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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야기] 서울 강남경찰서 첫 여성강력계장 박미옥 경감

好學 2011. 8. 22. 22:01

[사람이야기] 서울 강남경찰서 첫 여성강력계장 박미옥 경감

 

대한민국 사건 1번지 서울 강남서 첫 여성 강력계장으로 부임한 박미옥 경감. ‘강력계 여형사의 전설’로 통하는 그는 “이제 직장 내 남녀 구분은 필요하지 않다. 각자의 장점을 바탕으로 일에서 얼마나 프로페셔널한 결과를 보이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14일 오후 서울 강남경찰서 정문은 장맛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연예 전문 케이블 TV 기자 몇 명이 진을 치고 있었다. 모 여자 연예인이 고소장을 제출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취재진이었다. 철창문을 열고 형사계에 들어서니 습기 찬 한산한 사무실 한쪽에 짙은 화장을 한 젊은 여자가 조사를 받고 있었다. 대한민국 ‘사건 1번지’이자 매년 인사철 서울지역 경찰관들이 근무 희망지역 1순위로 꼽는다는, 세칭 ‘물 좋다’는 강남서.

11일 이곳에 첫 여성 강력계장으로 부임한 박미옥 경감(43)은 수시로 걸려오는 업무 전화와 축하인사를 받느라 분주했다.

―얼굴을 감춰야 할 수사형사가 주목받는 게 바람직한 일은 아닌데….

“그러게 말이다. 며칠은 감수해야 할 것 같다. 부임 첫날 어떤 기자가 ‘얼굴마담으로 온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하기에 좀 억울했다(웃음). 경력이 모자라는데 맡았다면 모르겠지만 23년 경찰 생활 중 19년간 강력사건을 맡았다. 여자라서 차별받는 것도 안 되지만 여자라서 특별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억울하다.”

훤칠한 키, 짧은 커트머리, 환한 미소는 거친 사건 현장과 범죄자들을 다루는 여형사에 대해 가졌던 선입견을 무너뜨린다. 자신감 있는 언변에 작은 뿔테안경 뒤 눈매가 날카롭다. 박 경감은 고교 졸업 후 1988년 순경 생활을 시작으로 1991년 형사계에 발을 들인 후 경위까지 특진을 거듭하며 2000년 최초 ‘여성 강력반장’, 2010년 마포서 6개 강력팀과 마약수사팀을 지휘하는 최초 여성 강력계장 등을 지냈다.

여자 총경, 파출소장까지 나온 마당에 경찰 내부의 ‘금녀의 벽’은 어느 정도 깨졌다. 최초 여자 경찰이 나온 1946년 1.8%였던 여경 비율은 2011년 6.9%로 늘어난 데다 현재 여경 7013명 중 살인, 강도, 성폭행 등 강력 범죄를 다루는 팀에서 뛰는 이는 353명에 달한다. 그중에서 박 경감은 ‘강력계 여형사의 전설’로 통한다.

―기억에 남는 사건은….

“1996년 인질강도 사건이다. 교도소 동기들 모임이었던 일당이 서울 서초구 양재동 부근에서 데이트 중이던 남녀를 납치해 강원 강릉까지 끌고 갔다. 경찰 검문을 따돌리며 유유히 도망 다니던 이들을 충남 아산 천안 등지로 유인해 3일 만에 붙잡았다. 이미 흉악범죄를 저지른 상태에서 여차하면 살인까지 불사하겠다는 막가파식 범죄자들이어서 회칼을 소지하고 다니는 등 위험 요소가 많았는데 수갑과 삼단봉만 들고 맞서 붙잡았다.”

그를 또 유명하게 만든 사건으로는 1997년 탈주범 신창원 사건이 있다. 1998년 5월 수사진에 투입돼 전국을 다니며 8개월 동안 ‘신창원의 여자들’을 찾아 그의 특성을 파악했다. 8명의 과거 동거녀들을 통해 ‘신창원 집에는 살림살이는 없고 운동기구만 있다’ ‘강아지를 키운다’ 같은 공통점을 파악해 리스트를 만들었다. 리스트는 전국 경찰에 배포됐고 112 신고를 한 시민의 신고 내용이 리스트와 거의 같아 검거에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기자가 이날 박 경감으로부터 듣고 싶었던 또 다른 이야기는 여자 남자를 떠나 강력계 형사가 범죄 현장에서 만난 한국 사회의 그늘이었다. 마침 그가 마포서에 있을 때 발생해 신문 사회면 등에 떠들썩하게 보도된 만삭 의사 부인 살해사건(1월) 이야기부터 꺼냈다.

“욕조에 누워 숨져있는 부인 모습을 보는 순간 누군가 옮겨놓은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것을 보고 사고사라기보다 본능적으로 타살 의심이 갔다. 같은 여성으로서 그런 직감이 왔다. 여성 가해자나 피해자가 연루된 사건에선 여성 경찰의 감각이 절대 필요하다.”

결국 경찰은 명문대 의대를 졸업하고 대학병원 의사로 일하고 있는 남편을 범인으로 지목했고 그는 구속 기소됐다. 경찰은 남편이 전문의시험에 떨어진 뒤 스트레스를 받았고 게임에 열중하다 아내와 말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목 졸라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구속된 남편은 현재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당시 박 경감은 수사를 전담하면서 10시간 넘게 화장실도 가지 않고 피의자를 심문했다.

“재판 중이라 자세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이번 사건을 보면서 ‘소통’의 문제를 생각하게 됐다.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꿈을 키우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을 가고 가정까지 꾸리고 살던 유능한 젊은이가 살인 혐의로 법정까지 서게 된 것은 남과 소통하는 방법, 분노를 제때 표출하고 억제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 같다.”

―강력계 형사로서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루저(패배자) 의식이 너무 팽배하고 이에 따른 분노 조절이 안 된다는 거다. 그리고 서로 대화를 안 하니 자기주장만 하면서 대중과 고립된다. 여기서 생기는 외로움 분노 어려움을 회피해 보려는 심리, 이게 범죄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또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박 경감은 최근 달라진 살인 형태를 예로 들었다.

“요즘 살인범들은 초범이 대부분이다. 이제는 살인 사건이 났을 때 전과자 조회를 해 봐야 별로 도움이 안 된다. 경제 불황 탓이 크다. 소비성향은 높아지고, 카드 빚은 쌓이고, 상대적 박탈감은 커지고 여기에 사람 죽이는 방법까지 인터넷에 나와 있는 세상이다 보니 몇백만 원을 위해서도 사람을 죽이고 어린이를 납치한다.”

그는 2005년 서울 홍익대 앞에서 일어난 여자 회사원 2명 피살 사건을 예로 들었다.

“인터넷 공간에서 우연히 만난 범인들 중 한 명만 절도 전과가 있었고 나머지는 없었다. 모두 백수였다. 이들은 채팅을 하며 사회 불만을 공유하다 ‘3000만 원 만들어 중국 가서 장사하자’고 의기투합해 살인까지 저질렀다. 요즘 경찰 내부에선 ‘조폭(조직폭력배) 척결’이 아니라 ‘주폭(술 마시고 행패부리는 사람) 척결’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분노를 술로 푸는 사람이 많아 애를 먹고 있다.”

그러다 보니 범죄 트렌드도 많이 변했다고 한다.

“예전엔 이틀에 한 번은 꼭 강도사건이 났는데 요즘은 강도가 별로 없다. 1995년까지만 해도 부녀자 납치 강도, 소매치기, 제비족 같은 ‘아날로그 범죄’(웃음)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애써서 남의 집 담 넘는 힘든 범죄보다 품이 안 드는 쉬운 범죄를 하려 한다. 인터넷 사기나 카메라 대여점 같은 데서 정식으로 대여료까지 주고 카메라를 빌려놓고 팔아먹는 그런 범죄들이 많다.”

박 경감은 지난해 관할지역에서 10대 청소년들이 저지른 ‘여중생 살인사건’이 요즘 세태를 보여주는 또 다른 단면이라고 전했다.

“카펫 천에 돌돌 말린 시신이 한강에 떠올랐다. 시체를 보니 무슨 종교의식이라도 치른 것처럼 이상했다. 자전거 줄로 신발 휴대전화까지 정성스레 묶여 있었다. 양손에는 이쑤시개 묶음을 쥐여 놓았는데 그을려 있었다. 마치 ‘염’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양 발목 안에는 수건까지 덧대놓았다. 사람을 죽여 놓고 아프지 말라고 한 건지, 의문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결국 범인을 잡고 보니 피해자 친구들이었다. 중고교 중퇴생인 10대 남녀 6명은 친구가 기분 나쁜 말을 했다고 나흘이나 감금 폭행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마구 때리면서 죄책감보다 쾌감을 느꼈다고 했다. 시체를 멋진 솜씨로 묶은 것이나 이쑤시개를 태우며 염을 한 것은 가해자 중 한 명이 무당인 조부와 함께 살면서 보고 배운 것이었다. 시체를 옮길 때 누군가가 ‘무거우니까 피를 빼자’고 했고 발목을 자른 뒤 수건을 덧댔다. 그러고는 인터넷에서 ‘한강 다리 중 제일 깊은 곳’을 검색해 양화대교 북단이 나오자 택시를 타고 가 강에 버렸다. 그들은 경찰서에 와서도 낄낄거리고 웃으면서 피자 사 달라고 할 정도로 죄의식이 없었다.”

―그런 범죄자들을 보면 직업의 환멸 같은 것은 안 느끼나.

“만약 범인 잡는 것만 목표였다면 못 버텼을 것이다. 내가 왜 이런 거친 현장에 있어야 하나 도망치고 싶은 적도 많았는데 나중엔 가해자도 피해자도 인생에서 겪어서는 안 될 일, 안 당하고 싶은 일을 겪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수사에 고민도 더하게 되고 법적용에도 신중해졌다.”

―범죄자들에게 공통된 심리 같은 게 있나.

“연쇄살인범들이 방화, 절도, 방화를 거듭하다 살인을 시작하게 되는 심리를 데이터베이스화한 적이 있는데 밑바닥에는 ‘사랑에 대한 결핍’이 있었다. 가장 사랑받고 자라야 할 어린 시절 부모의 학대와 구박이 마음속에 칼처럼 박혀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대화를 한다고 해서 변할까.

“그래도 자기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준 누군가를 만나면 교도소 들어가서 한 번쯤 자신의 삶이나 행동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까.”

화제를 바꿨다. 박 경감은 마포서 관할구역이었던 대학가 성문화 세태를 전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요즘 성폭력 사건은 남자가 여자를 강제로 끌고 가서 저지른다기보다 여자가 여관까지 따라갔다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젊은이들에게 여관은 인터넷도 하고, 파티도 하고, 술도 먹는 놀이터다. 여성들도 자유와 쾌락을 즐기는 개방적인 삶을 살다 보니 위험에 많이 노출된다. 여기에 부모들이 ‘우리 자식 최고’라면서 자신감만 불어넣는 교육을 하다 보니 남자고 여자고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나는 자유롭게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할 테니까 세상이 나를 지켜라’ 이런 식은 곤란하다. 나는 내가 지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포함해 형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사람들이 “좀 미친 사람들(웃음)”이라고 했다. 잦은 야근과 격무, 위험에 노출되는 일을 스트레스로 생각하지 않고 즐겨야 가능하다는 말로 들렸다. 박 경감도 일에 미쳐 아직 미혼이다. 그런 거친 현장에서 여자로 일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요즘엔 남자들이 여자들 때문에 더 힘들어하는 것 같다(웃음). 우리나라 수사는 이미 시스템화되어 있어 물증을 갖고 논리적으로 맞서는 수사가 대세이기 때문에 수사 화법(話法)도 부드러움을 무기로 한 여성들이 장점이 많다.”

그는 피의자들에게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진술이 달라진다고 했다.

“특히 어린 피의자들을 보면 세상에서 혼자 버려졌구나 하는 생각에 손을 잡고 싶어진다. 그리고는 손이 따뜻한지 부드러운지 물으면서 세상이란 것도 손처럼 부드럽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다고 말한다. 밥은 먹었는지, 엄마는 있는지, 집은 있는지, 범죄 그 자체보다 범인의 삶을 파고드는 감성은 여자가 더 낫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 박미옥 경감은

―경북 영덕 출생
―대구여고
―서울사이버대(법무행정, 상담심리) 졸업
―경북대 수사과학대학원 석사 졸업 예정

<주요 보직>
―1991년 서울청 강력계 여자형사기동대
―2000년 양천서 강력2반장
―2001년 서울청 여성청소년계 여자기동수사반 반장
―2002∼2005년 양천서 마약반장, 강력6팀장
―2007년 서울청 과학수사계 행동과학(프로파일링) 팀장, 화재감식팀장 겸직
―2008∼2009년 경북 김천서 수사과장
―2010년 서울 마포서 강력계장

<담당했던 주요 사건>
―1996년 청송교도소 출신 납치 택시 강도범 8명 검거
―1998년 탈주범 신창원 검거를 위한 경찰청 특별 수사팀
―2004년 서울 ‘서남부 살인의 추억’이라고 불렸던 정남규 특별 수사팀 책임팀장
―2008년 숭례문 화재현장 감식 총괄책임 팀장
―2011년 만삭 아내 살인 의사남편 살인 사건 조사 및 현장 검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