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학의 교육 2/[인터넷성경교육]

청년은 무엇으로 자라는가 ?

好學 2009. 7. 27. 16:58

 

제 목 : 청년은 무엇으로 자라는가 ?
교회:동안교회
강사:김동호 목사
논지:청년부에 부흥은 관심과사랑,그리고 이해해 주는 것이다.

강의 요약:
.첫째는 관심과 사랑이다.
.둘째는 이해와 용납이다.
.셋째 연구와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면 청년부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열심히 할 것인가? 저희 교회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을 토대로 몇 가지 방안을 얘기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관심과 사랑

청년들에게는 이게 최고입니다. 제가 3년 반 전에 동안교회에 처음 부임했을 때 마침 노회에서 대학청년부 성가중창대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저희 교회 청년들도 출전을 했습니다. 그때가 토요일 저녁이었는데 제가 장로님들을 모시고 그 곳으로 응원을 갔습니다. 사실 그런 시간에 그런 장소에 간다는 게 나이 지긋한 장로님들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갓 부임한 목사가 가자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서신 것입니다.

그 날 저녁 수많은 교회가 그 대회에 출전했지만 담임목사와 장로님들이 응원 나온 교회는 저희 교회밖에 없었습니다. 저희 교회가 몇 등 했겠습니까? 물어 보나마나 아닙니까? 1등 했습니다. 왜냐하면 기가 살면 1등하게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어른들이 관심을 보여 준 것이 청년들에게 굉장한 응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 한 번은 청년부 체육대회를 앞두고 제가 예배 시간에 광고를 했습니다.
"장로님들은 이번 체육대회에 오셔서 응원해 주십시오. 안수집사님들은 콜라 사오시고 여전도회원들은 밥 해서 오십시오. 장로의 제일 가는 사명은 청년들 체육대회 할 때 저녁 사 주는 데 있습니다. 장로는 그러라고 세운 것입니다. 안수집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청년부 체육대회 계획을 세우면서 식사비와 간식비를 예산에 넣으려는 것을 제가 못하게 말렸습니다. "청년들 간식비를 교회 예산으로 해결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 청년들 저녁은 안수집사님과 장로님들이 사야 한다. 또, 여전도회는 뒀다 어디에다가 쓰느냐? 청년들 체육대회 하는데 여전도회가 밥 지어 주는 게 도리 아니냐?"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체육대회는 모두 찬조금으로 치렀습니다. 음식도 풍족했고 장로님들과 안수집사님들도 다 와서 응원해 주고 가시는 바람에 체육대회가 아주 흥겨웠습니다. 이게 바로 관심과 사랑입니다. 이 사랑과 관심을 보여 줄 때 청년부가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쉽지 않습니까? 기를 조금만 살려 주면 됩니다. 청년부에 행사가 있으면 찾아가서 "수고한다", "너희들 잘한다" 하면서 등두드려 주면 됩니다. 여기에는 담임목사와 장로의 역할이 참 중요합니다. 몇 년 전에 저희 교회 청년부에서 기도원으로 수련회를 갔을 때 장로님들이 아주 깜짝 놀랄 일을 하나 하셔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한창 더운 여름에 수련회를 하느라 고생할 청년들을 생각하며 간식을 사들고 기도원엘 좇아갔는데 어느 장로님이 아이디어를 냈는지 큰 아이스박스에 팥빙수를 가득 채워서 산으로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청년들이 까무러치게 좋아 했습니다. 산에서 팥빙수를 먹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나중에 청년부 회지에 쓴 걸 보니까 우리 장로님들 멋쟁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희 교회는 대학청년부에 예산을 많이 보조해 주지 않습니다. 청년들도 경제력이 있기 때문에 교회에서 많은 보조를 해줄 필요가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뭐든 청년들 자체적으로 해결하게 합니다. 그러나 중창대회나 체육대회 그리고 수련회 같은 행사가 있을 때면 간식이나 식사를 제대로 챙겨 줍니다. 이런 것이 바로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 되기 때문입니다. 1년에 한두 번 이렇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로서도 사실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관심과 사랑만 가지면 청년부는 반드시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청년들은 기만 살려 주면 저 혼자 큽니다.

둘째/ 이해와 용납

신앙에는 좌와 우가 있으며 진보와 보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판단 할 때 저는 우쪽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물론 완전 극보수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청년들이 볼 때 저는 보수주의자입니다. 또 우에 섰지, 좌에 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운동권에서 활동하거나 해방신학에 빠져 있는 학생들을 쫓아다니면서 말리고 그런 강의도 많이 했습니다. 저희 교회에도 청년들이 많다 보니 좌파 성향을 띤 청년들이 있습니다. 또, 있는 게 정상입니다. 그러니까 저희 교회엔 좌와 우가 골고루 섞여 있는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와 용납이 필요합니다. 이런 마음가짐이 청년부에 건전한 성장을 가져 오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고 나올 때였습니다. 청년부 주보가 눈에 띄길래 무심코 읽어 보았습니다. 저희 교회 어느 청년이 쓴 글이 실려 있었는데 할아버지들이 보면 빨갱이 글이라며 노발대발할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얼마 전에 저희 교회를 다녀가신 복음주의 학원 선교단체의 어느 목사님에 대해서도 온갖 독설로 악평을 해 놓은 것을 보니 제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그래서 그 길로 곧장 그 청년에게 전화를 걸어서 교회로 좀 오라고 했습니다. 새벽기도가 막 끝난 이른 시각이라 청년은 자고 있었지만 그래도 깨워서 내 방으로 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 청년이 집에서 버스를 타고 교회에 도착한 시각이 새벽 6시 40분이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예전 목사님과도 이런 일로 여러 차례 부딪친 적이 있는지라 내가 이 새벽에 저를 왜 불렀는지 그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래서 제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그 청년에게 일단 전화를 걸어 놓고 나서 저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번 일이 동안교회 청년부를 바로잡고, 또 제가 지도자로서 귀한 것을 배우는 매우 중요한 기점이 되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념 논쟁 때문에 교회내에 싸움이 붙으면 교회가 풍지박살이 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청년을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애끊는 심정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이 사태를 잘 수습할 수 있기만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게 정말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 청년이 왔을 때 제가 던진 첫마디는 "너 내가 너 좋아한다는 거 아냐?"였습니다. 우리 청년들은 제가 자기들을 좋아한다는 걸 압니다. 여러 일들을 통해서 증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내가 자기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 리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목사님은 저하고 생각이 다르고 목사님은 전통적인 흐름에 서 있는데 반해 저는 여전히 급진적인 노선에 서 있으니 담임목사가 저를 좋아할 리 없을 뿐더러 눈 밖에 났 을 게 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청년은 워낙 말씀을 들을 때도 저에게 눈길 한 번 주는 일이 없었습니다.

답을 뻔히 알면서도 제가 물었습니다.
"내가 너 좋아한다는 걸 아느냐?"
느닷없는 물음에 당황했는지 아무 대답을 못하고 가만히 있길래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내가 왜 너를 좋아하는지 아느냐?"
또 대답을 못합니다. 목사님이 저를 좋아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 대답을 못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제가 일러줬습니다.
"네가 나와 다르기 때문에 내가 널 좋아한단다. 신앙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아야 하는데 나는 암만 해도 우로 조금 치우친단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좌측의 얘기를 해주어야 균형이 맞아. 그런데 너는 내가 할 수 없는 소리들을 하잖니. 그래서 내가 널 좋아하는 거야."
그러면서 계속 말을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너도 나를 좋아해야 된다. 네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나한테는 단점이고 네가 가지고 있는 단점이 나한테는 장점으로 있으니까 너도 나를 좋아해야 돼. 그래야 어느 쪽으로든 치우치지 않게 되거든."
그러면서 우리 둘 사이에 얘기가 통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얘기를 주고 받다가 제가 마지막으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 친구가 운동권 서적을 많이 읽는 청년이라 한 말이었습니다.
"너 그쪽에만 너무 관심을 두다 보면 성경 읽는 것을 게을리 하게 되고, 그러면 결국은 밥 먹는 일을 자꾸 잊어버리게 된단다. 밥 안 먹고 딴것만 자꾸 먹으면 되겠니? 그러니까 밥 좀 많이 먹어라." 그랬더니 그 아이가 일어나면서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합니다.
{예, 제가 요즘 밥을 많이 못 먹었습니다, 목사님.}
얘기는 그렇게 잘 끝났습니다.

그 청년이 만약 믿음의 중심과 양심에서 벗어난 친구였다면 제가 그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쫓아내든 아니면 어떻게든 바로잡아 보려고 했을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 그 친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와는 분명 신앙의 색깔이 달랐지만 그도 그 나름대로 믿음의 양심을 지키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받아 주었습니다. 그게 용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너, 네 할 말 계속하며 살아라. 다만 너무 지나치지 않게 하렴. 용어 사용 조심하고 독선적으로 흐르지 않게 조심해라. 너와 달라도 그 사람에게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너 나 좋아해야 된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산다면 그 청년은 분명 근사한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그는 끝끝내 나와 같지는 않을 겁니다. 나하고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꼭 나를 닮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뭐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입니까? 모험 같지만 저는 서로 색깔이 다른 청년들을 포용하는 게 가능하다고 봅니다. 받아 주고 용납하면 색깔이 다른 사람들이라도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연구와 투자

실제로 저희 교회에서는 청년부를 발전시키기 위한 연구위원회를 가동했었습니다. 각 청년부의 임원단과 부장들과 지도 교역자들이 모여서 위원회를 구성하고 여러 작업들을 함께 했습니다. 우선은 설문지로 청년부의 현황을 평가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연구와 평가는 아주 중요한 작업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문제점은 모든 일을 주먹구구로 하는 데 있습니다. 아주 엉성하더라도 계획을 세우고 평가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까지는 한국 교회가 워낙 대충대충 목회를 해 왔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조금만 신경 써서 계획적인 목회를 하면 크게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또 대학청년부 목회자는 책도 찾아 읽고 좋은 강의도 쫓아다니면서 들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읽고 들은 것을 종합해서 자기 나름대로의 계획안을 만들고 그대로 실천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구하는 목회자가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또한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 제가 섬기고 있는 이 동안교회가 사실은 제가 자라던 동네에 있던 교회인데, 물론 제가 출석하던 교회는 아닙니다. 아무튼 그래서 이 교회를 어릴 때부터 잘 압니다. 예전에 제가 이 교회에 여름성경학교 교사 강습회 강사로 왔을 때였습니다. 고등부실에서 강습회를 했는데 에어컨은 없고 선풍기만 몇 대 돌아가서 강의가 끝날 무렵엔 덥길래 본당에는 에어컨이 있느냐고 제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자랑하듯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이 교회는 10년 안에 망할 교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다들 깜짝 놀랍니다. 웬 독설인가 싶었겠죠.
"아니, 어른들 방에는 덮다고 에어컨 갖다 놓을 줄 알면서 학생들 방에는 선풍기 갖다 놓는 정신 가지고 어떻게 10년을 버틸 수 있겠습니까? 그 정신 가지고는 결코 10년 버티지 못합니다. 1년 안에는 망할 것입니다."
그랬더니 다들 알아듣고서는 아멘 아멘 합니다. 그런데 몇 년 후에 제가 그 교회에 담임목사로 가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12월에 부임을 하고는 다음해 3월이 되어서야 고등부실에 아직도 에어컨을 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실컷 아멘만 해 놓고 실천을 안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 중에 느닷없이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본당 에어컨을 떼든지 애들 방에 에어컨을 달아 주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입니다. 그해 여름 이 될 때까지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으면 본당 에어컨도 가동하지 않을 작정이었습니다. 떼는 것까진 몰라도 아무튼 가동은 하지 않을 참이 었습니다. 애들은 참아도 된다는 사고방식으로는 교회가 올바로 설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과감히 얘기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해 에어컨을 설치하느라 예산에 없는 6,000만 원을 썼습니다. 비록 막대한 돈이 들기는 했지만 그 일 때문에 동안교회의 교회학교가 성장하는 틀을 잡 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중히 여기고 그들에게 투자하는 마음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요즘 저희 교회가 교회를 새로 지으려고 설계에 들어갔는데 제가 건축비를 제일 많이 투자하려고 하는 공간이 청년들이 쓰는 공간입니다. 한 층은 온전히 청년들의 분위기에 맞게 모든 시설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교회 건축에 임하는 저의 자세를 한마디로 말하면, 공사비를 아끼고 평당 건축비를 최소한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건축에 투자를 너무 많이 해서 교회가 으리으리해지면 가난한 교인들이 교회를 제 집 드나들 듯 편한 마음으로 오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주 평범하게 지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청년들을 위한 공간만은 다른 공간들보다 훨씬 더 좋게 하려고 합니다. 또 청년들에게 약속한 것도 있기 때문에 이 계획만은 꼭 밀고 나갈 것입니다.

저는 대학청년부와 중고등부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교회에 잘 모이는지 압니다. 지금 고등학교 1학년인 우리 집 아이가 가르쳐 준 방법인데 교회에 농구 골대를 설치하는 것입니다. 동네 성당에 농구 골대와 음료 자동판매기가 있는데 아이들이 그리로 수시로 모인다며 우리 집 아이가 귀띔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건축을 새로 하면서 그것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교회 1,2층을 주차 공간으로 만들면서 주차장 바닥을 시멘트로만 하지 않고 테니스 코트처럼 코팅을 할 생각입니다. 주차장 전체가 운동장이 되도록 말입니다. 구획을 지어 한 공간은 이미 실내 농구장으로 꾸며 놓았습니다. 또 한 구획에는 베드민턴장이 있는데 거기에는 관중석까지 만들어놔 응원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저희 교회는 청년부에게 활동 예산을 많이 주지 않습니다. 저희 청년부가 5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청년 1부당 1년 예산이 400만 정도이니까 어디 내놓고 자랑할 만한 규모는 못됩니다. 물론 청년부 전체가 공동으로 쓰는 예산이 있으니 정확히 계산하면 이보다는 더 되겠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청년부 예산에는 다소 박한 면이 있지만 교역자에게는 많은 투자를 합니다. 그래서 청년부 전임 전도사가 한 명 있는데 올해도두 분을 전임으로 더 모셨습니다. 교역자에게 하는 투자가 사실은 더 큰 투자일 수 있습니다.

자꾸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청년들에게 투자해야 합니다. 투자하고 마음 쓰면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투자가 곧 관심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