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人生/[우주만물]세상만사

[만물상] 정치인의 연설

好學 2010. 11. 13. 22:30

[만물상] 정치인의 연설

 

 

 

19세기 영국 정치가 디즈레일리는 웅변가로 이름났다. 그는 총리 시절 의회에서 연설할 때마다 한 손에 든 메모지를 힐끔거리곤 했다. 의원들은 그 메모지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궁금했다. 어느 날 디즈레일리가 실수로 메모지를 떨어뜨리자 한 의원이 그걸 주워 훔쳐봤다.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였다. 그에게 연설 원고란 아예 없었고 메모지는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한 소품이었을 뿐이다.

▶처칠은 거꾸로 ‘연설 같지 않은 연설’ 스타일로 명성을 쌓았다. 그는 원고를 단상에 내놓긴 했지만 거의 외워 버린 덕분에 연설 중엔 절대로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래서 청중은 마치 대화를 듣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연설 틈틈이 잠깐씩 멈추기를 되풀이해 청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긴장을 끌어냈다. 말을 조금 더듬고 혀도 짧아 ‘s’ 발음을 잘 못하는 단점을 이런 자신만의 연설 스타일로 덮을 수 있었다.

▶우리 정치인에서 명연설가로는 해공(海公) 신익희(申翼熙) 선생이 자주 거론된다. 해공도 처칠처럼 원고를 들여다보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는 중간중간 호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식의 ‘틈’을 보여 청중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연설 내용은 “권력자들이 거머리처럼 국민 정강이에 달라붙어 있다”(1956년 한강백사장 대선 유세)는 식으로 추상(秋霜) 같았다. 그러나 어조는 언제나 잔잔했고 그리 흥분하지도 않았다.

▶당의장 경선이 한창인 여당에서 “연설 때문에 누구는 표를 얻고 누구는 표를 잃었다”는 말이 나올 만큼 후보 8명의 유세 경쟁이 치열하다. 한 후보는 연설에서 많이 손해봤다는 평을 받자 급히 여권 최고의 연설 전문가를 코치로 들여 연설문부터 뜯어고쳤다고 한다. 이 여성 전문가는 현역 정치인 중에 노무현 대통령을 최고 연설 고수로 꼽고 “극적 반전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백미”라고 했다.

▶이 전문가는 정동영 후보에 대해 “쉽게 들리는 말을 하는 능력이 있지만 깊이가 없다”고 했다. 김근태 후보에 대해선 “소리를 안 질러도 되는 데서 질러야 하는 연설문 자체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고 평했다. 그는 ‘자연스러움·솔직함·일상성·대중성’이 대중연설의 원칙이라고 했다. 영국 격언도 “연설은 마음의 그림”이라고 했다. 결국 정치인 연설의 생명은 스스로의 자연스럽고 솔직한 ‘마음’을 국민의 가슴에 가 닿을 수 있게 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