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원고[절기,헌신예배]

(여전도회 헌신예배) 어떤 그릇입니까? (딤후2:20-21)

好學 2012. 2. 4. 07:31

(여전도회 헌신예배) 어떤 그릇입니까? (딤후2:20-21)



이 시간에 “어떤 그릇입니까?” 이런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일군들을 비유하여 그릇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열심히 귀한 것들을 담아서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공급하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큰 집에는”이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원어로는 <오이코스>인데 이 말은 넓게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키고 있고 작게는 교회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그릇은 하나님의 교회의 일군을 뜻합니다. 그런데 지상에 그릇 종류가 다양하듯 하나님 나라의 일군들도 여러 가지의 그릇이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어떤 그릇인가 살펴보면서 참된 하나님의 일군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어떤 그릇이 귀한 그릇일까요?

1. 쓰이는 그릇이 귀한 그릇입니다.

20절에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랬습니다. 본문에 “쓰는 것”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오는데 여기에 귀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꼭 비싼 그릇만이 귀한 그릇이 아니요 쓰이는 그릇이 귀한 그릇이란 점입니다. 여기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 등 네 종류가 나오지만 흙으로 만든 질그릇이라도 일단은 쓰여야 좋은 그릇입니다.

대통령이 그 사람을 들어 쓰면 그 사람을 그 순간부터 신분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쓰신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날까요? 매일 쓰는 그릇이 귀한 그릇입니다. 쓰지 않고 보관하기만 하는 그릇은 좋은 그릇이 아닙니다. 지금은 아무리 귀해도 시간 지나가면 구식 그릇이 되어 아무 쓸모가 없게 되고 맙니다. 옷도 마찬가지지요. 옷처럼 유행 타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아껴 입는다고 장롱에 걸어만 두다가는 나중에는 유행 다 지나가고 맙니다.

어느 분은 “나는 장롱에 숨겨둔 비단이 되기보다 마루 구석에 놓여진 걸레가 되고 싶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민족지도자 이승훈 선생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민족을 위한 걸레가 되고 싶다. 민족의 더러움을 씻어 주고 싶다.” 걸레면 어떠냐는 것입니다. 천한 걸레라도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다면 그것은 귀한 것입니다. 책도 아무리 양장본에 금도련을 하고 아트지를 써서 칼라로 아름다운 모양을 했어도 보지 않는다면 가치가 없습니다.

어떤 분이 LA 해장국 집에 갔는데 어느 자리를 보니 빈 탁자에 빈 그릇들과 주저 젓가락 등이 비닐에 싸여 놓여 있더랍니다. 그리고 거기 표시가 있는데 “김 영삼 대통령이 해장국을 드시던 자리” 라고 되어 있더랍니다. 우리들도 이런 보관용에 지나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쓰고 있는 그릇입니까? 아니면 자리만 차지하는 그릇입니까? 어떤 그릇입니까? 게으르고 악한 종이 되지 말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충성해야 쓰임 받는 그릇이란 말입니다. 일하기 두려워하면 귀한 그릇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군은 일을 좋아하고 일을 만들어서라도 해야 하고 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2. 깨끗한 그릇이 귀한 그릇입니다.

21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깨끗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카다리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카다리조는 ‘완전히 깨끗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 완전한 깨끗함이란 도덕적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입은 그것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예수만이 의롭기 때문이지요. 그렇지 않고서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다는 말은 꺼낼 수조차 없습니다. 예수 공로 입어 의로운 그런 깨긋한 사람만 되면 하나님께서 귀하고 아름답게 쓰신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세계 명문대학을 나오고 가문이 좋고 권세 있고 부유한 금 그릇이라도 더러우면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못 배우고 병들고 없고 천한 나무 그릇이라도 깨끗하면 쓰게 됩니다. 금 그릇이지만 오물이 묻어 있는 그릇에 음식을 담아 준다면 먹을 수 있을까요? 아무리 금그릇 은그릇이어도 때가 묻어 있다면 먹을 수 없습니다. 반면에 비록 나무 그릇일지라도 깨끗하면 기분 좋게 밥을 담아 먹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비싼 그릇보다는 깨끗한 그릇을 쓰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보세요. 가룟 유다 빼놓고는 대부분 불학무식한 갈릴리 어부나 천한 세리였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고전1:26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얼굴 보거나 직분보고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심령 상태 보시고 쓰십니다. 심령이 더러우면 쓰지 않습니다. 귀한 것을 맡기지 않습니다. 깨끗하지 못하면 성령의 선물 전하는 도구로 삼지 않습니다.

물질 분야에도 크게 쓰임 받으려면 물질에 깨끗해야 합니다. 저는 이런 청지기 일군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물질이 많든 적든 십일조하며 사장이 아니라 스스로를 직원으로 생각하고 봉급 받고 나머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는 청지기 정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도와서라도 성공시키고 싶습니다. 저도 미래를 여러 가지로 구상하고 있지만 나만을 위해서는 무엇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일생 마지막까지 봉사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옛날에 선비가 제자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길가에 물푸레나무가 서있었습니다. 선비는 그 나무를 보자 공손히 그 앞에 허리를 굽히고 세 번 절을 하였습니다. 제자가 이상하여 물었습니다. “선생님! 도대체 누구에게 절을 하신 것입니까?” 선비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저 나무에게 절 한 것이지, 물푸레나무는 나에게는 가장 영향력을 미친 스승이라네. 내가 어렸을 때, 내가 망나니로 살고 있을 때 아버지가 이 나무를 꺾어서 회초리를 만들어 내 종아리를 피가 나오도록 쳤어. 그 후 나는 새 사람이 되어 바로 살게 되었다네.” 우리 모두 매를 맞고서라도 깨끗한 그릇이 되어 귀히 쓰임 받으시기 바랍니다.

3. 합당한 그릇이 귀한 그릇입니다.

21절에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모든 음식에는 그것을 담을 합당한 그릇이 있습니다. 그래서 밥그릇에는 밥이 담기고 국그릇에는 국이 담기고 간장은 간장 종제기에 담겨야 합니다. 사람의 혈액도 여러 가지가 있어 수혈을 받을 때도 맞는 피를 받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광야에서 연단하신 것은 신앙의 연단도 있지만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시기 위한 적임자를 만드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재능과 달란트가 다 다른데 자기 자리를 찾아가서 일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 현재 요구하는 그릇은 어떤 그릇일까요? 기도의 그릇이 필요합니다. 시키지 않아도 너도나도 교회로 몰려들어 기도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은 기도의 멤버가 조직되어 교회와 나라와 일군들을 위한 강한 기도의 운동도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혹은 헌신의 그릇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옥합을 깨드릴 그릇이 요구됩니다. 우리 교회의 교회사에 남을 아름다운 헌신의 이야기가 많이 나와야 할 때입니다.

우리 고장 어느 교회 이야기입니다. 건축을 하여야 하는 물질이 부족하였습니다. 그 때 결혼을 앞둔 처녀가 결혼할 물질을 다 드렸습니다. 그래도 부족하니까 머리를 잘라 팔아서 헌금을 드렸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결혼 자금을 다 드리고 머리까지 깎으면 어떻게 하느냐?” 그러자 처녀가 말했습니다. “결혼은 천천히 하면 되지요. 돈은 다시 모으면 되지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라지요.” 이 처녀 한 명의 헌신이 온 교회에 헌신의 불을 질렀습니다. 그래서 온 교인들이 일어나서 교회를 잘 지었습니다. 혹은 전도의 그릇도 필요합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그릇도 필요합니다. 세계 선교의 그릇도 필요합니다. 어떤 방향에 쓰이든 하나님이 스시는 귀한 그릇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그릇입니까?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귀한 그릇들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충성하면 하나님께로부터 귀한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쓰이는 그릇 깨끗한 그릇 합당한 그릇이 되어 하나님의 손에 귀히 쓰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