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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기업사냥꾼 아이칸

好學 2010. 9. 25. 22:22

 

[만물상] 기업사냥꾼 아이칸

 

 

 

영국인 제임스 핸슨과 고든 화이트가 투자신탁회사 ‘핸슨 트러스트’를 세워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1964년이었다. 이들은 사업전망이 밝지 않은 벽돌공장과 담배공장들만 골라 헐값에 사들였다. 그런 뒤 사옥(社屋)과 부동산을 팔아 치워 은행 빚을 모두 갚았다. 시원찮은 자회사들은 깨끗하게 쳐내 눈깜짝할 새에 2~5배씩 받고 되팔았다. 한 언론은 “해적행위에 가까운 약탈”이라고 놀랐다.

▶핸슨 트러스트는 단번에 ‘무서운 아이들’로 떠올랐다. 미국 증시에 ‘기업사냥꾼 1세대’가 등장한 순간이었다. 명문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칼 아이칸이 40만 달러를 빌려 뉴욕증권거래소 중개인으로 나선 것도 그 무렵이다. 현장감각을 익힌 그는 80년대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을 휩쓸며 ‘기업사냥꾼 2세대’로 자리매김했다. 트랜스월드항공(TWA)에 대한 적대적 M&A를 비롯해 식품회사 나비스코, 철강업체 USX, 타임워너를 차례로 공략했다. 그때 붙은 별명이 ‘상어’(Shark)다.
▶아이칸은 선진 금융기법을 본격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1세대와 달랐다. 그는 ‘정크(쓰레기) 본드’라 불리는 고(高)위험 회사채를 헐값에 사 모은 뒤 되팔아 큰돈을 벌었다. 그의 수완은 2000년 이후 미국의 기업사냥 시장을 주무르는 윌버 로스와 커크 커코리안에게 이어지고 있다. ‘3세대’ 로스는 철강, 섬유, 광업 등 죽어가는 사양산업의 부도기업만 쑤시고 다녀 ‘하이에나’라는 별명을 얻었다.
▶어느덧 70세가 된 아이칸의 ‘아이칸 파트너스 마스터 펀드’가 대표적 우량기업 KT&G의 주식을 7% 가까이 사 모아 3대 주주로 올라섰다. ‘경영권 행사’가 목적이라고 한다. 아이칸은 이사·감사의 선임과 해임, 정관 변경과 배당금 결정, 회사 합병과 분할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고 벼른다. 실제 어느 수준까지 목소리를 낼지 모르지만 자칫 소버린이 SK의 경영권을 공격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KT&G의 외국인 지분은 61%나 된다. 아이칸이 다른 외국인 투자자와 손을 잡으면 아예 경영권이 넘어갈 수도 있다. KT&G측 방어지분은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自社株)를 빼면 기업은행과 우리사주조합을 합쳐 10% 남짓밖에 안 된다. 컴퓨터 ‘엔터’ 키 하나로 수조 원의 자금이 순식간에 옮겨 다니는 전자투자 시대다. 국제 기업사냥꾼의 ‘상어’ 이빨이 언제 국내 알짜기업의 목덜미를 물어뜯을지 모른다. 최선의 방어책은 건실한 경영으로 허점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