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世界信仰人]

엔드류 머레이-1

好學 2012. 2. 19. 20:35

엔드류 머레이-1

 

 

 19세기 '남아프리카의 성자'라고 불리는 그는 1928년 남아프리카 그라프 라이넛에서 태어났다. 스코트랜드 애버딘 대학에서 문학석사과정을 포함하여 7년의 교육을 받았으며 그곳에서 19세기의 부흥운동과 긴밀한 접촉을 가졌다.

장로교회 목사들의 설교를 통해 많은 감명을 받은 그는 3년간 신학 공부를 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후 남아프리카 땅으로 돌아와 목회를 시작하였다. 남아프리카 오렌지 자유주에 위치한 블룸폰테인(Bloemfontein)에서 처음 사역을 시작한 그는 이후 우스터에서 목회 요청을 받아 그곳으로 사역을 옮겼다.

 

이때부터 그는 수많은 경건 서적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우스터에서 4년간 봉사한 후, 케이프타운에서 목회를 하며 그곳에 YMCA 지사를 창설한다. 그는 또한 당시의 신학적 자유주의에 대하여 보수주의적인 태도를 확고히 했다.

1871년 케이프타운에서 45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웰링턴으로 목회지를 옮긴 그는 목사직을 사임하는 1906년까지 그곳에서 봉사한다. 그의 목회는 그의 저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활을 심도있게하고 풍성하게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사회복지와 교육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던 그는 웰링턴에 위그노 신학교를, 웰링턴 선교대학을 세워 남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위한 선교사들을 훈련시키기도 하였다. 후에 세계 선교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1889년 자신이 졸업한 애버딘 대학에서, 1907년 Cape of Good Hope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늘날 그는 많은 경건 서적 때문에 더욱 유명하다. 그의 작품 속에는 그의 삶과 목회와 사상들이 모두 담겨져 있으며 신앙의 핵심을 짚어내어 일목 요연하게 해설하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평생 집필한 240여 편의 주옥같은 글들은 대부분 그리스도인의 경건 생활과 기도에 관한 것으로 특히 「그리스도의 기도학교에서(With Christ in the School of Prayer)」는 기도의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또한 그의 저서는 자신의 경건과 기도 생활을 통해 체험하고 깨달은 것을 담고 있기에 더욱 큰 감동과 공감을 일으키며 신앙 생활에 직결되는 지침을 말해주고 있다.

 

앤드류 머레이의 삶

 

국내에서 앤드류 머레이, 혹은 앤드류 머리라 소개되는 앤드류 머레이는 앤드류 목사와 마리아 머레이 사이에 태어난 네 자녀들 중의 하나였다. 그는 세상의 가장 후미진 곳이라 여겨지는 남아프리카의 그래프 레이넷이라는 곳에서 자랐고 스코틀랜드와 네덜란드에서 교육받았다. 1848년에 앤드류는 선교사로 남아프리카에 돌아와 네덜란드 개신교와 일했다. 그의 첫 번째 임지는 브렘포테인으로서 5만 마일 정도 되는 땅에 12,000명의 사람이 있는 곳이었다.

앤드류와 그의 형 요한은 미국에서 진행중이던 두 번째 대각성 운동의 복음주의적 연장인 스코틀랜드의 부흥 운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그는 남아프리카의 교회에도 같은 종류의 각성이 있기를 기도했고, “나의 기도는 부흥을 위한 것이지만 내 자신이 그 일에 합당하지 않다는 느낌이 점점 커져 움츠러든다. 나는 지금까지도 내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끔찍한 교만과 자기 만족에 탄식한다. 아, 내가 더욱 영의 사역자가 되기를” 이라고 썼다.(플레시스의 앤드류 머레이의 삶)

 

1860년에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 부흥이 왔고, 그에 이어 부흥은 주위의 도시와 마을에도 퍼졌다. 심지어 멀리 떨어진 농장과 농원에서도 삶이 변화됨에 따라 그 효과를 느꼈다. 하나님을 위한 인도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단 한 사람도 찾기 어려웠던 교회들에서 머레이의 케이프타운 교구에서만도 50여명이 부흥으로 말미암아 결신하였다. 그 교구에서 한 달 동안 개종한 사람들은 그 이전 역사를 통틀어 합한 것보다 많았다. 새로운 전향자들과 새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영적인 인도를 위하여 앤드류 머레이는 240권이 넘는 책을 썼다. 그의 글들은 지금까지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의 더 깊은 삶에 대한 추구와 그러한 삶을 사모하고 체험하도록 인도한다.


저명한 선교 지도자로 수많은 저술 남겨

 

19세기 남아프리카의 성자라고 불리는 앤드류 머레이는 240여 편의 주옥같은 글들을 남겼는데, 대부분이 그리스도인의 경건생활과 기도에 관한 것이다.

그의 저서의 특징은 신앙의 핵심을 찾아서 일목요연하게 해설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그 자신의 경건과 기도 생활 가운데 직접 깨닫고 체험한 것을 담고 있기에 더욱 놀라운 깊이가 있으며 동시에 우리의 신앙 생활과 직결되어 있어 그 영향력 또한 매우 강력하게 나타난다. 남아프리카의 가장 사랑받는 설교자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 명성을 지닌 저술가이며 그의 삶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할 올바른 길을 발견할 수 있다.
 
최후의 만찬의 순간에 구주께서는 연약하고 미숙한 제자들에게, 그리고 제자들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15) 고 말씀하셨다.
이 중요한 진리가 제자들에게 선포된 이래 주 예수님을 신실하게 따르는 자들은 그 말의 영광스러운 실체를 경험으로 깨달았다. 이러한 삶에 대한 실례가 남아프리카의 앤드류 머레이이다. 주님안에 거하는 삶에만 매달렸던 그의 기도의 명저들은 언제까지나 우리의 가슴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성장 배경과 청년 시절

 

19세기 남아프리카의 성자라고 불리는 앤드류 머레이는 1928년 남아프리카 그라프 라이넛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앤드류 목사는 남아프리카로 이주해온 스코틀랜드인으로 장로교인이었으며, 어머니 마리아 머레이는 프랑스 위그노교와 독일 루터교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러한 배경은 그의 보편주의 정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앤드류 머레이는 형제 앤드류 존과 함께 스코틀랜드에 있는 애버딘 대학에서 문학 석사과정을 포함하여 7년 동안 교육을 받았으며, 그곳에서 19세기의 부흥운동과 긴밀한 접촉을 가졌다. 1838년에서 1840년 사이에 일어난 영적부흥은 피니의 지도 아래 미국에서 일어난 영적 부흥과 비슷한 것이었다. 앤드류 머레이는 장로교회 목사들의 설교를 통해 많은 감명을 받았는데, 그에게 특별히 많은 영향을 준 목사들은 칼머스(Chalmers), 켄드리시(Candlish), 맥셰인(McCheyne,) 그리고 윌리엄 번스(William C. Burns) 등이다. 특히 번스 목사의 생애는 젊은 앤드류 머레이의 성결과 부흥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애버딘에서의 공부가 끝난 뒤
앤드류 머레이는 네덜란드로 건너가 유트레히트(Utrecht)에서 3년간 신학 공부를 하게 된다. 네덜란드에 머무는 중에 그는 18세기 합리주의에 대항하는 모임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1848년에 목사안수를 받은 앤드류 머레이는 자신이 소년 시절을 보냈던 남아프리카 땅으로 다시 돌아와서 목회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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