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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법정에 선 미술품

好學 2010. 6. 29. 20:29

 

[4] 법정에 선 미술품

 

 

 

미술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어디까지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뉴욕 맨해튼의 연방플라자 앞에 세워졌다가 철거된 리처드 세라(1939~)의 조각 '기울어진 호(弧)'는 이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세라는 1979년 미국 정부 총무처로부터 야외조각을 위촉받아 2년 후 약 36m 길이에 3.6m 높이의 거대한 조각을 완성했다. 활 모양으로 휘어져 서 있는 이 작품은 친(親)환경 재료인 코르텐 스틸로 만들었지만 외관상으로는 녹이 슨 것같이 보였다.

작품이 설치된 후 연방건물 직원들 사이에서 이 조각이 시야를 가리고 보기 흉하며, 먼 길을 돌아가게 하기 때문에 작품을 옮겨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또 공공장소에 설치되는 미술은 작품 중심보다는 관람자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세라는 자신의 조각은 설치 장소를 고려해 제작한 것이므로 장소를 옮기는 것은 작품을 파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항변했다. 재판까지 간 이 사건에서 법원은 작품의 통제권이 전적으로 소유자, 즉 총무처에 있다는 판결을 내렸고, 1989년 이 작품은 철거됐다.

베로네제의 '레비의 집에서 열린 향연'.

세라는 적어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기회는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반(反)종교개혁이 한창이던 16세기 중반 이탈리아에서는 종교화의 적절성이 종교재판에서 일방적인 판결을 받는 일이 많았다. 베네치아 화가 파올로 베로네제(1528~1588)는 1573년 재판에 회부됐으나 현명하게 대처한 경우다. 남아 있는 재판 기록을 보면, 재판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을 그린 것처럼 보이는 그의 그림에 왜 어릿광대, 코피를 흘리는 사람, 그리고 루터의 종교개혁 후 이단으로 여겨지는 독일인이 등장하는지 물었다.

베로네제는 자신도 작품을 자기 마음대로 구성하는 시인이나 궁정익살꾼(이들은 화가보다 사회적 위상이 높았다)처럼 자격을 갖췄고,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려 넣었다고 답변했다. 결국 그는 3개월 안에 자신의 비용으로 그림 내용을 바꾸라는 판결을 받았다. 베로네제는 이에 불복하고 그림을 고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종교화로 보이지 않게 그림 제목을 '레비의 집에서 열린 향연'으로 바꿔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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