 인물로 되었다. 유대인은 이제 많은 문서를 가지고, 그 설명하는 해석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의 관으로 되었다. 종교가 주로 율법적으로 되는, 장차 올 시대의 전조가, 말라기 가운데 명확하게 보여진다.

[文獻] O. Eissfeldt, Einleitung in das AT. 1956. S 543-546; A. Weiser, Einleitung in dasAT, 1957, s. 22-224; K. Elliger: Maleachi und die kirchliche Tradition; Tradition undSituation, herausgegeben von E. Wurthwein und O. Kaiser, 1963, s. 43-48; R. K.Harrison:Introdution to the Old Testament, Tyndale Press, 1970; Macthew Henry:Commentary onthe Whole Bible,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70; J. G. Baldwin:Haggai, Zechariah, Malachi(Tyndale OT. Commentaries), Tyndale Press,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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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Malachi(인명)

 

(ykia;l]m' , Malachi)「나의 사자」

말라기는 구약성경 마지막 책 말라기서의 기자며, 이스라엘의 마지막 선지자이다. 요나단 벤우셀의 타르굼에 "그의 이름은서기 에스라라고 불리운다"라는 말이 추가 되어 있고, 또 70인역이 이를 보통 명사로써 "저의 사자의 손에 의한 이스라엘의 주의 말씀…"(말 3:1)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것으로부터 말라기는 개인의 이름이 아니고 어느 선지자(아마 에스라)를 가리키는 직임일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다른 대선지서에도, 소선지서에도, 전부 개인의 이름이 표제가 되어 있는데, 하필 이 책만 예외로 한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역시 개인의 이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말라기가 어느 시대 사람인가, 또 어떤 인물이었는가는 말라기서의 내용으로부터 짐작하는 외에 전혀 알 길이 없다. 당시는 "총독, 헬라어로 폐하"(말 1:8)에 의해 에루살렘이 통치되었으므로 바사의 속국 시대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성전은 이미 재건되어 여호와께 경배를 드렸다(말 1:10,3:1). 이것으로부터도 학개˙스가랴 시대보다는 후대의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선지자는 ⓧ 제사장의 타락, ⓨ 이방인과의 잡혼,ⓩ 이스라엘 사람의 당연한 의무인 십일조 헌물을 게을리 하는 것 등의 죄를 책망하고있는데, 특히 ⓨ, ⓩ은 에스라˙느헤미야 시대에 생겼으므로 그들이 극력 개혁하려고노력했다(스 9:2,10:3644,느 13:1028). 이런 점으로 보아 말라기서에는 에스라˙느헤미야 시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BC 440- 410년 경의 것이라고해야 할 것이다.말라기의 예언의 경우, 다행히도 바벨론으로부터 귀국한 백성은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에 격려되어 성전은 재건되고 그 예배는 회복되었다. 또, 성벽도 중수되고 예루살렘은 강화되었으나, 지난 시대의 선지자들이 말한 왕국의 희망은 실현되지 않고, 약속의 영광(학 2:7)은 임하지 않는다. 그 뿐만 아니라 오히려 흉년이 계속되었으므로 사람들은 실망하고 또 의심을 품게 되었다. 종교에 냉담하게 되고 도덕적으로 이완(弛緩)하게되었다. 말라기는 여호와의 말씀을 받은 선지자로서 열심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고 백성에게 호소했으나, 그들은 오히려 "우리가 어떻게…"(말 1:2,6,7,2:17,3:7,8,13)라고 반문했다. 말라기는 그 백성의 궁극적 구원이 그들의 회개에 의해서가 아니고, 여호와의 은혜에 의해서라는 것을 알아채고 있었다. 곧, 주의 큰 날의 여명이 온다. 그것은 경건한 자를 정결케 하고, 그 올바름을 확증하고, 사악한 자들을 멸한다. 선지자 엘리야가 옴으로써 그날의 준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