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놀데의 조선방문
19세기 후반은 유럽이 비서구(非西歐) 지역으로 영토를 넓히면서 식민지를 개척했던 제국주의의 시대였다. 유럽의 박물관들이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의 부족미술이나 민속품을 수집하고 전시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서구 미술가들에게는 이들 지역의 미술에 보이는 원시성이 근원적인 인간의 감성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다. 피카소나 마티스를 비롯한 미술가들은 특히 아프리카 조각에 보이는 이질적이고 강렬한 표현을 작품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화가 에밀 놀데(1867~1956) 역시 원시미술의 본질적인 형태와 자유분방한 표현에 이끌렸다. 북부 독일 출신이었던 놀데는 원래 이름이 한센이었으나 자신이 태어난 고장의 이름을 따서 놀데라고 바꿨다. 그는 그 지역의 농부나 어부에 대해 깊은 애착을 지녔으며 인종과 지역은 서로 공존함으로써 의미를 갖는다고 믿었다. 이 시기에 그린 그의 작품들은 열정적이고 강렬한 원색으로 그리스도와 제자들을 거칠고 투박한 농부나 어부들처럼 그리는 과격한 종교화였다. 1912년에 그는 '선교사'라는 작품을 제작했는데 무릎을 꿇고 있는 아프리카 여인 앞에, 마치 가면을 쓴 듯이 서 있는 선교사의 표현에는 그가 베를린의 민족학 박물관에서 보았던, 조선시대 장승의 모티브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국 지역에 대한 호기심에 찬 놀데는 1913년 가을에 베를린을 출발, 기차로 모스크바, 몽골을 거쳐 뉴기니로 향하는 여정 중에 조선에 왔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조선 방문에서 받은 호감은 그의 자서전에 짧게 언급되어 있고 몇 점의 인물 드로잉도 남아 있다. 그러나 그의 말년은 불행하였다. 1936년 나치는 놀데의 작품을 반(反)독일적, 퇴폐적인 미술로 선언하며 작품을 압류했다. 자신을 독일적인 화가로 여기고 나치 당원으로 가입까지 했던 놀데였지만 표현주의를 위험한 예술로 생각한 나치의 억압은 피할 수가 없었다. 그는 미술 활동을 금지당했지만 틈틈이 수채화를 그렸고, 이 작품들은 현대의 수채화 중에 가장 탁월한 작품들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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