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自由/[時時 Call Call]

[김대중 칼럼] 대통령이 뭐길래

好學 2012. 11. 25. 08:07

[김대중 칼럼] 대통령이 뭐길래

 

조선일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발언을 접하면서 새삼 오래 품어왔던 회의가 일었다.

대통령이 도대체 무슨 권한이 있기에 한 나라의 영토 또는 이에 준하는 관할 구역에 대한 결정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다.

대통령이면 자기 나라 땅이나 물건을 마음대로 다른 나라에 줘도 되고, 중요한 안보 사안에 무슨 결정을 내리건 국민이 따라야 하는가?

↑ [조선일보]김대중 고문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북한 에 다녀와서

  "NLL은 어릴 적 땅따먹기 할 때처럼 일방적으로 그어놓은 선이다. 그 선은 처음에는 작전금지선이었다. 이것을 오늘에 와서 영토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남북 간에 합의한 분계선이 아니다"

라면서 NLL은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라고까지 했다.

남북한이 '합의'한 분계선이 없다고 치자. 하지만 휴전 당시 북한 측은 미군 측이 제시한 NLL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그런 연후 지금까지 60년을 그 상태로 왔다. 분계선이 없다면 새로 분계선을 합의할 때까지 현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합의'가 없었다고 해서 60년 지속돼온 NLL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그것도 한국의 대통령이 제멋대로 유권해석을 하는 것은 명백한 헌법적 월권이며 남용이다.

노무현식(式) 해석대로라면 지금 서해안에는 남북한 경계선이 없으며 따라서 북한 배나 군함이 마음대로 내려와도 되고 같은 논리로 우리가 마음대로 올라가도 된다는 얘기다.

모든 나라의 땅과 물에는 '실효적 지배'라는 것이 있어 우리가 독도를 가질 수 있듯이 NLL은 우리가 60년간 실효적으로 지배해온 우리의 '영토'에 속한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다.

그런데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무슨 권한으로 그것을 '땅따먹기'라고 하는 것인가. 그렇다. 역사를 보면 세계 모든 나라의 영토는 원래 '땅따먹기'로 정해진 것이고 서해 NLL도 '따먹은 땅'이라면 당연히 '우리 것'이고 지켜야 한다.

문제는 대통령이 뭐길래 자신의 주장을 '대한민국의 의견'인 양 내세우느냐는 것이다.

민주주의 제도를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대통령이 국민의 선출에 의한 '대표국민'이라는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리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대통령을 뽑을 때 당신에게 일임했으니 당신이 다 알아서 땅을 주든 돈을 주든 주권을 양보하든지 하라고, 다시 말해 나라의 운명을 맡긴 것이란 말인가.

아니, 그런 주요 국가적 사안을 혼자서 다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의회를 만들고 내각을 뒀으며 야당이라는 존재를 인정해준 것이다.

그런데 우리네 대통령 또는 권력자, 심지어는 국회의원까지 자기들이 국민의 표(票)로 선출됐다는 논리 하나만으로 자기들 마음대로 나라를 요리하고 제멋대로 '국민의 것'을 주무르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 국민의 절반 또는 반대자·반대 의견이 적법하게 제시돼도 민선(民選)임을 방패 삼아 그것을 무시하고 나라를 한 방향으로 편파적이고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것이 작금의 한국의 대통령 1인(人) 정치판이다.

게다가 우리의 대통령들은 워낙 '잘난 분'이라서 그런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경향이 있어 왔다. 처음에는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며 탕평을 약속하고 소통을 다짐했다가도 조금 지나면 어김없이 '브레이크 없는 임금'으로 군림하곤 했다. 그들이 기용했다는 참모도 거의 예외 없이 '예스맨'뿐이고 대통령 앞에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는 것이 출세 길인 것을 너무도 잘 아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대통령 주변'의 역사다.

때마침 전직 국회의장·국무총리·당대표 등 여야 정치 원로들이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대선 후보들에게 공약할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도 사실 대통령이 너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그래서 옛날 임금보다 더한 권력을 쥐고 군림하는 권위주의 정치를 개선하자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다.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의 '원맨쇼'를 너무도 뼈저리게 경험했을 그들이기에 그들의 주장에 무게가 실려야 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현 대선 주자들은 원로들의 충정 어린 제안이랄까 당부를 여전히 못 들은 척하고 있다. 제안자의 한 사람인 전 총리는 "세 후보 진영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우리가 나선 것이 오히려 쑥스럽고 난감할 따름"이라고 했다.

하긴 '제왕(帝王)'의 자리가 눈앞에 어른거리는데 '분권(分權)' 운운은 밥그릇 빼앗아가는 소리로만 들릴 게 뻔하다. 대선이 갈수록 너 죽고 나 죽고 식의 목숨을 건 투쟁 판으로 변질해가는 것도 이 '제왕'의 밥그릇과 직결돼 있다.

대통령 한 사람의 주장과 결정이 나라를 이리 끌고 저리 미는, 그런 속수무책의 정치를, 그것도 한번 뽑으면 5년은 빼도 박도 못하는 이 도박장 같은 대선판의 낡은 권위주의 레코드를 우리는 언제까지 틀어야 하나. 누가 아는가. 이러다가 또 어느 정신 나간 제왕적 대통령이 등장해 '독도는 원래 일본 땅'이라고 망발하는 일이 생기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