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설신어] [2] '공공의 적' 비둘기
18세기 이후 조선에 불어닥친 웰빙 붐을 타고 한동안 관상용 비둘기 사육이 성행했다.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몇년 전 발견된 유득공(柳得恭·1748~1807)의 '발합경'은 비둘기 사육에 필요한 정보를 갈래별로 정리해둔 책이다.
생김새에 따라 이름도 갖가지다.
전신이 흰 전백(全白)이,
승려의 가사 빛깔 같은 중[僧],
목에 염주를 두른 듯한 전항백(纏項白),
까막점이 있는 점오(點烏) 등 23종이나 되는 이름을 소개했다.
비둘기 사육은 당시 재테크의 한 방편으로 인기가 있었던 듯하다.
최근 번역 출간된 이옥(李鈺·1760~1815)의 '백운필(白雲筆)'에도 새장 기둥에 산 모양을 새겨 넣고 수초 그림을 그리고는 구리철사로 망을 만들어, 한 조롱의 값이 수천 전씩이나 한다고 적었다.
점모(點毛)란 품종이 제일 비싸 한 쌍 가격이 100문이 넘었다. 은퇴한 재상이나 부잣집 젊은이들이 울타리를 치장해 놓고 집에서 기르곤 하는데, 지붕에 비둘기들이 줄지어 앉아 있는 것을 보면 주인이 속물처럼 보인다고 적었다.
비둘기장의 사치스러움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꼬리에 쇠방울과 붉은 깃털 장식의 시치미까지 매달아주었던 모양이다.
김광섭 시인은 1968년 '성북동 비둘기'에서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고 노래했다. 성북동에 채석장이 들어서면서 졸지에 보금자리를 잃게 된 비둘기를 연민한 내용이다. 그로부터 다시 40년이 지나 이제 도심 비둘기는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되어 아예 퇴치 대상이 되었다. 알을 뺏고 굶겨서라도 우리 주변에서 몰아내겠다는 것이다.
평화와 화합을 상징하던 이 새가 오늘날 이토록 천덕꾸러기가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하기야 기쁜 소식을 상징하던 까치가 애물단지가 된 지도 이미 오래다. 척박한 도시 환경에서 살아남으려 했을 뿐인 비둘기의 입장에서도 할 말이 없지는 않을 터. 같은 비둘기를 놓고 시대에 따라 대접이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진 것을 보며 생각이 참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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