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自由/만화.그림.

[79] 엘 그레코

好學 2012. 9. 11. 07:30

 

[79] 엘 그레코

 

 

요즈음과 같은 글로벌한 시대에는 한 곳에 정착하기보다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이 많다. 국제교류가 활발치 않았던 르네상스 후기에도 더 나은 교육, 새로운 경험과 기회를 기대하고 여러 나라에서 작업한 화가들이 몇 있었는데 엘 그레코도 그 중 하나였다. 엘 그레코란 스페인어로 그리스인이라는 의미로 그의 원래 이름은 도메니코 테오토코플러스였다. 그리스의 크레타섬 출신이었던 그는 베네치아와 로마에서 미술공부를 하면서 비잔틴 벽화와 모자이크 방법을 배웠다. 전염병인 페스트가 유행하자 그는 1577년 스페인의 톨레도로 왔다. 가톨릭이 성했던 스페인에서 그의 강렬하고 감각적인 종교화는 가장 독창적인 회화로 인정받았다.

        ▲ '오르가즈 백작의 매장'

엘 그레코가 산토 토메 교회에 그린 '오르가즈 백작의 매장'(1586년)은 오르가즈 백작의 시신을 성인들이 입관하는 장면이다. 오르가즈 백작은 이미 14세기에 죽은 인물이었으나 그는 모든 인물들을 동시대의 인물인 것처럼 그렸다. 엘 그레코는 아랫부분의 지상 장면과 윗부분의 천국의 환상적인 장면을 대조해 그렸다. 조금 무겁게 수직적으로 도열한 지상의 인물들에 비해 천상은 투명하고 가볍고 비물질화되었다. 신비스러운 광선 속에서 천국의 수문장인 성 베드로를 비롯한 여러 성인들이 보는 가운데 천사는 오르가즈 백작의 어린 영혼을 중앙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도한다. 초록색과 노란색, 회색의 화려하고 생생한 색채의 신성한 영역인 천국은 멀리 있지 않고 마치 손에 곧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진다.

엘 그레코의 사후 그의 회화에 대한 평가는 천차만별이었다. 그는 정신이 나간 화가로, 또는 흥미롭기는 하지만 괴벽을 가진 이류 화가로 무시되었고, 그림에서 길게 늘어지고 왜곡된 신체는 난시(亂視) 때문이라고 설명되기도 하였다. 그의 독창성이 재평가받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 고딕 또는 표현주의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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