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쪽에 미국 국립공원 제 1호 옐로스톤이 있고 그 밑으로 그랜드 테톤 국립공원 등 스윗워터 카운티에 소재 한 작은 도시 락 스프링스, 지금 2만 명이 사는 도시가 되었지만 그 곳에는 잊혀지지 않는 슬픈 역사가 담겨져 1849년 경을 시작으로 미서부지역에서 금이 발견되어 많은 사람들이 서부지역으로
경치 좋은 록키 산맥 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인디안 싸이안 족이 살았던 와이오밍주의 남쪽
있는 곳이다
롹 스프링스 시청건물
롹스프링스 석탄광산
이곳은 120년 전인 1885년 중국인의 도시라고 하여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중국사람
들로 번성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서부개척시대 미국 역사 속에 남아 잊혀지지 않는 인종혐오 범죄가 일어났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주를 하여 태평양 연안에 도시들이 형성되자 정부에서는 철로회사를 지원하는
법을 제정하고 군대와 필요한 물자 그리고 왕래하는 승객들을 운반할 기차 길 건설을
계획하였다
뒤 이어 1861년 새크라멘토에 센트랄 퍼시픽 철도 회사와 다음해 1862년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 유니온 퍼시픽 철도회사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남북전쟁의 결과로 노예제도가 폐지 된 미국에서 싼 임금의 노동자를 구하기
쉽지 않아지자 그 대체 인력을 데려 올 곳을 물색하였다
흑인들은 아프리카에서 대서양을 통하여 데려 왔지만 태평양 철도회사는 아시아에
눈을 돌렸다
제일 우선은 아편전쟁에서 영국에게 패배한 이빨 빠진 사자에게 물었다
아편전쟁
"우리는 일할 사람 필요한데 여기 사람들을 미국에 데려가 일자리를 주겠소"
아편전쟁 결과 대자보를 보는 중국인들
"그러세요…"그리고 이빨 빠진 사자(청국)는 데려 갈 사람들의 여권을 만들어 주었다
백성이 헐벗고 굶주려도 국가는 나 몰라라 하는데 ..미국에 가면
금산이 있어 노다지를 캘수 있다고 하거든? 발 안달린 소문이 중국에까지 퍼졌다
켈리포니아에 가면 금노다지가 있다고 ...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들과 일자리를 찾는 많은 사람이 줄을 지어 먼길을 떠날 각오를
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중국인 이민자는
185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간 중국이민자 수가 3,227 명이던 것이
1860년대에는10배가 넘은 34,933명이 되었다
1870년대 다시 배가 되어 63,199명이던 이민자 수는
1880년대는 10만 명이 넘어갔다
이민 수속하는 중국인들
중국인들…
말은 안 통하지만 시키면 네네 하며 일은 열심히 잘하는 민족이었다
말 통한다고 말 대꾸나 하며 틈만 나면 구실을 만들어 농땡이나 치려는 백인들과는
영 딴판인 민족이었다
거기에다 임금도 백인의 반만 주어도 네네 ..쎄쎄..
철도회사 유니온 퍼시픽사는 중국인 노동자들에게 주로 험한 일을 시키며 기차 길을
건설하였다
말이 월급 받는 노동자라지만 노예나 다름 없는 그들의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눈속에서도 철로를 놓는 중국인
그들의 특징은 돈을 벌어 안 쓰는 것이다 목마르다고 맥주 벌컥 들이 마시고 기분 좋다고
위스키 마시고 기분 나쁘다고 술에 취하는 백인들과는 차별이 되게 필요 없는 낭비를
절대로 하지 않는 근검절약을 하는 없는자의 근성을 확실히 보여 주었다
유니온 퍼시픽 철도회사는 기차를 운영하려면 석탄이 필요하다며 와이오밍에 석탄
광산을 사들여 경영에 참여하였다 물론 싼 인건비로 가장 일 잘하는 중국 싸람을 데려왔다
당시 롹스프링스의 전경
롹스프링스 기차역
석탄 광산에 중국 노동자들이 들어 오자 가까운 라라미와 레드데저트에 먼저 와서 철로
노동자로 일하던 중국인 노동자들이 집중적으로 롹 스프링으로 모여 들기 시작 하였고
따라서,
롹 스프링스 마을 인구는 탄광이 들어서고 나자 4-5백명의 주민의 수가 3천명으로
늘어 나며 중국인수는 한때 백인들의 마을이라는 불려졌던 곳에 백인 동네에 주류가
될 정도로 번창하였다
백인들은 객지에서 혼자 살며 푼푼히 모아 논 중국인의 돈 좀 긁어 가려고 술집에
몸파는 여자를 데려다 놓고 도박장 호텔 등을 차려 놓았는데 돈 좀 모아 논 중국
녀석들은 눈을 씻고 보아도 오지를 않고 있었다
그러다 조금 세월이 지나다 보니 술집 옆에다 세탁소 차려 놓고 아가씨들 옷 빨아 주고
다려 주는 것이 아닌가..
밤새 호텔에서 힘쓰다 속이 비어 있는 손님들도 먹어야 하니 세탁소 옆에 자장면 집도
차리고..
백인 아저씨들 피곤한 몸좀 풀어지라고 이발소 차려 머리 깍고, 발마사지하고...
거의 도시의 경제는 서서히 중국인들이 없으면 안될 지경에 이르렀다
백인들은 일자리가 없어 죽치는데 중국인은 닥치는대로 일을하는 풍자 만화
요리사, 이발사, 바텐더, 도박사 ,목수, 하인, 청소부등 치사하고 힘든 일은 중국인들이
도맡아 하였다
거기에다 유니온 퍼시픽 광산은 사업을 확장하고 신규 광부를 백인 50명과 중국인
노동자 150명을 추가 하자 광산노동자들도 중국인이 숫자가 부쩍 늘어 가기 시작하여
백인 광부 150명에 중국인 광부의 수는 331명에 달하여 백인보다 두배나 많아 졌다
결과적으로 백인 노동자들은 입지가 좁아지자 불만은 고조되었고 타운에는 타지에서 온
노동자의 기사단이라는 자들이 수시로 모여 싸롱에서 수근대며 뭔가 불안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사건은 불만을 품은 광부들로부터 시작되었다
1985년 9월2일 오전 7시 광산 6광구에서 거칠은 백인 광부가 총으로 중국 광부를
살해 하였는데
밖에서는 아는지 모르는지
회사측에서는 쉬쉬 하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점심시간이라고 직원들을 집에 보냈다
오후 일과가 시작 될 때 무장한 한 때거리가 몰려 들어 왔다
사건은 분명히 누군가 뒤에서 조정하여 주도 면밀하게 계획된 시나리오에 의하여
진행것이 확실하였다
도시는 벌써 윈체스터 라이플로 무장한 이백 명넘는 백인 난폭자들에게 점령 당하여
싸롱이나 식품점들은 문을 닫고 있었다
난폭자들은 도시를 빠져 나갈 요소 요소 길목을 차단하고는 살려고 발버둥치는
피난민 중국인들을 보이는 대로 학살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더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중국인들이 사는 지역에 들어가 남녀 노소를 가리지
않고 잔인하고 악랄한 폭행을 하고 피땀 흘려 모아 놓은 재산을 강탈 하여갔다 집들은
방화하여 작은 도시는 화염 속에 휩싸였다
신문에 난 당시 상황그림
공포 속에서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던 중국인들은 3일만에 도착한 제 7 기병대에 의하여
구출 되었지만 수십명의 목숨은 이미 사라지고 79채의 집이 방화되어 소실되고 수십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여 쓰러지고 난 후 였다
공식적으로 광부28명 피살 중상자 15명은 확인 됬지만 그외 40-50명의 달하는 중국인
사상자의 피해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재산 상의 피해도 그 당시 돈으로 15만 불에 달하였다니 엄청난 피해액이었다
결과
일 주일 후 회사측은 폭동에 적극 가담한 45명을 해고 하고 광산운영을 계속하였고
집 잃은 중국광부들도 일자리로 돌아 갔다
재판에 회부된 폭도들은 18명에 불과 하였고 그나마 1달 후 모두 석방되었다
정부에서는 피해액을 보상 하여 주기로 하였고 2개 중대의 연방군대를 주둔시켰다
롹스프링스에 도착한 제7기병대
그러나 이 사건이후 배후 세력이었던 백인 위주의 '노동자의 기사단'이라는 단체는 오레곤 주와 와싱톤주 씨아틀, 타코마등지로 그 세력을 펼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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