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의무론-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서양 고대에 우리가 바라는 이상 국가가 실제로 있었다. 그곳에는 경찰이 없었다. 시민은 단도를 지니고 다닐 수 없었고, 장군이건 병사건 도시로 들어오려면 성문에서부터 무장을 해제해야 했다. 카르타고, 마케도니아, 코린토스를 정복한 장군들은 하나같이 전리품을 국고에 넣거나 도시 장식에 사용했다. 사기, 수뢰란 말도 없었다.
기원전 2세기 중엽의 로마 공화국이 그러한 이상 국가였다. 이는 전적으로 로마인이 농민 출신으로서 검소 질박한 생활을 해온 데다 정의, 지혜, 용기, 인내의 4추덕(樞德)을 갖춰 행복한 생활을 추구하라는 스토아학파의 금욕주의 윤리 사상을 받아들인 덕분이었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살던 당시 로마는 고통이 최고악이요 쾌락이 최고선이라는 에피쿠로스의 윤리 사상에 물들어 타락해 가고 있었다.
이를 안타까워한 그가 기원전 44년에 아테네에 유학하고 있는 아들에게 보내는 서간문 형식으로 쓴 최후의 저술이 ‘의무론’이다.
비스마르크가 정치가가 되고자 하는 학생은 꼭 읽으라고 권유했듯이, 이 책은 그의 이상 정치가론이기도 하였다.
세계 역사상 윤리 면에서 키케로의 ‘의무론’만큼 후세에 줄곧 영향을 끼친 책은 일찍이 없었다. 서양 고대는 말할 것도 없고, 기독교 중심의 중세 시대에도 이 책은 계속 도덕규범 도서였다.
15세기 중엽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 ‘의무론’의 필사본이 700개나 세계 여러 도서관에 산재되어 있었다 하며, 인쇄술이 발명된 이후에도 ‘의무론’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 1501년 에라스무스는 늘 지니고 읽어야 한다며 포켓용 번역판을 내놓았다.
셰익스피어의 시대에도 ‘의무론’은 도덕 철학의 결정체였다. 18세기 볼테르는 누구도 이보다 더 현명한 책은 쓰지 못할 것이라고 설파했고, 프레데리크 대왕은 이 책을 도덕에 관한 최상의 책이라고 극찬하였다.
키케로의 ‘의무론’은 3권으로 되어 있다. 제1권은 도덕적으로 선한 것(명예·名譽), 제2권은 유익하거나 편의적인 것(공리·功利), 제3권은 명예와 공리의 상충을 다루고 있다. 1, 2권의 내용은 중기 스토아학파의 파나이티우스에게서 따온 것이지만, 3권은 키케로의 독창적인 것이다.
그는 오리엔트, 그리스, 로마의 온갖 신화와 인간의 일화를 총동원하여 공리보다는 최고선인 명예를 택할 것을 주창했다. 포에니전쟁 때 국가의 안위를 위해 죽음의 자리를 찾아간 레굴루스 장군, 비겁자라는 온갖 비방에도 지연작전을 써서 로마를 구한 파비우스 장군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또 물건의 하자를 숨기거나 남을 속여 실리만을 챙기는 사람은 혹독하게 질타 당한다.
건강에 좋지 않은 살기 나쁜 집인데도 건강에 좋은 집으로 상대에게 파는 자는 “결코 정직하지도 않고, 순박하지도 않으며, 명예롭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으며, 선하지도 않은 사람이다. 오히려 그런 자는 교활하고 간교하며, 남을 잘 속이고, 사악하고 난폭하며, 사기와 음흉의 세계에서 자란 사람이다”고 말한다.
라틴어 원전을 대본으로 한 키케로의 의무론(서광사·1989)이 번역본으로 나와 있다.
허승일 서울대 교수·역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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