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기도]祈 禱

희망을 품은 기도는, 기적을 창출한다

好學 2011. 12. 27. 21:23

희망을 품은 기도는, 기적을 창출한다

 

희망이 시들해진 기도는, 응답도 시들하기 마련이다.

기도의 가장 무서운 대적은, 낙망하는 마음이다.

낙망이라는 말은, 희망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주님께서도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고 하셨다. 우리가 아플때 왜 병원을 찾는가?

낫겠다는 희망때문이다. 우리가 머리가 아플때 두통약을 먹는다.

그러나, 사실은 희망을 먹는 것이다.

'두통약을 먹으면, 나을수 있다는 희망' 말이다.

 

사람은 가난하거나 병들어 죽는 것이 아니라, 희망에 굶주리면 죽는다.

아픈 사람에게 병원은 절대 희망이듯, 기도는 성도의 유일무이한 희망이다.

그러므로 기도없이 산다고 하는 것은, 희망이 없는 삶을 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지금 우리가, 어떤 완벽한 절망 가운데 있을지라도 기도할 수 있다면

완벽한 절망은, 꿈같은 기적으로 바뀔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가 결코 일상적이지 않은 문제와,

태산같은 문제 앞에서도 시들해 지는가?

그 이유는, 기도의 위력과 하나님에 대한 기대(희망)가 시들해져

있기 때문이다.

기도가 시들해진 또 다른 이유는, 기도의 패배주의 때문이다.

'기도해 보았는데 별것 없더라!'

'그렇게 하나님께 매달려 보았는데 신통치 않더라!'

그래서 얻은 결론은, “기도나~ 해보자“ 이다.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기도이다.

그런 기도에, 희망이 있을수가 없고, 간절함이 있을수가 없다.

그런 기도에, 응답이 없는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기도를 안하고 사는 것도 문제지만, 시들한 기도의 반복도 문제이다.

게다가 현실의 상황은 비범한데, 기도는 평범하다면, 그것도 문제이다.

우리는 일생을 살면서, 생명을 걸고 기도를 해야 하는 때를 한두번은 만난다.

그때가, 지금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태평하게 잠들어 있다.

 

코까지 골면서..... 성령님은, 우리를 다그치신다.

“자는자여 어찜이뇨?” ......

우리의 기도가 기름을 짜는듯한 기도인 게세마네의 기도를 실천할 수

있다면 완벽한 절망도, 드라마 같은 반전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도는, 희망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지막 희망인 기도의 줄을 주셨다.

"기도할수 있는데, 왜 걱정하느냐"

기도할수 없는 현실을 걱정하라.

스스로, 포기하지 말라. 스스로, 낙망하지 말라.

그것은, 마귀에게 백기를 드는 것이다.


백번 기도이 응답이 없다면, 천번의 기도를 드리면 된다.

어제까지도 아무일이 없었어도, 다시 기도의 성소로 나아가라.

오늘, 꿈같은 일들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변함없이 신뢰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서, 이미 기도의 패배주의와 시들함이 있다면

밤을 지새우는 기도를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기도의 승리는,마음에서 출발한다.

희망을 불꽃을 태우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라.

낙망이라는 장벽을 뛰어 너머, 소망의 항구로 나아가라.

기도할수록 더 상황이 악화될때, 낙심하지 말라.

기도할수록 아무일이 일어 나지 않을때도, 희망을 놓치 말라.

주님은 침묵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거절을 통하여 응답주신다.

마귀는, '기도해도 소용없다'

'당신의 기도는, 하나님이 들어 주시지 않으신다'

그러나 성령님은 '구하면 주시고, 부르짖으면 크고 비밀한 일들을

보여 주신다'고 하셨다.

누구의 말에, 순종할 것인가?

하루 세끼, 식사전에 외치라.

 

'예수님은,

나의 희망이십니다'

 

'기도는, 인생의 모든 문제를 푸는 마스터키입니다'

 

그 희망을 순간마다 먹고,

영육간에 성숙한 기도의 리더십으로 세워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