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人生/(사람)인생 이야기

[CEO의 일과 삶]안규문 밀레코리아 대표

好學 2012. 1. 17. 21:25

[CEO의 일과 삶]안규문 밀레코리아 대표

 

 

 

“금강산 구경도 티스푼 사고 나서…”

스코틀랜드에서 산 티스푼을 가리키자 안규문 밀레코리아 대표는 “20년 전 출장길에 들렀는데 5월에 몰아친 눈보라에 갇혀 고생했다”고 말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사진이 있는 티스푼과 관련해서는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온 가족이 백악관에 놀러가 산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 티스푼은 사진보다 더 강렬한 추억이다.

 

 

성공은 남다른 사람에게 찾아온다. 그래서 많은 이는 비범하지 못한 스스로를 한탄한다. 하지만 수많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비범해질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다만 사용하지 않을 뿐이다. 그 무기는 바로 ‘시간’이다.

안규문 밀레코리아 대표의 티스푼은 어떻게 평범한 월급쟁이가 비범한 삶을 살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밀레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난 안 대표는 반듯한 나무 진열장 두 개를 들고 나왔다. 진열장 안에는 티스푼이 36개씩 매달려 있었다. 티스푼을 전시하기 위해 목공소에 별도로 주문 제작한 이 진열장은 모두 네 개다. 안 대표는 “다 들고 오지 못해 두 개는 집에 두고 왔다”고 했다. 아직 진열장에 넣지 못한 14개의 티스푼까지 합치면 지금까지 그가 모은 티스푼은 160개다.

○ 끈질기게, 끝까지

안 대표는 1977년 종합상사인 쌍용(현 GS글로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해외여행도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는 일이라 해서 끌렸다. 가는 곳마다 뭔가 기념이 될 만한 것들을 모으고 싶어 성냥갑을 수집했다. 하지만 너무 흔해 보였고 딱히 그 나라와 관련도 없어 보였다.

그러다 1983년. 싱가포르 공항 기념품 매장에서 티스푼을 발견했다. 안 대표는 점원에게 무심코 “말레이시아 티스푼은 없어요?”라고 물어봤다. 점원은 “다른 나라 티스푼은 안 팝니다”라고 대답했다. 이후 세계 각국 여러 도시에서 같은 질문을 했다. 모두 “다른 도시 티스푼은 팔지 않는다”고 답했다. 현지에서만 살 수 있는 기념품이라면 모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지금까지 28년간 티스푼 160개를 모았다. 이 가운데 같은 도시에서 산 제품은 하나도 없다. 많이 모으려 노력해도 한 해에 겨우 5, 6개밖에 살 수 없어 수집을 시작하고 몇 년간은 티도 나지 않았다. 게다가 해외 주재원으로 나가는 때가 많아 늘 분실하지 않으려 각별히 신경을 써야 했다. 그래서 싼 것은 수천 원, 비싼 것은 개당 1만 원 정도 하는 티스푼을 위해 하나에 15만 원은 드는 진열장을 주문했다.

10년 이상 시간이 흐르며 진열장이 늘어가자 티스푼은 집안의 보배가 됐다. 그의 집을 찾은 손님들은 식탁 뒤 벽에 걸린 티스푼 진열장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중에 그만뒀다면 지금의 화려함은 없었을 터. 안 대표는 “출가한 딸도, 대학생인 아들도 ‘유산은 필요 없으니 티스푼 컬렉션을 물려 달라’고 한다”며 “사람들은 성공이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쉽게 흥을 내지 않지만, 성공은 끈질기게 버텨야 결국 찾아오는 법”이라고 말했다.

○ 수집가의 경영

밀레는 1899년 설립된 독일 가전회사다. 세계 시장에서는 프리미엄 가전회사로 유명하지만 한국에 제품이 소개된 건 1990년대부터이고 한국지사는 2005년에야 세워졌다.

안 대표는 이때 초대 지사장을 맡았다. 그리고 몇 가지 독특한 기록을 세웠다. 우선 독일 회사지만 밀레코리아에는 독일인이 한 명도 없다. 모두 한국인이고, 회의도 한국어로 한다. 안 대표 전까지 밀레는 100년 가까운 기간에 해외 지사장을 모두 독일인으로만 임명했다. 하지만 첫 외국인 지사장인 안 대표의 성공 후 2007년부터 현지 지사장으로 교체하기 시작했다. 유한회사인 밀레코리아는 별도로 매출을 공개할 의무가 없어 실적을 따로 밝히지는 않지만 밀레코리아 측은 “안 대표가 부임한 이후 매년 평균 15% 성장했다”고 밝혔다.

성공 비결 가운데 하나가 인터넷 판매였다. 한국은 이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프리미엄 제품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인 국가였다. 그러자 안 대표는 ‘롯데닷컴’ ‘신세계닷컴’ 같은 인터넷쇼핑몰에 제품을 내놓기로 했다. 본사에선 펄쩍 뛰었다. 가격경쟁을 하는 인터넷은 프리미엄 브랜드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안 대표는 “우리는 삼성과 LG처럼 백화점이나 양판점 같은 유통망을 관리할 돈도 인력도 없으니 방법은 인터넷뿐”이라며 버텼다. 그 대신 가격은 밀레 직영매장과 똑같이 책정해 유지했다. 유통업체에서 할인행사를 요구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쉽지는 않았다. 유통업체들은 “그 가격으로는 인터넷에서 못 판다”며 안 대표를 흔들었다. 본사의 걱정도 계속됐다. 소비자들이 하루아침에 반응을 보일 리도 없었다. 하지만 안 대표는 독일 본사에는 “차라리 내가 CEO를 그만두겠다”며 버텼다. 유통업체가 가격을 흔들려 들면 아예 거래를 끊었다. 그러면서 인터넷 쇼핑몰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 하나하나를 티스푼을 한두 개 모으는 심정으로 참고 기다렸다. 좋은 평가가 하나 둘 쌓이고, 게시판이 좋은 얘기로 가득 찬 뒤에는 안 대표의 티스푼 진열장과 같은 마법이 벌어졌다.

안 대표는 지금도 매년 5, 6개의 티스푼을 모은다. 업무를 마친 뒤 시간만 남으면 기념품 가게부터 찾아간다. ‘금강산 구경도 티스푼을 사고 나서’인 셈이다. 그는 “‘티스푼 사러 출장 가느냐’는 말도 가끔 듣지만 이건 나와의 약속”이라며 “자기가 세운 원칙에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두지 않는 사람이 회사의 원칙에 우선순위를 둘 리가 없다”고 말했다.
 

■ 안규문 대표는


―1951년생
―1977년 국민대 경제학과 졸업
―1977년 쌍용 입사
―1982∼1983년 쌍용 쿠웨이트 지사장
―1992∼1996년 쌍용 시멘트 건재부장
―1997∼2000년 쌍용 태국 지사장
―2001∼2003년 커미넷 부사장
―2003∼2005년 코미상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