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聖書槪論/[구약성서개론] 개관

스가랴書 :The Book of Zechariah

好學 2009. 10. 8. 10:15

 

스가랴書 :The Book of Zechariah

 

 

[영] The Book of Zechariah구약성서의 1서. 특히 12 소선지서의 하나로 말해진다.

 

1. 본서의 저자 -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스가랴(슥 1:1). 그의 가계에 관해서는 스 5:1,6:14에도 보여져 있고, 느 12:4,16에의하면, 대제사장 예수아와 함께 귀환한 제사장의 명단에 잇도의 이름이 보여지는 외에, 스가랴는 잇도 족속의 족장으로 되어 있는데, 이 제사장 스가랴와 선지가 스가랴가 동일인이라고 곧 결정할 수는 없다. [스가랴](주께서 기억하신다)라는 이름도 흔한 이름으로 구약에30명 이상이 이 이름을 가지고 있고, 잇도라는 이름도 5명이나 보여져, 동명이인의 가능성도 있는데, 그러나 스가랴서 중에는 저자가 제사장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곳(예-슥 3장,4장,슥6:12,7:3이하 등)도 있으므로, 거의 동일인으로 여겨진다. 선지자 스가랴는 학개와 같은시기에, 약간 늦게 예언활동을 시작하고, 학개보다 장기에 걸쳐 그 일을 계속했다. 이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파이퍼(R.H. Pfeiffer)는 [스가랴는 마지못해 학개의 성전 건설의 운용에지지를 하고 있던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편견이다. 양자는 협력관계에있었는데, 학개는 그 메시지를 한곳으로 모아 힘을 집중시킨에 비해, 스가랴는 학개가 못다한, 또는 언급치 않은 점에까지도 폭 넓게 예언을 전개하여 선배의 말을 보충했다고 할 수있다. 스가랴의 전설에 대해서는, 다소의 전설이 있는데, 취급할 것이 못되는 것으로 되고있다.

 

2. 본서의 연대 - [다리오왕 2년 8월](슥 1:1), 즉 전 520년10-11월이최초의메시지가 행해진때이고, 기록되어 있는 최종의 날은 [다리오와 4년 9월 곧 기슬레월 4일] (슥 7:1), 즉 전518년태양력11-12월로서, 여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즉 성전공사가 재개된 직후에서, 완성한 515년에 대하여 중도까지 진전된 시기이다. 스가랴서 후반(9-14장)에 대해서는 날짜가기록되어 있지 않고, 퍽 오랜 후의 일로 생각되어, 스가랴 저자설을 부정하는 입장들은 북왕국 멸망전(전 8세기)에서전2세기경까지의 여러가지 시기를 상정한다. 그러나 스가랴 저자설의 입장에 서면, 스가랴 생애의 만년이 생각된다. 헬라(그리스)에 대한 언급(슥 9:13)이 있는데서, 전 480년후로여겨지는데,이때까지 스가랴는 생존하여, 선지자로서 약 50년간봉사한것으로보고 있다. 즉 다리오 1세(전 522-486년)의후까지이다.

 

3. 본서의 통일성 - 본서의 1-8, 9-14장은 문체, 역사적 입각점이 아주 달라져 있기 때문에,각각 다른 저자의 것으로 하는 것이 거의 통설로 되어 있다. 즉 9장 이하에는 그렇게 강조된 스룹바벨이나 예수아의 일이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날짜도 스가랴의 이름도 나오지않는다. 문체나 용어도 다른데다 시와 산문이 섞여 있어서, 시대도 전연 다른 것을 상상케하는데서이다.그러나 여기에 보여지는 상위는, 저자를 한 사람으로 하는 설을 버리지 않고서도, 충분히 설명할 수가 있다. 즉 1-8장에서는 선지자는 동시대의 된 일에, 특히 성전 재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대하여, 9-14장에서는, 메시야의 내림과 그 지배의 바상함 등, 미래의 일을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연히 전자의 문제는 역사적이고, 후자의 그것은 묵시적이다. 아마도, 예언의 전반은 스가랴의 생애의 초기의 것, 후반은 그의 만년의 일로 여겨지고있다. 본서의 내부의 증거는 저자의 동일성과 함께 포로후의 기록된 것을 지지하고 있다.

 

4. 본서의 시대적 배경과 내용 - 스가랴의 최초의 메시지가 말해지기 전에, 귀환민은 학개의호소에 응답하여, 공사재개에 나서 있었다. 학개의 선교는 힘찬 단순한 것으로써, 그는 그것으로 확실히 목적을 다했는데, 스가랴는 조금 더 백성과 지도자들의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들의 현재의 영적 필요를 보고, 그것에 대해 지침과 격려를 주는 스가랴의 설교는 말하자면 목자적 배려로 뒷받침된 것이었다. 건축 완성이 가까워짐에 따라, 새 시대의막이 열리려 하는데 대해 사람들은 방황하여, 이 새로운 사태에 대하여 적절한 지도를 구하는 소리가 일어났다(슥 7:2,3). 그것에 답하여 새 축복의 시대가 시작되는 일을 말하고, 미래의 영광의 시대를 약속하고 있다(8장).그러나 성전이 완성된 후, 사태가 급속히 호전될 것으로 기대했던 사람들의 그것은 생겨 나오지 않았다. 이 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의 사자는 보다 일층 곤란한 사명을 지게된다. 말라기시대에 노골적으로 된 나쁜 조짐이 성전 완성 후, 몇년인가 지나는 동안에, 지난날의 열심의반동으로서 이미 시작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시기에, 하나님의 변함 없는 진실과약속의 확실성을 계속 말하여, 미래에의 희망을 가지에 하려는 선지자는, 들으려 않는 양에의해 시달리는 목자의 경험을 했으리라. 그리고, 다시 한번, 남왕국 멸망 전후의 선배 선지자들, 특히 예레미야의 모습을 생각하고, 참 목자이신 주의 뜻을 알았음에 틀림없다. 이같이하여 전기(1-8)의 예언과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되리 만큼, 선지자로서 심화된 체험 가운데서, 그 후기의 예언은, 극히 메시야적 색채가 짙은 예언이 생겨나온 것으로 여겨진다.

 

-내용구문-

제1부 1-8장 그 시대에의 메시지

1. 회개의 권고 ㆍㆍㆍㆍㆍ 1:1-6

2. 여덟가지의 이상 ㆍㆍㆍ 1:7-6:8

(1) 말의 이상(1:7-17). 유다의 축복된 미래를 예고한다.

(2) 네 뿔과 네 공장(직공)의 이상(1:18-21, 히브리원서 2:1-4). 네 뿔이 네 공장에 의해 파괴된 것은, 유다의 속국이 멸망하는 예언이다.

(3) 측량줄을 가진 사람의 이상(2:1-13, 원본은 2:5-17). 예루살렘의 성읍의 확대와 번영과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에 만국인이 와서 복종할 것을 말하고 있다.

(4) 대제사장 예수아의 복직(3:1-10). 대제사장 예수아가 여호와께 죄사함 받고 아름다운 옷이 입혀지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의 미래의 행복이다. 특히 종교지도 자가 격려되어 있다.

(5) 금 등대와 다함 없는 기름(4:1-14). 여기서는 정치지도자 스룹바벨과 그가 지은 집에 대해 말해져 있다. 넷째 이상에서는 오로지 종교의 수뇌가 고무된데 반해, 이 제5이상에서는주로 정치의 수뇌가 격려되어 있다.

(6) 날아다니는 두루마리(5:1-4).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죄인에게 미칠 것을 보여준다. 길이 10m, 폭 5m의 두루마리에 도적질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의 저주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 두가지 죄는 사람에 대한 죄와 하나님께 대한 죄로서 당시의 귀환자의 가난한 사회환경에 있어서는 대표적인 죄이다. 그러나 이 죄도 메시야가 와서 율법이 완전히 행해지게되면 소멸된다는 것으로서, 역시 새시대의 도래를 암시히고 있다(8:9-13 참조).

(7) 에바 가운데 앉은 여인 이상(5:5-11). 이것은 사람들의 죄를 상징하는 여인을, 시날 땅즉 바벨론에 옮기는 것을 말한다. 영리적, 상업주의적 죄악의 상징이 예루살렘에서 죄악의소굴인 바벨론으로 옮겨져 버린 것을 말한다(8:14-17 참조).

(8) 네 병거(兵車)의 이상(6:1-8). 하나님의 심판을 행하기 위해 털색을 달리하는 말이 끄는 네병거가, 땅의 4방으로 향하여 가는 것이다. 병거는 싸움의 상징으로, 하나님의 뜻에 어긋 반항하는자를 정복하는 임무가 주어져 있다. 그리하여 이 이상은 최후의 매듭으로서 마침내메시야 시대의 내림을 고하는 것이다(8:18, 19 참조).이 제1부의 끝 부분(7-8장)은 주로 금식에 관한 것이 기록되어 있는데, 형식화한 종교적 행사보다도, [실생활에 있어서의 사람과 진실과 평화]가 요구되고 있다.

 

제2부(9-14장) 메시야 왕국의 내림, 즉 예루살렘의 빛나는 미래의 메시지

1. 왕이신 메시야 ㆍㆍㆍㆍㆍㆍ 9:1-11:17

(1) 왕의 승리(9:1-17). 이것은 북에서의 진군(9:1-8), 왕의입성(9:9-10), 백성의 구원(9:11-17)으로 되어 있다.

(2) 목자 없는 시대의 종식(11:1-12). 이것은 서곡, 거짓목자의 탄식(11:1-3), 도살되는 양(11:4-6), 대결(11:7-14), 미련한 목자(11:15-17)의 순으로 되어 있다.

2. 그 날(여호와의 날) ㆍㆍㆍ 12:1-14:21

(1) 예루살렘의 회복(12:1-13:6). 이것은 예루살렘의 포위와 구원(12:1-9), 백성의 탄식(12:10-14), 부정의 제거(13:1-6).

(2) 불량한 목자에의 매와 택함 받은 자(13:7-9).

(3) 대환난과 주의 개입(14:1-15).

(4) 구원의 완성(14:16-21). 파국적인 상황중에 행해지는 심판의 광경의 후에,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순서는 마침내 완성기에 들어간다. 이방 여러 국민은 하나님 예배자로 되고, 이스라엘은 [거룩한 백성]이라는 칭호(출 19:6)에 맞는 자로 된다. 그가 [만군의 여호와], [천하 만국의 왕](16-17)이라는 칭호에 합당한 분이심을 전 인류가 아는 때, 그것이야말로 인류의 구원은 완성이고, 스가랴의 예언의 결론이다. 이것은 본서 1부의 결론(8:20-30)과 부합한다.

[문헌] H.G. Mitchell, J.M.P. Smith, J.A. Bewer: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 ary onHaggai, Zecharlah, Malachi and Jonah, 1912; W.E. Barnes: Haggai andZechariah(Cambidge Bible), 1917; E. Sellin:Das Zwolfprophetenbuch(Kommentar zum AT), 1922, 19303; F.Horst: Die zwolf Kleinen Propheten Nahum bis Naleachi (Hand buch zum AT),1954;[新聖書大辭典](1971, 837-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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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Zechariah(인명)

 

(hy:r]k'z] , Zechariah) 「여호와는 기억하심」

[1]이스라엘 왕(즉위 BC 745-744년)이며 예후 왕조 최후의 왕이다. 그는 유다 왕 아사랴의 38년에 사마리아에서왕위에 올랐으나, 그의 치세 기간은 불과 얼마 안되었다(6개월). 그는 여로보암 2세의아들이었으나, 그 열조의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하였기 때문에 느밧의 아들 살룸이 그를 모반하여 이블르암(Ibleam)에서 쳐 죽였다.이로부터 이스라엘 말기, 곧 망국사가 시작되니 우상숭배와 반역, 살륙, 전란이 접종하게 되었다. 내우외환의 국사다난한 때를 당하였다. 여호와께서는 이미 예후에게 그의 자손이 4대까지 계속될 것을 예언한 바 있으니 꼭 그대로 이루어졌다(왕하 10:30).

 

[2]히스기야 왕의 외조부이다(왕하 18:2).

 

[3]르우벤 지파의 한 족장인데,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로잡혀 갔던 브에라의형제이며, 바알의 아들이다(대상 5:7).

 

[4]레위 지파 고라 족속 아삽의 자손 고레의 손자이며, 므셀레먀의 아들이다. 그는 다윗 시대에 회막 문지기 212명 중의 한 사람이다(대상 9:21,22,26:2). 그는 또 명철한 의사(議士)이다(대상 26:14).

 

[5]베냐민 지파 사람인데, 기브온의 여이엘이 아들 마아가의 소생이다(대상 9:37). 역대상 8:31에는 세겔이다. 전통적인 모음화가 옳으면 세겔은 「기억」과 같은 의미의이름이다. 그러나 아마 `아하시야'를 `아하스'라고 하듯이 `스가랴'의 단축형으로써`세겔'로 발음되는 「기억된」 이란 뜻이다.

 

[6]레위 사람인데, 하나님의 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셔올 때 행렬의제 2대에서 비파를 타서 여창에 맞춘 자이다. 후에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위해 친 장막에서 섬기며, 여호와를 칭송하며, 감사하며, 찬양하였다(대상 15:18,20,16:5).

 

[7]다윗 시대에 여호와의 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셔올 때 나팔을 불은 제사장의 한 사람이다(대상 15:24).

 

[8]레위 지파 웃시엘의 자손 잇시야의 아들인데, 다윗 시대 사람이다(대상 24:25).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의 무덤[9]레위 지파 므라리 자손 호사의 네째 아들로서, 다윗 시대에 성전 문지기의 반장 중의 한 사람이다(대상 26:11).

 

[10]길르앗의 므낫세 반지파(요단 동쪽)의 관장인 잇도의 부친이다. 다윗 시대의 사람이다(대상 27:21).

 

[11]여호사밧 왕 제 3년에 유다 여러 성에 보내어 개혁 사업의 일환으로 백성에게 율법을 가르치게 한 방백 중의 한 사람이다(대하 17:7).

 

[12]레위 사람인 아삽 사람 마다냐의 현손이며, 여이엘의 증손이며, 브나냐의 손자 야하시엘의 부친이다(대하 20:14).

 

[13]이스라엘 왕 여호사밧의 네째 왕자이다(대하 21:2).

 

[14]대제사장 여호야디의 아들이다. 부친과 같이 그는 정의의 사람으로서 유다 왕 요아스 치세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신이 그를 감동시키매 그는 여호야다의 사후에 일어난 배교에 대해 백성 앞에서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치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린 고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고 백성에게 충고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요아스 왕의 명령에 의해 성전 뜰 안에서 분향하는 제단과 왕궁 사이에서 피살되었다(대하 24:20-22,마 23:35,눅 11:51). 요아스는 자기가 구명된 것도, 왕위에 오른것도, 초년에 선치한 것도 모두 여호야다의 은혜인데, 그 은인의 아들을 이렇게 배은망덕하게 죽였다. 예수님이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 스가랴에 대한 것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의 무참한 죽음은 수 백년 후까지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 누가복음의 평행구(平行句)인 마태복음 23:35에는 그는 `바라갸의 아들'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그는포로 후기의 유명한 선지자와 혼동한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이 설명은 어떤 독자가 잘못하여 난외에 쓴 것이 후에 본문에 섞여 들었는지도 모른다. 이 해석이 반드시 있을수 없는 것은 아니다.

 

[15]유다 왕 웃시야에게 하나님을 구하게 한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알았으며,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웃시야 왕은 그의 말을 좇아 하나님을 구하였으므로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다(대하 26:5). 웃시야의 선은 스가랴의 재세시 뿐이기 때문에 의존적 선이지 자발적 선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6]아삽 자손의 레위 사람이다. 히스기야 치세에 여호와의 전을 깨끗하게 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대하 29:13).

 

[17]그핫 자손의 레위 사람이다. 요시야 치세에 여호와의 전 수리 공사의 감독 중의한 사람이다(대하 34:12).

 

[18]요시야 시대에 하나님의 전을 주장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는 또한 제사장이었던 것 같다(대하 35:8)

 

[19]아닥사스다 왕 당시 에스라와 같이 바벨론에서 포로로 귀환한 바로스의 자손이다(스 8:3).

 

[20]아닥사스다 왕 때에 제 2차로 에스라와 같이 바벨론에서 포로로 귀환한 베배의 아들이다(스 8:11).

 

[21]레위 사람의 한 족장이다. 에스라와 같이 바벨론에서 귀환할 때 성전 봉사할 레위사람이 한 사람도 참가치 않아 에스라가 그 사람들을 데려 오라고 가시뱌 지방으로 보낸 사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 결과 하나님의 도우심과 에스라의 성의있는 권유에 의하여 많은 레위인과 하역자(下役者) 느디님 사람이 참가하게 되었다(스 8:16).

 

[22]엘람 자손인데, 포로 귀환 후 에스라의 권고에 따라 이방인 아내와 이혼했다(스10:26).

 

[23]모든 백성이 수문 광장에 회집하고,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서 율법책을 낭독할 때, 그 좌편에 섰던 사람 중의 하나로서, 제사장인 듯하다(느 8:4).

 

[24]유다 지파 베레스의 자손 아다야의 조부이며 웃시야의 부친이다. 그의 손자 아다야는 추첨에 의해 성도 예루살렘에 거주했다(느 11:4).

 

[25]유다 지파 베레스의 자손이다. 실로의 아들이며 요야립의 부친이다. 그의 6대손마아세야는 추첨에 의해 성도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다(느 11:5).

 

[26]바스홀의 아들이며, 암시의 부친인 제사장이다. 그의 현손 아다야는 성도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다(느 11:12).

 

[27]대제사장 요야김 때에 잇도 족속의 제사장 족장이다(느 12:16).

 

[28]아삽의 6대손이며, 요나단의 자손으로서 레위인이다. 재건된 예루살렘 성벽 낙성식에서 형제들과 다윗의 악기를 잡은 사람 중의 하나이다(느 12:35,36).

 

[29]재건된 예루살렘 성벽 낙성식에서 나팔을 분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느 12:41).

 

[30]여베레기야의 아들이다. 이사야가 큰 서판에 `마헬살랄하스바스'(「노략이 속함」)라고 글을 썼을 때, 제사장 우리아와 같이 증인이 된 한 무명의 선지자이다. 이 때에이사야는 아들의 이름을 게시판에 쓴 것과 자기의 최근에 낳은 아들의 명명(命名)에의해 앗수르군이 아람과 이스라엘에서의 침입이 절박했음을 예시하였다(사 8:2).

 

[31]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이며, 12 소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다(슥 1:1). 그의 예언으로 최초로 기록된 것은 다리오 왕 2년의것이다(BC520년,스 4:24,5:1). 그는총독 스룹바벨, 대제사장 여호수아, 선지자 학개와 동시대의 인물이었다(슥 3:1,4:6,6:11,스 5:1,2). 그들은 마음을 합하여 성전 재건 공사 재개를 위해 유대인의 거류민의 지도자를 격려했다. 그는 바벨론에서 출생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포로들은 18년 전에 바벨론에서 돌아와 스가랴는 18세를 지났을 것이다. 아마 그는 18세 이하로서는 예언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레미야나 에스겔과 같이 제사장임과 동시에 선지자였다. 왜냐하면, 느헤미야서에 의하면 잇도는제사장의 족장이며, 스룹바벨과 같이 바벨론에서 귀국한 자 중의 한 사람이며(느 12:1,4,7), 또 그의 손자뻘 되는 스가랴는 예수아의 아들 요야김이 대제사장이었을 때제사장 잇도 족속의 족장이었기(느 12:10,12,16) 때문이다.A.잇도는 제사장의 족장될 연령에 이르렀으므로 귀환한 해(BC 538년)에는 연장자였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의 손자인 스가랴는 다음 세대에 장으로 되었으나, BC 520년에는 소년(여기 `소년'이라고 한 것은 자기의 나이가 적은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스가랴 자신이 선지자로서 천사들 앞에서 매우 연소한 느낌을 가지고 겸손함을 표현한 것이다. 예레미야도 자기의 경험없는 형편을 생각하면서 자기를 `아이'라고 하였다.-렘 1:6), 그러니까 젊은이라고 불리울 연령에 도달해 있었다(슥 2:4).B.선지자의 아버지 베레갸는 제사장 잇도의 아들이었으나, BC 520년 이전에 그 족장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요절한 것 같다. 그래서 스가랴가 다음 후계자로 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때문에 에스라는 그를 `잇도의 아들'(스 5:1,6:14)이라고 불렀으리라(한글판에는 `잇도의 손자'로 되어 있다). 그러나 히브리 풍속에 손자를 아들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베레갸가 생존해 있었더라도 그의 이름은 제외되었을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족속이나 가족 중에서 그 사람의 소속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아버지 집의 이름을 말하면 족하기 때문이다. 베레갸가 요절의 가정(假定)은 포로귀환 후의 계보에서 스가랴가 아버지의 집의 장이었다는 사실과 일치한다.C.스가랴 선지자가 제사장이었다는 설은 그가 제사장의 직무가 이념에 통달해 있었다는 것과 일치한다(슥 3장,4장).그런데,스가랴는 동시대의 선지자 학개보다도 2개월늦게 예언활동을 시작했다(슥 1:1,BC 520년 10- 11월). 그와 학개가 뜻을 합하여 한열성적인 예언과 설교로서 성전은 BC 516년 말경에 완성했다. 학개의 선지자로서의 봉사 기간은, 기록에 의하면 겨우 4개월에 불과했으나, 스가랴의 날짜가 명시된 예언의마지막은 `다리오 왕 4년9월'(슥7:1,BC 518년)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이 기간만해도 2년에 이른 것으로 된다. 그의 예언자로서의 봉사는 약 50년계속되었다고짐작된다. 그는 다리오 ?세(BC 522- 486년)의 사후에도 생존한 것 같다. 그의 예언은 구약성경 중에서 가장 메시야적이며, 진정한 의미로 계시적이고 종말적이라고 G. 로빈슨은 말한다. 그는 포로에서 귀환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충성으로 일관하지 않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타락과 배교는 명백하였다. 에스라나 느헤미야까지도 이른바 `남아있는 자'가 아니면 순수한 신앙을 볼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롬 9:6)는 학개와 스가랴가 같이밝힌 바 있다. 그들이 참하나님의 백성의 정신과 품성을 발견한 것은 매우 근소한 사람들에서였다. 이들은 포로 후기의 선지자, 특히 최후의 이 스가랴와 말라기는 회복된사로잡힌 사람에게 소망을 걸지 않고, 모든 예언과 약속을 성취할 메시야의 내림에 걸고 타는 듯한 희망과 기쁨을 나타냈다.그가 기록한 스가랴서에서 특징적인 것을 들면 다음과 같다. 순으로서의 메시야(슥3장 사 4:2,렘 23:5), 제사장으로서의 메시야(슥 6:13), 그리스도의 개선적예루살렘 입성과 임하는 영광(슥 9:9,10), 목자로서의 메시야(슥 11:12,13), 그리스도의 십자가(슥 12:10), 그리스도의 고난(슥 13:7), 그리스도의 재림(슥14:1-21)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