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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Hong Kong,香港(샹강)]

好學 2012. 10. 22. 12:02

홍콩[Hong Kong,(샹강)]

 

중국 대륙의 남동부에 있는 특별행정구.

 

 

 

위치 중국 대륙의 남동부
경위도 북위 22°17′동경 114°08′
면적(㎢) 1104
시간대 HKT(UTC+8)
행정구분 18구
행정관청 소재지 Main Wing, Central Government Offices, Lower Albert Road, Central, Hong Kong
홈페이지 http://www.gov.hk
(바우히니아)
주도 빅토리아
인구(명) 7,054,867 (2006년 )
  • 홍콩의 마천루
  • 홍콩 국기
  • 홍콩 국장

 

주장[] 하구의 동쪽, 난하이[] 연안에 있으며, 광저우[广]로부터 약 140㎞ 떨어져 있다. 홍콩섬과 주룽반도[岛]의 주룽[龙], 신계()와 부근의 섬들을 포함하며, 면적은 1104㎢이다. 과거에는 '샹장[]' 또는 '샹하이[]'라고도 불렸으며, 명() 나라 만력(历) 연간에 동완(东)에서 생산되는 향나무를 중계운송하기 시작하여 '샹강[]'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홍콩은 샹강의 광둥어[] 발음을 영어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과거에는 광둥성 신안현[县; 지금의 선전[圳]]에 속하였으며, 아편전쟁 이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1984년 중국과 영국의 연합성명에 따라 1997년 7월 1일 주권을 회복하고 특별행정구로 지정하였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1국2체제를 취하여 고도의 자치권을 누리는 지방행정구역으로서 50여 년 동안 변함없이 자본주의 사회·경제 제도와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행정구역은 둥구[东]·난구[]·중시구[西]·완짜이구[]·주룽청구[]·관탕구[观]·유젠왕구[]·선수이즈구[]·사톈구[]·취안완구[]·위안랑구[]·황다셴구[]·시궁구[ 西]·베이구[ ]·다푸구[ ]·리다오구[ ]· 툰먼구[ }등 18개 구로 이루어져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구미대륙의 해양을 연결하는 중추로서 상업·무역·금융이 발달하여 '동방의 진주' '관광쇼핑의 천국'이라고 불린다.

신석기시대의 문화유적에서 드러나듯이 6000년 전부터 인류가 거주하였다. 주민은 약 98%가 중국인이며, 나머지 2%는 필리핀·영국·인도·미국 등의 국적 인구가 차지한다. 광둥어를 주로 사용하지만 현재는 중국에서 흔히 보통어라고 일컫는 베이징어[]를 배우는 추세가 잇따르고 있다. 공식 언어는 중국어와 영어를 사용한다.


 

 

 

 

1. 자연

지세는 북부의 신계() 산악지역이 가장 높고 남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진다. 전 지역에 석산과 암석으로 이루어진 섬이 크고 작은 섬이 235개나 되며, 주요 섬으로는 다위산[屿]과 홍콩섬, 난야다오[岛] 등이 있다.

지형은 4개 지역으로 구분된다. ① 신계 산악지역:면적은 약 740㎢이며, 북서쪽의 스강[岗] 평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넓은 산악지역에 속한다. 다마오산[]은 다우산[]이라고도 부르며, 해발 957m로 홍콩의 최고봉이다. ② 주룽반도[岛]:신계의 남쪽에서 젠사쭈이[]까지 포함되며, 면적은 40여㎢이다. 츠취산[]·지슝산[鸡]·비자산[笔] 등 9좌의 산봉우리가 있어서 "주룽[龙]"이라 부른다. ③ 홍콩섬:주룽과 빅토리아항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면적은 80여㎢이다. 가장 높은 봉우리는 처치산[扯]이라고도 부르는 타이핑산[]으로 해발 552m이다. ④ 235개의 외딴섬들:면적은 약 210㎢이며, 가장 큰 섬은 다위산[屿으로 면적은 142㎢이다.

기후는 열대 및 아열대 습윤 계절풍기후에 속한다. 봄철은 따뜻하고 안개가 많이 발생하며, 여름철은 덥고 비가 많이 내린다. 가을은 맑고 화창하며, 겨울은 약간 춥고 건조하다. 가장 추운 1~2월의 평균기온은 15℃이며 가장 더운 7~8월의 평균기온은 약 28℃이다. 연강수량은 2200여㎜이며, 4~9월 사이의 강수량이 한해 강수량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6~7월에 집중된다. 12월은 가장 건조한 달이며, 5~11월에는 열대성 회오리가 자주 발생한다. 12월에서 이듬해 2월 사이에는 신계 산악지역에 우발적인 결빙 또는 서리 현상이 일어난다. 4~9월에는 태풍폭우가 발생한다.

 

 

 

2. 역사

청왕조시대의 파고다

주룽반도와 홍콩섬 등의 도서에는 신석기시대()부터 인간이 거주하여 왔던 것으로 보이는 유적이 있고 후한()시대의 분묘, 송제()의 묘 등이 있어 일찍부터 이 곳에 중국인들이 정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841년 l월 아편전쟁()을 계기로 영국이 홍콩섬을 점령하였을 당시에는 소수의 중국인과 수상생활자()들이 정착하고 있었고, 주룽과 신제에는 많은 사람들이 성곽도시를 이루며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1842년 영국과 청()나라 사이에 홍콩섬의 영구 할양()을 인정하는 난징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영국령 식민지 홍콩이 성립하게 되었다. 한때 영국 의회에서는 발전성이 없는 곳이기 때문에 포기하자는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1860년의 1차 베이징조약[]으로 주룽반도를 분할한 데 이어, 1898년 2차 베이징조약으로 신제와 부속도서를 99년 동안 조차하게 되어 오늘날과 같은 홍콩의 경계가 형성되었다.

1905년에 주룽과 광둥을 잇는 철도가 개통된 데다 물자의 집산지, 해외로 진출하는 화교()들의 거점으로서 점차 발전하기 시작하여 1861년에 약 12만 명이었던 인구가 1939년에는 160만 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이와 함께 항만·공장 노동자와 도시의 빈민이 불어나고 신해혁명() 이래 팽배하기 시작한 내셔널리즘과 공산주의 사상이 침투하여 여러 차례 혼란을 빚었다. 그 중에서도 국공합작()으로 이루어진 광둥정권[]의 지도하에 벌어진 총파업사태는 16개월(25∼26)동안이나 계속되었다.

1941~1945년에는 일본군에게 점령되었으나 일본이 패망한 뒤 1946년 5월부터는 다시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1949년 10월에는 공산정권이 성립하고 군사적 긴장상태가 빚어져 영국군이 급파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50년 1월 영국이 중국을 승인한 데 이어 1963년에는 중국도 ‘홍콩과 마카오 문제는 평화적 해결이 이루어질 때까지 현상을 유지한다’고 표명하고 1966년 4월의 ‘주룽폭동’, 1967년 5월의 ‘반영폭동()’도 중국이 개입하지 않은 채 진압되었다. 또한 1972년 영국은 자유중국(타이완) 주재 영사관을 폐쇄하고 중국과 대사교환 협정을 체결, 홍콩의 정치적 안정을 보장받았다.

1984년 12월 19일 영국과 중국은 홍콩반환협정을 체결하여 1997년 7월 1일을 기하여 155년 식민지 역사를 청산하고 홍콩은 중국으로 반환되었다. 이로써 홍콩은 세계사상 최초의 1국가 2체제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홍콩은 중국의 대서구(西) 협력의 중계지로서, 근대화를 위한 남쪽 창구로서 기능해왔다.

 

 

3. 정치

중국 대륙에서 내전이 시작된 1947년부터 홍콩으로 유출하기 시작한 중국인의 수는 공산정권 수립과 함께 가속화하여 100만 명을 넘어섰으며, 그 때문에 반공적() 경향이 강하다. 정치조직으로는 영국 여왕이 임명하는 총독 밑에 정청()의 각 국()과, 자문기관으로 임기 5년의 입법심의회()와 행정참사회()를 두었다. 입법심의회는 12명 이하의 공무원과 13명의 민간인으로 구성되었는데, 민간인 가운데 9명은 중국인이었다. 행정참사회는 정원이 12명인데 그 가운데 3명은 중국인이었다. 사법()은 총독이 임명하는 판사가 관장하였다. 이 밖에 중국계 주민과의 의사소통을 위하여 화민사무국()·신제이민사()·시정국()이 있으며 이 곳에서는 중국인 간부를 등용하였다.

주민의 유일한 참정권인 시정국의원 선거의 등록 유권자수는 4만 명에 불과하고 투표율도 낮았다. 1984년 12월 조인된 홍콩반환협정으로 중국은 1997년 홍콩에 대한 주권을 회복하였는데, 이 협정은 외교·국방 이외의 자치권을 부여하는 홍콩특별행정구 설치를 규정하였으며, 반환 후 홍콩의 헌법이 될 홍콩기본법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병존하는 일국양제()를 50년 동안 유지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2000년 9월 10일에 중국 반환 후 2번째로 제2기 입법회 선거가 실시되었다.

또한 그 동안 영국여왕이 임명한 총독이 홍콩을 통치하여왔으며, 마지막 총독은 크리스 패튼이다. 반환 후에는 임기 5년의 특구행정장관이 지도자가 되며, 초대 행정장관으로는 둥젠화[]이다.

 

 

4. 산업

홍콩의 시가지
전체 면적 가운데 임지가 21%, 목초지와 관목 지역이 50%, 경작지와 양어장이 9%을 차지하여 토지자원이 매우 부족한 상태로 산을 개간하고 바다를 메워 육지를 만들어야 한다. 담수자원도 매우 결핍하여 다란융[]과 촨완[船] 등지의 대형 저수지에 모아둔 빗물에 의존하였으나 공업 및 일반 용수로 사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1960년 이래로 멀리 둥장[东]의 물을 끌어와 사용해오고 있다. 근해의 어업자원도 과도한 포획과 해수오염으로 인하여 점차 고갈되어가는 실정이다.

농업은 경작지가 홍콩 전체 토지의 10분의 1에도 채 미치지 못하며, 농업인구 역시 홍콩 전체 인구의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어업은 원해 및 심해 어업으로 전환되었으며, 해수양식장은 사터우자오[]와 선수이완[] 등지에 집중되어 있다. 담수양식으로 양식어류와 관상어 산업은 발전한 편이다. 농작물로는 벼·사탕수수·땅콩·아열대 과일 등이 재배된다. 1970년대 이후 원예농작물의 재배면적이 확대되었다. 목축사육업 생산액은 농업 총 생산액의 3분의 2에 이르며, 그중 가금류 사육업이 60%를 차지한다.

특산품으로는 완구가 유명하며, 1972년부터 줄곧 세계에서 수출 1위를 지켜왔다. 의류 분야에서도 패션화·고품격화·다양화를 통하여 세계 최대의 의류 공급기지로 발돋움하였다.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마이크로프로세스 기술의 발전에 발맞추어 전자산업도 세계시장의 수요 추세에 부응하는 제품이 많이 생산하여 의류·완구와 더불어 홍콩의 3대 수출 명품브랜드로 꼽힌다. 또한 세계의 먹을거리가 집결된 곳으로서 홍콩의 인스턴트 푸드[]를 비롯하여 광둥[广东] 요리와 차오저우[] 요리, 서양 요리, 일식 요리, 베트남 요리 등이 번성하고 있다.

홍콩은 국제경제의 대도시로 원래 중계무역을 위주로하였으나 1950년대 이후 대대적으로 조립업과 가공공업 분야를 발전시켰고, 1960년대에 들어서는 전자공업 발전에 집중하였다. 오늘날 홍콩의 공업 가운데 제조업과 금속업 분야는 관광업, 부동산업과 함께 홍콩 경제의 4대 기둥으로 꼽힌다. 소형 공장 및 노동집약형이 대부분이며, 방직·재봉·전자·시계·합성수지·고분자 합성소재 제품과 전기 기기를 위주로 하는 수출가공 공업시스템이 형성되었다.

기술집약형 공업화와 상품 우수화로 변환을 꾀하여 방직·재봉 및 의류 공업은 홍콩 공업의 최대 부문으로 자리잡았을 뿐 아니라 세계 최대의 의류 수출지역으로 발돋움하였다. 중공업 부문은 통용기계와 조선 수선 및 건축용 강철, 시멘트 제조를 위주로 하는데 공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적은 편이다. 의류·완구·플라스틱조화 등의 수출액이 세계에서 1위이며, 시계·라디오 등은 세계에서 수출량이 가장 많다.

 

 

 

5. 교통과 명승지

노면전차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해운·항공 교통의 중심지이자 자유 무역항으로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브라질의 히우지자네이루와 더불어 세계 3대 천연항구로 꼽힌다. 1980년대 이후에는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 이어 세계 2위의 대형 컨테이너 항구로 발전하였다. 원양항로는 세계 100여개 국가와 지역으로 통하고, 다위산[屿]의 홍콩신공항도 개항되었다. 책랍콕 신공항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활발한 국제공항 가운데 하나로, 세계 항공 화물운송의 선두권이며 여객운송량은 여객 총수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철도교통은 광주[广]·징주[] 철로 2개 노선이 홍콩 내외를 연결한다. 1972년에 주룽[龙]과 홍콩섬을 연결하는 왕복 4차선의 해저터널이 완공되었다. 1986년에는 홍콩섬과 젠사쭈이[], 취안완[]을 연결하는 지하철이 건설되었다.

홍콩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국제적 관광 명승지로도 유명하다. 도시가 번화한데다 풍경명승지도 많다. 홍콩섬의 타이핑산[]에 있는 산정공원()에서는 홍콩섬을 비롯하여 주룽[龙]과 빅토리아항을 모두 조망할 수 있다. 홍콩섬 남부의 선수이완[] 연안에 조성된 해양공원에는 해양동물박물관과 수륙놀이공원으로도 유명하다.

주룽의 현대식 종합놀이공원인 리위안[荔园] 옆에 있는 쑹청[]은 북송() 시대의 풍속화 〈청명상하도(图)〉를 바탕으로 북송의 수도였던 변경(, 지금의 카이펑[开])의 건축물을 본따 건설한 것으로서 당시의 상점과 저택, 신묘() 등을 재현하였고, 중국역사명인밀랍인형관과 민속공연장 등이 있다. 타이쿵관[馆]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우주과학 체험관이다. 이밖에 다위산의 바오롄사[], 취안의 사찰들, 다위산·스쯔산[狮]·샹강짜이[] 등 여러 곳에 야외공원이 있다.

 

6. 대한관계

홍콩의 대한관계는 삼각무역(貿)의 중계지로서 한국의 수출확대 정책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2000년 대한수입은 108억 달러, 대한수출 13억 달러이다. 현지에 한국총영사관이 설치되어 있고 상사 관계로 많은 체류자가 있다. 2001년 현재 한국 교민수는 1,662명, 체류자는 4,084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