好學의 自由/만화.그림.

[1] 아크나톤의 부활

好學 2010. 6. 28. 20:19

 

[1] 아크나톤의 부활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지금 고대 이집트 미술품을 모은 '파라오와 미라'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에서 목은 없어지고 몸체만 남은 아주 작은 조각을 보았다. 이 조각은 기원전 14세기 중엽에 재위한 신왕국 18왕조의 파라오 아크나톤의 '샵티'(지하세계에서 파라오 대신 노동을 하는 입상)였다. 이 조각의 앞에는 아크나톤을 의미하는 '카르투슈'가 새겨져 있다. '카르투슈'란 왕이나 왕조를 의미하는 상형문자를 보호하기 위해 둘러싼 끈 모양의 테두리를 말한다.

아크나톤의 원래 이름은 아멘호테프 4세였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불룩한 배와 가슴, 부푼 눈두덩, 두꺼운 입술과 비죽 튀어나온 턱을 가진 이상 골격의 소유자였다. 여러 설이 있지만 순수한 왕실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근친결혼을 하던 이집트 왕가에서 나타난 일종의 유전병으로 추정된다.

그는 그때까지 평온하게 살아오던 이집트에서 과격한 종교 개혁을 단행했다. 가장 강력한 태양신 '아몬 레' 대신 유일한 신 '아텐'을 섬기고, 사람과 동물이 뒤섞인 모양으로 표현되던 신의 모습을 태양 원반으로 표시했으며, 아텐을 숭배하는 많은 신전을 세웠다. 자신의 이름을 아텐에게 복종한다는 뜻의 아크나톤으로 바꾼 그는 수도도 테베에서 아마르나라는 새로운 도시로 옮겼다. 새로운 변화는 아마르나 시기의 미술에도 보인다. 엄격하고 부동적인 모습의 인물들은 유연한 곡선과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표현되었고 파라오 가족의 단란한 일상생활 같은 모습도 미술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단한 파격이었다.

변화는 얼마 지속되지 못했다. 아크나톤이 죽자 그동안 권력을 잃어버렸던 사제들은 다시 수도를 테베로 옮겼고, 모든 기록과 미술에서 아크나톤의 이름을 지워버리거나 파괴해버려 그의 이름이 역사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근대의 고고학자들은 아마르나를 발굴하면서 유물들을 찾아냈다.

그중의 하나가 현재 베를린의 이집트 박물관에 있는 유명한 네페르티티 두상이다. 아크나톤의 왕비였던 이 네페르티티 두상은 이집트 특유의 형식미와 아마르나 양식의 섬세한 곡선이 아름답게 혼합되어 있는 최고 걸작품이다. 국립 중앙박물관 전시에서 본 아크나톤의 '샵티' 역시 역사의 파괴에서 용하게 남아 있는 조각상이다

 

 

조선일보에서

김영나 서울대 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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