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神學/[기도]祈 禱

벤지민 슈몰크(Benjamin Schmolk)의 기도

好學 2010. 7. 10. 12:54

 

벤지민 슈몰크(Benjamin Schmolk)의 기도

 

 

 

1618년에서 1648년까지 30년 간 독일에서는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는데

이것이 이른바 30년 전쟁입니다.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독일은 온통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에 더하여 전쟁 직후에 흑사병이 창궐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1,600만 명이던 독일 인구 중 무려 1,000만 명이 사망하는 참혹한 상황이 빚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전쟁에 개입해 승리를 이끌었던 프랑스는 천주교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개신교도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장 치열한 격전지이었던 실레지아(Silesia)라는 곳에서는

전쟁이 끝난 후 대부분의 주민이 종교개혁 이전의 천주교로 돌아 가버렸습니다.

벤자민 슈몰크(Benjamin Schmolk, 1672-1737)라는 개신교 목사가 그곳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는 종탑도 없어졌고 그저 통나무와 흙벽으로 된 예배당 하나만 덩그렇게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가 담당하는 교구는 주변의 36개 마을이나 되었습니다.

천주교의 박해가 심해 종탑도 세울 수 없었고 심지어는 장례식도 허락을 맡아야만 치를 수 있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벤자민 슈몰크 목사 부부는 실망하지 않고 선교에 열중하였습니다.

그러다 벤자민 슈몰크 목사는 과로로 자주 쓰러졌고 급기야는 30대 초반에 중풍에 백내장까지 겹치게 되었다.

그러나 중풍으로 인해 절룩거리고 눈까지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선교 정열은 식지 아니하여

36개 마을을 빠짐없이 심방하며 다녔습니다. 이를 보고 많은 교인들이 감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1704년 슈몰크 목사가 32세 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슈몰크 목사는 언제나처럼 아픈 몸을 이끌고

여러 지역을 심방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통나무로 지은 목사의 사택이 불에 타버렸기 때문입니다.

뿐 아니라 두 아들이 부둥켜안은 모습으로 잿더미 속에서 타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슈몰크 목사 내외는 두 아들의 시체를 앞에 놓고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

하지만 슈몰크 목사는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끝내 신앙을 저버리지 않고 절규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가 찬송가 431장  내 주여 뜻대로의 가사입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롬 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