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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소환] “국민 여러분께 면목 없다”

好學 2009. 5. 1. 11:25

 

 

[盧 소환] “국민 여러분께 면목 없다”


[쿠키 사회] 390여㎞, 5시간17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이동한 거리와 시간이다.

노 전 대통령을 태운 버스는 30일 오전 8시2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출발해 오후 1시19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도착했다. 노 전 대통령은 '천리 길'을 오면서 단 한 차례도 버스에서 내리지 않았다.



◇굳은 표정으로 '천리 길' 나서=노 전 대통령은 오전 7시57분 감색 양복에 연한 회색 넥타이 차림으로 봉하마을 사저 현관을 나섰다. 몇 걸음을 옮기던 노 전 대통령은 잠시 집안에 들어갔다가 2분 뒤 다시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은 사저 정문에서 승합차을 타고 50여m 떨어진 포토라인까지 이동했다. 승합차에서 내린 그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굳은 표정으로 포즈를 취한 뒤 "국민 여러분께 면목이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고개를 떨궜다. 노 전 대통령은 잠시 후 "실망시켜드려서 죄송하다. 잘 다녀오겠다"고 말한 뒤 청와대 경호처에서 제공한 45인승 경호버스에 올랐다. 버스에는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전해철 전 민정수석, 김경수 비서관이 동승했다.

버스는 오전 8시2분쯤 출발해 김해 시내를 느린 속도로 빠져나갔다. 버스 앞으로는 검은색 그랜저 경호 차량이 2대, 뒤로는 경호용 차량 2대와 22인승 미니버스, 순찰차 2대가 따라붙었다. 옆에는 취재 차량 8대가 취재 경쟁을 벌였고 상공에는 방송사와 경찰 경호헬기 3대가 떴다.

노 전 대통령이 탄 버스는 8시17분 남해고속도로로 진입했고 이후 시속 90∼100㎞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거쳐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 버스는 낮 12시20분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입장휴게소에 도착했다. 문 전 비서실장 등은 버스에서 내렸으나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문 전 비서실장은 취재진에게 "노 전 대통령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취미 같은 가벼운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비난과 지지 한몸에 받으며 대검 입장=오후 1시 서울요금소를 통과한 버스는 19분 뒤 서초동 대검청사 도착했다. 보수단체 회원 300여명과 노사모 회원 400명은 대검 정문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서서 비난과 환호를 보냈다. 버스가 대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보수 단체 회원들이 "노무현 구속" "권력 비리 엄단"을 외치며 계란 5∼6개를 던져 버스 왼쪽 창문을 맞췄다. 노사모 회원들은 노란색 스카프·장미·풍선을 흔들며 "노무현, 노무현"을 연호했다. 일부 회원들은 눈물을 흘렸다.

버스가 대검 현관 앞에 정차한 뒤 2분 만에 문이 열렸다. 문 전 비서실장이 먼저 내렸고 전 전 민정수석, 김 비서관에 이어 다섯번째로 노 전 대통령이 하차했다. 노 전 대통령은 굳은 표정으로 잠시 포토라인에 섰다. 그는 "출발할 때 왜 면목없다고 했나"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면목없는 일이죠"라고 말했다. 잠시 뒤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에게 한 말까지 세 차례 같은 말을 반복한 셈이다. 심경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의 대질신문을 바라는지를 묻자 "다음에 하죠, 다음에 합시다"라는 말을 남기고 청사 안으로 들어섰다.

보수 단체와 노사모 회원들은 버스가 입장하고 난 뒤에도 서로를 향해 야유와 비아냥을 계속했다. 몸싸움도 일어나 40대 남성이 연행됐다. 그러나 경찰 1200명이 배치돼 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경찰이 대검 앞을 통제하자 노 전 대통령 지지자 300여명은 저녁부터 대검 건너편에서 검찰 수사를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경찰은 이들에게 '미신고 집회를 하고 있다"며 해산 명령을 내렸으며 밤 10시 15분부터 불응하는 시위대를 10여명을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격한 몸싸움이 빚어지기도 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임성수 양진영 기자 hrefmailto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