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敎育 1/원고[주일예배]

내일이 안 보일 때.(조용기 목사)

好學 2009. 3. 16. 15:25

 

 

 계2:4-5

 


한국 동란을 취재해서 미국에서 플리쳐 상을 받은 기자가 압록강변에서 격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하 42도의 추운 날씨에 폭탄을 맞은 군용 트럭 옆에 기대서서 깡통 통조림을 먹고 있는 해병대 용사들, 칼로 통조림 콩을 찍어 먹고 있는 그들의 옷은 대나무처럼 얼어 붙어 딱 벌어지고 얼굴과 수염은 흙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산다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어쩌다 이 전쟁에 불려와 이 모양이 되었는가 이런 참담한 모습을 보고
너무 괴로워서 신음하다가 병사들의 손을 붙잡고 물었습니다. 내가 만일 당신들이 바라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해 줄 수 있는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당신들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겠는가 그들은 한참 생각하다가 이구동성으로 우리에게 내일을 주십시오 ."Give me Tomorrow, Give me Tomorrow" 추위와 굶주림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들려 줄 수 있는 복음이 무엇입니까? 내일을 주는 것입니다.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내일이 있을 때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야할 이유와 가치를 갖을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2000년 한해를 보내고 2001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내일을 밝히 내다 볼 수 없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환경 속에서 불안해 떨고 있습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민족적으로 어디에서 내일을 찾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내일을 찾기 위해서는

첫째로 회개해야만 합니다.
회개해야만 내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실 때 처음 외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천국이 지척에 와도 회개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요엘서 2장 13절에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 지 아니하시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모스 5장 4절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양심의 등불을 밝혀야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집에 남편이 장님이요, 부인은 정상적인 부인으로써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밤중에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남편이 그 일을 보고 와야 되겠는데, 부인이 남편에게 등을 준비해서 손에 들려주면서 이 등불을 들고 가라고 했습니다. 이 남편이 너털웃음을 짓습니다. 여보, 나는 밤이나 낮이나 똑같아요. 낮에도 눈 감고 다니고 밤에도 눈 감고 다니는데 내게 등불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니 부인이 하는 말이 당신에게는 들불이 필요 없겠지만은 밤에 걸어오는 사람이 당신이 손에 든 등불을 못보면 당신과 부딪힐 수 있어요. 자전거도 당신을 칠 수 있고 자동차도 당신의 바칠 수도 있어요, 그러므로 당신 자신을 위해서 등불을 들고 가시오. 그래서 이 시각 장애자는 부인이 준비해서 들려준 등불을 들고 길을 걸어가는데 한참 가다가 어떤 사람이 심히 부딪혀서 등을 든 채로 넘어졌습니다. 일어나면서 고함을 치면서 여보시오 눈이 있
냐 없냐, 등불 들고 가는 나도 못보고 나를 부딪히냐? 그러니 그 사람이 웃으면서 하는 말이, 당신 등불이 꺼졌소. 꺼진 등불 아무리 들고 가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양심의 등불이 꺼지고 나면 어떠한 사회도 국가도 낭패에 부딪히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부정, 불의, 부패가 끊임없이 자행되는 것은 우리들의 개인의 가슴속에 양심의 등불이 꺼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공권력의 강제 없이 자발적인 윤리 도덕이나 정의 실천이 전혀 되지 않는 이유는 양심의 등불이 꺼졌습니다. 형태만 있고 불빛이 없습니다.
잠언서 24장 19절로 20절에 "너는 행악자의 득의(得意)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사회 구석구석 마다 썩고 부패하지 않은 곳이 없어 양심이 사라지면 결국은 장래가 없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고 말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5장 24절에는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찌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야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살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더구나 성령의 등불이 꺼진 교회와 성도들은 참담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등불이 꺼지고 교회의 형식과 의식만 가지고 있으면 이는 세상과 마귀의 포로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는 종교는 있고 신앙은 없으면 의식은 있고 사랑과 성결이 사라지고 있는 이러한 형편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5절에서 17절에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식만 가진 신앙을 가지고 내용을 읽어 버리고 만 오늘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불꺼진 등을 들고 가는 장님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가 우리를 가만히 둘 리가 있겠습니까?
불이 꺼졌는데 자동차도 와서 부딪히고 자전거도 부딪히고 행인도 와서 부딪힙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로 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 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가슴에 손을 얻고 탐욕의 죄를 회개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어떠한 불법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은 양심을 짓밟아 버립니다. 대도 조세형이 감옥에서 나와서 성도가 되고 주를 잘 믿는 중소기업 부인을 얻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자식도 낳았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이 왜 일본에 가서 강도로 변합니까? 대도가 아니라 쥐새끼입니다. 왜 그렇게 변했습니까? 그 가슴속에 탐욕을 막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기의 분수를 뛰어 넘어 욕심을 가지면 어떠한 사람도 조세형이 처럼 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4절로 15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마음에 분수를 뛰어 넘는 욕심이 들어오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파멸에 묘지를 파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한국사회도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지도층의 부도덕이 일반 국민을 낙심시킵니다. 매일 신문에 보면 정치인들의 부정 부패, 경제적인 지도자들의 부정 부패, 사회 능력있는 사람들의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 이러한 것들이 우리 일반 국민들이 마음에 낙심을 가져와서 법에 존중하고 질서를 존경하는 마음을 없애 버립니다. 이 혼탁한 세상에 나 혼자 독야청청할 것이 무엇이냐! 되는 대로 살자. 그래서 나라에 법이 지켜지지 아니하고 무질서해지고 부패가 막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59장 1절에 12절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救援)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鈍)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罪惡)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罪)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惡毒)을 발함이라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리대로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며 잔해(殘害)를 잉태(孕胎)하여 죄악을 생산하며 독사(毒蛇)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그 짠 것으로는 옷을 이룰 수 없을 것이요 그 행위로는 자기를 가리울 수 없을 것이며 그 행위는 죄악의 행위라 그 손에는 강포한 행습(行習)이 있으며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사상(思想)은 죄 악의 사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끼쳐졌으며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의 행하는 곳에는 공의가 없으며 굽은 길 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공평이 우리에게서 멀고 의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한즉 우리가 빛을 바라나 어두움 뿐이요 밝은 것을 바라나 캄캄한 가운데 행하므로 우리가 소경같이 담을 더듬으며 눈 없는 자같이 두루 더듬으며 낮에도 황혼 때 같이 넘
어지니 우리는 강장(强壯)한 자 중에서도 죽은 자 같은지라 우리가 곰같이 부르짖으며 비둘기같이 슬피 울며 공평을 바라나 없고 구원을 바라나 우리에게서 멀도다 대저 우리의 허물이 주의 앞에 심히 많으며 우리의 죄가 우리를 쳐서 증거하오니 이는 우리의 허물이 우리와 함께 있음이라 우리의 죄악을 우리가 아나이다" 여러분 이사야가 탄식한 것처럼 바로 우리의 죄악이 하나님과 우리를 갈라 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처절한 마음으로 통분히 여기는
마음으로 우리 자식을 개혁하고 회개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우리의 국가를 개혁하고 회개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 개개인의 가슴에 우리 지도자의 가슴속에 양심의 등불이 밝혀져야만 이 나라에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의 가슴속에 양심을 짓밟아 버리고 양심의 빛이 어두워진 이 마당에는 하나님 앞에서나 세상 앞에 제기할 수 없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참된 회개로 가슴을 두들기고 가슴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는 이런
운동이 우리 한국 사회에 나야하고 한국 교회에 일어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나라에 내일이 있습니다. 그 이외에 어떠한 분쟁도 어떠한 제도도 이 나라를 구원 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우리가 내일을 갖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내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새롭게 할 힘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우리는 제기할 힘이 없습니다. 우리를 새롭게 할 힘이 우리 속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능력을 힘입지 않으면 안됩니다. 모합과 암몬과 연합군의 침공을 받은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자기 군대와 가진 힘으로써는 이 연합군을 대적해서 싸울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성전 뜰에 모여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신이 내게 임하여서 하나님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내일 너희는 마주 내려가라 다음날 일찍 여호사밧 왕이 일어나서 백성 앞에 서서 너희는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경고에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하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 행하며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워 서로 치게 하심으로 적군에 한 명도 피할 길 없이 다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전리
품을 취하는데도 3일이 걸렸습니다. 모합과 암몬과 연합군의 침공을 받은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도저히 나라를 방지할 수 없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쟁에 이기고 나라를 보증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영국군 30만 명이 독일 군대에게 밀리고 밀려서 마침내 블란서의 조금한 어촌인 Dunkirk에 포위되었습니다. 영국은 30만이 괴멸되면 구라파는 무너지고 영국 조차 점령을 당합니다. 절대 절명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영국과 구라파의 힘으로는 독일의 기계와 부대를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영국은 기도회를 선포하고 전국민이 하루종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영국의 왕으로부터 수상으로부터 전 국민 전체가 하루종이
모든 일손을 놓고 하늘의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었습니다. 공중에는 독일의 비행기가 계속 폭격을 하고 땅에 기계화 부대가 밀어 제끼고 바다에는 U보트가 있어 연합군의 모든 배는 다 침몰시켰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하셨습니다. 거대한 폭풍우가 불어 닥쳤습니다. 비행기가 뜰 수 없습니다. 진흙 창고로 모든 전체가 진흙에 빠져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파도가 침으로 잠수합니다. 철수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Dunkirk에 반짝 폭
풍우가 치고 하늘에 별빛이 보였습니다. 전선에는 아직까지 비바람이 치는데 Dunkirk만 하늘에 별이 보이고 날이 맑아졌습니다. 온 영국에 개인 보트로부터 해서 다 동원하여 30만 대군과 시민들을 한 사람도 남김 없이 철수시키고 난 다음에 날이 개자 군인들이 기계화 부대가 닥쳐오니 영국군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영국이 그 30만 대군을 다시 재편성해서 아프리카 전선으로 투입시켜서 몽고메리 원수가 그를 인도해서 구라파를 회복하고 독일을 공략하는데 나갔기 때문에 2차 대전이 끝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위기에 처할 때에 전 국민들이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하나님이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1절로 7절에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 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 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었나니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 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할 처지에 있을 지라도 우리가 가슴을 치고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찾으면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능력으로 우리를 수렁에서 건져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구원하실 힘이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고 요새가 되시고 산성이 되시고 구원하는 손길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이 위기에서 벗어나고 소망을 갖기 위해서는 주인 의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4장 2절에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맡겨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개인의 생명도 우리의 가정도 우리의 사업도 우리의 직장도 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맡은 처소에서 충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수처작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내가 이르는 곳 마다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하철에 가면 주인이다, 시장터에 가면 이곳이 내 주인이다, 공장에 가면 이곳이 내 주인이다 주인 의식을 가진다면 모든 것을 정결하고 깨끗하게 알차게 사용하며 돌보게 될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니라고 말하니깐 아무나 발길로 차고 더럽고 추하게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카네기 강철 회사의 후계자는 Charles Swab의 이야기는 마음에 감동이
됩니다. 그는 초등학교 밖에 못 나온 사람으로 거대한 가문에 강철 회사에 잡역부로 취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취직하자마자 이미 거대한 공장이 내 것이요,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는 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에도 구석마다 정리하고 깨끗이 했습니다. 매일 정리하고 정돈했습니다. 한 동안에 사람들은 그 사람을 비웃었습니다. 정신이 어떻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변치않고 그 거대한 공장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공장을 정결하게하고 정리 정돈했습니다. 그러니 나중에 사람들이 인정해서 그를 사원으로 발탁을 했습니다. 정식 사원이 되고 난 다음에도 10리 가는 열심을 가지고 주인 의식을 가지고 모든 일을 충성하라고 하니깐 너무 감동이 되어서 카네기 사장이 비서로 채용을 했습니다. 그는 카네기 사장의 입의 혀같이 여겼습니다. 여기에서 내 주인이다. 그러므로 내가 여기 주인으로써 5리를 가라면 10리를 가고 속옷을 달라면 겉옷을 주는 그런 심정으로 일을 해야 한다. 그 카네기 사장이 얼마나 감동했던지 전 사원을 모아 놓고 이 Charles Swab에게 그가 2, 3천 달러 연봉을 받을 때에 100만 달러 보너스를 주었습니다. Charles Swab의 이 주인 의식은 값으로 계산할 수 없다고 했으면 나중에 강철 왕 카네기가 은퇴할 때에 사람들은 모두다 궁금해했습니다. 누가 후계자가 될 것이나 하버드 출신인가 프리스톤 출신인가 어떠한 명분 대가의 자녀인가 누가 후계
자가 될 것인가 그러나 Charles Swab를 카네기는 지시하면서 자네가 내 후계자가 되라고 말했습니다.
온 세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밖에 못 나온 사람입니다. 좋다. 학력이 이 회사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다 너 같이 주인 의식을 가지고 충성되이 일하는 사람이 이 회사의 주인이다.
느헤미야 9장 8절에 그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언약을 세우사 그 말씀대로 이루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은 착하고 충성된 마음을 구하는 것입니다. 꾀 많고 적당 주의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한때 카톨릭에서 '내 탓이요'라는 slogan을 모든 자동차의 뒷문에 달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차를 타고 따라가면서 앞의 뒤에 내 탓이요라고 기록한 것을 읽을 때마다 마음에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왜냐! 정말 내 탓이면 앞에다 붙여 놓아야지 뒤에다 붙여 놓고 뒤에 따라오는 사람마다 당신 탓이요. 그렇게 읽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차 뒤에 붙여 놓았지만 뒷 유리에 붙이지 말고 자기 앞 유리에 붙여서 자기가 볼 때 내 탓이요 해야지 뒤에 보고 내 탓이요 그것은 당신 탓으로 알라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다 자기의 개인의 탓인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권리만 주장하고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무엇이 다 자기 주장만 하지 나중에 자기 책임을 아무도 안 질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회가 법과 질서가 통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시편 12편 1절에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 경건한 자기 끊어지고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면 인생은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의 노예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가 내일의 희망을 두고 살기 위해서는 사랑해야만 합니다.
사랑해만 내일이 있습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면 내일이 없어요 우리가 마음을 다해서 나라를 사랑해야 해야 되요 내가 이 땅에
살지만은 다른 사람이 나라를 사랑하지 내가 뭐 나라 사랑할게 뭐냐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같은 사람이 무슨 나라 사랑 할 필요가 있겠느냐! 나라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대통령이나 정치인이나 높은 사회 인사 사람들이 사랑할 것이지 우리는 그냥 살면된다. 그렇지 않습니다. 나라 사랑이란 여러분 애극 애조한다는 마음이 안중근 의사같이 총으로 쏴 죽이는 그러한 거대한 애국적인 행사를 해야 나라사랑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현재 살면서 조그마한 일에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입니다. 빨간 불이 켜질 때는 건너가지 말고 파란 불이 켜질 때 건너가는 것이 나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찍이 차를 몰고 나가보면 여러분 택시들이나 일반차들이 사람이 없다고 빨간 불이 켜졌는데도 그냥 막 달려갑니다. 이런 것이 반역적이 행위인 것입니다. 사람이 있든 없든 빨간 불이 켜면 서고 파란 불이 켜면 가는 것이 나라사랑하는 것입니다. 거창한 일에 나라사랑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지극히 적은 일에 우리가 법과 질서를 지킬 때 나라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집단 이기주의 병폐는 자기 단청만 사랑하고 나라의 어떻게 되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오늘
날 집단 이기주의 병폐인 것입니다. 특정 단체의 대면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 시민 단체가 우후죽순인체로 일어나서 문제만 생기면 시민 단체들이 집단 이기주의를 대변해서 고함 고함 칩니다. 이것은 나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싱가폴 GNP가 일인당 2만 4천불이 되어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갔는데도 불구하고 전 수상자였던 이광요씨는 장년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강의 할 때 탄식하기를 나라의 기본 질서 국민 의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경제 성장도 물거품이다 싱가폴도 이대로 20년 가면 다시 추락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싱가폴같이 법과 질서가 지켜지고 거리가 깨끗하기로 세계에서 이름난 그러한 나라에도 이광요 전 수상은 이런 탄식을 했는데 하물며 우리나라를 거기에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는 절단 강산이라고 말해도 말이 아닐 것입니다. 나라를 사랑해야 되요. 큰 일을 해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극히 적은 일에 내 스스로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주인 의식을 가지
고 행동 할 때 나라 사랑하게 됩니다. 그 다음 우리는 자연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새가 날아가 버리고 짐승이 살아지고 오염된 하천에 물고기가 죽어 둥둥 떠가는 곳에는 인간의 삶에도 종착역에 도착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기 돈벌이가 귀해서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 오염된 물을 하천과 강에 그대로 부어 넣습니다. 일시적으로 돈벌이를 하고 잘 살지 몰라도 그 재앙은 자기에게 다가옵니다. 결코 자기 자손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요사이
영국과 독일에 광우병으로 말미암아 소고기를 먹을 수가 없습니다. 소고기를 먹은 사람들은 그 자녀들이 머리에 스폰지 같이 구멍이 뚫어져서 전신이 마비되어 죽습니다. 왜 광우병에 걸립니까? 자연을 훼손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연을 훼손해서 그 대
가로 광우병에 걸려서 이제는 영국과 구라파에서는 고기를 먹을 수가 없습니다. 식생활 조차도 이젠 건전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로마서 8장 22절에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우리는 피조물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생화, 벌과 나비와 짐승들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밀렵군들이 온 곳에 다 덫을 놓고 온 곳에 다 철조망을 놓아서 무자비하게 짐승들을 잡아죽입니다. 결국에는 그곳이 자기에게 자살 행위로 돌아오고 마는 것입니다. 자연이 없는 인간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해요. 한강 물에 물고기가 뛰어 놀고 물고기가 살지 아니하면 서울 시민은 다 죽습니다. 우리는 자연을 사랑해야 내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웃을 사랑해야 내일이 있습니다. 끝없는 대결과 미움과 투쟁은 공멸을 가져옵니다. 세계 제1, 2차 대전을 통해서 온 세계는 초토화된 것이 아닙니까? 그 외에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대결로 나라마다 황무지가 된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오늘날 세계 5만 천개의 핵탄두가 부여되고 있는데 이는 인류 일명단 5톤의 TNT을 머리고 이고 있습니다. 한 개의 대형 탄두는 2차 대전때 모든 나라가 사용한 모든 무기를 합친 것보다 폭발력이 더 강합니다. 이러한 원자탄이 5만1천개가 있습니다.
분쟁하면 결국 우리는 자멸의 무기를 이미 갖고 있습니다. 폭탄 위에 올라 앉아 살고 있습니다. 사랑만이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남북 대결의 동서의 대결, 빈부의 대결, 계층의 대결, 노사의 대결 등 대결로써 날이 지고 대결로써 날이 샙니다. 이와 같은 갈등과 앓는 속에서 국력은 쇠퇴해지고 국민은 낙심하고 나라는 빈약해 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0절에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했는데 우리가 사랑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가지고 우리가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 됩니다. 별 도리 없이 나 혼자만 살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한반도에서 우리는 혼자 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다 함께 살기 위해서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려고 최대한의 노력을 다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말할 필요 없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잠언서 22장 4절에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報應)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산다고 큰 소리 하는 사람은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는데 하늘이 비를 주지 아니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땅에서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한발이 다가오면 일시에 다 굶어 죽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과 축복이 있는 가운데 노력도 하고 애를 써야 열매를 맺지! 하나님 없이 인간의 노력은 아무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6.25전쟁 후 지금까지 잿더미에서 일어나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을 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쌓여온 부조리가 일시에 산떠미처럼 쏟아져 내려옵니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생존하며 번영하기 위해서는 잘못을 회개하고 청산할 줄 알아야 합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찾고 찾으며 나와야 합니다. 모두 다 책임있는 주인으로 범사에 주인 의식을 가지고 권리만 주장하지 말고 책임을 걸머질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삶의 태도의 변화가 내일을 가져옵니다. 막연히 있어 내일이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내일이 캄캄합니다. 이러한 우리 스스로의 개혁과 변화와 회개가 있어야 내일을 바라 볼 수 있습니다.
아모스 5장 14절에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 우리는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여러분, 저, 우리 한국 민족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2001년 새해를 맞이했지만 우리에게는 내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정치는 정치대로 혼미에 혼미를 거듭하고 경제는 나락에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민심은 흉융하고 불안과 공포 심리가 온 사회에 곽 들어 차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를 도와 주시옵소서. 살기 위해서 회개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살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게 도와 주시옵시고 살기 위해 주인 의식을 갖게 도와 주시옵시고 살기 위해서 하나님 사랑하며 존재하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