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834> 當仁하여는 不讓於師니라
仁의 실천은 나의 자율에 의해서 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仁을 실천할 때 마땅히 스스로 용맹스럽게 해나가야 하기에, 스승에게조차 양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공자는 ‘논어’ ‘衛靈公(위령공)’의 이 章에서 그점을 단호하게 말했다.
當仁은 ‘인을 실천하는 때를 당해서는’이다.
이에 이설이 많다.
주자는 ‘인을 나의 임무로 삼아서는’으로 풀이했으나 여기서는 孔安國(공안국)의 설을 따랐다.
不讓은 남에게 양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於는 ‘∼에게’이다. 師는 先生과 長者를 말한다.
仁이란 대체 무엇인가?
難問(난문)이다.
정약용은, 仁을 행하는 근본은 사람의 本心에 있되, 仁이라는 이름은 실천 이후에 붙는다고 보았다.
맹자는 ‘惻隱(측은)의 마음이 仁의 端(단)이다’라고 하여, 仁을 행하는 근본이 본심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仁이란 개념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각자 본분을 극진히 행하는 것을 두고 사용한다.
舜(순) 임금은 아버지 고수(고수)의 마음을 진심으로 기쁘게 해드림으로써 孝를 이루었고,
比干(비간)은 은나라 왕 紂(주)가 暴惡(포악)했지만 그를 위해 간절하게 諫言(간언)함으로써 忠을 이루었으며,
文王은 鰥寡孤獨(환과고독)의 四窮(사궁)을 불쌍히 여김으로써 慈(자)를 이루었다. 그 孝, 忠, 慈의 실천이 仁이다. 성리학에서 말하듯이 仁을 理로 본다면, ‘當仁’의 仁만이 아니라 四書五經(사서오경)에 언급된 仁이란 글자를 모두 풀이하기 어렵다.
일상에서는 스승에게 禮를 지켜 사양해야 하지만 仁을 행하는 일은 由己(유기)의 일이므로 스승에게라도 사양해서는 안 된다.
‘顔淵(안연)’에서는 “하루 克己復禮(극기복례)를 하면 천하가 仁으로 돌아온다. 仁을 함은 자기에게서 비롯하나니, 남에게서 비롯될 것인가?”라고 했다.
나는 자율적인 주체인가?
仁의 실천을 남에게 양보하고 있다면 그 대답은 부정적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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