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과 조국] <1>독일의 국기
세계인이 하나 되는 무대, 월드컵. 지금 독일에는 세계 각국의 시민들이 오직 하나의 이름을 가슴에 아로새긴 채 모여 있다. 조국이다. 어려움을 딛고 월드컵 무대에 간신히 오른 나라, 옛 죄과를 벗어던지고 세계무대에 자랑스럽게 서기를 원하는 나라…. 모두가 순수한 열정 하나는 매한가지다. 사랑하는 나의 조국이다. |
《세계인이 하나 되는 무대, 월드컵. 지금 독일에는 세계 각국의 시민들이 오직 하나의 이름을 가슴에 아로새긴 채 모여 있다. 조국이다. 어려움을 딛고 월드컵 무대에 간신히 오른 나라, 옛 죄과를 벗어던지고 세계무대에 자랑스럽게 서기를 원하는 나라…. 모두가 순수한 열정 하나는 매한가지다. 사랑하는 나의 조국이다.》
“도이칠란트, 도이칠란트!”
기젤라 파울란(25·여) 씨의 얼굴은 붉게 상기돼 있었다. 독일 대 에콰도르의 경기가 열리기 직전인 20일 오후, 프랑크푸르트의 공식 응원 장소인 마인 강변에서 그는 친구들과 함께 검정 빨강 노랑의 삼색 독일기를 있는 힘을 다해 휘두르고 있었다. 파울란 씨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평범한 직업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은행원이었다.
―독일은 일찌감치 16강에 진출했는데 왜 이렇게 나왔죠?
“이렇게 여럿이 모여 ‘독일’을 힘껏 외치는 것이 즐거워요. 처음 맛보는 기분인 걸요.”
―2002년엔 이렇지 않았습니까?
“이렇지는 않았어요. 우선 당시는 독일에서 열리는 축제가 아니었고, 이렇게 힘껏 ‘독일’을 외치는 분위기도 아니었어요.”
최근 독일 언론들은 잇따라 ‘독일인들이 파털란트(Vaterland·조국)를 재발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02년에만 해도 국기를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사람은 ‘네오나치’로 받아들여졌지만 지금 독일인들은 마음껏 국기를 휘두르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파울란 씨에게 “국기를 휘두르는 사람은 극우파였다면서요?”라고 물어보았다.
“극우파는 이제 흑 적 황의 독일기를 좋아하지 않아요. 이 깃발은 19세기 자유주의 운동의 상징이었죠. 요즘 극우파는 흑 백 적의 제2제국 깃발을 들고 행진하죠.”
경제 규모 세계 3위의 대국이자 괴테와 베토벤의 조국 독일. 그렇지만 파울란 씨는 학교에서 한번도 독일 국기와 국가에 대해선 배운 적이 없다. 방송에서 이따금 흘러나오는 국가를 웅얼웅얼 따라 배웠을 뿐이다.
“어릴 때 ‘국가’란 자랑스러우면서도 자랑스럽게 떠벌릴 수 없는 금기의 대상이었어요. 어른들의 표정에서 이런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죠. 우리는 일찍이 독일의 이름으로 남들을 해쳤다. 우리는 죄를 지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행복에 대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될 당시 파울란 씨는 여덟 살이었다. 그때 가족들이 뉴스를 보며 흥분하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아버지는 “집 앞에 국기를 달자”고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래도 될까요?”라며 주춤했다. 결국 국기는 달리지 않았다.
“저요? 독일을 사랑해요. 이제 와서 우리가 나라를 사랑한다고 해서 이웃에 대한 침략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단지 남들처럼만, 프랑스인이나 폴란드인이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것과 똑같이 사랑하고 싶어요. 우리가 이겼을 때 눈물 흘리고, 소리 지르고, 국기를 휘두르고 싶어요.”
그의 얼굴엔 페이스 페인팅으로 삼색기가 그려져 있었다. “예쁘다”고 했더니 활짝 웃었다.
“독일 국가 2절 알아요? 저도 이번에 신문을 보고 처음 알았어요.” 그는 ‘우습기 그지없는’ 2절을 소리 높여 부르기 시작했다. 잊혀진 가사였다. 주변 사람들이 일제히 와 웃으며 박수를 보냈다.
“독일 여성이여, 독일의 충절이여,
독일의 와인이여, 독일의 노래여,
세계 속에 영원하라….”
프랑크푸르트=유윤종 특파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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