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6·25] 미니 戰史 [1] 전쟁 발발, 北지상군 국군의 2배… 전차 '200 對 0'
미니 戰史 ①전쟁 발발
1950년 6월 25일 새벽 38선에서 기습공격을 감행한 북한군이 서울 시내에 입성하기까지 단 3일이 걸렸다. 북한군은 당일 옹진반도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26일 의정부, 27일 창동, 28일 새벽 미아리 방어선을 파죽지세로 돌파했다. 그동안 개성·김포·문산·포천·의정부·춘천·가평 등을 손아귀에 넣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전력에서 남북한은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북한의 지상군 병력은 국군의 2배였다. 10개 보병사단과 1개 전차여단, 3개 독립연대 등 18만2000명이었다. 국군은 8개 보병사단과 2개 독립연대 등 9만4000명이었다. 북한 전투장비는 남한의 3배가 넘었다. 개전 당시 북한은 200대가 넘는 전차를 보유했다. 국군은 단 한대도 없었다. 장병들은 북한 전차 소리만 들어도 도망을 가거나 두려움에 떨었다.
공군력의 경우 북한은 전투기 포함 211대가 있었지만, 아군은 연락기와 연습기 22대가 전부였다.
북한은 38도선 전역에서 일제히 공격을 개시해 한 달여 만에 부산을 점령한다는 계획이었다. 북한 주공(主攻)은 4개 사단과 1개 전차여단으로 구성된 제1군단이 맡았다. 제3·4사단과 제105전차여단 예하 2개 전차연대는 의정부-서울 방향으로, 제1사단과 1개 전차연대는 문산-서울 방향으로 공격했다. 나머지 6사단은 한강을 넘어 김포-영등포로 진격하게 했다.
조공(助攻)은 3개 보병사단과 1개 모터사이클연대로 구성된 제2군단이 맡았다. 이 중 제2·12사단과 모터사이클연대는 춘천-가평·홍천-수원 방향으로 진격해 서울 동측방을 우회 공격, 국군 주력을 포위하도록 했다. 나머지 제5사단은 제766유격연대와 제945육전대의 지원을 받아 동해안 축선을 따라 포항 방면으로 남진하도록 했다.
국군의 전방방어 부대는 4개 사단과 1개 연대였다. 옹진반도에 보병 제17독립연대, 개성·문산에 제1사단, 의정부 북방에 제7사단, 춘천 북방에 제6사단, 동해안에 제8사단을 배치했다. 그나마 북한 남침 전날인 24일 0시를 기해 한동안 계속했던 비상경계령이 해제됨에 따라 많은 장병이 휴가와 외박을 나가 부대에 남아 있는 병력은 절반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당시 군 수뇌부는 국군의 능력을 과신했다. 전장에선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는데도 26일 열린 비상국회에서 "3~5일 내 평양을 점령하겠다"고 호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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