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치주의[ 德治主義 ]
유학에서 이상으로 생각하는 정치의 방법으로, 통치자의 덕(德)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
하(夏)·은(殷)·주(周) 삼대(三代)를 이상으로 하는 유학은 이 삼대의 정치를 덕치로 파악하고, 이 덕치에 의한 현실의 이상화를 추구한다.
덕치주의는 공자(孔子)에 이르러 특히 강조되었다.
이는 두 가지 중요한 성격을 가진다.
첫째, 덕치주의는 군주의 도덕적 정당성을 정치의 근원적인 힘으로 본다. 본래 유학에서 ‘정치는 바르지 못한 것을 바르게 만드는 것(政者正也 正其不正)’이다.
따라서 바르지 못한 것을 바르게 만들 수 있는 힘인 도덕적 정당성은 통치자에게 필요불가결한 것이며, 이 힘을 지닌 사람만이 통치자의 자격을 가진다고 할 수가 있다. 즉, 내성(內聖)의 덕을 갖춘 사람만이 외왕(外王)의 자격이 있다.
이 내성의 덕은 그 감화력을 통해 자연스럽게 바람직한 사회를 형성해간다. “덕으로써 하는 정치는 마치 북극성이 그 자리에 있으면, 여러 별들이 그 북극성을 중심으로 향해서 도는 것과 같다.”고 한 ≪논어≫의 말은 이를 가장 잘 표현해준다.
둘째, 덕치주의는 통치자의 덕에 의한 감화력에 따라 피치자(被治者)의 자발적인 복종의 형태를 띠게 된다. 이 때문에 덕치주의는 피치자의 동의와 자발성을 배제하고 강제성을 띠는 모든 형태의 정치에 대해 부정적인 자세를 가진다.
공자는 이와 같은 정치형태로 형벌과 정령(政令)에 의한 통치를 부정하고 있다. 즉, “정령으로 백성을 인도하고 형벌로 가지런하게 만들면, 백성은 처벌은 모면하지만 염치가 없게 된다.”라고 하였다. 반면 외적으로는 덕의 감화력을 통해 피치자가 자발적으로 바른 삶의 모습을 가지게 되는 정치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공자의 덕치주의는 유학의 이상적인 정치형태로 계승되어, 맹자(孟子)에 이르러 왕도정치(王道政治)로 구체화되었다. 항산(恒産)으로 대표되는 민생의 안정과 항심(恒心)으로 대표되는 윤리적인 삶을 이룩하려는 왕도정치는 그 정치 방법에서 인의(仁義)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 점에서 명분으로만 인의를 빌리고 실제로는 힘만을 믿는 패도정치(覇道政治)와 구별된다. 즉, 공자의 덕치주의는 맹자의 왕도정치로 이어져, 강제적인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법치주의와 대표정치를 거부하는 유교정치사상으로 확립되고 계승되었다.
우리 나라에서 덕치주의가 본격적으로 수용된 것은 유학을 정치 이념으로 수용한 고려시대부터이다. 고려 성종 때 최승로(崔承老)는 그의 〈시무28조 時務二十八條〉 가운데 군덕(君德)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으며, 고려 중기부터는 경연(經筵)을 통해 군덕을 확립하려는 노력이 제도화되어왔다.
조선 중종 때 조광조(趙光祖)는 유학의 이상적인 정치인 지치주의(至治主義)의 깃발을 내세우고, 이를 군주의 덕을 통하여 이루려는 덕치주의를 시행하려 하였다.
이 조광조의 지치주의는 이황(李滉)과 이이(李珥)로 이어져, 이황은 ≪성학십도 聖學十圖≫를 지었고, 이이는 ≪성학집요 聖學輯要≫를 지었다. 이는 모두 덕치주의의 실현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덕치주의는 가족적인 친화력을 토대로 하는 소규모의 봉건사회를 배경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대규모의 계약적인 시민사회의 정치 형태에서는 한계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현재에도 정치가의 도덕적 정당성은 전통사회에 못지 않게 요청되고 있다. 더욱이 덕치주의가 근본적으로는 피치자인 민의 자발성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은 현대사회의 법치주의가 민의 동의를 요청하고 있다는 점과 서로 통한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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