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人生/[우주만물]세상만사

[만물상] 의전(儀典) 서열

好學 2010. 11. 13. 22:31

[만물상] 의전(儀典) 서열

 

 


케네디 대통령은 재임 시절 대법원장 뒤에 있던 하원의장 의전서열을 대법원장 앞으로 바꿔 놓았다. 법원의 불만이 대단했지만 “하원의장은 국민의 대표”라는 케네디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프랑스는 1958년 관직의 서열을 정한 법령을 관보에 실었다. 이 법령에서 상원의장은 하원의장보다 서열이 앞섰지만 상원의원들은 하원의원들보다 서열이 낮은 게 내내 불만이었다.

▶5·16 핵심 인물이었던 윤태일 서울시장은 1962년 관용차 번호를 배정받았다. 26호였다. 1호 박정희 의장 차, 2호 총리 차…. 차량번호가 곧 서열이었다. 윤 시장은 군 후배인 한신 내무장관의 관용차가 12호라는 것을 참지 못했다. 윤 시장은 서울시를 중앙부처와 동격 기관으로 올리고 총리 감독을 받게 하는 특별법을 최고회의에서 통과시켰다. 한신 장관이 교통사고로 두 달 넘게 자리를 비우던 틈을 탄 뒤집기였다.

▶갖가지 지방 행사마다 주최측은 의전 서열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국회의원과 기초단체장 중 누가 먼저 소개되고 누가 먼저 축사를 하느냐를 놓고 승강이가 벌어지기 일쑤다. 국회의원이 서넛 있는 기초단체의 경우는 싸움이 더욱 치열하다. 서열 다툼은 학문의 세계에도 있다. 몇 년 전 서울대는 교직원 수첩의 단과대를 전통적인 인문·사회·자연대 순(順)에서 가나다 순으로 바꿨다가 이 3개 대 학장들이 학장회의에 불참하며 항의하는 바람에 도로 복구했다.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이 그제 국회에 나와 “헌재 소장의 의전 서열이 총리 앞으로 와야 한다. 법률이란 법률에 다 그렇게 돼 있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법만 해도 ‘소장의 대우와 보수는 대법원장의 예에 의한다’고 돼 있다는 것이다. 헌재는 2000년부터 청와대에 서열을 바로잡아 달라고 요청했지만 정부는 한두 차례 빼곤 항상 총리를 앞세웠다. 올해 청와대 신년인사회 초대장에 총리가 헌재 소장 앞에 올라 있자 윤영철 소장이 신년인사회에 불참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정부는 1987년 헌재가 만들어지기 전 ‘3부 요인’이 국회의장·대법원장·총리였던 관행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맞선다. 총리 서열을 앞세운 행정자치부 ‘국가의전편람’도 인용한다. 그러나 관행과 편람이 법령보다 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선 헌재가 행정수도 이전에 위헌결정을 내린 뒤 정부와 껄끄러운 관계가 된 탓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의전은 종합예술’이라는데 정부는 ‘예술’이 아니라 힘겨루기 ‘기술’쯤으로 여기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